교육 캐스트

원푸리 2012. 11. 14. 21:59

 

             * 풀꽃 생각

 

  2010년. 특목고에 자기주도학습전형(입학사정관제)을 도입한다고 발표한 해입니다.

  경시대회 입상 실적이나 토플 등 공인성적을 입학사정 자료로 요구할 수 없게 했지요.

  '다음 해부터 입시제도가 변경되기 때문에 재수생들의 하향안정 지원 추세가 예상...'된다는 뉴스를

  입시철마다 듣습니다.

  올해 대선에서도 교육 분야 핵심 의제는 특목고, 자사고를 없애느냐 마느냐 입니다.

  글쓴이 심경에 공감이 됩니다.

 

특별고와 일반고, 차라리 우리는 검정고로

 

                                                 오순정/제주동여중 3학년 오선경 아빠-2010년 3월 당시)

“너 수학 경시대회 나가보지 않을래?”
작년 10월 어느 날, 선생님의 제안에 선경이는 난생처음 4시간짜리 수학 시험을 치렀다.

결과는 0점이었고, 화살은 곧바로 아빠에게 날아왔다.

과외하지 말라. 그럴 시간이면 체험활동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효도하고 집안일 잘하고….

중학교 2학년이 되기까지 늘 이런 식이었으니, 0점의 책임은 전적으로 고집불통 아빠에게 있다는 것.

결국 그날 이후 아빠는 딸의 과외선생으로 돌변하였다.

비록 ‘절대로 정답을 보지 말고 풀어야 해’라는 말이나 되풀이하는 돌팔이 선생이었지만, 4개월 후 선경이는 그 어려운

수학 경시대회에서 약 50점대를 바라볼 수 있는 실력파가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지난 2일 발표된 교육과학기술부 지침에 따르면, 과학고 입시에서 경시대회 성적과 지필고사를 금지하고 자기주도학습 전형과

과학캠프만으로 선발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죠? 자기주도학습이 뭐예요?”
그동안 은근히 과학고의 꿈을 품어왔던 딸의 물음에, 안타깝게도 침울한 대답을 피할 수가 없었다.
“아빠도 모르지. 과학박사도, 그렇다고 부자도 아닌 아빠로서는 도움이 되기가 어려울 것 같구나.”
“딸도 아빠도 모르는 게임의 법칙. 왜 이런 엉터리 게임 때문에 꿈을 접어야 하는 거죠?”

선경이의 푸념을 들으며 해묵은 기억이 떠올랐다.

30년 전 여름방학, 전두환 정권은 느닷없이 본고사를 폐지하고 예비고사(학력고사)와 내신성적으로만 선발한다는 대학입시

개혁안을 발표하였다.

아빠의 내신성적은 88.14%, 100명 중에서 88등이었고, 불과 4개월을 남겨놓고 바뀌어버린 황당한 게임의 법칙에

분루를 삼켜야만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선경아, 과학고의 꿈은 접는 대신, 이 추악한 게임을 우회하는 길을 찾아보자.”
“어떤 길이 있다는 거죠?”

“어느 선생님이 말했지. 대한민국에는 특별고와 일반고가 있다고. 그러나 우리에게는 검정고가 있잖아.

특별고와 일반고로 분단된 꼴사나운 교육 현실에 상처를 받느니 차라리 검정고시 쳐서 대학에 조기입학하는 게 낫지

않겠니? 굳이 일류대학이 아니더라도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면 꿈은 이루어질 테니까 말이야.”

과외를 금지하는 고집불통 아빠. 경시대회 이후 4개월 동안 열혈 과외선생이었던 아빠. 이제는 고등학교를 가지 말라는

이상한 멘토가 되어버린 선경이 아빠를,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자못 궁금하다.

- 2010. 3월 7일, 한겨레 독자칼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