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원푸리 2012. 11. 26. 22:06

 

 

 

 

고립을 경계하자 -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

덕은 외롭지 않아서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공자님 말씀이다.

 

덕이란 사전에 윤리적, 도덕적 이상을 실현해가는 인격적 능력이라고 했지만

사람끼리 서로 지켜야 할 도리 이상의 포용력을 담고 있다.

그래서 존중하고, 따르며, 리트윗하는 팸, 이웃이 있는 것이다.

 

뒤집어 보자.

이웃이 없어 외롭다면 덕이 없는 탓이다.

이웃이 없는 건 고립이다.

 

왜 덕이 없을까?

편안한 게 좋아서다!

덕 갖추기는 힘들고!

 

고립의 의미를 여러 측면에서 한번 살펴보자.

먼저, 생물학적 고립.

갈라파고스.

다윈의 진화론이 있게 한, 육지에서 1,000km 가량 떨어져 있는 섬이다.

오랜 세월 고립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하여 고유의 생태계를 형성했다는 건데

지금의 갈라파고스는 진화에 대한 관심보다 생태계 보호가 더 중요한 문제란다.

외부 출입은 빈번한데 고립 속에서 진화한 생물 종들이 면역력이 약해 멸종 우려가 크기 때문.

잡종강세라는데 말이다.

 

그 다음, 사회적 고립.

갈라파고스 증후군.

자신들만의 표준만 고집함으로써 세계시장에서 고립되는 현상을 뜻하는 말인데, 그 예를 주로 일본 IT산업에서 찾는다.

잘라파고스(Japan + Galapagos)란 신조어가 갈라파고스 증후군과 같은 말로 쓰일 정도로.

 

엊그제 기사에서 봤는데 일본 3대 전자업체인 소니, 파나소닉, 샤프 모두가 미국 신용평가사에 의해 투자부적격(정크) 등급으로 강등되었단다. 80~90년대 세계 전자업계를 선도하던 기업들인데 말이다.

불과 20년 만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그 원인이 궁금한 건 당연한데, IT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고립에서 찾았다.

일본 3대 전자업체는 일본 시장에 특화된 독자적인 기술과 서비스 발전에 집중하다가 결국 세계 표준과 세계시장의

요구에 전혀 대응할 수 없게 되었단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애플과 삼성 간의 각축으로 비춰지는데 사실은 애플과 구글의 각축장이다.

애플의 iOS와 구글의 안드로이드라는 두 운영체제의 싸움.

옛날엔 실패해도 기회가 있기도 했는데 지금은 주도권 싸움에서 한번 밀리면 기회가 없는 시대라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거지.

 

요즘은 잘 모르겠는데 불과 4~5년 전만 해도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을 놓고 삼성과 LG가 치열하게 경쟁하던데.

그 치열한 경쟁의 원인은 단순히 시장 점유율 확대가 아니라 세계 표준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더라.

세상이 이렇게 현깃증나게 돌아가는데 20여년간 고립의 결과가 아름다울 수 없겠지.

 

개인의 고립 사례도 살펴보자.

 

풀꽃학습방.

아저씨가 4년 전부터 홈페이지에서 사라졌지.

오프라인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기도 바쁘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사실은 편하게 그럭저럭살자는 속내를 감춘 거지.

그 사이 세상은 싸이, 블로그, 카페,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더 소통, 더 관계 하고 있는데

아저씨는 세상 변화를 알고는 있어도 자신의 삶과 연결짓지 못하고 살았으니 결국 고립된 것이다.

이제사 깊이 반성하고 카페 이전부터 시작해서 고립에서 벗어나고자 하나 4년의 누적된 모순을 해소하기에는 훨씬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하겠지.

아저씨가 피하는지, 감내하는지 지켜봐 주렴.

 

어떤 사람은 자기 입장에 빠져 주변 상황을 감지하지 못하곤 하지.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울 수 있겠고.

 

어떤 사람은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하다 보니 애쓴 만큼 얻지 못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해야 할 일이 하기 싫어 다른 일을 붙잡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많은 사람과 교류하는 것 같은데 소통하는 건 아니라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고.

 

혹시 해서 하는 말인데,

내향적인 사람은 고립에 빠져도 외향적인 사람은 사람을 좋아하니 고립에 빠질 일이 없다?

공감 없는 사귐이 오래 갈까?

 

책 속에서 고립 사례.

도리스 레싱의 작품 풀잎은 노래한다는 남아프리카의 한 영국인 부부가 작은 농장에서 스스로 고립되어 살다가

결국 살해되거나 정신병원에 갇힌다는 내용이다.

고립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읽는 사람이 스스로 알게 한다.

또한 주변 사람은 비정상이라고 보는데도 정작 자신들은 정상적으로 살고 있다고 믿는다.

성찰이 참 어렵다는 것도 스스로 알게 한다.

 

영화 속의 고립 사례.

지난 주에 본 하워즈 엔드.

단지 연결하라. 소통하고 관계하라는 뜻.

마가렛의 소통을 중요하게 보여주기 위해 헬렌, 바스트, 찰스 등 불통 인물들을 내세우고 있다.

본인들은 확고한 책임감, 신념 따위로 무장한 채 잘 산다고 믿지만, 정작 그 책임감, 신념 때문에 스스로 고립되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정보화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고립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쉽다.

컴퓨터로 세상 흐름을 알고 있고, 스마트폰으로 늘 누군가와 소통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정보 홍수 속에 진짜 필요한 지식보다 늘 쾌락, 자극적인 정보에만 매달리진 않았는지.

누군가와 소통도 공감없이 심심풀이 상대로만 여기진 않았는지.

 

고립되면 일단은 편하다. 그래서 스스로 고립된다.

편하면 정체된다.

나중에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몇 배의 고통을 감수하든지!

고립에서 벗어나기가 더 고통스러워 더 고립으로 치닫다가 사라지든지!

주공께서 무일(無逸)을 강조하신 거나 깨어있으라는 성경 말씀도 고립되지 말자는 거다.

 

홈스쿨러는 고립되기 쉽다.

인적, 문화적 교류의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

잘못된(나중에서야 알게 되기 쉽지만) 신념에 붙잡히면 더욱 그렇다.

홈라파고스가 되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

 

우리 풀꽃 가족도 조심해야 한다.

덕은 외롭지 않아서 반드시 이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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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강의 후 아이들 한 마디.

 

한 아이는 공감능력을 키워야겠다고 하고,

한 아이는 포용력을 키워야겠다고 하고,

한 아이는 '무일'해야 한다고 하고,

한 아이는 고립을 조심해야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