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원푸리 2013. 4. 1. 09:50

(사진 출처 : 한겨레신문)

 

 

1. 학교에 대한 인식, 홈스쿨링에 대한 인식

 

"홈스쿨링하면 불리하지 않나요?" 홈스쿨링에 대한 문의를 받을 때 흔하게 듣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는 학교를 벗어나게 되면 작게는 상급학교 진학에 불리하지 않은가 하는 두려움이 깔려있고

크게는 사회이탈자 낙인이 내 자식에게 찍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배어있다.

 

그러다보니 기초학력 부족으로 수업 시간에 의미없이 앉아 있어야 해도, 낮은 시험점수나 등수 때문에 조롱받거나

자신이 못났다는 생각에 괴로워도, 학교의 폭력적인 상황에서 자신이 폭력의 대상임이 확인되어도, 무엇보다도 단체생활

환경이 자유로운 개성을 무시하고 획일적인 억압으로 느껴질 때에도 학교를 벗어날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2. 학교는 어떤 곳인가?

 

학교가 어떤 곳인가? 교육하는 곳이다. 왜 교육이 필요한가?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다.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교육학 개론에서는 바람직한 인간행동의 변화라고 한다. 바람직하다는 건 누구 입장인지가

애매하다. 국가의 목표에 순응하는 인간이 바람직하다면? 에구, 그건 끔찍하다.

 

다음은 교육기본법 제 2(교육이념)에 적시되어 있는 교육의 목적이다.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교육의 목적이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을 갖춤에 비중을 싣는다면야 바람직하겠지만, 민주시민의 자질을

갖추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에 비중을 싣는다면? 무시무시한 쪽으로의 상상도 가능하다.

민주는 독재국가에서도 즐겨쓰는 개념이니까. 상상력이 참 풍부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국가가 개개인의

행복을 챙겨주는 조직인가? 국가건 기업이건 조직은 그 특성상 비인간적이다.

 

대구와 경산 등지에서 발생한 자살의 원인이 무한경쟁 환경에서 생긴 입시부담, 성적비관, 학교폭력 등이라면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학교 교육에서 경쟁을 제거해야 한다. 사실 학교에서 배워야 할 것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다. 인간사회는

그 구성원들이 생존을 위해 협력했기 때문에 존속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 경쟁 요소을 제거하지 못하는(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만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국가가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근대적인 국가를 형성해 가는 과정에서 동일한 언어, 이데올로기,

가치관, 문화를 국민에게 주입하여 강력한 국가를 형성하고자 해서였다. (홈스쿨링의 정치학, 김재웅)

처음 학교를 설계한 것은 많은 인구를 과학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학교란 공식의 적용을 통해 공식화된 인간, 즉 행동을 예측하고 제어하는 것이 가능한 그런 인간을

만들어 내도록 지어진 것이다. (바보 만들기, 존 테일러 개토)

 

학교는 그런 의도가 담겨있는 곳이다. 국가나 국가 내 어떤 조직이 필요로 하는 인재로 잘 크고 있는 아이라면 학교를

그만둬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런 인재도 아니면서 상처까지 받는 아이가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할 이유도 없다.

 

 

3. 교육의 독점

 

교육은 삶의 모든 현장에서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가 교육을 독점하고 있어서 학교 밖에서 아무리 아름다운 교육적 사건이 발생해도

그것은 교육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교육=학교라는 신화때문에. (홈스쿨링의 정치학, 김재웅)

 

 

오늘날 학교는 모든 삶의 현장에서 행해지는 교육을 독점한 곳이다. 그러다보니 학교를 벗어난다는 것은 교육과 완전히

결별하는 것으로 인식하기 쉽고 또한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서 떨궈지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때문에 절박한 상황에서도 홈스쿨링을 선택하기 어려워한다. 

 

(교육기본법 제 8조) 9년간의 초·중등교육을 의무교육으로 규정하고 모든 국민은 의무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기술.

(초·중등교육법 제 13조) 6~ 15세 기간에 아동을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취학시켜야 한다고 기술.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 28조) 질병이나 기타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학교장이 취학 의무의 면제 또는 유예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함.

(초·중등교육법 제 68조) 학령기 아동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관할 시·도 교육감이 백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

 

 

미국의 홈스쿨링은 홈스쿨러 부모들과 교육당국, 사회복지국, 경찰, 사법기관 사이의 총격전, 고발, 부모/아동의 격리,

벌금, 구속, 데모 등이 난무하는 과정에서 합법화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홈스쿨링은 합법, 불법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의무취학을 규정하고 있지만 홈스쿨링을 하겠다고 하면 취학의무의 면제 또는 유예에 관한

예외 규정을 적용했기 때문에 과태료가 부과된 적이 한 번도 없다. 홈스쿨링의 당위성을 사실상 인정하지만 공식적으로

허용은 안된다는 입장으로 읽어야 한다. 홈스쿨링 통계는 홈스쿨링의 공식적인 허용으로 가는 첫 번째 논의자료이만

우리나라엔 그게 없다.

 

홈스쿨링 합법화는 누군가 헌법소원을 제기하거나 홈스쿨링 단체가 단체행동에 나서거나 과태료부과에 따른 항의 등이

있어야 논의가 이뤄지겠지만 그 전까지는 교육당국은 가만히 둘 것이다. 그것이 학교=교육의 신화를 깨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신화가 깨지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교육개혁의 요구가 빗발치거나 학교를 벗어나는 행위를 누구나

쉽게 할 것이다. 교육당국이 두려워 할 만한 일이다.

 

 

4. 학교에서 상처받는 아이는 빨리 벗어나야

 

학교가 잘못됐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문제가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되 고통을 받고 있는데 뾰죽한 대안 없이 참아봐라~참아봐라~는 말을 하는 학부모에게 말하고 싶다.

이런 아이는 이미 상처받고 있다. 상처가 더 커지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

홈스쿨링 문의가 수시로 있어 얘기를 듣다보면 크고작은 상처입은 아이 이야기다. 내 경험 통계치로는 서울의 경우 교육

특구의 아이가 비교육특구 아이들에 비해 상처가 훨씬 크다. 학교를 벗어나 멋진 홈스쿨링을 기획할 상황이 아니라 상당

기간 치유가 필요한.

 

학교에서 학부모에게 연락이 와야만 일이 터진 것이 아니다. 아이가 조용히 학교에 다니고 있기는 하지만 상당히 힘들어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이 위험한 일이다. 학교에서 상처받는 아이는 빨리 학교를 벗어나게 해야

한다. 소 잃고나서 외양간 고치지 말라는 속담을 들이댈 일도 아니다. 아이 상처가 커지면 평생 가정에 먹구름이 낄 수도 있다.

 

작금의 교육당국은 왜 이리도 경쟁을 부추겨 아이들을 삶의 기로에 서게 하는가? 진정 아이들을 위해서인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눈물이 없는 사람은 가슴이 없다
바닥까지 추락해본 사람은 눈물을 사랑한다.

바닥엔 가시가 깔렸어도
양탄자가 깔린 방처럼 아늑할 때가 있다
이제는 더는 내려갈 수 없는 나락에 떨어지면
차라리 다시 일어서서 오를 수가 있어 좋다.

실패한 사랑때문에
실패한 사업때문에
실패한 시험때문에

인생의 밑바닥에
내려갔다고 그곳에 주저앉지 마라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마라
무슨 일이든 맨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흘린 눈물만큼 인생의 깊이를 안다
눈물보다 아름다운 것은
다시 시작하는 용기와 희망이다.


- 좋은 글 중에서 -

비가 촉촉히 내리는 주말 오후입니다.
오늘도 즐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