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일보(와송대부)

와송촌 2014. 12. 27.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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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배에서 보급까지 '한국 와송의 대부'이태희 와송촌 대부

박성민  |  smworld17@gnnews.co.kr

승인 2014.12.11  21:23:50


고즈넉한 고택 기와지방. 비바람이 쓸고 간 자리에 생채기가 났지만 이내 자그마한 씨앗이 둥지를 튼다.홈이 파이고 먼지가 쌓인 곳에 터를 잡은 씨앗은 그렇게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그들만의 세상을 피워냈다. 하루종일 내리쬐는 햇볕도 몇날며칠 이어지는 가뭄이 이어졌지만 소나무를 닮은 푸른 생명력을 꺾진 못한다.기와 한귀퉁이에 쓸모없게 보이던 이끼가 세간의 주목받고 있다. 탁월한 항암효과로 알려진 ‘와송’(瓦松). 세상에 나가길 부끄러워 하던 이 식물은 드라마 대장금에 등장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극중에서 복량(지금의 복강 내종양)을 고치는 약재로 쓰이면서 더욱 각광을 받았다. 드라마에서 와송이 모습을 드러내자 ‘와송촌’ 이태희(50) 대표 전화에도 불이 나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모종을 구하기 위해 농업인들이 농장을 방문했고 고객은 물론 교수들이 효능과 재배방법에 대한 문의가 쇄도했다. 한국와송의 역사를 개척한 이태희 와송촌 대표. 그의 20년 와송인생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 이태희 와송촌농원 대표는 한 스님의 도움을 받아 기와를 흙에다 깔고 와송재배를 시도하는 등 국내 와송재배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이어왔다. 사진은 이 대표가 100년 이상되 기와를 구해 실험적으로 재배하는 모습. /사진=와송촌 농원
◇ 사천땅에 뿌리내리다 사천시 정동면 와송촌. 전국최초 와송 대량재배의 싹을 틔운 이 대표는 한국와송의 대부로 불린다.경기, 충청, 전남, 제주 등 전국 와송농가 60%는 그의 모종을 가져다 싹을 틔운 자식 농장이다. 나머지 40%는 자식 농장에서 또다시 모종을 가져 갔으니 손자 농장이다. 지금은 와송전문가로 불리지만 그가 처음부터 농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20대 젊은시절 처남의 갑작스러운 암투병이 계기가 됐다.병마와 싸우던 처남은 와송복용 후 거짓말처럼 효과를 봤고 이 대표 자신도 고질적인 위·십이지장궤양을 씻은듯이 치유됐다. 와송의 매력에 푹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엔 호기심이었다. “이렇게 좋은 와송이 왜 대량재배를 하지 않을까. 왜 오래된 기와에서만 자랄까.”



이태희 와송촌농원 대표는 한 스님의 도움을 받아 기와를 흙에다 깔고 와송재배를 시도하는 등 국내 와송재배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이어왔다. 사진은 이 대표가 100년 이상되 기와를 구해 실험적으로 재배하는 모습. /사진=와송촌 농원


의문을 풀기위한 도전이 시작됐다. 고문서를 뒤지고 여러 책자를 통해 와송의 신비에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섰다. 약재상에서도 구하기 힘들고 재배방법도 알려진 바가 없었지만 하나씩 자료를 축적했다.그는 “와송은 키우는데 어려운 식물은 아니지만 그에 맞는 토질과 일조량이 풍부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기와도 일반기와가 아닌 100년이상 된 기와에서 자란다”며 “고택의 기와를 구해와 땅위에 펼쳐놓고 재배실험도 해봤다. 지금은 토양에서 간단히 키울 수 있지만 최적의 재배환경을 알아내기 위해 오랜기간 시행착오를 거쳤다”고 전했다. 결국 이 대표는 주위의 도움으로 유리온실에서 대량재배에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 이태희 와송촌농원 대표는 한 스님의 도움을 받아 기와를 흙에다 깔고 와송재배를 시도하는 등 국내 와송재배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이어왔다. 사진은 이 대표가 100년 이상되 기와를 구해 실험적으로 재배하는 모습. /사진=와송촌 농원
◇ 약효·음식, 두마리 토끼 잡은 와송 봄철 다년생 식물인 와송은 3월께 파종에 들어가 8월에 가장 푸른빛을 자랑하고 9월에 꽃을 맺는다.그해 자라는 것들이 수확되고 꽃대를 세우지 못한 와송이 죽은 듯이 말라있다 다음해 2년생 와송으로 다시 살아난다.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흑와송, 연와송, 3년생, 자연산 등의 이름으로 검증되지 않은 정보도 넘쳐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