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창원 봉림동의 지명탄생과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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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기록들/나의기록

2013. 8. 27.

 

 

 

봉림동 역사의 시작

 

봉림동은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존재하고 가야시대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군이 봉림산(鳳林山) 자락을 따라 펼쳐져 있는 역사가 살아있는 땅이다. 532년 밀양의 이궁대에서 가야의 10대 구형왕이 신라의 법흥왕에게 나라를 선양하자 가락국을 사랑한 많은 무리들이 이곳 퇴로촌(退老村)에 들어와 정병산(精兵山)에서 병사를 조련하고 말을 키우며 가락국 회복을 위해 힘을 키웠던 땅이다. 그래서 퇴로촌을 진촌(眞村)이라 불렀는데 지금의 퇴촌동이 그곳이다. 우리가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물러날 退라는 글에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으니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숙명적인 뜻이 담겨 있는 말이다. 퇴계 이황선생이 자신의 호에 사용한 이유도 같은 의미이다.

 

나라를 세우기 위한 선현들의 흔적

 

조선 중기까지도 태복산은 태백산(太白山)으로 불렸고 그 아래 작은 산은 소백산(小白山)으로 불렸으며, 지귀동 뒷산 봉우리는 구산봉(龜山峰)이라 기록 되어 있다. 김해에 구지봉이 있다면 창원 봉림동에는 구산봉이 있어 신령스러운 기운으로 나라를 세우고자 했던 선현들의 뜨거운 정신이 살아있는 땅이다. 가락국의 정신이 살아 있는 터에 나라를 세우고자 했던 사람들의 뜻이 하늘에 닿았는지 약 350년 후 임나국의 왕족이었던 진경대사가 봉림산문을 열어 나라를 만드는 사상적, 정신적 기틀을 마련했던 곳 또한 이 땅이다.

 

鳳林洞 명칭의 유래

 

봉림동은 봉림산 선문을 개산한 진경대사(眞鏡大師 : 김유신의 후손으로 본명은 김심희, 853~923)가 명주(溟洲 : 지금의 강릉)에 머물 때 김해 서쪽에 복림(福林)이 있다는 말을 듣고 김해 진례(進禮)를 거쳐 효공왕 때 이곳 봉림사지(鳳林寺址)에 도착하니 수석이 기이하고 풍광이 빼어나며, 준마가 서쪽 봉우리에서 노닐고 올빼미가 옛터에서 우는” ‘鳳凰下降形 吉地라 가마를 멈추고, 이름을 봉림(鳳林)이라 고쳐 선방을 중건하니 봉림사(鳳林寺)가 되었고, 봉림사를 품은 산은 봉림산(鳳林山)이 되었으며, 그 산 아래 두 마을을 봉림(大鳳林, 小鳳林)이라 부르며 천년을 이어왔다.

  

근대 봉림동 지명 변천

 

경상남도 창원군 상남면에서 1972년 창원공단의 개발로 인하여 공단의 분지지역만 197371일 마산시 상북동(上北洞)으로 변경되었다. 당시 개발의 주체인 수자원개발공사의 현장 사무소가 있던 곳이 상북동 이었기 때문에 상북동이 부각되었다. 이후

1976. 9. 1 : 경상남도 창원지구 상북지소

1980. 4. 1 : 창원시 상북동, 봉림동으로 개칭된 후

1991. 8. 1 : 창원시 상북동, 사림동이 등장하는데 창원대학이 퇴촌동 일대에 들어오면서 사림동(士林洞)이 탄생하게 된다.

1991. 8.28 : 인구의 증가로 인해 창원시 사림동, 봉곡동으로 분동이 이루어지는데 원래 이름도 없던 봉곡동의 탄생은 명곡사거리 즉 봉림상가지역이 명곡동에서 봉림동지역으로 편입되면서 봉림동의 ()’과 명곡동의 ()‘의 한자씩을 따서 봉곡동이란 지명이 생겼다. 현재의 지명은

1997. 7.14 : 대동제의 실시로 인하여 봉곡동 + 사림동이 합쳐져 창원시 봉림동(鳳林洞)으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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