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진주강씨의 성지 하동군 두방재 斗芳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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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경남의 진주강씨 누정재

2014. 11. 18.

2014/11/13 하동 두방재

 

하동 청룡리 은행나무에서 출발하여 1005호 지방도를 따라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1000번지에 위치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1호로 지정된 두방재(斗芳齋)를 향하여 차를 몰았다. 두양교 입구에서 우측 산길을 택하면 두양리은행나무로 가는 길이고, 곧장 진행하면 두양리 마을회관 앞으로 간다. 이곳에서 다시 두양천을 넘어 우측으로 이어진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계속해서 산속을 향하여 올라가면 우방산(牛芳山:550m) 중턱에 이르러 두방재(斗芳齋)가 마을도 없는 깊은 산중에 나타난다.

 

두방재 斗芳齋 

 

 

이렇게 한적한 우방산 중턱에 두방재(斗芳齋)를 건설한 것은 이곳이 조선조 태종 때에 두방,우방 두 산을 사패지(賜牌地)로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방산 입구의 바위에 "은렬 강선생 영정을 받던 곳은 우리 태종조에 미쳐 사패하신 땅이다 "라고 새겨져 있다.

 

두방재 斗芳齋  대문

 

 

이곳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이 재사(齋舍)는 강민첨(姜民瞻)장군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사당(祠堂)이다. 장군의 본관은 진주이며, 고려 목종대에 급제를 한 문신이지만 장군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것은 현종(1009~1031)대에 동여진과 거란 등의 외적을 물리치는 데 큰 공적을 세우고 상장군을 역임했기 때문이다.

이후 고려 문종(1046~1083)대에는 전공(戰功)으로 공신각(功臣閣)에 그 초상이 오른다. 두방에 장군의 영당이 세워진 것은 1777(정조 원년)이며, 이전에는 우방사에서 장군의 영정을 받들고 있었다. 영당은 1825년에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그 사이 선생의 영정을 받드는 일도 진주와 우방산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재사는 정면 5, 측면 2칸의 팔작지붕와가로 들보는 5()이며 소로수장(小爐修粧) 집이다. 대청은 2칸으로 넓고 툇간과 툇마루도 넓고 개방적이다. 기둥은 높고 사용된 자재들이 견실하여 장중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아무리 번듯한 모양과 화려한 비석군을 세웠다 한들 세상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하지 못한다면 강씨문중 자신들끼리 노닥거리는 것이지 세상의 귀감은 되지 못한다. 은열공의 위대한 애국정신을 본 받는다면 외형에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후대의 교육에 투자를 하여 인재를 길러내고, 배고픈 이웃에게 밥을 베풀어야 진정한 의미의 뛰어난 가문이라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두방재 斗芳齋  편액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진주강씨 두방재 斗芳齋 (daum.net)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진주강씨 두방재 斗芳齋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1001(두양길 158-129)에는 진주강씨晋州姜氏 은열공殷烈公 1세 민첨民瞻의 영정을 모시는 재실 두방재斗芳齋와 두방영당斗芳影堂이 있다. 이곳을 고도계는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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