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천부인권 2020. 1. 8. 20:40



2019.4.22. 월백리 김해김씨 첨모재 전경


달달박박과 노부힐득의 신화가 전해오는 백월산(白月山;428m) 아래 의창구 북면 월백리 786번지에는 김해김씨 창원 입향조인 김현루(金顯僂)를 배향하는 첨모재(瞻慕齋)가 있다. 대문채인 추술문(追述門)과 본당인 첨모재(瞻慕齋) 편액은 익당(益堂) 설인수(薛仁洙)의 글씨이다. 첨모재에 걸려 있는 첨모재기(瞻慕齋記)는 중원(中園) 배문회(裵文會1899-1984)가 지었다.




2019.4.22. 첨모재 대문 추술문(追述門)



추술문(追述門) 편액


설인수(薛仁洙;1926~1985) 본관은 순창(淳昌). 호는 익당(益堂). 아버지는 한학자 동계(銅溪) 설진모(薛鎭模)이다. 1951년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제2회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하였다. 1968년부터 1976년까지 8년 동안 전라북도 제3·4대 교육감을 연임하였다. 교육감 재직 당시 교육세 신설을 주창하여 입법화를 달성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 의원 선거 때 순창·임실·남원 지역구에서 여당인 민주 공화당 후보로 입후보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국회 문화 공보 위원회 여당 간사로 활약하였으며 1979년 제13대 유네스코 한국 위원에 선임되었다. 1980년, 신군부가 등장한 뒤 정치 활동 규제에 묶이자 정계를 떠났다. 1985년 군산 동 고등학교 교장으로 취임하였으나 그해 5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디지털순창문화대전]




첨모재(瞻慕齋) 전경



첨모재(瞻慕齋) 편액



첨모재(瞻慕齋) 주련-전문


白月山中境地幽  백월산 속 지경이 그윽한 곳에
昌辰薖軸樂悠悠  좋은 날 한가히 보내니 즐거움 아득하네.
讀史耕田垂在訓  사서(史書) 읽고 농사지으라는 교훈이 내려오니
修身守分外何求  몸 닦고 분수 지키는 외에 무엇을 구하리요.





瞻慕齋記
金君容道容守訪 余於漆之邑館曰 伊昔鄙先祖三足堂先生之來宰漆原也 先生之第二子 四時堂諱鉎陪從 讀書周覽境內山川 特愛藏岩水石之勝 暇日道遙於物外之趣 及先生之解紱也 仍留住藏岩長養子孫 遂作幷州之鄕 七傳至諱顯佑號昌樂齋 又移卜昌原之白月山下班也洞 垂戒來裔曰 耕田讀書保全性命足矣 外無他求 歷五六世 于今子姓守分營生戶不下 百數擬成一巷之花樹 而乃祖衣帶之藏 在洞後道龍谷癸坐原 松楸密邇瞻望之際 思服遺訓恒寓如在之誠 近就洞中 幽奧處構四楹三架之齋 舍額以瞻慕 門曰追述 規模雖不大閒雅 淸緻足於啓處藉以爲 歲時齋宿講睦之所 請其記實之文 於吾丈辭意繾綣 有足動得人者 而余且居在漆鄕宿 知其世傳之由來 則誼有所不可辭者也 憶昔成中之際 嶺南之文運蔚興 而金氏之門 尤爲顯昌 以忠孝節義 稱於國中 及戊己史禍之作 見貶亦尤酷蕩殘無宥 三足先生之解紱 漆原盖有以也 而四時堂之於藏岩 昌樂齋之班也 俱是出於 懲創囊時毖愼來 後之深意 而其密勿退藏鞠焉無悶之潜 德仰有奏格於人不及知之地 故其錫類之不 匱乃有如是之隱裕繁衍 而瞻慕追述之誠 又有若如許之惇勤 則民德歸厚可期 其朝暮遇也 比諸所厚者薄 所薄者厚之今日之世 情不有其曠感矣 乎班也之花木已向陽矣 春容之燁敷不有其不遠將者日乎 余且執契以竢之是役也 始其經理者胄孫一坤也 終焉專力者肖孫容德也 云爾是爲記
乙卯十一月冬至節 盆城 裵文會記


첨모재기(瞻慕齋記)
김용도(金容道)와 용수(容守)군이 칠원(漆原) 읍관(邑館)으로 나를 찾아와서 말했다. 옛 날 저희의 선조이신 삼족당(三足堂)선생께서 칠원에 현령으로 벼슬을 오셨을 때 선생의 두 번째 아들인 사시당(四時堂) 김생(金鉎)께서 따라 오셔서 독서를 하다 자주 경내의 산천을 두루 돌아  보시고 특히 장암(藏岩)의 경관이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셔서 틈나는 날이면 소요하여 탈속한 초월적 흥취를 즐겼습니다. 선생께서 벼슬을 그만두시자 이로 인하여 장암(藏岩)에 머물러 길이 자손을 양육하시고 드디어 병주(幷州)의 마을을 이루셨습니다. 칠대(七代)를 전하여 창락재(昌樂齋) 현우(顯佑)에 이르러 다시 창원의 백월산(白月山) 아래 반야동(班也洞)으로 이사하여 자리를 잡고 후손들에게 경계를 하셨습니다. ‘농사짓고 책 읽으면서 성명(性命)을 보존하는 것으로 족하다. 이외의 다른 것은 구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후 5~6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러 자손들이 모두 분수를 지키며 생활을 영위하여 후손이 백여 가호를 넘어서 한 고을의 아름다운 숲을 이룬 것에 비길 만합니다. 이 할아버지의 묘소는 마을 뒤 도룡곡(道龍谷) 계좌(癸坐)에 자리하였는데 숲이 우거질 정도가 되었고 우러러 바라보며 남기신 교훈을 생각하여 깊이 새기며 항상 살아계실 때와 같이 정성을 다합니다.
근래에 마을 중에서 그윽한 정취가 있는 자리를 찾아서 네 기둥 세 도리의 재실을 지어 첨모(瞻慕)라고 편액하고 문은 추술(追述)이라 하였습니다. 그 규모가 비록 크게 한아(閒雅)하고 청치(淸緻)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족히 깨달음을 얻을 만한 자리이고 세시로 제사를 드리고 강의하는 장소로 쓸 만한 곳입니다. 우리 어른께 기실문(記實文)을 청하옵니다. 라고 하였다.
그 말의 뜻이 정성되고 곡진하여 족히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나 또한 칠원(漆原)에 살면서 익히 그 대대로 전해오는 유래를 알고 있으므로 마땅히 사양할 수 없었다.
아! 옛날 성종 중종 사이에 영남(嶺南)의 문운(文運)이 크게 일어났을 때 김씨 가문은 충효와 절의로 크게 드러나고 창성하여 중국에서도 이름이 날 정도였다. 무오 기묘사화가 일어났을 때 그 폄하 당함이 더욱 혹독하여 잔혹함을 당한 뒤에도 해원(解冤)을 못하였다. 삼족당(三足堂)선생이 칠원에서 벼슬을 그만 둔 것도 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시당(四時堂)선생이 장암(藏岩)에 기거하신 것이나 창락재(昌樂齋)가 반야(班也)에 은거하신 일들이 모두 당시의 후손을 삼가게 하신 깊은 뜻을 경계한데서 나온 것이다. 그 근신하고 물러나 덕을 닦고 길러 밝으면서도 잠겨있는 뜻한 깊은 덕은 다른 사람이 잘 알지 못하는 지경에 미침이 있다. 그러므로 조상이 후손에게 덕을 내림에 제한됨이 없다는 것이 이처럼 그윽하고도 넉넉하여 번성함이 있다. 우러러 흠모하고 조상을 추존하고 후손에 술회(瞻慕·追述)하는 정성은 또한 순순하고 근면함이 있으니 백성들의 덕성이 가히 두터운 대로 돌아갈 것을 아침저녁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 두터울 것이 엷어지고 엷어야 할 것이 두터워지는 지금의 세상 정세에 밝게 감화됨이 있겠는가. 반야(班也)의 꽃나무는 이미 양기를 얻었으니 봄의 자태가 화려하게 비칠 날이 멀지않은 어느 날 이라오. 내 다가올 날을 기다리며 기약하리라. 이 행역에 처음부터 경리를 맡은 사람은 종손인 일곤(一坤)이고 끝까지 전력을 다한 사람은 자손인 용덕(容德)이라고 하였다. 이에 이것으로 기문을 삼는다.
을묘(1975)년 11월 동지절 분성 배문회(裵文會) 짓다.


배문회(裵文會)의 자는 익삼(益三) 호는 중원(中園)으로 분성군(盆城君)의 21세이며, 사오당 양옥(四吾堂 : 良玉)공의 8세손이다. 칠원출신의 교육자이자 유학자이며 눌재(訥齋) 김병린(金柄麟)의 문인으로 저서로는 중원문초(中園文鈔), 동양사상정점전언 등이 있다.






原韻

憶曾昌祖奠居東 일찍이 훌륭한 조상이 동쪽에 정착하신 것을 생각하여
肯構多年慶赤衷 다년간에 걸쳐 첨모재를 지은 정성을 경하하네
蘋藻歲時無妥地 명절이나 철따라 제물올려 편히 제사지낼 곳 없었는데
松杉遠邇入望中 멀고 가까운 곳 소나무 삼나무가 눈에 들어오네
軒窓通敞來明月 탁 트인 난간과 창으로 밝은 달이 비쳐오고
竹樹蔚蔥送爽風 울창한 대숲에는 시원한 바람 불어오네
力拙吾門今有緖 재력 부족한 우리 문중 이제야 두서를 차렸으니
承先裕後誓無窮 영원히 조상 빛내고 후손 복되게 하리라
冑孫 鍾石 謹識  장자로 이어진 자손 종석(鍾石) 삼가 짓다.





출처 및 참조
국역 중원문초-중원선생기념사업회/도서출판 불휘(198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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