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민속·향토문화재

천부인권 2021. 1. 1. 22:51

2021.1.1. 원거리에서 본 연도椽島와 신당의 위치

창원시 웅천 연도동 211은 창원의 동남쪽 끝인 연도椽島라는 섬에 있는 신당의 위치이다. 이곳은 위치기반고도계가 해발 50m를 표시하고 위도 35°03'50"N 경도 128°46'02"E라 표시한다.
2021년 첫날 창원의 남동쪽 끝을 지키는 연도라는 섬을 찾기로 하고 연도 원주민이었던 친구에게 신당의 위치와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물어 두었다. 창원시청에서 직선거리로 19.79km 떨어진 연도는 뭍에서 4km 떨어진 섬이었으나 지금은 바다를 매립하여 완전한 육지가 되었다. 섬이었을 당시 어업으로 소득이 높아 주민들은 돈섬, 쇠섬으로 불렀으나 한자로 표기하면서 ‘ㅅ’음과 비슷한 ‘섯가래 연椽’자를 써서 연도椽島가 되었다 전한다. 면적은 768,000m²이며, 해안선은 1,264m이다.
현재 연도에는 웅천초등학교분교도 마을도 흔적 없이 사라졌으며 문화재 발굴도 거의 끝난 상태로 보였다. 분교 입구에는 『강유출송덕비姜裕出頌德碑』가 있었는데 그곳을 가보니 흙으로 덮여 있어 이미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연도椽島라는 마을이 있었다는 흔적조차 앞으로는 찾을 방법이 없다는 반증이다. 
당행인 것은 연도의 안녕과 무사안일無事安逸를 기원했던 신당은 개발구역에서 벗어나 훼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마을도 없고 사람도 없으니 이제는 버려진 신당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마을 뒤산에 오르는 오솔길은 있지만 정작 신당으로 접근할 때는 거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나무가 쓰러져 제당祭堂으로 접근하는게 쉽지는 않았다.

 

2021.1.1. 연도 신당으로 가는 마을쪽 길
2021.1.1. 연도마을 식수 물통을 돌아 오른다.
언덕을 오른 후 좌측으로 가야 한다.
연도 신당에 접근하여 본 모습

1967년 문교부 소속 문화재관리국에서 조사한 『제당조사질문지祭堂調査質問紙』의 내용에는 웅천연도분교熊川椽島分校에서 근무한 최차도崔且道(당시 36세)씨가 조사한 내용이 담겨 있다. 
신당의 이름은 당산堂山이며, 마을 서편 당산 정상에 위치하고 남향南向이라 했는데 방문해보니 동향東向이다. 신당의 외형은 4평 정도의 시멘트블럭 담장을 둘렀고 신당은 1.5평 규모인데 기와를 입혔다. 기와의 모양을 보니 새로 이언지 오래되지 않았다. 내부의 정면에는 신주 집이 조그마하게 만들어져있고 그 속에 신패神牌가 있는데 「당산신위堂山神位」라 적혀 있다. 신패神牌 앞 제단위에는 스텐촛대가 좌우에 있고, 자기향로가 중앙에 있으며 그 안쪽으로 스텐 제기3쌍이 놓여 있다. 제단 아래 구석에는 각종 제기들이 있으며 얼마 전까지 제례를 올린 흔적이 남아 있다.  
예전에 제주祭主는 30대 이상의 부정 없는 부부를 마을에서 엄선하고 제주는 매일 우물에서 목욕하고 정성을 드리고 부정한 것은 보지 않으며 임산부나 해산녀는 마을 밖으로 출타를 했다. 제례는 정월 15일 오전 8시~오후 2시까지 했으며 일주일 전부터 타인은 제주의 집에 출입을 금했다. 제물祭物의 상차림으로 술酒 흰떡白餠 쌀밥白飯 과실果實 소채나물 등이었으며 마을 주민들이 헌납하는 금전으로 충당했다. 지금도 신당의 주위에는 소나무가 많은데 예전에는 2그루의 소나무 신목神木이 있었다고 한다. 

 

겨우 접근하여 본 모습

출처 및 참조
전국부락제당조사질문지全國部洛祭堂調査質問紙-문교부 문화재관리국(1967)
진해의 땅이름 이야기-황정덕/동양문화사(2000.6.20.)

 

담장 밖에서 풍경을 담다
연도 신당의 모습
신당의 문을 열고
제단 위의 풍경
당산신위와 제단 위 모습
제단 아래의 제기들

 

나오면서 무인 등대를 바라 본 모습
연도방파제에서 신당의 위치를 본 모습
연도마을의 마지막 흔적인 벅수골에서 바라본 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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