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민속·향토문화재

천부인권 2021. 1. 2. 20:31

2021.1.1. 청천마을 언덕에서 본 안골동 모습

창원시 웅천 안골동 692에는 『1872년지방지도(규10512)-안골진지도』에도 나타나 있는 안골동安骨洞 신당神堂이 위치한 곳이다. 이곳은 위치기반고도계가 해발 67m를 표시하고 위도 35°05'19"N 경도 128°47'45"E라 표시한다. 

 

1872년 안골진 지도에 나타나는 신당의 위치

안골진安骨鎭은 1490년(성종 21)에 세워진 성이 있었으나 『1872년지방지도』를 그릴 당시에는 훼손이 심해 지도에서도 보이지 않고 있다. 안골동安骨洞 신당神堂은 안골진성安骨鎭城의 일부였음을 『1872년지방지도(규10512)-안골진지도』에서 잘 보여 준다. 이는 제포진성薺浦鎭城에도 신당神堂이 위치하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안골포나 제포는 바다를 이용하는 출입통제가 주된 임무을 맡은 수군만호진水軍萬戶鎭이다. 당시의 전선戰船이나 항해의 기술로는 수많은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다. 따라서 바다로 항해航海를 할 때 무사안일을 비는 제례를 신당에서 만호萬戶가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신당神堂이기에 진성鎭城에서 직접 관리하다 보니 진성鎭城들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마을에서 민간인들이 중요하게 보존하며 제례를 지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이 진성鎭城이 건설된지 530년이 지나고, 사라진 지 130년이 지났음에도 오늘날까지 신당의 제례가 이어지는 이유일 것이다.  

안골마을 뒤산에서 신당을 찾아가는 길

안골포는 굴강을 보기 위해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노거수와 안골왜성을 방문하기 위해 여러 번 방문한 기억이 있으나 신당神堂을 찾기 위해 방문하기는 처음이다. 그러다 보니 마을주민에게 신당의 위치를 물을 수밖에 없었는데 ‘안골굴막촌’의 한곳을 방문하여 신당의 존재를 물으니 할머니에게 물어라고 해서 할머니을 찾아가 물으니 대략의 위치와 접근로를 알려 주며 산등성이 넘어에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옆에 있던 젊은 새댁이 신당은 안골마을 방향에 있다고 하는 바람에 신당을 찾는데 애로가 있었다. 신당은 마을 뒤편 안골왜성의 입구에서 반대쪽 길을 따라 오르면 안골진성安骨鎭城의 흔적을 넘어가는데 외벽을 쌓은 큰돌은 없고 흙과 잔돌로 만들어진 흙돌성이 산등성을 따라 200m 정도가 남아있다. 할머니의 안내가 있었기에 산등성이 넘어 남쪽의 바다가 보이는 쪽으로 가나보니 노거수가 군락을 이룬 듯 보이는 곳이 있고 산길이 나 있어 그쪽으로 다가가니 신목 사이로 신당이 보인다. 외벽은 노란색을 칠하여 눈에 확 뜨이고 4평정도의 블록건물로 스레트지붕을 얻었다. 문은 함석문이고 적색을 칠했으며 문위에는 『성황각城隍閣』이라 양각한 편액이 있다. 『무자12월명일戊子十二月明日』이라 기록한 것으로 볼 때 2009년 1월 1일에 편액을 한 것으로 추정한다. 
내부를 보니 신단에는 흰천을 깔았고 정면 벽에는 붉은 천으로 장막을 쳤으며 단의 중앙에는 정화수 단지와 종이컵으로 향로를 대신했고 우측에 음식을 담았을 스텐레스 제기가 있다. 단 아래에는 여러 가지 제기들이 솥쿠리에 담겨 있고 과일과 떡 등이 상하지 않은 채 있다. 신당의 앞에는 200년은 됨직한 신목神木인 팽나무와 푸조나무 노거수가 자리하고 있어 이곳이 예부터 안골진성에 전해온 신당임을 알게 한다. 신목의 아래는 약간 절개지인데 그곳에는 제례에 사용한 과일과 돼지머리 및 오색과자 등이 버려져 있어 지금도 무속행위가 이어져 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당은 동향을 하고 있다. 주위에는 우리식 기와 파편이 많은 것으로 볼 때 예전에는 기와집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 된다. 

 

오르막의 끝에서 본 안골진성 성터 모습
2021.1.1. 산등성을 따라 건설된 안골진성 모습

 

우연히 발견한 성혈
2021.1.1. 안골진성 신당의 모습
신당의 정면 모습
신당 문위의 성황각 편액

 

성황각의 문을 열고 내부 촬영
신단 위의 모습
신단 아래에 놓인 제기

1967년 문교부 소속 문화재관리국에서 조사한 『제당조사질문지祭堂調査質問紙』의 내용에는 안골학교安骨學校에서 근무한 강한후姜漢後(당시 33세)씨가 조사한 내용이 담겨 있다. 
신당의 이름은 상당上堂이고 위치는 구산龜山 정상부의 남쪽에 있으며, 함석지붕의 5평으로 1간 내외이다. 내부에는 제상만 있다. 신목으로 기목 3그루며, 높이 5m, 주위 1.5m라 기록하고 있다. 신은 당집할매라 부르고 40세 이상의 부정 없는 남자 2명이 제주祭主이고, 제례 전에 12번 목욕을 하며 금주 및 여성금지, 기타 부정한 것을 보지 않는다. 제례 후 마을 유지有志와 다수의 사람들이 음복飮福을 한다. 제례일은 음력 12월 30일 오후 1시~4시이다. 상차림은 술酒 흰떡白餠 쌀밥白飯 과실果實 건어乾魚 소채나물 등이다. 시작 년대를 200년 전이라 했고 시작한 사람은 미상이며 신목이 신체神體이다. 

 

안골진성 신당을 남쪽에서 본 모습

출처 및 참조
전국부락제당조사질문지全國部洛祭堂調査質問紙-문교부 문화재관리국(1967)
진해의 땅이름 이야기-황정덕/동양문화사(20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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