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민속·향토문화재

천부인권 2021. 1. 3. 20:30

2021.1.1. 두동의 청천길에서 바라 본 영길마을과 신당
2021.1.1. 당산에서 본 영길 신당 모습

창원시 진해구 남양동 208-1은 월남천月南川이 휘돌아 영길만永吉灣으로 흘러가는 곳에 바다를 만나 영길마을을 지키는 독메이다. 이 독메는 당메堂山라 하고 정상에는 영길마을 신당神堂과 신목神木이 있는데 신목은 2그루의 상수리나무 였지만 지금은 신당 옆에 1그루만 남아 있다. 이곳은 위치기반고도계가 해발 36m를 표시하고 구글지도는 위도 35°06'49"N 경도 128°47'00"E라 표시한다.
지금 이곳의 주소는 1914년 일제에 의해 명명된 남양동南陽洞인데 월남리月南里의 ‘南’과 사라진 마을 산양리山陽里의 ‘陽’을 따서 남양동이 되었다. 아마도 산양리는 마천공단馬川工團을 만들면서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2021.1.1. 영길 신당에 접근하니 비지정문화재 보호 안내판이 있다.

웅천熊川 영길만永吉灣은 이미자가 부른 노래 ‘황포돛대’의 가사을 쓴 웅천 대장동에서 자란 이일윤 작가의 시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 영길만 해안도로에는 ‘황포돛대’ 노래탑이 있고 이미자의 노래가 나온다. 그 가사는 아래와 같다. 

 

황포돛대-이일윤 작사, 백영호 작곡
마지막 석양빛을
기폭에 걸고
흘러가는 저배는
어디로 가느냐
해풍아 비바람아
불지를 마라
파도소리 구슬프면
이마음도 구슬퍼
아 어디로 가는배냐
어디로 가는배냐
황포돛대야

순풍에 돛을 달고
황혼바람에 떠나가는 저사공
고향은 어디냐
사공아 말해다오
떠나는 뱃길
갈매기야 울지마라
이마음이 서럽다
아 어디로 가는배냐
어디로 가는배냐
황포돛대야

 

2021.1.1 문짝은 부서졌고 지붕은 구멍이 난 상태이다.
2021.1.1. 신당의 정면에서 본 모습
영길 신당 내부는 정면에 휘장이 걸려 있다.


영길신당永吉神堂이 위치한 당메는 규모가 크지 않아 정상부에 쉽게 접근이 가능한데 신당의 입구쪽에는 왕벗나무를 심어 경관을 아름답게 꾸민 듯하다. 그러나 사람이 관리한다는 흔적은 없고 신당의 문은 부서져 샤시문의 한쪽은 땅에 떨어져 있고 한쪽 문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신당은 3평 가량의 시멘트블록 담장 안에 2평 정도의 시멘트블록 집이고 기와는 일본식 시멘트기와를 입혔으며 제단에는 아무것도 없으며 정면의 휘장에는 아래와 같은 글이 기록되어 있다. 
휘장의 중앙에는 「南無捧師堂山下降至位 남무봉사당산하강지위」 
       좌우에는 「右化仙右將軍 우화선우장군」이라 썼다. 
굳이 뜻풀이를 하자면 “봉사당捧師堂 당산 아래에 지극히 임하신 우화선우장군에게 귀의하겠습니다.” 정도일 것이다.
신당神堂에는 남자용 한복이 걸려 있고 여아용 한복은 바닥에 떨어져 쓸 수 없게 됐으며, 바닥의 한켠에는 제기들이 담겨있지만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먼지 투성이고 그 위쪽 벽에는 2011년도 8월의 달력이 걸려 있다. 상량을 보니 「西紀一九九二年五月拾一日 서기 1992년 5월 12일」이라 기록됐다.
마지막으로 나올 때 문짝을 억지로 맞춰 놓고 왔지만 우리의 문화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미신 아닌 종교가 어디에 있는가!

 

우측 벽면에는 남자 한복이 걸려 있다.
우측 문 옆에 놓여 있는 제기들 모습
2011년 8월에 멈춰진 달력
상량에는 西紀一九九二年五月拾一日 서기 1992년 5월 12일이라 기록했다.

출처 및 참조
진해의 땅이름 이야기-황정덕/동양문화사(20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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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에는 샷시문이 그나마 온전하게 있었는데 비지정문화재 안내판만 설치되었을뿐 관리는 안되고 있나보네요
부셔진 상태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