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천부인권 2021. 1. 14. 07:13

2021.1.10. 산청군 생비량면 사대마을 진주강씨 대산재大山齋 대문

산청군 생비량면 화현리 1349-7(진산로2273번길 46-12)은 진주강씨 어사공御使公의 후예인 은암공隱菴公 강세재姜世載를 향화香火하기 위해 지은 재실齋室 대산재大山齋가 위치한다. 은암공隱菴公은 의령宜寧에서 이곳 산청군 사대士大마을로 이거移居한 입향조이다. 이곳을 위치기반고도계는 해발 77m를 표시하고, 위도 35°20'59"N 경도 128°04'21"E라 표시한다. 
대산재大山齋를 방문하기 위해 생비량면 화현리를 찾았지만 의외로 넓은 지역이라 엉뚱한 곳을 기웃거리다가 방화마을에서 물었더니 사대마을의 위치를 알려 준다. 그렇게 찾은 대산재大山齋는 마을에 들어서면서 바로 찾았으나 대문이 잠겨있어 열쇠를 가진 분을 수소문하니 사대마을 이장이라 해서 겨우 담장을 넘어 대산재大山齋에 접근했다. 사대마을은 진양강씨와 하씨의 집성촌으로 모두가 일가처럼 살아가는 곳이라 한다. 
대문은 수덕문修德門이라 편액 했고 본 재실은 대산재大山齋라 이름했으며 기둥에는 주련을 달았고 내부의 좌우 방에는 화수헌花樹軒과 은구당隐求堂이라 편액 했고, 대청에는 강석황姜錫鎤이 쓴 대산재기大山齋記와 외손 정영선鄭榮宣이 찬한 대산재상량문大山齋上樑文, 후손들이 읊은 대산재차운大山齋次韻의 편액이 걸려 있다.

 

2021.1.10. 산청군 생비량면 사대마을 대산재大山齋 수덕문修德門 편액
대산재大山齋 본 재실
대산재大山齋 편액

 

대산재大山齋 주련
대산재기 大山齋記

大山齋記
江城之士夫洞 姜氏居之 而爲齋曰 大山者盖爲其先祖 隱菴共諱世載設也 姜氏以御史公後裔 中世徒宜春 代有聞人 有若六菴公諱應奎 薰灸于崔新齋之門 德業文行 蔚然聞於世 頣齋公諱熺 壬辰亂倡義殉國 偉忠卓節 赫然著於史 公生于是家早徒學問 則其濡染服習於忠孝典型者 必有異於人可知也 且生俺純哲之際 不求聞達 自世居德川里捿隱于 此洞 晝而耕田 夜而讀書 囂囂自樂 以終其世 則耹存耹守 必有迢然於富貴之塗者 亦可知也 其葬在晉陽 安磵村平田酉坐原 而后孫世瞻瑩墓 歲奉香火者 自是至今 罔或愆違 而尙未有表章一事積世 以爲根至 是群聚協謀 各自縮其衣食 傾其罌槀始起此齋 齋凡四架規模 排眞亦足 以容一日之齋宿 而玆備時節燕懽 又將擢其展發以延 賓客之過訪者 而禮歡之其誠義 亦云崵于是矣 寧不所尙哉 夫子孫之於祖先 血脈流通 而感應之理 亦惟一箇誠 而已苟能思 血脈之有通 而知感應之有理 則追遠之思 寧有不功 而報本之心 寧有不生者乎 此盖得於尊祖之義 而至於收族接賓 固無性而派誠之道也 雖然苟或勤其始 而解其終有其名 而無其實終 派所謂誠也 今姜氏追述先志感慕 先事始終無違名實如一 其追遠報本之誠如 是篤至者 是豈派公之有德 有以啓之耶 是不可無識 故余書 此以見斯齋之可 久遠維支者 只在一念誠不誠如何也 是役主管 而董治者 碩奎仁奎準奎英奎 具錄起而焉文者 鍾觀和洙六洙正洙聖洙光洙大洙諸人也
東方紀元四千三百十三年 庚申立秋節 晋山 姜錫鎤 記

대산재기 大山齋記
강성江城의 사대동士大洞에는 강씨姜氏가 거주하고 있으니 대산大山이라는 재사舍는 대개 그 선조先祖 은암공隱菴公 이름 세재世載를 위하여 지은 것이다. 강씨姜氏는 어사공御使公의 후예로 중세에 의령宜寧으로 이주하여 대대로 저명著名한 사람이었다. 육암공六菴公 이름 응규應奎는 최신재崔新齋의 문하에서 수업하여 덕업德業과 문행文行으로 세상에 이름이 났고 신재공頣齋公 이름 희熺는 임진난壬辰亂에 창의倡義하여 순국殉國하였으니 위충偉忠과 탁절卓節은 혁혁히 역사에 드러났다. 공公은 이런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 학문에 종사하였으니 그 충효忠孝의 전형典型에 유염濡染되어 반드시 남보다 뛰어난 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순조純祖 철종哲宗 년간年間을 당하여 문달聞達을 구하지 아니하고 세거世居하던 덕천리德川里에서 이 골짜기로 이주하여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독서讀書 하면서 한가히 자락自樂다가 세상을 마쳤으니 마음에 지닌 바는 필시 부귀富貴에 초연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장지葬地는 진양晉陽 안간촌安磵村 평전平田 유좌원酉坐原에 있으니 후손들이 대대로 성묘省墓하면서 해마다 향화香火를 받들어 지금까지 소홀함이 없었다. 그러나 여태 선양宣揚하는 일사一舍가 없어 누세累世 동안 한스럽게 여겼다. 이에 후손들이 의논하여 각자 의식衣食을 절약하고 재물財物을 희사喜捨하여 비로소 이 재사齋舍를 건립하였다. 재사齋舍는 무릇 사간四間이니 규모가 치밀하여 또한 족히 묘제시祭時에 재숙齋宿하고 이에 시절時節에 따라 찬치할 수 있으며 또 지나가는 빈객賓客을 맞이하여 예의禮儀를 차릴 수 있으니 어찌 훌륭하지 아니한가. 대저 자손子孫은 선조에게 있어 혈맥血脈이 유통하니 그 감응感應하는 이치는 또한 오직 하나의 정성精誠일 뿐이다. 참으로 능히 혈맥血脈의 통함을 생각하고 감응感應하는 이치를 안다면 추원追遠하는 생각이 어찌 간절하지 않겠으며 보본報本하는 마음이 어찌 우러나지 않겠는가. 이는 대개 선조를 받드는 뜻에서 비롯하여 종족宗族을 모으고 빈객賓客을 대접함에 이르기까지 무엇하나 정성精誠되지 아니함이 없는 것이다. 비록 그러하나 행여 그 처음에는 근면勤勉하다가 그 끝에 해이解弛하면 이는 그 이름은 있어도 그 내실이 없는 것이니 결국 참된 정성精誠이라 할 수 없다. 이제 강씨姜氏들이 선조의 뜻을 계술繼述하고 선조의 사업을 추모追慕하여 시종始終 어긋남이 없으며 명실名實이 한결같으니 그 추원追遠하고 보본報本하는 정성精誠이 이와같이 돈독敦篤한 것은 어찌 공公의 유덕遺德이 이를 계발啓發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을 알지 않을 수가 없으므로 내가 이를 기록하여 이 재사齋舍를 유구悠久히 유지하는 것은 단지 일념一念의 성誠, 불성不誠에 달렸음을 나타내 보인다. 이 역사役事를 주간主幹하여 다스린 이는 석규碩奎 인규仁奎 준규準奎 영규英奎이니 이에 함께 기록하고 기문記文을 청한 이는 종관鍾觀 화수和洙 육수六洙 정수正洙 성수聖洙 광수光洙 대수大洙 등 제인諸人이다.
1980년 8월 7일 진주인 강석황姜錫鎤 쓰다.

 

대산재상량문大山齋上樑文 편액
대산재차운大山齋次韻 편액
화수헌 花樹軒 편액
은구당 隐求堂 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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