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천부인권 2021. 1. 24. 08:04

2020.3.27. 함안 군북면 박곡리 진주강씨 우모정寓慕亭 솟을삼문

군북면 박곡리 306(박곡3길 59)에는 진주강씨姜氏齋室 박사공파 후손으로 박곡리 입향조이신 가선대부嘉善大夫 강상주姜祥周를 분향하는 재실 우모정寓慕亭이 있다. 이곳을 구글지도는 위도 35°16'19.5"N 경도 128°17'38.2"E를 가리킨다.
우모정寓慕亭은 근래에 짓다 보니 함안루정록咸安樓亭錄에는 기록이 없는 곳으로 박곡리의 강씨재실을 찾다 보니 만나게 된 곳이다. 솟을대문에는 치경문致敬門이라 편액했고, 본 재실은 우모정寓慕亭이라 이름했으며 4개의 기둥에는 주련을 달았다. 
우모정寓慕亭 좌우에는 방을 넣었고 가운데는 마루로 했는데 마루 위에는 우모정기寓慕亭記, 우모정상량문寓慕亭上樑文과 원운原韻, 차운시次韻詩 5구가 걸려 있다.

 

우모정寓慕亭 솟을삼문 치경문致敬門 편액
2020.3.27. 함안 군북면 박곡리 진주강씨 재실 우모정寓慕亭 
진주강씨 재실 우모정寓慕亭 편액
진주강씨 재실 우모정寓慕亭 주련

[해문] 전문

古樂無聲惟孝悌 옛 음악 소리 없이 오직 효제로 남고 
松陰繞砌淸於水 섬돌 덮은 소나무 그늘은 물보다도 맑구나 
石氣當軒冷似秋 집 마주한 바위 기운 가을처럼 서늘한데 
一區花樹萬年春 이 지역의 일가 모임 만년토록 봄날일세

 

문태관文泰瓘이 지은 우모정기寓慕亭記 편액

寓慕亭記
咸州之璞谷里 晉陽姜氏 自古二三家居焉 姜氏之先祖 嘉善大夫諱祥周 來寓於此其代數 至今爲十二代云矣  且本里及他處居住者 僅爲五十戶 則雲仍之不振可知矣 惟幸近年構築數間棟宇於洞口之林麓爽塏處 而嘉善公之墓域密通 營建是亭者 已三四年于玆矣 一日後孫成中君 與其族弟判中造余言 吾門勢貧弱未成 宗室久矣 惟幸我伯兄泰中久居日本 而持巨金來 使余幹務築亭 故今事役垂畢 而不可無記楣之文 故敢請焉 余以久病迷昏辞之 其請益固不得已諾之曰 少徐吾病稍愈可也 晩此把筆而敍之曰 嘉善公之事蹟沒歸 烏有載於譜乘者亦疎略太甚 自不無杞宋之歎 然古語有云論其世矣 則公之中祖八龍公諱鶴孫 與金寒暄堂宏弼 朱溪君深源 同修國史 被謫樹節 自後文行相襲 公與白眉司果公 季氏主簿公 友愛尤至 有連狀刮磨之樂 則必有行蹟樹立之可觀者 而散佚無徵 甚可慨也 盖子孫之於祖先 不惟奉祀追慕而已 每天朗氣淸之時 掃灑庭除 招集遠近好賓友  以供旨酒佳肴 而待之款曲吟詠自樂 則聲聞及遠 佳客自有往來之頻 而門戶亦有不俗之風矣 又延學士置堂中 招集里中群蒙 講經學禮 吚唔之聲 不絶晝夜 則一方之文風大振 而門戶之光 未有大於此矣 登是亭而東望 則防禦山一支 屈曲旋繞者 球玉山也 西望則茂林脩竹 落霞孤鷟 縹渺隱映者 濂滄江也 南望則硉矹磅礡 而勢欲撑天者 防禦山也 北望則十玩長江 流流不息 而至鼎岩也 此景與地之相遇 而增精彩於斯亭者 豈少也哉 是爲記
歲在乙亥菊月下浣 南平 文泰瓘 記

우모정기 寓慕亭記 -[해문] 박태성
함주(咸州)의 박곡리(璞谷里)는 진양강씨(晉陽姜氏)가 예부터 두어 세집 살고 있었다. 강씨의 선조이신 가선대부(嘉善大夫) 휘(諱) 상주(祥周)께서 이곳에 와서 사신 대수가 지금에 12대가 되었다고 하는데 본 마을과 다른 곳에 거처하는 사람들이 약 50여호 된다고 하니 그 후손들이 크게 떨치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다행히 근년에 몇칸의 집을 마을의 산기슭 높고 환한 곳에 지으니 가선대부의 묘역과 가까이 바라보이는 곳이다. 이 정자를 지은 것이 지금부터 3-4년이 되었는데 하루는 후손인 성중(成中)군이 그의 집안 아우 판중(判中)과 더불어 나를 찾아와 말하였다. “우리 가문의 빈약하여 종실을 이루지 못한 것이 오래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이 저의 백형(伯兄) 태중(泰中)이 일본에 산지 오래되어 큰 돈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이 정사를 짓는 일을 감독하게 하니 지금에야 이 일이 비로소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문설주에 걸 기문이 없을 수 없으니 감히 청합니다.” 나는 오랜 병으로 정신이 혼미하다고 사양하였으나 그럴수록 그 간청함이 간절하여 부득이 허락하여 나의 병이 조금 나아지면 가능하다고 하여 뒤늦게 이렇게 붓을 들어 서술하게 되었다.
가선공의 사적과 돌아가신 일은 비록 족보에 실려 있지만 매우 소략하여 기나라와 송나라의 일을 알 수 없음을 탄식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옛 말에 그 세대를 논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공의 중조(中祖)이신 팔용공(八龍公) 휘(諱) 학손(鶴孫)은 김한훤당(金寒暄堂) 굉필(宏弼), 주계군(朱溪君) 원심(深源)과 함께 국사를 편찬하시고 유배를 당하시고 절의를 세우셨다. 이로부터 문행(文行)이 서로 이어져 공과 백미(白眉) 사과공(司果公), 계시(季氏) 주부공(主簿公)의 우애가 더욱 지극하여 서로 학문을 갈고닦는 즐거움을 더하니 반드시 행적이 우뚝하여 바라보임이 있었을 것인데 모두 흩어지고 징험할 수 없으니 개탄할 뿐이다. 대개 자손은 선조에 대하여 오직 제사를 모시고 추모하는 것뿐만아니라 매년 절기가 맑고 아름다울 때 소쇄하고 재계하여 원근에 있는 벗들과 손님들을 모시고 술과 안주를 대접하여 아름다움 음악과 시를 읊으며 즐기는데 그 소리가 멀리에 이르러니 좋은 길손들이 스스로 왕래함이 빈번하니 그 가문 역시도 문풍이 무성하게 될 것이다. 또한 배운 선비들이 그 집에 앉았고 마을의 어린 아이들을 모아 경서를 강학하고 예절을 배우며 책을 읽는 소리가 밤낮으로 끊이지 않으면 한 고을의 문풍이 역시 크게 진작될 것이니 그 가문의 영광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으리로다. 이 정자에 올라서 동으로 바라보면 방어산 한 줄기가 구물구물 이어져 가니 구옥산(球玉山)이고, 서쪽으로 바라보면 무성한 숲과 짙은 대숲에 노을이 아름다운 곳에 외로운 백구가 아득히 그림자를 감추는 곳은 렴창강(濂滄江)이다. 남쪽을 바라보면 울쑥불쑥 우뚝히 솟아 그 기세가 하늘을 지탱하듯한 것은 방어산(防禦山)이다. 북쪽으로 바라보면 열구비 구비진 장강이 유유히 흘러 그치지 않고 흘러 정암(鼎岩)에 이른다. 이러한 경계와 이 땅이 서로 만나 아름다운 정기를 더하고 이 정자를 빛내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겠는가. 이것으로 기문을 삼는다.  
을해(乙亥 1995)년 음력 9월 하한 남평 문태관文泰瓘 짓다.

 

이우섭李雨燮이 찬한 우모정상량문寓慕亭上樑文 편액


寓慕亭上樑文
尊祖惇宗寔由秉彛之本性 構亭報祀自有追遠之常規 經營之豈以晩耶 心力之盖有待也 闔門胥悅 素志竟成 恭惟嘉善大夫姜公諱祥周 晋陽華閥 博士令孫 中祖八龍公之達材同寒暄諸賢而國史曾纂 皇考資憲公之擢科被晟朝嘉秩而風範久傳 友敦塤篪恒溢連床之湛樂 精究書榻妙得前經之眞詮 事蹟沈湮 文籍散佚 孔聖嘆杞宋之難考 雲孫慨滄桑之久翻 追想當時 可論世德 筮居玆土奄過四百載之星霜 虔護佳城未遑三間屋之亭舍 廼揀玄龜之叶吉澗阿榮洄 正値靑狗之載陽宗族坌集 可賀胄孫之專力 永垂門戶之典型 追慕由誠 遺蔭丕奕 築以石盖以瓦百年之風雨攸除 燠爲室凉爲堂九族之長少咸萃 春深花樹叙韋家之惇倫 秋降霜風思甄氏之篤慕 彷彿先靈陟降 那無家聲綿延 美哉雲林生輝 煥然棟宇呈彩 玆陳六偉 助擧雙虹 兒郞偉
抛梁東 如笏玉巒瑞旭紅咫尺封塋何處是蒼蒼楸柏入望中  
抛梁南 防岳崔嵬滴翠嵐淑氣氤氳含毓處古來鍾出幾豪男
抛梁西 濂江縹渺落霞低冠童詠罷春光晩風浴歸來樹影迷
抛梁北 一區洞壑依舊色桑麻雨露平泉在畊讀刑家家道植
抛梁上 如在精靈尙陟降寓慕終身餘慶多雲孫笰祿綿綿旺
抛梁下 歲祭恭修薦牲斝豺獺猶知報本者子孫豈懈奉先也
伏願上梁之後 棟宇益固 芬苾彌虔 篤恩義明彛倫不忘繼述之久 課詩禮務孝悌克念嗣守之難
歲在乙亥十月上旬 全州 李雨燮 撰

우모정상량문 寓慕亭上樑文
조상을 존중하고 종중을 돈독히 하는 것은 떳떳한 윤리를 세우는 본성이요. 정자를 짓고 제사로 보답하는 것은 먼 조상을 추원하는 변하지 않는 법도다. 이 정사를 짓는 것이 어찌 이리 늦었는가. 마음과 힘이 닿을 때를 기다린 것이로다. 온 가문이 서로 기쁜 마음으로 도우니  소박한 그 마음이 필경에 이 일을 이룬 것이로다. 생각건대 가선대부(嘉善大夫) 강공(姜公) 휘(諱) 상주(祥周)는  진양(晋陽)의 화벌(華閥)이며 박사(博士)의 후손이다.  중조(中祖) 팔용공(八龍公)은 뛰어난 재주로 한훤(寒暄) 등 여러 선현들과 국사를 증보하여 편찬하였고 황고(皇考)이신 자헌공(資憲公)은 과거에 올라 밝은 조정에서 좋은 녹봉을 받아 그 가풍의 범절이 오래 전해졌도다. 우애롭고 돈독하며 즐겁게 화답하니 무릎을 맞대고 즐기고, 정치하게 연구하고 책을 읽어 묘리를 터득하니 옛 경전의 참된 가르침을 실행하도다. 일의 자취가 인멸되고 문적이 흩어지니 공자깨서 기나라와 송나라의 일을 계고하기 힘듦을 탄식함과 같고 상전벽해되니 후손들은 이를 개탄하도다. 다만 당시를 멀리 추모하여 대대로 이어진 덕을 논해볼 뿐이로다. 이 땅에 자리를 잡고 산 지 거의 400여년의 세월에 무덤만 돌볼 뿐 세 칸의 정사도 지을 겨를이 없었도다. 이에 거북 먹줄통의 먹줄을 그어 줄을 잡고 을해년 좋은 날 여러 종족이 모여 종손이 전력을 다하여 힘을 더하니 가문의 전형이 길이 이어지게 되었다. 추모하는 정성이 시작되니 남겨진 음덕이 크게 빛나리라. 돌을 쌓고 기와를 덮어 백년의 비바람도 견디고, 방을 따뜻이 하고 마루를 서늘하게 하니 온 종족의 어른들과 젊은이들이 함께 모일 것이다. 봄이 깊으면 위씨의 화수의 예를 따라 종족간에 독목하고 가을이 되면 견씨가 사정을 지어 조상을 그리워한 것처럼 추모하리라. 그리하면 마치 선령이 그 자리에 오르내리시는 것과 같으리니 어찌 가문의 이름이 면면히 이어지지 않으리오 아름답도다. 온 고을과 강신이 빛을 발하도다. 환하게 정자가 우뚝하니 그 빛을 발하도다. 
이제 여섯가락 아랑위 노래로 쌍무지게를 들어올리는 일을 도우리라.
아랑위
抛梁東 홀(笏)과 같은 옥만(玉巒)의 상서러운 기운 붉으니, 지척의 산소는 어느 곳인가. 푸르고 푸른 송백이 온통 바라 보이도다. 
抛梁南 방악(防岳)은 높아 비취빛 남기 짙고, 밝은 기운 온화히 가득 품은 곳에 옛부터 우뚝한 호걸남아 몇이나 났을까. 
抛梁西 염강(濂江)은 아득히 석양 속인데 갓 쓴 선비 동자들 다 돌아간 늦은 봄에, 바람 쐬고 목욕하고 가는 길에 숲길 아득하네. 
抛梁北 온 골은 옛 그대로 이고, 주자의 무이구곡 상마우로(桑麻雨露)의 평천(平泉)이 이곳이로다. 주경야독하며 가정을 다스리는 법도를 세우리라. 
抛梁上 정령이 곁에서 오르내리는 듯하며, 평생 추모하고 모시니 경사가 많으리라. 후손들의 복록도 면면히 밝게 이어지리.
抛梁下 해마다 제사에 희생과 천신 올리는 일은 수달도 오히려 근본에 보답하는 것인데 자손이 어찌 선조 봉제사에 게으르겠는가. 
엎드려 바라건대 강량한 후에 기둥은 더욱 굳건해지고 선조의 향기는 더욱 아름다우며, 돈독한 은혜와 의리가 밝아지고 윤리가 떳떳하여 대대로 잊지 않고 계승하고 이어져, 시서예에 힘쓰고 효도와 공경에 힘써 후손들이 굳건히 지키게 하소서.
을해(乙亥 1995)년 10월 상순 전주 이우섭李雨燮 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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