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천부인권 2021. 4. 12. 06:47

2021.1.16. 진주 금곡면 인담리 인지재仁智齋 모습

진주시 금곡면 인담리 1099-1(무선산로464번길 41)에는 진주강씨 은열공의 20세 되는 강달姜達을 향사하는 재실 인지재仁智齋가 있는 곳이다. 
이 인담仁澤마을의 입향조 강달姜達 추모한 후손들이 건축한 인지재仁智齋의 대문에는 경모문景慕門이란 편액이 걸려 있고 본 당인 재실에는 인지재仁智齋란 이름으로 편액했다.
인지재仁智齋의 기둥에는 주련을 달았고 대청에는 최낙도崔洛道가 찬한 인지재기仁智齋記와 후손 극환克煥이 지은 인지재운仁智齋韻이라는 편액도 걸려 있다.

 

2021.1.16. 진주 인담리 강씨재실 인지재 대문 경모문景慕門 모습
경모문景慕門 편액
인지재仁智齋 모습
인지재仁智齋 편액
인지재기仁智齋記 편액

 

仁智齋記
晋治南二十里許 有仁澤里 山高土厚 地僻泉 明君子 可居之世也 姜氏 東方若姓晋陽之大閥也 通政大夫 諱達 殷烈公 諱民瞻 二十世孫 遭壬亂 避于南下入居焉 是爲始居之祖也 性 敦厚涥實常耕讀爲務 不 以外物爲心世間 當貴功名之事浮雲視也 若也儉於己而厚於人里人咸稱 長德人也 後仍蕃衍 數十家戶星羅居焉 豈非公之厚德 遺蔭於承耶 乃玆宗論 合一建齋于 村坊 一棟三間也 名之曰 仁智何也 公常愛山水 或 登山而採草 與麋鹿同類 或 臨水而釣魚 與 鴻鷺作伴 孔夫子有言曰 仁者樂山 知者樂水 蓋 仁知之名取 於山水樂也 登斯齋者 勿以齋 建能事了而 敎導 後裔 聿修祖德于先靈睦于宗族則 孝悌敦睦之誼 油然而生後仍之昌盛 去去無窮矣 齋成東講記文于余者 公之十三世孫 孟奎與克煥也 克煥與余舊要不可以不 文固辭 略蒐蒸辭而記
歲丙辰三月節 全州 崔洛道 撰

인지재기
진주 남쪽 20리 지점에 인담仁澤마을이 있는데 산은 높고 땅은 기름져서 우물가에는 이름난 군자가 가히 살만한 곳이로다. 강씨로 말하면 동방의 이름난 성이요. 진양 땅에서는 큰 문벌이니라. 통정대부이신 달達이란 이름을 가지신 할아버지는 은열공殷烈公이신 이름이 민첨民瞻이신 할아버지의 20세대 되시는 손자가 달達이란 할아버지신데 임진왜란을 맞이하여 남쪽으로 피난하여 이 인담仁澤마을에 들어오셔서 살게 되었느니라. 
그리하여 이 할아버지가 인담마을에 처음 살게 되신 할아버지이시다. 이 할아버지의 성품은 돈독하시고 후덕하시며 순박하시어서 항상 밭을 갈고 논을 갈아 농사지으시고 책을 읽어 공부하시며 옳은 일만 하시었고 다른 곳에는 마음을 쓰지 않으셨다. 부자되고 귀하고 이름 날리는 것은 하나의 뜬구름 보듯이 하였다. 만약 할아버지께서 몸소 검소하지 않으시고 남에게 후덕하지 않았던들 마을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할아버지를 덕망이 높은 큰 인물이라고 칭찬을 하였겠는가. 후손들이 번창하여 세월이 지남에 따라 수십가호로 늘어 났는니라. 공의 후덕이 아니고 음덕을 남기지 아니하여던들 어찌 오늘과 같이 이어왔으랴 마침내 종중의 의논을 하나로 모아 재실을 건립하게 되니 집 한동에 세칸 집을 마련하였노라. 이름은 어질인仁 알지智 두자가 어떠할까 공께서는 항상 산수를 사랑하시고 혹은 산에 올라 약초를 캐시고 사슴떼와 더불어 같이 놀아나니라 또 때로는 물에 가시어서 고기도 낚으시고 기러기들과 벗하여 놀았나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아는 이는 물을 좋아한다고 하였느니라 더구나 어질인 알지자를 다 취하였으니 산수를 다 좋아했겠지요. 
이 재실에 오르는 사람은 재실을 건축하게 된 사유를 후손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니라. 인담마을에 처음 정착하신 할아버지의 은덕이 먼저이니라 할아버지 혼령에 친목할 줄 아는 종족이라야만 후손들이 효도하고 돈독하고 친목하는 우의가 일어나느니라. 태어난 후손들이 번창하여 끝없이 이어 갈 것이니라. 재실을 지어놓고 나한테 기문을 청하니 공의 13세손인 맹규와 극환이니라 극환은 나의 옛친구로서 글을 거절할 수 없어서 간략하게 이 기문의 말을 써서 전한다.
병진 삼월절 전주 최낙도崔洛道 찬하다.

 

인지재운仁智齋韻 편액

仁智齋韻 - 전문
晉陽大閥鄭河姜 진양의 큰 벌열은 정씨 하씨 강씨인데 
人傑地靈誰短長 인걸은 지령이거늘 누가 잘나고 못났으리 
麥雨過郊添積翠 麥雨가 들판에 내리니 푸른 기운 더하고 
松風入戶動微凉 솔바람 집에 불어오니 서늘한 기운 이는구나 
仁山北極千年峀 仁山은 北極에서 천년을 지낸 산봉우리요 
潁水南來萬古江 潁水는 남으로 흘러오는 만고의 강이로다 
地秘天藏開別境 하늘이 감추었던 신비한 별천지를 열었으니 
繁陰花樹接隣芳 그늘 짙은 花樹는 좋은 이웃이라네 
후손극환 

*麥雨 : 보리가 익을 때 내리는 비. 
*仁山 : 미상. 仁智齋이므로 아마도 仁者樂山의 뜻을 빌린 듯. 
*潁水 : 미상. 
*花樹 : 친족끼리 화목한 모임을 묘사한 말인데, 여기서는 정씨 하씨 강씨가 서로 좋은 이웃으로 살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인지재仁智齋 주련
진양강씨인담재건립기념비 晋陽姜氏仁澤齋建立記念碑

晋陽姜氏仁澤齋建立記念碑
仁智齋記
晋治之南有仁澤里 仁澤者 姜氏之世庄也 吾姜本以神州 神聖之苗裔 元師公 諱以式 當隋氏之末見幾 東出銓居晋陽 晋姜之家 聲極其美矣 而金紫銀 靑世不久絶傳至 仁憲公 諱邯贊 殷烈公 諱民瞻 以山河間 氣才兼龍虎 而共力王室 東遂女眞 北却契丹 出將入相 文武並用 樹勳靑兵民到于 令稱之後 爲風而所 漂搖散在 國中然世修 先武贊組相承 殷烈公 十四世孫 諱安重 以出衆之才 早入翰院 但以梯事違命 坐法未及入侍 是所慟恨 是生諱瑨痛 父非命隱居 行義累徵不就三傳至 諱㵛 通政大夫 吏曹參議 始居仁潭于 令十餘世 親盡之位 藏主於墓 門歲薦一祭一無 齋宿之所 爲痛去壬子十月 瞻掃之餘 諸子孫咸曰 吾家本寒族安知 今日猶念於後日乎 遂醵金購工不月 而成東均之力 居多題其顔曰 仁智尸事人克煥 其族孟奎德煥乙煥相烈壬煥 來問記於余 余曰 雖是因地 而名仁智 孔子不居恐似濫 克煥曰仁智 雖殊非曰 能之願學焉 余曰有是哉 古人有言曰 克念作聖 又曰 堯舜可學 而至居是者 顧名思義戰 兢兢造次 必於是顚沛 必於是不 以外物所奪 而學不厭 而敎不倦 則能有浦於述先 裕後之道 而自不護於 仁智者之山水矣 而各勉焉
宗後生 姜貞秀 記
中元庚申三月仲旬 晋山 河龍燮 書
在日本京都晉州親睦會長 姜東均 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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