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천부인권 2021. 4. 25. 21:30

2021.4.25. 고암면 우천리 진주강씨 덕곡서당德谷書堂 대문

진주강씨晉州姜氏의 재실齋室 덕곡서당德谷書堂은 창녕 고암면 우천리 870-2(창밀로 288)에 위치하며 해발고도는 95m이고, 구글지도의 좌표로는 위도 35°33'56"N  경도 128°30'33.1"E이다. 창녕공업고등학교 교문에서 학교와 교사기숙사 사이의 길을 통해 내부를 지나면 시멘트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좁은 흙길을 통과하면 덕곡서당을 만나게 된다.

덕곡서당德谷書堂은 박사공파博士公派 후손인 주사공主事公 강상희姜象熙께서 고연高淵이라는 집을 지으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진주강문의 강당이면소 제실祭室이다. 창녕공업고등학교가 들어서면서 학교를 통하지 않으면 길도 없는 한적한 곳이지만 고암면에 뿌리 내린 가문이 됐다. 덕곡서당기德谷書堂記와 

덕곡서당의 대문에는 편액이 없고 우측의 고직사는 제례 때 음식을 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모습이었다. 마당 보다 높게 축대를 쌓아 덕곡서당의 마당으러 했고 다시 단을 쌓아 덕곡서당의 건물을 지었다. 기둥에는 주련을 붙였고 본당에는 덕곡서당德谷書堂이라 편액 했다. 우측의 방에는 망도헌望道軒이라 했고, 좌측에는 존덕미尊德楣라는 편액을 걸었다. 대청에는 수암守庵 김희연金煕淵¹⁾이 지은 덕곡서당기德谷書堂記와 후손 제석濟錫이 지은 원운原韻이 걸려있다. 

이곳 역시 일부의 책은 도난이 당했고 남은 책은 다른 곳에 옮겨 보관 중이라 한다.

 

2021.4.25. 고암면 우천리 진주강씨 덕곡서당德谷書堂
2021.4.25. 고암면 우천리 진주강씨 덕곡서당德谷書堂 편액
망도헌望道軒

 

존덕미尊德楣

德谷書堂記
距治北五里許 德谷之中 有曰德谷書堂者 晉陽姜氏 爲其累世先壠 而築者也 始主事公 象熙 構一亭 扁以高淵 軒曰望道 楣曰尊德 而中間因風雨 見毁更築 於數弓之地 則視舊制 多不備焉 公之子友山翁 常起居于 斯慨周旋 齊宿之偪 隘不稱遂 與諸族謀 醵穀蓄金 若干年可 得始事矣 乃鳩村塼瓦 新而張之制 頗靚麗而 齋號之德谷 因其地名也  祭室而曰 書堂者 盖不但于 以奉歲一之祭 亦以爲子姓 讀書之所也 則公之所 以紹先啓後者 其意動且遠矣 日 雨錫珷錫燦求三君來請 余記之念 昔退山友山 伯仲兩公 在世無恙之日 余從先從兄 澗翠桂山 兩公之後 時月講磨 相從便如 一室之親 而公愛余尤甚 亦嘗累登 是堂觀 其林泉之邃 圖書之蓄 而嘆仰於佳謨者 夙有不可辭者 而尤有所感者 盖世之爲墳庵 阡舍之役者 固簇簇相望 然類皆出 於族盛而物備 則其爲力也 易孰有如 斯堂之出 於若干姓 孫而斷斷 若心之爲尤難也 堂扁之揭德雖 因地名而 於紹啓之道 其義允合 詩曰 無念爾祖 聿修厥德 夫德也者 人之所以行乎 道而得於己者 修之爲君子 悖之爲小人 莫不於此焉 分而其實 不出於人倫 日用之常 則居是堂者 誠能早夜惕念 母侈其名而寡 其實母狃於 近而忽於 遠斯其爲聿修 無忝之美 而斯堂也 亦可以長存 而無窮矣 姜氏之敦 厚宜亦知勉 於此矣
歲己酉正月望日 瑞興 金熙淵 記

덕곡서당기
창녕읍에서 5리쯤 되는 곳에 덕곡德谷이 있고 이 덕곡 가운데 덕곡서당德谷書堂이 있으니 진양강씨들이 선조 여러대의 묘소를 위하여 지은 집이다. 처음에 주사공主事公 상희象熙께서 정자 한 채를 짓고 헌판을 고연高淵이라 하고 헌軒을 망도望道라 하며 인중방에는 존덕尊德이라고 걸었다. 중간에 풍우로 인하여 헐리우고 조금 떨어진 곳에 다시 지었다. 그러나 보기에 옛 규모에 비하면 빈약하다. 
공의 아들이신 우산옹友山翁께서 늘 여기에서 기거하셨다. 생활하고 제숙하는데 비좁고 맞지 않아서 근심하다가 여러 일가들이 의논하여 곡식을 모으고 돈을 저축하기를 몇 년하여 재실 짓는 일을 시작하게 되어 이에 구촌의 벽돌과 기와를 모아 새롭게 규모를 넓히고 잘 꾸며서 재호를 덕곡재라 하였으니 그 지명에 따른 것이다. 제실을 서당이라 한 것은 다만 해마다 모시는 제사뿐 아니고 자손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이 선조의 뜻을 이어받고 후손을 깨우치는 바 뜻이 돈독하고 원대하다 할 것이다. 하루는 우석雨錫 무석珷錫 찬구燦求 세 사람이 나를 찾아와서 기문을 청하였다. 
옛날 퇴산退山 우산友山 두 형제분이 살아 계실 때 내가 돌아가신 종형 취간澗翠 계산桂山 두분의 뒤를 따라 이 제실에 와본적이 있다. 그때 달마다 학문을 연마하기 위하여 모였는데 한집에 사는 친척처럼 의좋게 지냈으며 공께서는 나를 많이 사랑해 주셨다. 그리고 일찍이 여러차례 이 당에 올라 정원이 그윽하고 책을 많이 간수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일찍부터 감탄하고 우러러 보았으니 어찌 기문 하기를 사양하리요. 더욱이 감동한 바는 대개 세상에서 분암이나 재실의 공역은 일가들이 많고 그 일가들이 모두 힘을 합치면 쉽다. 그러나 자손들이 많지 않은 집에서 이러한 일을 이룩해 내는 것은 더욱 어렵다. 서당의 현판을 덕자德字를 건 것은 비록 지명에 따랐다고 하지마는 선조의 덕을 이어받고 후손을 깨우치는 도리가 그 뜻에도 합당하다. 시경에 조상을 사모하는 마음을 버리지 말고 그 덕을 사모하고 이어나가라고 하였으니 대저 덕이란 사람이 도리를 행하여 스스로가 얻는 것이다. 닦으면 군자가 되고 거스리면 소인이 되는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 사실은 인륜과 날마다 쓰이는 떳떳함에 벗어나지 않는다. 
이 서당에 거처하는 이는 아침저녁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그 이름을 분수에 넘치게 하지말며 그 실속을 적게하여 가깝게는 욕되지 않게 하고 멀리는 잊어버리지 않아서 선조의 덕을 이어받아 가는데 욕되지 않게함을 아름다움으로 삼으면 이 서당이 역시 길이 존속하여 무궁하리로다. 강씨들의 돈독하고 두터운 의宜 또한 힘쓰리라는 것을 안다.
기유년 정월 보름 서흥 김희연金煕淵 짓다.


【주석】
김희연金煕淵¹⁾ : 김희연金煕淵(1895~1971)은 일제강점기의 유학자로 자는 경임景臨 호는 수암守庵이다. 본관은 서흥瑞興이며 창녕군 고암면 계팔리桂八里에서 1895년 2월 28일 태어났다.

 

덕곡서당德谷書堂 원운

原韻
德領領下道岩東
有閣崔巍寓慕同
累代封塋瞻掃處
百年遺業繼承中
鵝湖風景長無恙
舞峽桑麻又奏功
前創誜修其揆一
高淵故事正相通
後孫濟錫敬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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