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천부인권 2021. 4. 27. 16:30

2021.4.26. 악양 평사리 진주강씨 양인재養仁齋 앞에서 본 평사리 들판
2021.4.26. 악양 평사리 진주강씨 양인재養仁齋 모습

진주강씨晉州姜氏의 재실齋室 양인재養仁齋는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463-2(평사리길 59-14)에 위치하며, 이곳은 해발 70m 높이고, 위도 35°09'12.8"N 경도 128°41'13.6"E이다. 

양인재養仁齋는 은열공殷烈公 민첨民瞻의 후손이 선조들을 향사하기 위해 지은 제실祭室이다.

평사리의 마을 상부에 위치한 양인재養仁齋는 산록의 등고선을 따라 만들어진 길 위에 있어 평사리 들판을 굽어보는 전망이 좋은 곳에 있다. 길에 축대를 약 180cm로 쌓고 본당이 우뚝 서 있으며 주위는 돌담장을 하고 앞에는 배롱나무, 동백나무 등을 심어 바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대문은 없고 예전에는 양인재養仁齋라는 편액과 강학수姜學水가 간략하게 지은 양인재기養仁齋記가 있었다하나 지금은 없다. 
내부 마루에는 재실건립성금록齋室建立誠金錄과 1993년 度祭閣지붕扊 개량중수성금록改良重修誠金錄이 걸려 있고 방에 위패가 놓여있어 재실齋室임을 알뿐이다. 악양면지에 양인재기養仁齋記가 실려있어 옮겨 둔다.

 

2021.4.26. 악양 평사리 진주강씨 양인재養仁齋 본당

養仁齋記
始祖殷烈公 諱民瞻 麗朝 開國功臣 金紫興祿大夫 太子大師 二十五世孫 諱元鑑 太子詹事 公十九世孫 諱好禮 崇祿大夫佐命功臣 十六世孫 士南 我朝 文科進士 玄孫尙裕 通政大夫 爲始한 以下 累代의 世一之齋所 而西紀一九七三年三月二日 后孫一同이 同心協力하여 建立齋舍于近墓地 卽河東郡岳陽面平沙里 祖先이 得所孫心이 乃安이라 非敢曰 報祖告之德이나 用是告于僉宗이라.
西紀 一九九六年 丙子 十二月 日
後孫 學永 謹撰

양인재기
시조이신 은열공의 이름은 민첨民瞻으로 고려高麗 때에 개국공신 금자흥록대부金紫興祿大夫¹⁾이며 태자의 큰 스승이셨다. 25세손의 이름은 원감元鑑으로 태자첨사부太子詹事府²⁾의 벼슬을 지냈고, 공公의 19세손으로 이름은 호례好禮이신 분은 숭록대부崇祿大夫 좌명공신佐命功臣³⁾이시며, 16세손 사남士南은 조선 때 문과의 진사이시고, 현손이신 상유尙裕는 통정대부通政大夫⁴⁾를 지내셨다. 그후로 오랜 세대에 걸친 집안의 재실이다.
서기 1973년 12월 2일 후손 일동이 한마음으로 협력하여 건립한 재사齋舍로 묘지 가까이에 있다. 즉,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선조를 위해 자손이 마음을 얻는 장소라 이에 편안하다. 감히 말하자면 조상의 덕을 입고 알리는 것이기에 모든 일족에게 말하는 것이다.

1996년 12월 일
후손 학영學永 삼가 짓다.

【주석】
금자흥록대부金紫興祿大夫¹⁾ : 고려 시대, 문관의 관계(官階). 995(성종 14)년에 대상(大相)을 이 이름으로 고쳤다가 문종 때 없앴다
태자첨사부太子詹事府²⁾ : 고려 시대, 동궁의 사무를 맡아보던 관아
좌명공신佐命功臣³⁾ : 조선 시대, 공신의 하나. 1401(태종 1)년에 박포(朴苞)의 난을 평정하고 태종을 왕위에 오르게 하는 데 공을 세운 이저(李佇) 등 46명에게 내린 훈명(勳名)이다.
통정대부通政大夫⁴⁾ : 조선시대 정3품 문산계 가운데 하나.

 

2021.4.26. 악양 평사리 진주강씨 양인재養仁齋 내부 위패를 모신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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