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천부인권 2021. 5. 5. 06:40

2021.5.2. 합천 가회면 장대리 다공마을의 진주강씨 재실 죽산재竹山齋 모습

진주강씨晉州姜氏의 재실齋室 죽산재竹山齋는 합천군 가회면 장대리 289(장대2길 302-12)에 위치하며, 이곳은 해발 240m 높이고, 위도 35°27'41"N 경도 128°04'03"E이다. 

죽산재竹山齋는 장대리 다공茶貢마을 위쪽 마을과 약간 떨어진 선조들의 묘소 앞에 지었다. 

 

임진왜란의 공신 동호공東湖公 강기룡姜紀龍의 손자 강우재姜佑載가 부귀영화를 버리고 죽동竹洞으로 은거해서 살았던 곳으로 죽산재竹山齋는 우재공佑載公을 향사享祀하는 곳이다.

 

2021.5.2. 진주강씨 죽산재 대문 존경문尊敬門


죽산재竹山齋는 들어가는 입구가 밭으로 이루어졌고, 솟을대문에는 존경문尊敬門이라는 편액을 달았고, 건물은 3칸 4개의 기둥으로 주련은 없으며 처마 밑에는 죽산재竹山齋라 편액했다. 대청에는 죽산재기竹山齋記가 걸렸고, 죽산재상량문竹山齋上樑文과 후손 신운信雲이 지은 죽산재원운竹山齋原韻, 8세손 의희義熙가 지은 원운原韻, 6명의 묵객이 지은 죽산재차운竹山齋次韻이 달려있다.

 

존경문尊敬門 편액
2021.5.2. 가회면 장대리 다공마을의 죽산재竹山齋
죽산재竹山齋 편액


竹山齋記
祭必齊戒 非獨時祭 忌祭祭墓亦 然肆墓有齋舍 爲祭墓時齊戒而作也 夫祭墓是尊祖事 尊祖是人之彛性也 人孰不有彛性能率 其彛性而作尊祖事 人鮮能之何也 蓋人能率 其彛性惟賢者 乃爾人之賢者 常寡不肖子 常多故耳 吾鄕之竹洞 舊名茶貢 晉陽姜氏世庄也 夫姜氏世稱 我東表甲乙族 而至東湖公 諱紀龍 龍蛇亂與金健齋 諸公倡義殉國 朝家綽楔之士林 省畏壘奉事具 與誌勝覺 其子諱遇璜 年纔成童負父戶 而廬墓三年於是乎 姜氏以忠孝 家益著世 遇璜孫佑載痛 東湖公之不 克殲賊而死遂 絶意榮塗 來遯于竹洞 亦高士也 其後我正廟世 有諱璜欽 事父母至孝 又有韋居士風 每歲荒翳桑者多賴焉 鄕人士累龥方伯 與直指請褒 其行歿墓于 竹洞後山 今其后孫 守熙信雲信基周信 諸君就墓下 作齋舍三楹 爲祭墓時齊戒所 諸君儘能人之鮮 者庸詎非 所謂率彛性 而作尊祖事者 歟又台周公 以下四世諸墓 皆與舍相 望祭諸墓 時子姓亦會齋于 此是諸君作一事 而諸祖之事 咸備焉重 爲之可尙也 又舍之地宅幽 而勢阻草本 藂茂居民鮮少深 宜隱遯者 居之諸君苟能 以佑載公之心 爲心鞱光 於斯不出 而與卉服 狂猘之世 相染則是不忝 其祖不忝 其祖乃亦所 以尊祖也 夫如是則 於尊祖之事 能率其彛性 而人稱之 以賢者者 奚止作 此一齋舍 而已哉 將見使世之不肖者 觀感以復其彛性 而莫不力於 尊祖之事 若子羔爲之衰也 歟願諸君申勉焉 舍之成 今年余月謁 余文者元熙義熙云
閼逢涒灘 南至日 花山 權載春 記

죽산재기
제사에는 반드시 제계齊戒가 있으니 오직 시제時祭만 있는 것이 아니고 기제忌祭와 묘제墓祭에도 또한 그렇다. 고로 묘소에 재사가 있으니 묘소에 제사祭祀할 때에 제계齋戒하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대저 묘소墓所에 제사祭祀하는 것은 이것이 조상을 존중하는 일이요. 조상을 존중하는 것은 곧 사람의 떳떳한 성품이니. 사람이 능한이가 드문 것은 어째서인가? 대개 사람이 그 떳떳한 성품을 실행하는 자는 오직 어진 자라야 이내 그렇게 할 수 있다. 무릇 사람은 어진 자가 항상 적고 불초不肖한 자는 항상 많은 연고인 따름이다. 
우리 고을 죽동의 옛 이름이 다공茶貢인데 진양강씨의 세장世庄이다. 대저 강씨는 세칭世稱 우리나라에서 갑을甲乙의 종족으로 드러났는데 동호공東湖公 이름은 기룡紀龍이 임진壬辰(1592) 계사癸巳(1953)의 난리에 이르러서 김건재金健齋(김천일金千鎰) 여러 사람들과 창의倡義하여 순국하니 국가에서 작설綽楔로 포상하였고 사림에서 외루봉사畏壘奉祀하였으니 일이 여지승람與誌勝覺에 실려있다. 그 아들의 이름은 우황遇璜인데 나이 겨우 열다섯에 아버지의 시체를 지게 되어서 여묘廬墓 3년을 하니 이에 강씨가 충효의 집안으로 더욱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우황遇璜의 손자 우재佑載가 동호공東湖公이 적을 섬멸하지 못하고 죽은 것을 원통히 여겨서 드디어 부귀영화의 길에 뜻을 끊고 죽동竹洞에 와서 은둔하니 또한 높은 선비이다. 그 뒤에 우리 정조正祖(1776~1800)의 세대에 이름 황흠璜欽이 부모를 섬김에 지극한 효도를 하였고 또 위거사韋居士의 풍도가 있어서 매양 흉년이 들면 예상자翳桑¹⁾者들이 많이 거기에 힘입었다. 고을 사람들이 여러번 방백方伯(觀察使)과 더불어 직지直指에게 호소하여 그 행실을 포상해 주기를 청하였다. 돌아가심에 죽동 뒷산에 묘소를 하였다. 
지금 그 후손 수희守熙 신운信雲 신기信基와 주신周信 등의 제군이 묘소 아래에 세 기둥의 재실을 지으니 묘소에 제사할 때에 재계하기 위한 바였다. 제군들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가 드문 것에 모두 능히하니 소위 어찌 떳떳한 성품을 실행하여서 선조를 존중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또 태주공台周公 이하 4세의 여러 묘들이 모두 재실과 더불어 서로 바라보고 있고 묘소에 제사할 때에 자손들이 또한 여기에 모여서 재계하니 이것은 제군들이 한가지 일을 했지만 여러 할아버지의 일이 모두 갖추어 지게 되어서 거듭 가상한 일이다. 또 재실의 땅이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산세가 험해서 초목은 무성하고 거주하는 사람은 드물었으니 은둔한 자가 살기에 매우 마땅하다. 제군들이 진실로 우재공佑載公의 마음으로 마음을 삼아 이에 빛을 감춰지내고 나가서 훼복卉服의 미친개들과 더불어 서로 물들지 않는다면 곧 이것이 또한 그 선조에 욕되지 않게 하는 것이니 그 선조에 욕되지 않게 하는 것이 곧 선조를 존중하는 것이다. 대저 이같이 한다면 곧 선조를 높이는 일에 그 떳떳한 성품을 실행한 것이니 사람들이 현자라고 일컬을 것이다. 또 어찌 이 한 재실을 지었다는 데에 그칠 것인가. 장차 세상의 불초不肖한 자들로 하여금 보고 느낌으로써 그 떳떳한 성품을 회복케하여 선조를 높이는 일에 힘쓰지 않음이 없게 하기를 자고子皐를 위하여 상복을 입은 것과 같음을 보게할 것인져. 원하건대 제군들은 거기에 힘쓸 것이다. 재실의 이루어짐은 금년(甲申:1944) 4월이며 나에게 글을 청한자는 원희元熙와 의희義熙이다.
갑인甲寅(1974)년 동지일冬至日 화산花山 권재춘權載春 짓다.

【주석】
翳桑: 뽕나무 그릇이라는 뜻인데, 예상아인翳桑餓人의 준말로 은인을 지칭. 춘추 진晉나라 영첩靈輒이 뽕나무 그늘 밑에서 굶주리고 있었는데, 조돈趙盾이 그를 구제해 주었다. 뒷날 조돈이 난리에 위급하게 되었을 때 영첩은 그를 도피시켰는데, 조돈이 구원해 준 이유를 묻자, 영첩은 과거의 뽕나무 그늘 밑에 있던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죽산재상량문竹山齋上樑文
죽산재원운竹山齋原韻
8세손 의희義熙가 지은 원운

 

죽산재차운竹山齋次韻
2021.5.2. 묘소에서 바라본 죽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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