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천부인권 2021. 5. 14. 08:33

2021.5.9. 산청 화계리 진주강씨 재실齋室 경모재敬慕齋 대문 대흥문大興門

진주강씨晉州姜氏의 재실齋室 경모재敬慕齋는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651-1(화계오봉로 7-7)에 위치하며, 이곳은 해발 143m 높이고, 위도 35°27'35"N 경도 127°47'37"E이다. 

경모재敬慕齋는 강동선姜東選을 기리기 위해 그의 8대 후손 강무성姜戊成이 지은 재실이다. 지금은 재실의 용도보다 후손의 생활 집으로 사용 중이다.

금서초등학교 맞은편에 자리한 경모재敬慕齋는 화려하고 큰 대흥문大興門의 규모에서 사람을 압도하며 그 옆에 세운 ‘천하통일가비’의 규모도 예사롭지 않다. 그 뒤로 도로를 지나면 경모재敬慕齋와 강의당講義堂이 자리하고 뒤쪽에 청계사淸溪祠가 자리한다. 경모재에는 강석황이 쓴 경모재기敬慕齋記와 경모재상량문敬慕齋上樑文이 걸려 있고 주련도 있다. 

 

대흥문大興門 편액
2021.5.9. 산청 금서면 화계리 진주강씨 재실 경모재敬慕齋
경모재기敬慕齋記 편액

敬慕齋記
夫祖先者 子孫之本也 本可忘乎 未可不思墓也 慕之道如何必 爲齋以寓象焉 瞻望於斯 齊宿於斯 日接於出入起居者 爲尤切於慕之道 而可垂於久遠 此齋之尤 不可以無作也 山淸治 西三十里 有花溪里 俗稱西河是也 古時有地師過 而指之曰 此繫舟形也 故風水大地之設 至今有傳 盖一大勝區也 吾姜有戊成君 自其曾大父 四昆季之卜居于 此篤守舊址 家勢富裕 去年君爲其入代祖 通政大夫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僉知中樞府事鍾城府使公 諱東選 所居傍占 嘉遯築三間祠屋 又建四欞 齋室及九層門樓於 其前大役幾 訖君訪余于 大同書院 以其名 與記請之余曰 是當目擊 而後名可定 而文可成矣 卽往見之其祠宇 則全以美 石築之磨琢 精妙文彩 自成可以爲萬年之完璧 齋舍則取材倫 其鉅軒堂房室 俱備規模 周密制度宏傑可以 爲一鄕之甲 第門間則兩石柱立 於左右大可十圍 高可百尺就 其以上彫사刻 柀層層羅列 異形奇色 聳出雲霄 自下而望之如 蓮花之浮水 自上而觀之如 大鵬之起空得于 姸媚者無不足 於雄嚴得于 尖矗者無不足 於通暢雖 謂之世界 第一奇觀 不爲過也 余於是特筆 以書之以定 其名祠曰淸溪 齋曰敬慕 堂曰講義 軒曰花樹 門曰大興 又爲文而識之曰 方世道滄桑 倫綱斁喪忘 親背本之行 可爲接迹 而起其違 禽犢者無幾 而惟戊成能超乎 俗窠彈其誠物 能刱奉先貽 後之大業 可以爲一世之模範 寧不休哉 雖然外而觀聽之美 如此其備則內 而追慕之實 尤不可以不勉也 今距府使公之世己遠 始終周典雖未得考 然嘗聞公居家 有孝友之行 在朝有忠信之德 及其致仕寓樂 江湖以歿 則其實行 偉德槪可想矣 爲其後承者 當推仰其德義 而修身節行祭焉 而盡著存之誠講焉 而明報本之道 然後始可謂得 其追慕之實也 其要惟在於敬 而已夫安得不敬乎
東方紀元 四千三百二十七年 甲戌 淸明節宗下 姜錫鎤 謹識 

경모재기
대저 조상과 선조는 자손의 근본이니 그 근본을 가히 잊을 수 있겠는가. 가히 사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사모하는 길은 무엇인가.
반드시 재실을 지어서 거기에 형상을 붙일 것이니 이에 첨망瞻望하며 이에 제숙齊宿하여 날마다 출입 기거에 접하게 하는 것이 더욱 사모하는 방법에 절실한 것이 되고 가히 오래 멀리 드리울수 있는 것이니 이것이 재실齋室을 가히 짓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산청군 치소治所에서 서쪽으로 30리에 화계리花溪里가 있으니 속칭 서하西河가 이곳이다. 옛날 풍수가 지나가다가 이곳을 가르켜 말하기를 “이곳은 배를 매어 놓은 형상이라” 하였는 고로 풍수 대지의 설이 지금에 이르도록 전해지고 있으며 일대의 명승이다. 
우리 강씨姜氏 가운데 무성군戊成君이 있으니 그 증조부 4형제분이 여기에 처음 살게 되면서 돈독히 옛 터를 지키며 가세가 부유했더니 지난해에 군이 그 8대조 통정대부通政大夫 정충장군折衝將軍 행용양위부원군行龍驤衛副護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종성부사공鍾城府使公 이름이 동선東選을 위하여 사는 곳의 옆 가둔嘉遯에 3칸 사옥祠屋과 또 그 앞에 4기둥의 재실 및 9층 문간 집을 짓고 그 큰 역사가 거의 마쳐갈 무렵에 군이 대동서원大同書院으로 나를 찾아와서 그 이름과 기문을 청하거늘 내가 말하기를 “이것은 마땅히 눈으로 본 뒤에 이름을 가히 정할 수 있고 글을 가히 이룰 수 있다.”하고 곧 가서 그 사우祠宇를 본 즉 전부 아름다운 돌로 쌓았으며 갈고 다듬기를 정교히 한지라 문채가 절로 이루어 졌으니 가히 만년의 전함에 완벽함이요 그 재사齋舍의 제목을 취함에 그 큰 것을 가려서 헌당軒堂 방실房室이 구비되니 규모가 주밀하고 제도가 크고 헌걸차서 가히 한 고을에서 일등이오 그 문간은 돌기둥이 좌우에 서 있는데 크기는 열 아름이나 되고 높이는 100자나 되며 그 위에 나뭇가지가 아래로 드리운 모양을 조각하여 층층이 나열하니 그 기이한 형색이 하늘 높이 솟았다. 아래서 보면 연꽃이 물 위에 뜬 것 같고 위에서 보면 큰 붕새가 공중에서 일어나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것은 웅장 장엄함에 부족함이 없고 뾰족이 높은 것은 통창通暢함에 부족함이 없으니 비록 세계 제일의 기관奇觀이라 말해도 지나침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에 특별히 붓으로 글을 써서 그 이름들을 정하니 사祠는 청계淸溪, 재齋는 경모敬慕, 당堂은 강의講義, 헌軒은 화수花樹, 문門은 대흥大興이라 하고 또 글을 지어서 기록하기를
바야흐로 세도世道가 창해상전滄海桑田이 되고 삼강오륜이 무너져 없어지니 어버이를 잊고 근본에 배반하는 행위가 자취를 이어서 일어나니 금수禽獸 됨이 멀지 않았는데 오직 무성戊成 군이 능히 속류俗流에 초월하여 그 성물誠物로서 능히 선대를 받들고 후손에 끼치는 대업大業을 창건하여 가히 일세의 모범이 되니 어찌 아름답지 아니한가. 비록 그러하나 밖의 보고 들리는 아름다움이 이같이 갖추어진즉 안으로 추모의 성실함에 더욱 가히 힘쓰지 않을 수 없으리라.
지금 부사공府使公이 가신지 이미 오래 되었기에 시작과 끝남의 제반 규모는 능히 상고詳考할 수가 없으나 그러나 일찍이 듣건대 공이 집에 있을 때에는 효우의 행실이 있고 조정에 있어서는 충신의 덕이 있었으며 그 벼슬을 마침에는 강호江湖에 즐거움을 붙이다가 돌아가신즉 그 행실과 위대한 덕을 가히 상상할 수 있으니 그 후손 된 자가 마땅히 그 덕의德義를 주앙推仰해서 몸을 닦고 행실을 절제하여 제사를 지냄에 신伸이 나타나 있는 정성을 다하고 학문을 강론해서 근본에 보답하는 덕을 밝힌 연후에야 비로소 가히 능히 그 추모의 상실을 했다고 할 것이며 그 요령은 오직 공경에 있을 따름이니 어찌 능히 공경치 않으리오.
갑술甲戌(1994)년 청명절 일가 강석황姜錫鎤 삼가 짓다.

 

경모재상량문敬慕齋上樑文 편액
화수헌 편액
강의당 편액
2021.5.9. 산청 진주강씨 사당 청계사淸溪祠

 

청계사淸溪祠의 대문 현판 정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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