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산청군 신안면 벽계 진주강씨 무릉재 武陵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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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2021. 5. 20.

2021.5.19. 산청 신안면 소이리 벽계마을 진주강씨 무릉재 모습


진주강씨晉州姜氏의 재실齋室 무릉재武陵齋는 산청군 신안면 소이리 222-1(신차로388번길 83-17)에 위치하며, 이곳은 해발 70m 높이고, 위도 35°22'18.9"N 경도 128°00'53.6"E이다. 

무릉재武陵齋는 200여년 전에 경기연천京畿連川에서 이곳으로 오신 강건부姜建溥 선조를 향사하고 후손들이 회의하는 공간이다. 1948년에 벽계碧溪마을 앞 신등천新等川 넘어에 있는 조상들의 묘 앞에 세웠으나 1977년 벽계마을로 재실을 옮겨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무릉재武陵齋는는 머을의 좁은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철문에 마당이 너른 집에 있는데 관리사와 무릉재武陵齋 대문과 무릉재가 있다. 무릉재武陵齋 대문에는 선원문仙源門이라 편액했고 처마 밑에는 무릉재武陵齋라 했으며, 기둥에는 주련을 걸었고, 마루 위에 무릉재중건기武陵齋重建記을 걸고 대청에는 무릉재기武陵齋記, 무릉재상량문武陵齋上樑文, 원운原韻이 걸려 있다.

 

2021.5.19 신안면 소이리 벽계마을 진주강씨 무릉재武陵齋 대문

 

진주강씨晉州姜氏의 재실齋室 무릉재武陵齋 대문 선원문仙源門 편액
무릉재武陵齋 모습
무릉재武陵齋 편액
무릉재武陵齋 주련
무릉재중건기武陵齋重建記

 

武陵齋重建記
방장산方丈山이 수십리를 동남東南으로 달려 호암虎岩에서 정기가 멎으니 황매산黃梅山 마주 보는 경승지景勝地에 벽계碧溪마을 생겼고 단계丹溪 가회佳會 합류시켜 물굽이 동으로 굽어드는 무릉계곡武陵溪谷에 무릉재武陵齋가 섰으니 소이리所耳里 사번지四番地요 一九四八(1948)년이다. 이곳은 이백여년二百餘年 전에 경기연천京畿連川에서 오신 진주의 저성著姓 강공姜公 휘諱 건부建溥의 후손들이 위선봉사爲先奉祀하고 세수돈목世守敦睦, 강독종회講讀宗會, 연빈우과延賓友課하는 재사齋舍이다. 입향조入鄕祖 강공은 통정선생通亭先生 회백지후淮伯之後로 사숙재私淑齋 문량공文良公 希孟之九世孫이시다. 入鄕後不振타가 公의 五世孫 휘諱 영기永祺께서 조선조말朝鮮朝末에 등제登第하시어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벼슬에 오르시고 집안을 크게 떨치시었다. 문중門中의 익수자성선益秀字性善께서 영숙永俶 영희永禧 두분이 일구오사년一九五四年 甲午 正月 六日에 권도용선생權道溶先生의 글을 받아 무릉재기문武陵齋記文을 달았다. 세태世態가 바뀌니 강씨집성촌姜氏集成村 벽계碧溪도 시류時流에 따라 집안이 京鄕各地로 離散되어 齋室의 관리상 무릉곡武陵谷에서 죽전등竹田嶝 안 마을로 이건移建하니 일구칠칠년一九七七年이요 소이리 222-1번지로 현존이건現存移建이다. 그로부터 二十數年이 흐르니 또 노후老朽하여 수리修理를 요할뿐더러 진입로와 정원이 협소하고 불편하여 문중의 중의를 따라 위토답을 팔고 비용을 마련하여 종전의 팔십평에서 백십여평을 추가매입하고 서기이천년 음삼월에 대창 대완이 공사를 착수하여 진입로와 떨을 넓혔다. 
번와飜瓦와 수리도색修理塗色까지 하고 원장垣牆을 조성하니 재실의 면모가 일신되었다. 승용차의 래왕과 주차까지 용이하니 고금이 조화롭다. 선대의 유지를 받들고져 제족이 미력微力을 다했으니 후손들은 잘 보존하길 바란다. 대완大玩이 기문을 간청懇請하여 불문不文이나 강씨문중의 위선봉사정신爲先奉祀精神에 감읍感泣하여 사양치 못하고 근안기상謹按其狀으로 우右와 여如히 기록하여 숭모선현崇慕先賢의 효심에 보답한다.
西紀 二千年 庚辰 季夏節 晋洲 竹窩 河渭植 謹撰

 

무릉재기武陵齋記

武陵齋記
故丹溪治 南一成許 有碧溪村 舊係館驛 丹溪之水 與嘉會之穎川至 此而合流汭之東 有武陵嶺 其下窈廓可 居山水淸 夷茂林漪竹蔥籠可 愛昔東溪權忠康公 與寒沙姜公稧飮於 此一時名流多 遊衍盤旋 實一奧區也 距今二百年 晉陽姜公 建溥自漣川 南徙玆焉 卜築實通亭先生 淮伯之后 私叔齋文良公 希孟之九世孫也 夫自折甸移于 嶺陬雖緣事機致 然未免背陽之花木 故中微不振至 五世孫永琪 筮仕金相國炳學 榜登第至 司憲府掌令 大闡門欄聞於鄕邦矣 近歲丁亥之春 其門子弟永禧判秀德秀益秀等 相與協議曰 吾姜之土著于 玆已踰六七世矣 子姓繁衍事務 從而多緖 盍建一座齋舍 以爲奉先祀聚 宗族延賓友課 後進之所 俾無臨時 苟簡之端乎 於是僉議吻合 庀材速工就 右窈廓處 不日而成傑 構扁以武陵齋武陵 古贏氓避世之地 後世文人學士形於歌詠 至今以是名齋可見閒曠 幽貞之趣 豈徒然哉 再秀瑛秀二君 訪余於旅次備述事由請有記 以治來許 是誠不可 以已第念諸君 自先父兄 以來積數十年之勩 以有斯齋可謂 克遂先志矣 繼自今愼勿 以爲能事 已畢益思所 以維持彍張 世世肯構 而嗣守之因 又樂善親 仁不忘夫先賢 稧飮之遺風 是善乎 善者也 努力母怠希賢在 是昭陽之巳
良月下澣 永嘉 權道溶 書
檀紀四二八七年 正月初六日

 

무릉재상량문武陵齋上樑文

武陵齋上樑文
述夫肇占基址 而世居宜 有追慕厥祖之舍 時具衣冠 而友遂邦 垂迎接來客之堂 況子姓肄業之不可無方 亦宗族叙睦之必有其所 歲惟在昔晋陽姜公 自漣川而遠移 於碧溪焉卜築 受靈源于通亭先生之顯祖 踐嘉绬爲私淑齋公之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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