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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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유림면 국계리 진주강씨 추원재 追遠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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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2021. 5. 30.

2021.5.9. 함양 유림면 국계리 진주강씨 추원재追遠齋 전경

진주강씨晉州姜氏의 재실齋室 추원재追遠齋는 함양군 유림면 국계리 12(천왕봉로 3264)에 위치하며, 이곳은 해발 139m이고, 위도 35°29'49"N 경도 127°48'24"E이다. 

추원재追遠齋는 진주강씨 박사공파博士公派 금재공琴齋公 이름이 한漢(1454~?)이신 분을 숭모崇慕하는 후손들이 2004년 중건한 재실이다. 금재공琴齋公은 산청군 특리 금탄琴灘에 청금정聴琴亭을 짓고 후학을 가르쳤다. 확계 정옥련, 수헌 권오복, 호음 정사룡 등이 배출되었다.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은 필봉筆峰 아래 특리에 사는 강한姜漢을 일러 강고산姜高山이라 했고 이후 사람들은 그를 강고산姜高山이라 칭했다. 남계서원과 구천서원에서 배향하고 있다.

추원재追遠齋는 국계마을에서 600m 북쪽으로 떨어진 산 아래 외딴곳에 전통한옥으로 세웠는데 규모가 제법 크다. 솟을대문에는 탈원문脫寃門이라 편액했고 본당의 처마 밑에는 추원재追遠齋라 했으며 6개의 기둥에는 주련을 달았다. 대청에는 추원재중건기追遠齋重建記가 걸렸으나 옛 기문은 보이지 않았다. 담장 밖 협문 옆에는 4기의 비석이 군을 이루고 산을 바라보는 곳엔 통훈대부군위현감通訓大夫軍威縣監 진주강공휘이경기적비晉州姜公諱利敬紀蹟碑가 있다.

 

함양 유림면 국계리 진주강씨 추원재追遠齋
솟을대문 탈원문脫寃門 편액

 

2021.5.9. 추원재追遠齋

追遠齋記
祭義曰 思其笑語 思其居處 思其所樂 齊三日 乃見其所爲齊者 欲盡如在之誠 必有齋居之所 烈後乃盖 其致歆之齋 盖家而廟墓 而齋號名 雖殊綏我思成一也 唯我晋姜 自羅麗入本朝 名公巨鄕 碩德鴻儒 在在赫赫 洎我先祖君威公 纘其德望 嵬然節行昭箸 與敵愾功臣 牽怡俱被 河麋之禍 同契同寃 字諱漢 卽琴齋先生時 在齠齔隨母夫人 流咸陽篤學力行 年十六承馹召殿 對快雪考寃成 廟極加嘉賞 卽命白衣 從事接伴 歷宰二縣 大興儒化 闡明斯道 爲世所宗腏享于 院復得曾孫 介庵諱翼 玄孫博約齋 諱渭龍 俱以道學邵隆 爲儒宗師俎豆于 院繼玆以往 非徒軒冕籫縷 袞袞不絶 碩望眞儒 源源相繼 在中崇而炳然 豈非公之未享餘綠屬 後裔而食報 洋洋嘉謨 啓後人而孔影 歟公之幽宅旣卜于 斯公後累世兆域繼 入同麓孫忝奉諱愼友 曾孫習讀諱奎 云孫牧使諱渭老 監正諱渭叟 五世孫校理諱繗 惧旦之公趾羹之孫也 生而承公之訓 以光前烈歿 而公之靈共衛 隧道公之精靈 不以妥乎 噫此字之設爲晩矣 雲仍之茹恨 己多今乃郱立 凡我後裔享而謹 吉蠲之饎效 其如在之誠 居而服裕 後謨善其繼述之職 塗雘乎勤斲之餘 明昭我祖陟降于 斯其背曰 余有後矣 矧此宇琴齋先祖 丁憂廬墓遺址 仰而體廬墓時 追遠之血誠 亦欲啓我千百世 追遠之來孝 故名之曰追遠 敢爲之銘曰 公之德望華山崢嶸 公之節行 藍水澄淸 翼翼斯宇 以安公靈 追遠禋享 雲仍之誠一 此不懈於萬斯齡
崇禎五回 乙巳八月上浣
不肖后孫 駿馨謹銘

추원재기
제의祭義에 가로되 그 소어笑語 생각하고 그 거처居處 생각하며 그 소락所樂을 생각한다 했으니 3일을 재계齋戒하면 그 소위 나타남이라. 재齋라 함은 여재如在의 성誠을 다하고져 함이니 필히 재거齋居하는 곳이 있어서 후예後裔들이 그 치흠致歆하고 재계함을 밝힘이니라 대개 집에는 가묘家墓요. 묘에는 재사라 명칭은 비록 다르나 나의 생각은 하나이니라. 오직 우리 진양강은 신라 고구려로부터 본조本朝에 들어 명공거향名公巨鄕과 석덕홍유碩德鴻儒가 빛나게 이어져서 우리 선조 군위공君威公께서는 그 덕망을 이어서 외연嵬然히 절행이 소저昭箸함인저 적개공신敵愾功臣 견이牽怡가 함께 하미지화河麋之禍¹⁾를 입어 함께 같은 원한寃恨을 맞았도다. 이름은 한漢이니 곧 금재琴齋선생이 초츤齠齔²⁾의 때에 모부인을 따라 함양咸陽에 와서 독학篤學하고 역행力行하여 나이 16에 승일承馹³⁾로 소전召殿에 대하여 아비의 원통함을 눈 녹이듯 풀게 되니 성종成宗께서 극히 가상함을 더하여 그런즉 백의白衣로써 종사접반從事接伴하여 두 고을을 역재歷宰하사 크게 유화儒化를 이루고 사도斯道를 천명하사 그런 세상의 종宗이 되어 서원에 철향腏享하시고 다시 증손 개암介庵을 얻으니 이름은 익翼이요 현손 박약재는 이름이 위용渭龍이니 갖추기를 도학으로서 높혀 유종儒宗의 스승이 되어 서원에 제향되어 모시고 왕석往昔을 이로 이어서 헌면軒冕과 찬루籫縷가 곤곤袞袞히 끊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석망진유가 원원源源히 서로 이어 중망中莽에 있어 병연炳然하니 어찌 공公의 여록餘綠을 미향未享하고 후예에게 위속委屬해서 식보食報토록 하리요. 양양한 가모嘉謨는 후인을 열어서 크게 빛낼 진저 공의 유택이 이미 이곳에 복택卜擇하고 공公의 후예 누세累世 조역兆域이 동록同麓에 이어서 손인 첨봉忝奉의 이름은 신우愼友요 증손 습독習讀의 이름은 규奎이며 현손 목사牧使의 이름은 위노渭老이고 감정監正의 이름은 위수渭叟이며, 5세손 교리校理의 이름은 인繗이다. 구단지공지갱惧旦之公趾羹의 후손이라 생에 공公의 영을 공위共衛하여 도공의 정령을 수隧하여서 타妥하지 아니하니 아! 이 집의 구축함이 늦었음이라 자손들의 여한茹恨이 많더니 이제 병립케 되니 무릇 우리 후예 향하기를 삼가히 길견吉蠲⁴⁾의 희饎⁵⁾로 하니 그 여재의 성을 본받아 거함에 유덕한 후모를 입어 잘 계술의 일을 다해서 도확塗雘⁶⁾하되 근착勤斲⁷⁾하는 나머지 밝게 아조께서 이곳에 척강陟降하심을 밝히니 그 배背⁸⁾가 말하길 나의 뒤에도 있나니라. 하물며 이 집은 금재琴齋 선조께서 정우일丁憂日의 여묘유지廬墓遺址에서 여묘廬墓 때를 몸소 받아 추원하는 혈성 또한 우리들 천백千百세를 부계하고 추원하여 내이來李코저 함이라. 고로 명하기를 추원이라 감히 명하야 말하기를 공의 덕망은 화장산華長山이 쟁영崢嶸하고 공의 절행은 남계수藍溪水가 징청澄淸이라 사우斯宇가 익익翼翼하여서 공의 영을 편히 하니 추원하여 인향禋享하니 자손의 정성 한결같이 불해不懈하여 만년이나 전할 지로다.
숭정 5회째 을사乙巳 8월 상완
불초후손 준형駿馨 삼가히 새기다.

 

【주석】
하미지화河麋之禍¹⁾ : 큰사슴과 사슴들이 한꺼번에 물에 뛰어들어 입게 되는 불행한 일
초츤齠齔²⁾ : 이빨을 가는 7~8세를 지칭함
승일承馹³⁾ : 역에 비치된 말
길견吉蠲⁴⁾ : 결정할 것 견蠲은 결이다.
희饎⁵⁾ : 술과 음식
도확塗雘⁶⁾ : 수은과 유황과의 화합물. 물감을 만들기도 하고 약용으로 씀
근착勤斲⁷⁾ : 부지런히 닦는다는 것.
배背⁸⁾ : 謂後也 又謂死也-뒤를 이르거나 또 죽은 뒤를 이른다.

 

추원재追遠齋 편액
추원재追遠齋 주련

추원재追遠齋 주련 [해문]안동 김가 문정공파 백촌
爲國盡忠大道明 나라 위해 다한 충성 커다란 길 환하고
反誣被禍朝野驚 무고 당해 화를 입어 조야가 놀랐었네.
王后特恩同産赦 왕비의 특별 은혜 형제들이 사면됐고
孝心精筆父寃正 효심의 바른 글은 아비누명 풀었구나.
肯構築齋確儀見 후손의 사당 중건 강한 모범 보였고
永垂蔭德後昆榮 길이 전한 조상의 덕 후손들 번영하리.

 

추원재중건기追遠齋重建記

追遠齋重建記
追遠齋는 菊溪里 華丈山 東麓 公의 墓前에 聚族虔齋의 典堂으로 創立된 齋舍이다. 晉州姜氏 一世博士公 諱啓庸 六世孫 通溪公 諱淮仲次子 贈參判 諱安福九子中 넷째로 諱利敬이니 氣容俊秀하여 鮮朝世祖朝에 進士로 入格輔國衷情을 다하였다. 그러던 중 司僕將南怡와 同契로 國力伸張에 一助하였으나 乙卯(1459)變亂에 逆謀로 몰려 公을 爲始한 二十三名의 忠勳功臣이 凌遲處斬되었다. 또한 三兄五弟가 律文에 부쳐 削奪官職되고 三族이 苛酷한 刑罰을 免치 못하였다. 數年後 成宗元年(1470) 貞熹王后의 親戚으로 公의 同産兄弟는 赦免仕路가 許通되었다. 配淑人居昌愼氏는 悲憤의 恨을 안고 어린 아들 漢을 襁褓에 南으로 咸陽까지 遷流하였다. 이윽고 獨男琴齋公漢이 叡智聰明하여 十餘歲에 經書를 通達하고 筆致 또한 精妙하여 十六歲에 鄕人의 上疏文을 代筆하게 되니 成宗께서 精密한 筆法에 感動하여 乘馹入宮토록 命하였다. 이때 上前에 正跪父寃을 詳白하였다. 上王께서 下命하여 허물을 赦토록 하여 白衣로 接伴使를 거처 司馬榜에 入格掌隷院判決事를 除授하고 知禮高山縣監을 지냈다. 出天孝心으로 士林이 肅宗辛巳(1701)에 龜川書院을 지어 享禮를 올리고 있다. 配位淑人逝去하니 柳林面菊溪里華丈山東麓 子坐原에 安築合窆하였다. 孝子琴齋公은 階下에 廬幕을 짓고 侍墓를 했으니 이곳이 廬墓遺墟址가 된다. 이곳에 齋舍를 創立하여 名曰追遠齋라 하였다. 論語學而篇에 曾子曰愼終追遠이면 民德歸厚矣라는 文章에서 引用하였던 것이니 解컨대 父母의 喪을 愼重히 모시고 祖上의 祭祀에 衷心으로 追慕하면 百姓의 德性이 한결같이 두텁게된다는 뜻이다. 累次에 改修를 하였으나 歲久月深에 風漂兩拍으로 重修가 不可하게 되어 宗論에 붙쳐 重修할 것을 決議하고 推進委員會를 構成하였다. 任員을 選出하고 各小派門中募金責을 選拔 企劃과 同時 奮然히 役事를 强行하게 되었다. 錫星會長이 推進委員長이 되고 宗熙顯松錫善元錫 諸賢이 心血을 기울이고 舊齋를 毁撤하고 菊溪里十二番地 二百六十坪과 十二番地의 一號 二百三十二坪 都合 四百九十二坪을 確保하고 本齋  二十三坪 三門八坪 管理使 二十三坪을 文化財登錄된 匠人으로하여금 이와같이 威容있고 奐然하게 重建하고 甲申年 和春吉日을 擇하여 竣工告由式을 하였다. 會長兼推進委員長인 錫星族弟가 余에게 請文하거늘 菲才淺學이나 辭讓할 수 없어 이와같이 記한다. 後孫된 자 公의 蘶然한 節行을 본받을 것이며 維持管理를 소홀히 말고 宗會의 보금자리로 삼고 崇祖敦族의 産室로 追遠報本의 典堂이 되게 할 진저.
大韓甲申(2004)和春 成均館典儀 社團法人
儒敎學街院副院長傍孫東琡謹記

 

통훈대부군위현감通訓大夫軍威縣監 진주강공휘이경기적비晉州姜公諱利敬紀蹟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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