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함양 지곡면 남효리 진주강씨 추모재 追慕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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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2021. 6. 3.

2021.5.30. 함양 지곡면 남효리 진주강씨 추모재追慕齋 표시석
2021.5.30. 함양 지곡면 남효리 진주강씨 추모재追慕齋 전경

진주강씨晉州姜氏의 재실齋室 추모재追慕齋는 함양군 지곡면 남효리282(남효중방로 204)에 위치하며, 이곳은 해발 262m이고, 위도 35°36'16"N 경도 127°47'10"E이다. 

추모재追慕齋는 남이南怡장군 사건으로 군위현감軍威縣監을 지낸 강이경姜利敬이 처형되고 강보에 쌓여 함양으로 온 금재琴齋 강한姜漢의 자손인 남탄공濫灘公과 소치공笑癡公 및 아들 오형제로 이어지는 무덤 앞에 지은 재실이다. 

추모재追慕齋의 주소는 남효리이지만 마을과는 떨어진 외딴 산속에 위치한 재실이다. 중앙선도 없는 남효중방로를 따라 산길로 접어들어 가다보면 길가에 안내표석이 있고 산으로 가는 시멘트 포장로가 있어 갈 수 있는 곳이다. 마당에 차를 주차할 공간이 있어 주차를 하고 보니 재실한채와 화장실이 전부이다. 문이 잠겨있어 내부의 편액을 촬영할 수 없었지만 추모재追慕齋 편액과 추모재기追慕齋記 편액이 있는 것을 보았다.

 

함양 남효리 진주강씨 추모재追慕齋

追慕齋記
藍溪之水淸且濺 而馬鞍之送水 十餘里逶迤 作一洞天曰 院堂之谷 其負艮之原 是吾先祖濫灘府君幽堂也 山川淸淑之氣崢嶸乎 翠雲紫霞之間 世所謂好箇靈區 福善家所粧占 儘不誣爲幽堂之傍 有數間編弟 卽笑癡齊 五昆弟居廬 讀禮之所 而子姓之保護 亦數百年耳 墻傾榱朽 風雨不能支 是歲之春 宗議俊發將重修 鞏固之增築 舊址廣其制 而易之以尾正堂 若門間庫舍 凡十餘棟功成 而落揭之曰 追慕齋 族大夫 庸熙信基兩氏 尤有賢勞爲以不肖命叔其事 恭惟 濫灘公 行義隱德 笑癡公 昆季孝行 旣傳之史乘 則豈不綽綽 然有辭哉 我雲仍出入 於堂階之間 常不忘洋洋陟降 如在其上之誠 則祖考歆格 而淵源家學 庶司不墜矣 祖先之所望 於來裔止此來裔之所 奉於祖先 亦當如此 此爲福家餘蔭 此爲齋不徒名經云 遹追有聲 肯構肯堂 嗚呼盍相與勉旃
中元甲 戊寅 四月 日
十二世孫 禧求謹記

추모재기
남계藍溪의 물이 맑게 흐르는데 마안산馬鞍山이 그 물을 10여리나 보내고 한 날등이 뻗어와 원당곡院堂谷을 이뤘으니 곡谷의 간좌원艮坐原은 나의 선조 남탄부군濫灘府君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산천의 맑은 기운이 맺혀있고 푸른 구름 붉은 노을 사이에 항상 쌓여 있으니 세상에서 별다른 영구靈區라 복선가福善家가 장점粧占¹⁾했다고 칭찬했다. 무덤이 있는 곁에 옛날 초집 두어칸이 있었는데 소치자笑癡子 오형제 분이 시묘 살면서 예禮를 독서하던 집으로 자손들이 보호한지가 수백년이 지났다. 지금에 와서는 담장이 무너지고 기둥이 썩어 비바람에 지탱하기 어렵다. 이해 봄에 종중의논이 한결같이 중수를 옛터에 하고 좀더 공고히 하며 옛 제도를 넓히고 기와와 바꾸며 정당正堂 문간門間 고사庫舍까지 무릇 10여동을 세우고 낙성한 날에 추모재追慕齋라고 현판을 걸었다. 족대부族大夫 용희庸熙 신기信基 두 분께서 다른 분들보다 더욱 힘쓰고 수고했으며 불초에게 그 사실을 서술하라고 명령했다. 공손히 생각하건대 남탄공濫灘公이 의롭게 행한 숨은 덕과 소치공笑癡公 형제의 효행은 이미 사승史乘²⁾에 기록되었은 즉 어찌 후세에 말이 없겠는가. 우리 후손이 이 재실에 들어 온 자 항상 선조의 영靈이 크고 넓게 오르내리시며 곁에 계신 듯 정성을 다한다면 조상께서 반드시 흠향歆饗하실 것이요. 근본이 되는 것과 집안의 학문도 전해 질 것이다. 선조先祖가 자손에게 바라는 바는 여기에 있고 자손이 선조를 받드는 것도 마땅이 같이 하여야 복福 있는 가문에 조상의 덕으로 자손들이 복福 받을 것이다. 
이 추모재追慕齋 이름이 어찌 헛되겠는가. 경經에 이르되 “의지하고 따르는 소리가 있고 조상의 유업을 계승한다”고 했으니 서로서로 힘쓸 지어다.
무인戊寅(1938) 사월 어느날
12세손 희구禧求 삼가 짓다.

【주석】
장점粧占¹⁾ : 어기서는 재실을 짓기에 알맞은 장소
사승史乘²⁾ :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책

 

추모재追慕齋 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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