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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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휴천면 문정리 진주강씨 화한정 華漢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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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2021. 6. 12.

21.5.30. 휴천면 문정리 진주강씨 화한정華漢亭


화한정華漢亭은 진주강씨晉州姜氏의 정자亭子로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199에 위치하며, 이곳은 해발 190m 높이이고 위도 35°25'55"N 경도 127°44'02"E이다. 

화한정華漢亭은 은열공殷烈公 민첨民瞻의 28세손으로 화산공華山公 주룡周龍과 한계공漢溪公 주백周伯 형제가 노닐던 조은대釣隱臺 근처에 한계공漢溪公의 아들 현종玹鍾이 짓고자 했으나 자리가 마땅치 않아 활쏘는 과녁 거리 정도 위쪽에 땅을 구입해 지은 정자이다.

화한정華漢亭은 남쪽을 바라보게 지었고 아래에는 임천이 거친 소리를 내며 흘러간다. 처마밑에는 화한정華漢亭이라 현판했고 기둥는 주련이 없으며 정자 안에는 화한정기華漢亭記 근차판상운謹次坂上韻 화한정원운華漢亭原韻 근차謹次 등의 여러 편액이 걸려 있다.

 

화한정華漢亭 편액

原韻 姜周龍
自分疎顔不合時 스스로 나눠져 성근 얼굴 불합할 때에 
蹉跎志節亦無奇 시기를 놓쳐 지조와 절개 역시 특이함이 없음이라.
歸歟岩穴春雲斷 돌아간 바위굴에 봄 구름 끊어지니
老矣滄江白髮垂 늙었도다 창강이 백발을 드리우네
鷗若尋盟隨近岸 갈매기는 약속 찾아 언덕 가까이 따르고
魚能得計泳中坻 물고기는 능히 빈틈없는 꾀 얻으니 모래톱에 헤엄치네
玆坮不獨吾家物 이 대坮는 유독唯獨 내 집 물건 아닌데
付與遊人共酒巵 노는 사람에게 전해 주며 술잔을 같이하네.

次韻 姜周伯
癖於魚鳥瀨於時
托跡孤坮境亦奇
月笠蛾蛾頭上載
風絲裊裊手中垂
桃源避世非無路
葭露懷人宛在坻
一曲滄江情未了
華山塤唱復傾巵 

 

화한정기華漢亭記


華漢亭記
頭流之北華山之南有水出焉 曰嚴江此吾鄕之最大源流也 前江而村者無慮十數 而惟文獻里爲著者 世傳鄭文獻公 與金濯纓過此而稱之 曰前臨大川 後有陟三峯 君子可居之地 故肖余聞 華山姜公周龍生長 是里氣宇軒昻篤於自守 未嘗屈撓於勢威 性又慈善窮春賑穀 多活坊曲之飢民可知 爲山南之偉人 而江邊有一大峭岩屹 若中流之低柱 是又公之釣隱臺也 窃惟公起岩穴 而附於靑雲 始以忠勳府都事 晩陞樞院階至三品 不可不謂之顯榮 而乃友脫帽載笠 投笏持竿 迫然有忘世之志何 幾抑炳幾於滄桑之變 而遊心於苕霅之間 歟其季方漢溪公周伯 亦持身雅飾 用心人厚嘗 借人巨貲追焚其券 所謂積陰德 於冥冥之中者 耶每從伯兮遊 於此坮之上 朝往暮歸 有唱斯和 其一聯曰 靑山流水渾忘世 葭露懷人宛在坻 訟其詩不知 其人可乎 昔章泉趙昌甫兄弟 俱隱於王山 蒼顔華髮 相從於泉石之間 當時皆謂人間之至樂 何其異相符也 忽忽二公之宰樹己拱 而釣臺之刻尙無恙 漢溪公之子玹鍾 謀欲樹亭於臺 側而以地勢之不便 宣齎意未就者久矣 今年夏胥宇於距坮 一帿之地 購田一稜經始 二間覆之以瓦繚之以檻 前日之荒原僻塢 突然改觀因摭 二公之號 而名之以華漢亭 使再從孫東哲 乞余文爲記 余有不有二公之標榜 是坮坮何以自高不 有孝嗣之若心 述先何以得是亭 然不有二公慈善仁厚之實 雖有是亭 而人安所稱哉 盖人與物之相須 名與實之相因 有如此者 噫凡登眺是亭 獨不有懲創於心者乎 其或兄弟乖戾 不相和睦者 可以知愧貪榮嗜利 不知恬退者 可以知戒 爲人子孫 而不念祖先者 亦可以知惧 則其有椑 於頹俗顧何如也 若其岩巒之瓌奇 雲霞之縹緲具眼者 自當評品 余不必贅論 惟書此而歸之
歲丁亥 流火節 下浣
晉康 河琪鉉 記

화한정기
두류산頭流山의 북쪽이요 화장산華藏山의 남쪽에 나오는 물이 있어 이르되 엄천강嚴川江이고 우리 고을에서 가장 큰 원류源流이다. 강가에는 마을이 무려 10여개 인데 오직 문헌리文獻里만이 두드러진 것은 세상에 전하기를 문헌공文獻公 정여창鄭汝昌 선생과 탁영濯纓 김일손金逸孫 선생께서 이곳을 지나시며 가리켜 말하기를 “앞에는 큰 내가 임하고 뒤에는 오를만한 세 봉우리가 솟았으니 군자君子가 가히 살만한 곳이다.”고 했기 때문이다.
내가 듣기로는 화장산華藏山은 강공姜公 주룡周龍¹⁾이 태어나 자랐으니 마을의 기운이 집집(宇軒)마다 밝고 돈독하여 스스로를 지켰으며 기세와 위엄에 굴복한 적이 없으며 성품 또한 자애롭고 선하여 춘궁기春窮期에 곡식을 풀어 방방곡곡 굶주린 사람을 구원함이 많았으니 가히 산 남쪽의 위인偉人이었음을 알 수 있다. 강변에 크고 높은 바위가 치솟아 마치 물 가운데 버티어 선 기둥 같은 이것 또한 공의 조은대釣隱臺 이다.
오직 공은 바위굴에서 일어서니 벼슬에 붙어 충훈부도사忠勳府都事를 시작으로 만년에는 중추원(中樞院)의 품계 3품에 이르니 가히 영예로운 지위에 올랐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도리어 관모冠帽를 벗고 삿갓을 쓰며 홀笏을 내던지시고 낚싯대를 드는 것으로 벗을 삼아 세상을 잊는 뜻에 가까워졌으니 어째서인가. 몇 번이나 억제하고 뽕밭이 바다로 바뀌는 변고를 살펴 초삽苕霅²⁾에 마음을 두었음이다.
그 동생 한계공漢溪公 주백周伯³⁾ 역시 몸가짐이 맑고 마음 씀이 어질고 온후했다. 일찍이 사람들에게 큰 재물을 빌려 주고도 그 문서를 불태워버렸으니 이른바 음덕을 남이 모르는 가운데 쌓았다고 할 것이다. 형을 따라 이 대에서 놀던 때에 아침저녁 오가면서 부르고 화답한 한 절구의 시가 있어 가로되
靑山流水渾忘世 푸른 산과 흐르는 물에 세상을 모두 잊고
葭露懷人宛在坻 갈대 이슬 같은 사람을 생각느니 완연히 모래톱에 있니라.
그 시를 외우고 그 사람을 모른다 함이 가하겠는가. 옛날에 장천章泉 조창보趙昌甫 형제가 왕산王山에 은거하여 창안蒼顔과 화발華髮이 서로 물과 돌이 어우러진 경치가 서로 따르니 당시 모두 생각하기를 “인간의 지극한 즐거움은 어찌 세상이 다른데도 이렇게 똑 같은가.”라 했다. 어느덧 두 선생의 무덤가 나무는 아름드리로 자랐는데 조은대釣隱臺 새김은 오히려 변함이 없다.
한계공漢溪公의 아들 현종玹鍾이 대臺 곁에 정자를 세우고자 하였으나 지세가 마땅치 않아 뜻만 품은 채 오랫동안 이루지 못하였다. 금년 여름에 대臺에서 활 과녁의 거리에 밭 한 필지를 사고 집을 짓기 시작하여 두칸을 기와로 덮고 난간을 두르자 예전의 거칠었던 두둑과 후미진 구석은 돌연 경관이 바뀌었다. 두 공公의 호를 따라 이름하기를 화한정華漢亭이라 하고, 재종손再從孫 동철東哲로 하여금 나에게 기문記文을 지어 달라고 청하였다.
내가 생각하니 두 공公을 표방標榜⁴⁾함이 이 대에 있지 아니하니 대가 어떻게 스스로 높아질 수 있으며 선친을 밝히고자 하는 효성스런 아들의 고심苦心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 정자가 있겠는가. 그러나 두 공公의 자선慈善과 인후仁厚한 행적이 없었다면 비록 이 정자가 있다 한들 사람들이 어찌 일컫겠는가. 대개 사람과 사물이 서로 응하고 이름과 실질이 서로 따르는 것이 이와 같나니 슬프다! 무릇 이 정자에 올라 바라보니 혼자서 마음 스스로 경계함이 없겠는가. 혹시라도 형제가 비뚤어져서 서로 화목치 못한 자가 있다면 부끄러움을 알 것이고 영화를 탐하고 이익을 좋아하여 편안히 물러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자는 경계할 바를 알 것이다. 사람의 자손되어 조선祖先을 생각하지 않는 자 역시 두려움을 알 것이니 무너진 풍속에 도움이 된다면 돌아봄이 어떠한가.
바위 봉우리 기이하게 둘렀음과 구름 노을 흐릿함을 분별하는 식견있으면 마땅히 스스로 평가하고 품평할 것이다. 내가 쓸데없이 군더더기를 덧붙일 필요 없이 이와 같이 쓰고 돌아갈 뿐이다.
정해년(1947) 유화절流火節(7월)하순 
진강晉康 하기현(河琪鉉 1880-1967) 짓다

【주석】
주룡周龍¹⁾ : 은열공殷烈公 민첨民瞻의 28세손으로 할아버지는 병래秉來이시고 아버지는 희옥熙玉으로 자는 치우致雨 호는 화산華山이다. 헌종憲宗 갑진생甲辰生(1844)이고 신미辛未(1931) 11월 26일 돌아가셨다. 숙부인 청주 한씨의 아버지는 사학師學이다.
초삽苕霅²⁾ : 두 시내 이름. 당서唐唐 장지화전張志和傳에 “물 위에 둥실 뜬 집을 지어 초계 삽계 사이 오가는 게 원하는 것이라네.[願爲浮家泛宅 往來苕霅間]
주백周伯³⁾ : 주룡周龍의 동생으로 자는 치관致寬이고 호는 한계漢溪이다. 병오丙午(1846)생이고 고종高宗 갑진甲辰(1904)년에 돌아가셨다. 형제간 우애가 독실했다. 배우자는 나주임씨로 아버지는 민상玟相이다.
표방標榜⁴⁾ : 1.어떠한 명목(名目)을 붙여 주의(主義), 주장(主張)을 앞에 내세움.
2.남의 선행(善行)을 칭찬(稱讚)하고 기록(記錄)하여 여러 사람에게 보임.

 

근차판상운謹次坂上韻

華漢亭原韻 화한정 원운 [전문]
臥起玆坮取適時 이 누대에서 기거하기가 적절한 때라 
漢川雲水儘淸奇 한천漢川의 구름과 물은 모두 맑고 기이하네 
嚴陵灘上風絲動 엄능탄嚴陵灘¹⁾ 가에는 바람이 산들산들 부는데 
渭叟磯邊月釣垂 위수渭叟²⁾는 달밤에 낚시터에 낚시를 드리웠네 
閑鶩尋盟回遠岸 한가한 오리와 굳은 약속으로 먼 언덕 돌아오고 
游魚忘樂泳中坻 노니는 물고기는 즐거움 잊고 중지中坻³⁾에서 헤엄치네 
江山不欲三公換 강산은 삼공三公⁴⁾과도 바꾸고 싶지 않아 
欸乃曲終更喚卮 어영차 노래 마치자 다시 술을 따르라 하네 
通政大夫 中樞院議官 華山姜周龍稿 

【주석】
엄능탄嚴陵灘¹⁾ :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은사(隱士) 엄광(嚴光)이 머물렀던 엄릉탄(嚴陵灘)을 말한다. 엄광은 광무제와 어릴 적 친구였는데, 끝내 벼슬을 사양하고 부춘산(富春山)에 은거하였다. 이에 후인들이 그가 낚시질하던 곳을 ‘엄릉탄’이라 하였다. 화한정의 풍광을 여기에 비유한 것이다. 
위수渭叟²⁾ : 강태공. 
중지中坻³⁾ : 물 가운데 모래섬. 겸가(蒹葭)에 “갈대가 창창하니, 흰 이슬이 마르지 않았도다. 이른바 저 사람이, 물가의 한쪽에 있도다. 물결 거슬러 올라가 따르려 하나, 길이 막히고 또 높으며, 물결 따라 내려가 따르려 하나, 완연히 물 가운데 모래섬에 있도다.〔蒹葭凄凄 白露未晞 所謂伊人 在水之湄 遡洄從之 道阻且躋 遡游從之 宛在水中坻〕”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그리운 사람을 사모해 마지않음을 의미한다. 
삼공三公⁴⁾ : 조선시대 정1품 관직인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을 합하여 부르던 칭호. 

 

華漢亭原韻 화한정 원운 - 전문
臥起玆坮取適時 알맞은 때 골라서 이 누대에서 기거하니 
漢川雲水儘淸奇 한천漢川의 구름과 물 모두 맑고 기이하네 
嚴陵灘上風絲動 엄릉탄嚴陵灘 가에는 바람이 산들산들 부는데 
渭叟磯邊月釣垂 위수渭叟는 달밤에 낚시터에 낚시를 드리웠네 
閑鷺尋盟回遠岸 맹약한 한가한 해오라기는 먼 언덕에서 돌아오고 
游魚忘樂泳中坻 즐거움 잊고 노는 물고기는 中坻에서 헤엄치네 
江山不欲三公換 아름다운 강산은 三公과도 바꾸고 싶지 않아 
欸乃曲終更喚卮 어영차 뱃노래 마치자 다시 술을 따르라 하네 
通政大夫 中樞院議官 華山 姜周龍稿 


*嚴陵灘 :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은사(隱士) 엄광(嚴光)이 머물렀던 엄릉탄(嚴陵灘)을 말한다. 엄광은 광무제와 어릴 적 친구였는데, 끝내 벼슬을 사양하고 부춘산(富春山)에 은거하였다. 이에 후인들이 그가 낚시질하던 곳을 ‘엄릉탄’이라 하였다. 화한정의 풍광을 여기에 비유한 것이다. 
*渭叟 : 강태공. 
*中坻 : 물 가운데 모래섬. 겸가(蒹葭)에 “갈대가 창창하니, 흰 이슬이 마르지 않았도다. 이른바 저 사람이, 물가의 한쪽에 있도다. 물결 거슬러 올라가 따르려 하나, 길이 막히고 또 높으며, 물결 따라 내려가 따르려 하나, 완연히 물 가운데 모래섬에 있도다.〔蒹葭凄凄 白露未晞 所謂伊人 在水之湄 遡洄從之 道阻且躋 遡游從之 宛在水中坻〕”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그리운 사람을 사모해 마지않음을 의미한다. 
*三公換 : 강산이 매우 아름다워 존구한 삼공의 벼슬과도 바꾸지 않고 아낀다는 말이다. 송나라 시인 戴食之의 釣臺라는 시에 三公不換此江山 이라는 시구를 응용한 것이다. 
華漢亭次韻 隱於漁釣遯於時 낚시하는 곳에 은둔하며 시대를 피하여 
緩步登坮償絶奇 천천히 누대에 올라 절경을 감상하네 
千重岩壑澄波活 첩첩 岩壑의 맑은 물결 살아있는 듯한데 
三尺竿絲永日垂 세 척 낚시를 긴긴 날 드리우고 있네 
靑山流水渾忘世 청산과 유수에 세상일 모두 잊고 
葭露懷人宛在坻 갈대에 이슬내려 그리운 사람 완연히 모래톱에 있네 
銀鱗游泳桃花浪 은빛 고기 헤엄치고 복사꽃 물에 떠가는데 
穿柳歸來滿引卮 버들 숲 지나 돌아와 가득찬 술잔 당기네 
舍弟 漢溪周伯 謹次 
*葭露 : 위의 中坻 각주 참고.

隱於漁釣遯於時 낚시하며 은둔하고 시대를 피하여 
緩步登坮償絶奇 천천히 누대에 올라 절경을 감상하네 
千重岩壑澄波活 첩첩 암학岩壑의 맑은 물결 살아있는 듯한데 
三尺竿絲永日垂 세 척 낚시를 긴긴 날 드리우네 
靑山流水渾忘世 청산과 유수는 세상일 모두 잊게 하고 
葭露懷人宛在坻 가로葭露¹⁾의 그리운 사람 완연히 모래톱에 있네 
銀鱗游泳桃花浪 은빛 고기 헤엄치고 복사꽃 물에 떠가는데 
穿柳歸來滿引卮 버드나무 지나 돌아오며 술잔 가득 채우네 
舍弟 漢溪周伯 謹次 

【주석】
가로葭露¹⁾ : 위의 中坻 각주 참고. 간절한 그리움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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