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산청군 금서면 특리 진주강씨 청금정 聽琴亭

댓글 1

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2021. 7. 8.

2021.5.19. 산청군 진주강씨 청금정聽琴亭

청금정聽琴亭은 진주강씨晉州姜氏 강한姜漢(1454~?)이 소요하며 제자를 가르치던 정자亭子로 산청군 금서면 특리 979번지에 위치한다. 필봉筆峰 아래 특리特里마을을 가로지르는 금탄琴灘의 상류에 있는데 높이는 해발 136m이고, 위도 35°26'26"N 경도 127°50'38"E이며 특리마을 상류에 있다.

청금정聽琴亭은 연산군의 화禍를 예견한 강한姜漢이 산청으로 내려와 후학을 가르치며 소요한 곳으로, 본관은 진주이고, 자는 종지宗之 이며, 호는 금재琴齋이다. 학행과 예모가 뛰어나고 필법(筆法)이 정묘하여 성종 때 포의布衣로서 사신 접반사에 종사했다. 43세로 연산군 2년(1496) 사마시 증광 진사 3등에 합격했다. 중종 13년(1518) 1월에 사헌부 감찰監察, 3월에 군자감 주부主簿, 판결사判決事를 지냈다. 산청군 필봉산 아래 금탄에서 호를 청금聽琴이라 하고 모재 김안국과 교우하며 후학에 힘써 세인이 강고산姜高山이라고 했으며 그의 문하에서 확계 정옥련, 수헌 권오복, 호음 정사룡 등이 배출되었으며, 글씨를 잘 썼다. 함양 구천서원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童蒙須知≫가 있다.
부친 강이경姜利敬이 군위현감으로 재위하다 남이(南怡)장군과 더불어 화를 입어 강보에 싸인 아들 강한姜漢을 데리고 함양咸陽으로 유배를 왔다.

청금정聽琴亭의 옆에는 청금정의 내력을 담은 비석이 있고 금재강선생유허비琴齋姜先生遺墟碑도 있으며 냇가의 자연석에는 명옥탄鳴玉灘이라 새긴 바위도 있다. 정자에는 주련을 달았고 청금정聽琴亭 편액과 청금정기聽琴亭記, 청금정상량문聽琴亭上樑文,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지은 차운次韻과 13대 후손 강건영姜建永 지은 운韻이 걸려있다.

 

2021.5.19. 산청군 금서면 강한姜漢 의 소요처 명옥탄鳴玉灘

 

금재강선생유허비琴齋姜先生遺墟碑
2021.5. 금서면 특리 진주강씨 청금정聽琴亭
청금정聽琴亭 편액

 

청금정기聽琴亭記


聽琴亭記
山陰縣治之西十里許 有姜高山異哉 山之名也 頭流一麓蟠蜿 而東騖作筆峰 淸秀佳麗 仁者可樂 成廟朝 姜先生諱漢 官止高山 而知燕山稽作 隱居行義 於其中結廬于 琴灘上名 其齋曰琴齋 慕齋金先生 時按本道 先生禮起拜曰 公非安國之友 乃安國之師也 改筆峰爲姜高山 詩曰 高山仰止 取先生官職 而寓仰止之義也 歟於乎 今去先生 四百有餘年 而行路指點 不問可知 爲高山姜先生 盖山之爲物 與天地相爲始終 先生之德 亦可謂與山 始終矣 然此山之 淸風明月 蒼松綠竹 無非 先生嘯詠 盤桓之餘韻 則結構數椽 於舊址尙云晩矣 姜君方熙信民 謁余識之不覺歛衽 而告之曰當時 有感君恩之曲 而至今傳誦者 其將復聴 於此亭乎 先生胄孫錫斗 與族人珍馨 
信華 殫竭心力 以此謂姜氏門內事 歟幹事者 乃盧庠士 泰鉉鄭學士 然時閔斯文 翔鎬也 吾爲執役者姜氏 而所成就者 一路士林之光色云
彊園大荒仲春上浣 河東 鄭承鉉 記

청금정기
산음현山陰縣 서쪽 10리 쯤에 강고산姜高山이 있으니 특이特異하도다. 산의 이름이여! 두류산頭流山 기슭이 구불구불 동쪽으로 내달려 필봉筆峰을 이루었으니 맑고 수려하며 아름답고 고운, 어진 사람이 즐길만 한 곳이다. 성종조成宗朝에 이름이 한漢인 강선생姜先生은 벼슬이 고산졸高山倅이니 연산군燕山君의 화禍를 미리 알고 이 가운데 은거하여 행의行義하면서 금탄琴灘위에 모옥茅屋을 지어 그 재실齋室 이름을 금재琴齋라 했다. 모재慕齋 김선생金先生이 그때 본도本道를 다스렸는데 선생을 찾아와 절하며 말하기를 “공公은 나의 벗이 아니라 나의 선생이다.”라고 하면서 필봉筆峰의 이름을 고쳐 강고산姜高山이라 하였다. 
시경詩經에 말하기를 “고산高山을 첨앙瞻仰한다.”고 하였으니 선생이 벼슬한 고을 이름을 취하여 첨앙瞻仰하는 뜻을 붙인 것인가. 이제 선생의 시대가 400여년이 지났는데도 행인行人들이 지점指點하면서 묻지 않아도 고산高山 강선생姜先生을 알고 있다. 대개 산은 천지로 더불어 서로 그 시작과 끝을 함께하니 선생의 덕德 또한 산과 더불어 시작과 끝을 함께 할 것이다. 그러나 이산의 청풍명월淸風明月과 창송녹죽蒼松綠竹은 선생이 소영嘯詠하며 노닐던 여운餘韻이 아님이 없으니 舊址에 수연數椽의 집을 짓는 것이 때늦은 감이 있다고 하겠다. 강군姜君 방희方熙 신민信民이 나를 찾아와 이를 기록하라 하니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며 고하여 말하기를 당신 감군은感君恩이란 노래가 있어 지금까지 전송傳誦 되니 장차 이 정자에서 다시 들을 수 있겠는가. 선생의 주손胄孫 석두錫斗가 족인族人 진형珍馨 신화信華와 더불어 마음의 힘을 다했으니 이로써 강씨들의 집안 일이라 하겠는가. 일을 주관한 이는 이에 노진사盧進仕 태현泰鉉 정학사鄭學士 연시然時 민사문閔斯文 상호翔鎬이다. 내 이르건대 공역工役을 맡은 것은 강씨지만 성취成就한 것은 일로一路 사림士林의 덕분이라 하겠다.

 

聽琴亭上樑文
蔚然深秀之高山 實維考槃舊址 美哉奐輪之近水 扁以聽琴嘉名 豈不仰思 菀有餘響 恭惟琴齋家先生 系汾陽之玄冑 接晉晝之白衣 治溢絃歌之聲未盡展於素蘊 歸賦琴書之樂更无變於緇塵 玉灘鳴於枕間金慕爺題詠邈矣 㫣石立於臺上柳相公亭銘在玆粤若杖屨之墟 未遑柱甍之構 動草笛於斜日未免芻牧兒遊戱之場 -중략-

崇禎五丙辰暮春者 後學 驪江 閔致亮 謹書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의 시운

聽琴臺次慕齋金先生韻 
臺在 山陰筆峯下 鳴玉灘上 琴齋姜公 漢所命名 而慕齋時 以嶺伯訪 公於此有一絶詩云
頭流山色吟窓裏 두류산 풍경을 창가에서 읊으니
鳴玉灘聲醉枕間 명옥탄 물소리는 베개 사이로 스며든다.
自有林皋娛歲月 숲 우거진 물가에서 세월을 즐기니
更無魂夢到塵寰 속세에 대한 마음은 꿈에도 다시없다.

客醉臥明月 나그네 취하여 누우니 달은 밝고
三更夢自寒 삼경三更의 꿈속은 절로 춥구나.
風輕兼半捲 바람은 가볍게 반쯤 말린 주렴을 통하고 
人散燭挩殘 사람은 촛불처럼 흩어져 씻은 듯 없구나.
世事何時了 세상의 일은 어찌 끝나는지
生涯到處安 한평생 이르는 곳이 안전하구나.
只然春易喜 다만 봄으로 바뀜이 기쁘고
衰謝入朱顔 쇠락해 붉은 안색으로 들어오네
金慕齋

 

13대 후손 강건영姜建永의 시운

 

聽琴亭 청금정


特立高山不晦名 
遺風百世慕先生
手澤猶存花木老 
筆精愈久石顔淸

感君琴曲朝廷遠 
伴使布衣禮節明
多士南州修此契 
更聽今日誦絃聲
十三代孫 建永 謹稿

 

‣ 측기식 7언율시 八庚平聲운 名生淸明聲 

 

聽琴亭記
頭流之山東馳遙遙 爲山陰之筆山 琴灘出其下山高 境邃玉流淸駛 至今土人叫 其山曰姜高山 農歌漁唱尙有感君恩一曲蓋昔琴齋先生姜公自高山解紱歸隱居于 此而後人傳其琴操山之名猶古之士稚也公德器宏深 行義敦篤學旣通傍治王鍾之藝竟使宸衷感悟草頭 木腳刊其寃誣白衣應儐介之命不失禮儀分符二縣造 髦士而養童蒙治敎大行親戚旣沒無意於進取屢辭旌 招及昏朝政亂超然萬物之表而脫於禍網之中遯跡琴 灘琴書自娛齋以琴名聽琴名其臺尙不忘寧陵盛渥 寓懷於琴中感恩之曲所以作也公生一蠧之鄕講道義 於權鄭諸賢慕齋之賢往拜牀下許之以泰之師命名其 所居山水百古之下尙可以使人想見其風猷也歲紀久 而俎豆撤龍門有韻絶之歎鹿洞興草茂之悲何幸風濤 㡭蘚不能蝕聽琴之鑱而遺風餘韻復照人之耳目是其 一晦一顯亦有其時而賢人所過之彩天亦不能終晦之 也後人卽其故址作亭而畏壘之扁其楣曰聽琴昭其舊 也不佞年老窮居聞其事而不能相其役遙爲獻室之成 而頌之曰之亭之顯晦天也斯道之廢興人也天之所廢 人有可以勝天况於之亭之興可知天之有相於斯道也 今居是亭慨然有志於斯道使斯道而復明於斯齋則一 區姜山將有辭於斯世矣
晦堂先生文集 張錫英

琴齋先生墓表
先生諱漢字宗于姜氏系出晉陽世襲簪纓恭穆公蓍 之五世孫也考縣監公死南怡禍先生時未齕隨母愼 夫人遷于咸陽先生長而學行純篤筆法精妙受知于 成廟朝馹召親試因使之白衣從事蓋以其時天朝 使命相續奏對接伴之難其人也先生中弘治丙辰 榜進士補吏職以親老乞養歷典知禮高山二邑而自從 失慈無意仕進且憂時事引疾而歸築室于智異東麓 筆峯之下自號琴齋病叟書史自娛謝絶名利當時名 賢若慕齋金先生安國睡軒權先生五福結爲道義交慕 齋方按本道屛騶襮來訪于齋愛齋下水石之勝爲之名鳴玉灘 而題詩曰 頭流山色吟窓裏 鳴玉灘聲醉枕間 自有林皐娛歲月 更無魂夢到塵寰 嗟賞而去未久 史禍滔天群賢掃地世服先生之高見而爭慕仰之因 號齋後筆峯曰姜高山 而至今傳說焉 墓碣所志亦仕 止梗槪而已嗚乎介庵翼乃先生之孫則其家學之傳 蓋可知矣而宗家連世早孤又經兵燹家藁行狀無復 存者可勝歎哉

巖阿草樹尙精彩
玉節何年過此間
爲愛主翁眞聽在
冷冷餘韻洩塵寰
月淵集卷之四

사업자 정보 표시
| | | 사업자 등록번호 : -- | TEL : --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