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의령군 화정면 덕교리 진주강씨 덕윤재 德潤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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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2021. 7. 28.

2021.7.10. 담장 밖에서 본 덕윤재德潤齋

덕윤재德潤齋는 의령군 화정면 덕교리 816-1(진의로1길 27-8)에 위치하는 진주강씨 박사공파博士公派의 재실이다. 이곳을 고도계는 해발 66m, 위도 35°17'41"N 경도 128°11'28"E로 표시한다. 

 

2021.7.10. 의령군 화정면 덕교리 진주강씨 덕윤재德潤齋 대문 

덕윤재德潤齋는 강정姜汀 강경손姜慶孫 선대 두 분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해 진양강씨 후손이 건립한 재실이다. 후손들이 살고 있어 만나 족보를 보려 했지만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2021.7.10. 의령군 화정면 덕교리 귀후문歸厚門 편액

덕윤재德潤齋의 대문에는 귀후문歸厚門이라 편액했고 본체는 덕윤재德潤齋라 했으며 기둥에는 주련이 걸렸으며 대청마루에는 덕윤재기德潤齋記, 덕윤재량송병서德潤齋樑頌幷序, 덕윤재운德潤齋韻, 공제덕윤재恭題德潤齋, 복이덕윤재판상운병소서伏以德潤齋板上韻並小序, 근차덕윤재운謹次德潤齋韻, 0제덕윤재0題德潤齋와 후손인 쓴 사실기 등의 편액이 걸려 있다.

 

2021.7.10. 덕윤재德潤齋 전경
덕윤재德潤齋 편액
덕윤재德潤齋 주련

德潤齋 주련 [해문] 안동 가문 청음 후손 백촌

煙霞絢爛竹栢蔥倩¹⁾ 안개 •놀 찬란하고 대• 잣나무 파릇파릇 무성하고
窓扇辟月²⁾軒角璇風 창문에 밝은 달 난간 모서리 신선 바람 불어오네.
肯構肯堂子孫職也 선대유업 계승함이 자손들의 직분이라
斯歌斯哭宗族會之 여기서 노래하고 여기서 울면서 친족 모였구나.
凡事於人必有所待 사람에게 모든 일은 반드시 기다릴 바가 있으니
莫言遼邈 回百年光 백년 세월 돌아옴이 아득히 멀다 말하지 말라.

【주석】
총천蔥倩¹⁾ : 초목이 푸르고 무성함 璇風 선궁(仙宮)의 바람을 뜻한다. 선궁은 전설 속의 신선이 사는 곳이다.
벽월辟月²⁾=璧月을 잘못 기록한 듯. 옥같이 둥근 달

 

덕윤재기德潤齋記

德潤齋記
積而發微 而著天地行也 而人之於德尤 有甚焉德 而至於潤身助 其發而著之驗也 由是而推之其及乎 家與夫傳於後者 又可知也 然而德者至微也 必其積之厚 而屋之深常 自顧惜而不輕 以洩於外然後乃可 以固其所本 而出之不窮且 又求諸理 而不背焉者也 宜寧之西 有德橋里 姜氏宅焉 其始奠之世曰 敎授公諱汀 蚤決文科不求進取 其子湖亭公諱慶孫 屢占發解 而不利於省圍 居家敦行盡禮 被薦授慶基 殿令不就 當龍蛇亂傾囷稟 以濟郭忠翼軍餉贊成 鼎巖之捷 旣捷則奉身 而退不自 而爲功其所 積始終如是故 其子孫蒙藉遺蔭 門爛之競 迄十餘世未艾也 往歲乙巳春 相與謀爲齋 而扁曰 德潤蓋取諸 而名追思 其所本也 本之旣在乎 德而德之所本 又在乎 誠誠之積於中 而著乎外者 自不可揜 故大學之傳 必由誠意 而次及於正心修身 潛存黙養於 聲色文物之外 而孚尹旁達於 日用動靜之際 其心無愧怍 而廣大寬平 體常舒泰 而晬而盎昔有不可 以言說諭者 夫是之謂潤 而傳者所以常 意誠之效也 若乃沾沾 以自喜皎皎 以加人未少 有德而便 以爲足者 其淺薄之甚將曰 就枯澁之不暇 又何潤之可言況有 以遺澤而及於 後嗣者哉 傳曰 德厚者流光 觀二公之自處 歛約而知 其德之積於中者厚觀 其後嗣之蕃衍 而知其流之光也 爲公後人者 亦惟深體 此義以思不忘厥德 又進進以德 承之不而負 德潤之扁名 其可乎 歲太皇辛巳追錄 宣武遺勛贈 湖亭公官承旨 而性齋許文憲 石山金尙書二公 爲撰其狀 竭信筆備載 無爾贅陳余獨因 德潤之扁 而推說 如此仍請名 其堂曰聿修 而門曰歸厚 亦德之所宜勉也 來請余記者 姜大重 龍基 昌基 其名
歲黃猿大壯之月 聞韶 金榥記

덕윤재기
쌓이면 발산하고 가늘게 나타나는 것은 천지의 돌아감이다. 사람의 덕德은 이보다 더욱 심함이 있으니 덕이 몸을 빛나게 하는 경지에 이름은 그 발산함을 도와 나타나는 징험이다. 이를 미루어 보면 그 가문에 미치고 후세에 전해짐을 또한 가히 알 것이다. 그러나 덕이라는 것은 지극히 미미하나 반드시 그 두텁게 쌓이고 깊이 감추어 항상 스스로 아끼며 가볍게 밖으로 누설하지 않은 연후에야 이에 가히 그 근본한 바 확고하여 무궁히 나오며 또한 모든 이치를 구하는데 위배되지 않는 것이다. 
의령 서쪽 덕교리德橋里에 강씨들이 살고 있으니 그 처음으로 전거奠居한 선조는 교수공敎授公 이름이 정汀이니 일찍 문과에 올랐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그 아들 호정공湖亭公 이름 경손慶孫은 누차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과거에 오르지 못하고 행실을 돈독히 하고 예를 다하니 천거함을 입어 경기 전참봉이 내렸으나 나가지 않았고 임진란에 곡식을 내어 곽충익장군郭忠翼將軍 군사를 구제救濟하여 정암대첩鼎巖大捷을 도왔다.
싸움에 승리를 거둔 뒤에는 스스로 물러나와 자신의 공을 구하지 않았으니 그 덕을 쌓은 바가 시종 이와 같은 고로 그 자손들이 음덕을 입어 집안이 융성한지 십여세에 이르렀으나 쇠하지 않는다. 
지난 을사년 봄에 서로 협력하여 재실을 짓고 덕윤재德潤齋라 이름하였으니 대개 그 근본한 바를 추모하고자 이름 붙인 것이다. 근본이 이미 덕에 있고 덕의 근본한 바가 또한 성의에 있으며 성의가 마음에 쌓여 밖에 나타나는 것을 스스로 가히 가리지 못하는 고로 대학에 전하기를 반드시 뜻이 정성스러움으로 말미암은 다음에 마음을 바르게하고 몸을 닦는다 하였다. 마음을 침착하고 묵묵히 길러 소리와 색 문물 밖에 옥같이 빛나고 옆으로 사무쳐서 움직이고 그치고 날로 쓰는 즈음에 그 마음이 아무 부끄러움이 없으며 넓고 너그러워 몸이 ㅡ항상 태평하여 윤택함이 넘치는 것이다. 옛부터 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이 윤潤이라 이르나니 전하는 자 말하기를 항상 뜻이 정성스러운 효험이라 하였다. 이에 젖고 젖어 스스로 기쁘고 밝고 깨끗하여 사람에 더해지는 것이니 덕이 있으되 문득 족하다 하면 그 천박함이 심하여 장차 날로마르고 조잡해 지는데 이르리니 또한 어찌 윤택하다 말하리오. 하물며 윤택이 후손에 미침이 있겠는가. 전傳에 이르기를 덕이 두터운 자 빛남이 흐른다 하였으니 두 어른의 근신으로 자처함을 보니 그 덕이 두텁게 가슴속에 쌓인 것을 알겠으며 그 후손들의 번성함을 보니 그 빛이 흐름을 알겠다. 공의 후손된 자 또한 오직 이 뜻을 깊이 본받아 그 덕을 잃지 않을 것을 생각하고 다시 끊임없이 덕을 이어가서 덕윤재德潤齋 이름을 저버리지 않음이 그 옳을 진저 태황 신사보에 공을 세우고 빠진 분들이 추록되어 호정공湖亭公에게 승지承旨가 추증追贈되고 성재 허문헌 석산 김상서 두 분이 행장과 묘비문을 지어 덕망있는 분들이 빠짐없이 기록해 두었으니 덧붙여 할 말이 없고 내 오직 덕윤재德潤齋의 재호로 인하여 이와 같이 기림을 말하고 인하여 그 당堂을 율수당律修堂, 문을 귀후문歸厚門이라 이름하노니 또한 덕을 마땅히 힘쓰게 하는 바다. 나한테 와서 기문을 청하는 자는 강대중姜大重 용기龍基 창기昌基 그 사람들이다.
1964년 2월 문소 김황金榥 짓다.

 

덕윤재량송병서德潤齋樑頌幷序
근차덕윤재운謹次德潤齋韻
복이덕윤재판상운병소서伏以德潤齋板上韻並小序
근차덕윤재운謹次德潤齋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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