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합천군 대양면 아천리 진주강씨 동호정 東湖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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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경남의 진주강씨 누정재

2021. 8. 28.

2021.8.20 합천 대양면 아천리 진주강씨 동호정東湖亭
2021.8.20. 진주강씨 동호정東湖亭 대문
2021.8.20. 진주강씨 동호정東湖亭 모습

동호정東湖亭은 합천군 대양면 아천리 152(아천길 156-7)번지에 위치하는데 아천마을과 조금 떨어진 산속이며, 고도계는 높이 88m, 위도 35°32'15"N 경도 128°11'05"E를 가리킨다.
동호정東湖亭은 은열공殷烈公 민첨民瞻의 20세손 시랑공侍郞公 강휘준姜徽俊이 입향한 곳으로 할아버지는 강익문姜翼文이고 아버지는 강대적姜大適이다.

동호정東湖亭 입구에는 300여년된 회화나무 노거수가 위치하고 대문채에는 편액이 없고 본당의 중앙과 오른쪽 처마 밑에는 동호정東湖亭이란 편액을 달았으며, 왼쪽에는 화수헌花樹軒이라는 편액을 달았다. 
기둥에는 주련을 걸었고, 건물의 우측에 두 개의 방을 만들고 우측 방의 문미에는 아호정사鵝湖精舍라 편액하고 좌측 방에는 경모당景慕堂이라 했으며, 대청의 대들보에는 경모당기景慕堂記, 모한재기慕寒齋記가 있다. 또한 대청에는 동호정기東湖亭記와 동호정상량문東湖亭上樑文, 동호정운東湖亭韻, 기제동호정寄題東湖亭, 십이의十二宜 등의 편액이 걸려 있다.

2021.8.20. 진주강씨 동호정東湖亭 전경
동호정東湖亭
진주강씨 동호정東湖亭 주련

주련 [안동 청음 후손 백촌 국역]
昭揭三綱扶植 밝게 내건 삼강윤리 널리 알리어
永垂萬古瞻仰 오랜 세월 영원히 우러러보며
遙想生芻如玉 조촐한 예물 차려 조상을 생각하고
可勉敎經勝金 글 가르침에 힘을 쓰면 황금보다 낫다네.

 

【주석】
昭揭 밝게 내걸음. 밝게 드러남
三綱 유교에서 말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 세 가지 벼리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
扶植 재배하다 . 보살피며 인재를 기름. 일으켜 세움
永垂 길이 전함. 영원히 전함
永垂不朽  천추에 길이 빛남
嘉訓永垂 아름다운 가르침은 영원히 전해질
萬古 오랜 세월을 통해 변함이나 유례가 없음. =千古
瞻仰=瞻仰 우러러 바라봄. 우러르고 사모함 =仰望.仰慕
遙想 회상하다 . 추억하다 그냥 ‘멀리 ~ 하리라’ 멀리 떨어진 곳의 상황을 상상한다.’는 뜻. 요억(遙憶), 면상(緬想), 면억(緬憶)
生芻如玉 조상숭모의 정신. 제향을 차림
生芻 芻=<꼴 추>말리지 않은 풀. 후한(後漢)의 서치(徐穉)는 자가 유자(孺子)로 남주(南州)의 고사(高士)라 일컬어졌는데, 매우 가난하여 곽임종(郭林宗)의 어머니 상(喪)에 조문하러 가서 풀 한 다발을 집 앞에 두고 상주(喪主)를 보지 않은 채 갔다 한다.=조문 《後漢書 卷53 徐穉列傳》
① 변변치 못한 예물(禮物)=조촐한 제물(祭物)을 비유하는 말. 『시경(詩經)』 소아(小雅) 「백구(白駒)」의 “새하얀 흰 망아지 깊은 골짜기에 있는데, 싱싱한 꼴 먹이는 저 주인 백옥과 같네[皎皎白駒 在彼空谷 生芻一束 其人如玉].”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현인을 사모하는 것
可勉 힘을 씀
힘써서 바른 것을 향하는 것이 옳다 可勉向正 <법구경>
敎經 경서를 가르침. 經= 글 경 五經 유학의 기본이 되는 다섯 가지 경서 <역경〉·〈서경〉·〈시경〉·〈예기〉·〈춘추
勝金 황금보다 훨씬 나음
자식을 가르침은 금영보다 나았네 / 敎子勝金籝금영(金籝)은 한(漢) 나라 때 경학자(經學者)인 위현(韋賢)이 네 아들을 두어 모두 훌륭하게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막내아들 현성(玄成)은 특히 명경(明經)으로 벼슬이 승상에 이르렀으므로, 당시 추로(鄒魯)의 속담에 “바구니에 가득한 황금을 자식에게 남겨주는 것이 한 경서를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遺子黃金滿籯 不如一經〕”라고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자식을 잘 가르쳤음을 의미한다.

 

아호정사鵝湖精舍 편액
화수헌花樹軒

 

2021.8.20. 경모당기景慕堂記
모한재기慕寒齋記

慕寒齋記
惟我外先祖姜寒沙先生當廢朝上全恩疏。又伸救鄭文簡。謫淮陽七年。仁廟甲戌。以玉堂力爭元宗祔廟。晩而歸寒沙靜窩。敎四方學者。葢其始終大節。與文簡先生略符。而咺赫差讓焉爾。先生歿後二百二十有餘年而文集出。又幾年而年譜成。嗚乎其晩矣。今所謂慕寒齋者。乃在於泰巖山下鵝湖之洞。距先生林北舊閭爲五里。於是乎讀先生之書。講先生之道。望先生之居。而所以想像寓慕者。蔑不至矣。嘗聞人事之顯晦有時。以先生之德之行。沈晦於數百年之久者時也。今而次第以顯者亦時也。然而尙有未盡顯者。先生道德。合有貤爵贈諡之典。而尙未克擧。豈時未至耶。抑子孫無其人。廢其時而終莫之擧耶。昔我先祖郡事公與李公堂揆,金公廷翊。俱爲先生壻。先生後事。李家間有贊焉。而我與金則無聞焉。葢亦勢有不及焉爾。嗚乎。誰能按天官之故而獻太常之議也耶。是則不能無望於吾四家後孫云。作是齋者先生後孫居鵝湖者。而請吾文者。姜君鳳魯也。
庚子仲秋外裔 全義 李種杞 謹記

 

십이의十二宜

十二宜 12 곳의 아름다움  [안동 청음 후손 백촌 국역]
✤곽도(郭鋾) <1846년(헌종 12)-1919년>

鱉池紅蓮 별지鱉池 연못 붉은 연꽃 
鵝水蒼葭 아수鵝水 물가 푸른 갈대 
芳盖傍雲 방개芳盖의 구름떼
日新觀漲 일신日新 의 장맛물
泰岩樵唱 태암泰岩 나무꾼 노래
正陽漁笛 정양正陽 어부의 피리 소리
坛杏春風 단행坛杏의 봄바람 坛=壇
渭柳朝烟 위류渭柳의 아침 안개
午天槐陰 한낮 시간의 홰나무 그늘
月夕梧影 달뜬 저녁 오동나무 그림자
大道輪蹄 큰 길의 거마車馬 소리
小墅桑麻 작은 들판의 뽕나무와 삼
甲寅 1914 년

 

 

東湖亭記
陜之爲郡有山林江湖之勝 多先輩藏修之區 世族古家往往占置亭榭 風欞月軒 羅絡相望 輪蹄笻屨之 東西至者 日相尋如有求 衣冠樽俎 相羊歡樂 而忘其歸 風流文采 映于一方傳 以爲盛代勝事直 郡治東十里有庄曰 鵝湖姜氏居之 姜氏名家 有若戇庵寒士父子先生 以淸風直節振于昏朝 寒士之弟鷗州翁之 亦以孝義著有金昆玉李之譽 是則爲星斗於當時 而立懦敦薄於百世者也 及鷗翁之子 侍郞公始卜居于 玆沒而葬于 是子孫世其庄久 而蕃門闌櫛然 迺即所居之東 東臨黃芚之湖 而爲亭曰 東湖 爲奉先聚族之所 茅茨蕭灑 雲水虛淨 可以齊可以賞玩 而怡神也 歲屢易而壤漏 殆不可支遂 合謀于宗 損貲募財 毁舊而規親 拓其址增其制易茅以瓦 而亭始完寔壬子春月也 時山河變遷大邦無家 名門舊閥 莫不崩析蕩越 而惟先業之墜是懼 姜氏能收神於震撼之會 矢志於繼述之謨 鞏已傾之礎 而建重新之凍圖所 以維持先業 而不拔于 永世仰可 以爲東維士大夫之模範 而天心之所以眷于 有邦者未始不自下 而基之也 惟旣孝旣睦以敦 其本育子孫之英 講義理之大端 達經濟之宏略 以待夫家國重恢之運 不徒以山林江湖之勝 風流文采之盛 而謂足以循鄕里之故事 而已則是爲亭也 將突兀於天古 而不直爲一家之私美也 於其索記也 書此以歸之若 其流峙之觀 結構之度 有不暇及焉
歲甲寅淸和節 苞山 郭鋾 記

동호정기
합천군에는 산림과 강호의 명승지에 선배들이 수양하던 구역이 많이 있으니 세족世族과 고가古家가 종종 정자를 두어 바람 부는 난간과 달빛 비치는 추녀가 연이어 서로 바라보인다. 수레를 타거나 지팡이를 짚고 동서東西에서 이르는 사람이 날마다 찾아와서 무엇을 구함이 있는 듯하고 선비와 풍류객이 즐겁게 노닐다가 돌아가기를 잊으니 풍류와 문채文采가 한 지방에 빛나서 성대盛代의 훌륭한 일로 전해진다.
합천읍의 동쪽 10리에 아호鵝湖라는 마을이 있으니 강씨가 살고 있다. 강씨는 이름있는 집안으로 당암戇庵¹⁾ 한사寒士²⁾처럼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선생이니 맑은 풍모와 곧은 절개로 광해조光海朝를 진동시켰다. 한사寒士의 아우 구주옹鷗州翁³⁾ 또한 효행과 의리로 드러나서 “금같은 형이고 옥같은 아우”라는 칭찬이 있었으니 이는 곧 그 당시에는 태산북두처럼 모두가 우러렀고 백세 뒤에는 나약한 사람을 세우고 경박한 사람을 돈독하게 하는 분들이다.
구주공鷗州公의 아들 시랑공侍郞公⁴⁾이 처음 여기에 터를 정하고 죽어서 여기에 안장 되니 자손들이 그 마을에 대대로 살았고 오래됨에 번성하여 문호가 즐비하였다. 일찍이 거처는 동쪽에 나아가 동쪽으로 황강에 임한호수에 정자를 지어 동호정東湖亭이라 하였으니 선조의 제사를 받들고 일족을 모으기 위한 곳으로 삼은 것이다. 띠로 인 지붕이 산뜻하고 깨끗하며 구름과 물이 텅 비고 맑아서 가히 재계할 만하고 가히 완상하여 정신을 즐겁게 할 만하였다. 세월이 여러번 바뀌자 무너지고 비가 새어 거의 지탱할 수 없게 되니 드디어 종중과 함께 모의하여 돈을 내고 재믈을 모아서 옛것을 헐어내고 새 것을 만들었다. 그 터를 넓히고 그 규모를 더하여 띠를 기와로 바꾸어 정자가 비로소 완성되었으니 이는 임자년 봄이었다.
당시에 산하가 변천하여 나라가 망하니 명문의 벌열閥閱도 무너짐이 않음이 없어서 오직 선대의 서업緖業이 실추될까 두려워하였다. 강씨는 천지天地가 경동驚動하는 때에 정신을 수습하고 선업 계승하는 일에 마음을 굳게하여 이미 기울어진 주춧돌을 공고히 하고 기둥을 세워 선대의 사업을 유지하고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바를 도모하였으니 또한 우리나라 사대부의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천심天心이 나라를 돌보는 것이 애초에 아래로부터 기틀이 마련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 오직 효도하고 화목하여 그 근본을 돈독케하여 자손 중의 영재를 교육하고 의리의 대단을 강론하여 경제의 큰 책략에 통달하여 국가가 회복되는 운수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단지 산림과 강호의 승경勝景과 풍류와 문채文采의 성대함을 갖추고 족히 향리의 고사를 따라 능히 근본에 이르렀다면 이 정자는 장차 천고에 우뚝 서게 되어 단지 한 집안의 개인적인 아름다움만 되지 않을 것이다. 기문을 청함에 이를 써서 돌려보내니 강산의 경관과 집의 규모는 미처 언급하지 못함이 있다. 
갑인년(1914) 청화절에 포산 곽도郭鋾⁵⁾가 짓다.

【주석】
당암戇庵¹⁾ : 당암戇庵 강익문姜翼文(戊辰1568~1648)은 진주강씨 은열공 민첨의 18세손으로 강희필(姜姬弼)의 증손이고, 할아버지는 강인수(姜仁壽)이며, 아버지는 판관 강세탁(姜世倬)이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군우君遇이며 호는 당암戇庵이다. 벼슬은 예조좌랑, 헌납·지평, 충원현감, 제용감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아들이 셋이니 대수大遂·대적大適·대연大延이다. 1614년 장남 강대수姜大遂가 사간원에 있으면서 쟁론하다 유배되자 충원현감으로 좌천되었다. 뒤에 광해군의 난정亂政을 항소하다가 9년간 옥살이를 당했는데, 인조반정 뒤 1631년 아들 강대수의 상소로 풀려나 전적이 되었다. 이듬해 다시 제용감정에 임명되었으나, 왕에게 사은하고 곧 전리田里로 돌아가 한가로이 만년을 보냈다.


한사寒士²⁾ : 한사寒士 강대수姜大遂(辛卯1591~1658)는 진주강씨 은열공 민첨의 19세손으로 아버지는 강익문姜翼文(戊辰1568~1648)이다. 벼슬은 호조좌랑, 예조정랑, 병조참의를 역임했고, 초명은 강대진姜大進. 자는 면재勉哉·학안學顔, 호는 춘간春磵·한사寒沙·정와靜窩이며, 합천군 묘산면 관기리에서 탄생했다. 어머니는 합천이씨陜川李氏로 이덕남李德男의 딸이다.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이며, 1614년 광해군이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죽이자 정온鄭蘊이 간언하다가 유배된 일이 발생하자 그해 정온鄭蘊을 구하는 소를 올렸다가 삭직당하고 회양에 10년간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영변부판관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그 뒤 호조좌랑·예조정랑에 올랐다. 다음 해 사헌부 정언·지평·장령을 역임했다. 1637년 부응교를 지내고 1639년 통정대부가 되었으나, 1641년 병을 이유로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 진주에서 살다가 1644년 동부승지 겸 경연참찬관이 되고, 이어 우승지·병조참지·병조참의를 역임하였다. 1651년 전주부윤이 되어 1년 동안 지낸 다음, 관직에서 물러나 학문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석천서재(石泉書齋)를 지었으며, 또 유학자들을 위해 이연서원(伊淵書院)과 덕곡서원(德谷書院)을 지었다. 합천의 도연서원(道淵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한사집(寒沙集)』 7권 3책이 있다.


구주옹鷗州翁³⁾ : 구주鷗州 강대적姜大適(甲午1594~1678)은 진주강씨 은열공 민첨의 19세손으로 자는 학중學仲, 호는 구주鷗洲이며, 아버지는 당암戇庵 강익문姜翼文이고 형은 한사寒士 강대수姜大遂이다. 아들이 여섯이니 숙부인淑夫人 연일정씨에게 휘민徽敏·휘중徽重·휘망徽望이 있고, 언양김씨에게 휘준徽俊·휘걸徽傑·휘급徽伋이 있다. 학행(學行)과 효도로 여러 번 참봉·세마洗馬·사부師傅·찰방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취임하지 않았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적과 싸웠다. 이듬해인 1637년 충효겸전忠孝兼全으로 동부승지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구주집』이 있다.


시랑공侍郞公⁴⁾ : 시랑공侍郞公은 강휘준姜徽俊(丁丑1637~1678)으로 진주강씨 은열공 민첨의 20세손이며, 자는 준숙俊叔. 호는 아호鵝湖와 동간東澗이고 아버지는 구주鷗州 강대적姜大適이다. 증贈 호판의금부총관戶判義禁府摠管이고 장석신張錫藎이 찬한 묘비가 있다. 아들은 다섯으로 필제弼齊·이제以齊·덕제德齊·응제應齊·유제有齊이다.


곽도郭鋾⁵⁾ : 곽도郭鋾는 곽종석郭鍾錫(1846~1919)의 다른 이름이다. 본관은 현풍玄風. 아명은 곽석산郭石山, 경술국치 후에는 곽도郭鋾라고도 하였다. 자는 명원鳴遠, 호는 면우俛宇. 경상도 단성丹城 출신. 아버지는 곽원조郭源兆이다. 
3·1운동 때 137인의 파리장서에서 대표로 추대된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2년형의 옥고를 겪던 중에 옥사 직전에 병보석으로 나왔으나 여독으로 곧 죽었다.
『면우문집俛宇文集』이 있다. 본집이 63책 165권, 속집이 13권, 연보 4권, 승교록 1권, 도합 183권의 영인본이 나와 있다.
죽은 뒤 단성에 이동서당尼東書堂,  거창에 다천서당茶川書堂, 곡성谷城에 산앙재山仰齋가 곽종석을 기념하여 세워졌으며, 1963년에는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동호정운東湖亭韻

東湖亭韻 
곽도郭鋾(1846-1919)
登亭還覺似淵 정자 올라 못 임한 듯 또다시 깨달았고
盥讀遺文復整 손 씻으며 유문 읽고 다시 옷깃 여몄네.
古址因成泉石美 옛터로 인해 산수의 아름다움 이루었고
平湖遙挹水雲 너른 호수 멀리 뜬 물 위 구름 짙었네.
聖朝華衰家傳帖 조선 왕조 흥망이 집에 전한 문서 있고
靜夜書堂客挾 고요한 밤 서당엔 거문고 낀 길손 있네.
責孝課忠無外事 효도 충성 다하고 다른 일은 없으니
莫敎諸子負初 그대들은 처음 마음 저버리지 마시라.
甲寅 三月日 敬題 1914 년 3월 삼가 시를 씀

【국역】 안동 김가 청음 후예 백촌
亭<九靑平聲>평기식 7언 율시
十二侵平聲운 <臨襟深琴心>

[시어 정리]
還覺 다시 깨달음
淵臨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매사를 신중히 처리하는 것. 깊은 못에 임하듯. 조심스럽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임함. “전전긍긍하여 깊은 못에 임하듯 얇은 얼음을 밟듯 한다.[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시경(詩經)》 〈소아(小雅) >
盥讀 손을 씻고 읽음✶ 遺文 선조가 남긴 글
整襟 =整衣 옷매무시를 단정히 함
古址 옛터
泉石美 돌과 샘의 아름다움. 산수의 아름다운 정경 
平湖 평평한 호수. 잔잔한 호수. 넓은 호수
遙挹 멀리 떠 있음
聖朝 훌륭한 임금이 다스리는 조정. 조선 왕조
華衰 호화로움이 부서짐. 榮華와 衰落. 흥망성쇠
家傳帖 집안에 전해지는 문서
挾琴 거문고를 안음
責孝課忠 효도와 충성을 다함. 충성을 다 함.
諸子 여러분
初心 어떤 일을 함에 처음에 가졌던 마음

 

기제동호정寄題東湖亭

암서집 제4권 / 시詩 / 동호정 원운에 차운하여 보내 붙이게 하다
〔寄題東湖亭次原韻〕

大良山水昔窺臨 옛날 대량의 산수 유람할 적에
幾向西風豁我襟 얼마나 서풍에 내 가슴 씻어 내었던가 
黃瀑雪虹空外直 황폭의 눈 무지개는 허공 밖에 곧게 섰고 
碧樓烟雨畫中深 함벽루(涵碧樓) 연기 비는 그림 속에 그윽하네
昏朝名節推姜朴 혼조의 명절은 강과 박을 추대하고  
倻洞神仙有鶴琴 가야산 골짝 신선에게는 학과 거문고가 있구나 
聞道湖亭得新勝 듣건대 동호정이 새 경치를 얻었다니
白鷗應說古人心 백구가 응당 옛사람의 마음을 말해 주리라

 

【주석】
동호정東湖亭 : 경상남도 합천군 대양면 아천리에 있다.
대량大良 : 합천의 옛 이름이다
황폭黃瀑 : 합천 용주면 황계리에 있는 황계폭포黃溪瀑布를 말한다. 높이는 20미터로, 합천 8경 중 제 7경이다.
함벽루涵碧樓 : 합천에 있는 누정 이름이다. 고려 충숙왕忠肅王 때 창건되어 이후 여러 차례 중건되었다. 취적봉吹笛峰 기슭에 위치하여 황강黃江 정양호正陽湖) 바라보는 아름다운 경치로 시인詩人 묵객墨客들의 사랑을 받았다. 뒤 암벽에 새겨진 ‘涵碧樓’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글씨이다.
강(姜) : 강익문姜翼文(1568~1648)으로 자는 군우君遇, 호는 당암戇菴, 본관은 진주이며, 합천陜川 출신이다. 광해군 5년(1613) 계축옥사癸丑獄事 때 관직에서 물러났다. 광해군 6년(1614) 아들 강대수姜大遂가 유배되자 충원현감으로 좌천되었다. 뒤에 광해군의 난정亂政을 항소하다가 그 역시 유배되었는데 아들 강대수의 상소로 풀려난 뒤 고향에서 만년을 보냈다. 저서로는 《당암집》이 있다.
박(朴) : 박소朴紹(1483~1534)로 추정된다. 자는 언주彦胄, 호는 야천冶川, 본관은 반남潘南이며, 합천 출신이다. 이조정랑 박조년(朴兆年)의 아들이다. 김굉필金宏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조광조趙光祖 등 신진사류와 함께 왕도정치王道政治의 구현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훈구파들의 미움을 사서 파직당하고 고향인 합천에 내려가 학문에 전념하였다.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합천의 이연서원伊淵書院, 나주의 반계서원潘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출처]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김홍영 정석태 김보경 (공역)/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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