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합천 용주면 봉기리 진주강씨 덕원정 德源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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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2021. 9. 17.

2021.9.9.용주면 봉기리 진주강씨 덕원정德源亭

합천군 용주면 봉기리 210(봉기길 51-8)에는 진주강씨 진천군파晋川君派 재실齋室인 덕원정德源亭이 있는데, 은열공殷烈公 민첨民瞻의 23세손 몽호공夢湖公 문협文協과 24세손 농계공籠溪公 필도必道를 제례 하는 집이다. 이곳을 고도계는 높이 76m, 위도 35°33'00"N 경도 128°05'07"E를 가리킨다.

 

2021.9.9.용주면 봉기리 진주강씨 덕원정德源亭

덕원정德源亭에 모신 몽호공夢湖公 문협文協의 아버지는 증통정贈通政 우당재공遇堂齋公 두은斗殷으로 은열공의 22세손이며, 아들 문옥文沃, 문협文協, 문백文伯을 두었다. 몽호공夢湖公 문협文協의 아들 농계공籠溪公 필도必道는 아들이 주영공周永公 뿐이다. 기문에 나오는 두석斗錫이라는 분은 찾지를 못했다.

 

2021.9.9.용주면 봉기리 진주강씨 덕원정德源亭


덕원정德源亭은 마을 뒤쪽 산 가장자리에 있는데 요즘은 제례를 올리지 않는 듯 훼손의 정도가 심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덕원정德源亭 편액 외에는 다른 편액이나 기록이 없다. 아래의 덕원정기德源亭記는 『합천누정록陜川樓亭錄』을 옮긴 것이다.

 

덕원정德源亭 편액


德源亭記
江陽治西鳳巢山下 鳳溪之陽有亭 巋然北盖夢湖籠溪 二姜公之丙舍也 後孫斗錫 書致作興本末 於不佞曰 我戇庵寒沙鷗州列祖 以經術文章顯於 昭敬王憲文王之世達 不離道窮 不失義 湖溪二府君 承受家學 早自卓立 有需世之材矣 有淑世之願矣 適丁黨議朋爭之會 含光藏用以屈 爲仲躬稼而繼朝哺 結茅而備風雨 社門讀書遺逸而畢命 今歷世之後 事業固無得以稱 惟其信夭 自守務本 尙德之義 實爲來裔之所 則頃年宗父老相 與齎咨歎息曰 竊覵世之君子 於賢祖棲遯之鄕 壽藏之域 大則置學舍 而尸祀之小 則設墳庵 而寓時思之敬 吾人雖愚不肖 於斯二者寧不可 以圖其一哉 於是就鳳嶽丘墓之下 相地營室 材取於楸柏 役資里丁功不踰時 而告竣牓曰 德源盖取 鳳嶽之原於德山 而實無忘 先德之意 子盍記次其事 以垂示子孫也 不伝謝辭久之乃復曰 人亦孰不有前世德善自夫 道之汚也 盈天盈地 都輪在利 慾膠漆盆中遺本趍末 滔滔覆墜家聲者 前後踵相接 今仁門諸公 乃能留意述先 如此儘可謂 知所務矣 然豈以築臺 榭表前躅 爲能事畢者耶 抑嘗聞之德 是得於天 而人所固有者 然君子不謂其固有 而必修之學問 思辨以廣其知 是進德之術也 孝弟忠信 以敦其行 是據德之事也 苟能知此而實用其力焉 則賢祖承受之正 詮錫類之嘉 謨將不待他求 而得之於斯矣 諸公其勉之哉 是爲記
甲子 淸和節 冶城 宋浚弼 謹撰

덕원정기
합천군의 서쪽 봉소산鳳巢山 아래 봉계鳳溪의 북쪽에 높은 정자가 있으니 이는 대개 몽호夢湖¹⁾ 농계籠溪²⁾ 두 강공姜公의 분암이다. 후손 두석斗錫이 나에게 건립의 본말을 편지로 적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당암戇庵 한사寒沙 구주鷗州 선조는 경술經術³⁾과 문장文章으로 소경왕昭敬王 헌문왕憲文王의 시대에 현달 했는데, 현달 하여도 도에서 떠나지 않고 곤궁하여도 의를 잃지 않았다. 몽호夢湖 농계籠溪 두 부군께서 가학을 계승하여 일찍부터 우뚝이 서서 세상에 쓰일 재능이 있고 세상을 맑게 할 뜻이 있었다. 마침 붕당의 소요가 어지러운 때를 만나 자신의 광채를 감추고 몸을 굽혀서 몸소 농사지어 조석을 잇고 띠집을 지어 풍우를 막아 문을 닫고 독서하여 생애를 마쳤습니다. 
지금 세대가 오래 지난 후에 실로 일컬을 만한 사업이 없으나 오직 천명을 믿고서 스스로 지키며 근본에 힘쓰고 덕을 숭상하는 의는 실로 후손의 본보기가 된다. 
앞서 종중의 어른들이 서로 탄식하여 말씀하시기를 “가만히 보니 세상의 군자가 어진 조상이 기거하던 고을과 묘소가 있는 곳에 크게는 학사學舍를 세워서 제향을 받들고 작게는 분암墳庵을 지어서 때때로 생각하는 공경을 깃들이는데, 우리들이 비록 어리석고 불초하나 이 두 가지 일에 어찌 그 한 가지를 도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했습니다. 이에 봉소산鳳巢山 묘소 아래 터를 살펴 재실을 지었는데 목재는 묘소 주위의 나무를 취하고 일꾼은 마을의 장정을 써서 한철이 지나지 않아 끝나게 되었다. 집의 이름은 덕원정德源亭이라 했으니 대개 봉소산 덕산에서 근원하여 실로 선조의 덕을 잊을 수 없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그대는 어찌 그 일을 기록하여 자손에게 드리워 보이지 않을 것인가. 나는 사양하기를 오래 하다가 곧 다음과 같이 회답하여 말했다. 사람이 또한 누구인들 전대의 덕이 선한 이가 없겠는가. 도가 타락함으로부터 천지에 가득한 것이 모두 이익과 탐욕에 있어서 근본을 버리고 말단으로 달림이 세태가 되어 가문의 명성을 전복 실추하는 이가 전후로 이어지는데 지금 그대 문중의 여러 사람이 능히 선대의 뜻을 잇기에 뜻을 둠이 이와 같으니 참으로 힘쓸 바를 안다고 말할 만하다. 
그러나 어찌 정자를 지어 전대의 자취를 드러낸 것으로써 할 일을 다 마쳤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일찍이 듣건대 덕은 곧 하늘에서 얻어 사람이 본디부터 가진 것이지만 군자는 본디부터 있다고 여기지 않고 반드시 닦아서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변별하여 그 지혜를 넓히니 이것이 덕을 증진하는 방법이고 효제충신으로 그 행실을 돈독하게 하니, 이것이 덕에 의거하는 일이다. 만일 능히 이것을 알아서 실제로 그 힘을 쓴다면 어진 조상이 이어 받은 바른 법도와 하늘이 대대로 효자를 주는 아름다운 이치를 장차 달리 구할것 없이 여기에서 얻을 것이니 여러 강씨는 힘써야 할 것이다. 이로써 기문을 삼는다.
갑자(1924) 청화절에 야성冶城 송준필宋浚弼이 삼가 찬양하다.

【주석】
몽호夢湖¹⁾ : 몽호夢湖는 은열공殷烈公의 23세손이고 친천군파晋川君派 강위상姜渭祥의 13세손이다. 이름은 문협文協(1734~1794.9.31.)이며, 자는 천필天弼이고, 호는 몽호夢湖이다. 아버지는 두은斗殷으로 증통정贈通政이고 할아버지는 은열공 21세손으로 이름이 택제擇齊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휘망徽望이다. 고조高祖는 구주공鷗州公 강대적姜大適이다.
농계籠溪²⁾ : 은열공의 24세손으로 이름은 필도必道(1761~1841.4.24.)이며, 자는 도일道一, 호는 농계籠溪이다. 아버지가 몽호공夢湖公 문협文協이며, 아들은 주영周永으로 자는 윤지允之이고 호는 야암冶庵이다.
경술經術³⁾ : 경서經書에 관關한 학술學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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