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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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대양면 무곡리 진주강씨 봉계정 鳳溪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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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2021. 9. 20.

2021.8.20. 합천 대양면 무곡리 진주강씨 봉계정鳳溪亭 전경

합천군 대양면 무곡리 272(장지길 199-25)는 진주강씨 은열공殷烈公 민첨民瞻의 16세손 대양면 무곡리 입향조 청계공淸溪公 강덕수姜德壽를 추모하기 위하여 1931년에 건립한 재실 봉계정鳳溪亭이 있다. 이곳을 고도계는 높이 115m, 위도 35°31'08"N 경도 128°12'06"E를 가리킨다.

 

남덕문覽德門

봉계정鳳溪亭에 모신 청계공淸溪公(1514~1608.10.17)은 은열공殷烈公의 16세손이고, 아버지는 진사·참봉을 지낸 희필姬弼이고, 할아버지는 진주에서 합천으로 이거移居한 승전承顓이시며, 증조할아버지는 거호居好이시고, 고조할아버지는 인선仁先이시며, 현조할아버지가 은열공 11세손으로 진천군파晋川君派의 파조이신 위상渭祥이시다. 형은 화재공和齋公 인수仁壽이시다. 아들은 자字 공성公聖으로 세남世南이다.

 

2021.8.20. 합천 대양면 무곡리 진주강씨 봉계정鳳溪亭

봉계정鳳溪亭은 무곡마을 중앙 뒤쪽에 위치하며 을해(1935)년 청송 심두한이 찬한 기문이 있다. 대문에는 남덕문覽德門이라 편액 했고, 본당의 처마 밑에는 봉계정鳳溪亭이라 이름 했으며, 기둥에는 주련을 달았고, 당에 오르는 계단은 우측에 있다. 우측 계단 위에도 봉계정鳳溪亭이란 편액을 걸었으며, 방에는 화수헌花樹軒이라 편액 했고, 문미에는 봉계정이건기鳳溪亭移建記와 근차봉계정운謹次鳳溪亭韻, 봉계정기鳳溪亭記, 봉계정원운鳳溪亭原韻, 봉계정상량문鳳溪亭上樑文, 후손 동영東榮이 지은 근차봉계정운謹次鳳溪亭韻과 은현당隱見堂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봉계정鳳溪亭
봉계정鳳溪亭 주련
봉계정鳳溪亭
화수헌花樹軒
봉계정이건기鳳溪亭移建記
근차봉계정운謹次鳳溪亭韻
봉계정기鳳溪亭記


鳳溪亭記
陜治東十里許 存淸溪山山之下 有鳳谷村 姜氏世居 其先有淸溪公諱德壽 卽和齋公諱仁壽之弟也 當時有金昆玉季之稱 自弱冠抱贄于 退溪愼齋兩先生之門 得聞爲學之方 薰陶而成就之 爲後世所矜式 而瞻仰焉竊嘗 思之朝陽之鳳 登于固雅而人知 其爲希世之瑞也 然苟使循 其名而遺其實徒知 鳳之鳳於鳥 而不知人之鳳於人也 鳳之爲鳳以德人之 有是德於躬者 是亦人中之鳳也 是故人士之賢 於一鄕者 一鄕之鳳也 賢於一國者 一國之鳳也 是知求鳳於鳳者 固未必得 而求鳳於人者 乃爲眞得也 上所謂人中之鳳也 者抑非公之謂 歟公沒三百有餘載 而家世中微 舊日菟裘亦發 而不理後孫泰周甫 慨而功告訖扁 其楣曰鳳溪 從地名而也 公衣履之藏 在鷹峴可數侯 倘其精靈陟降徒倚于 鳳溪泉石之間也 耶後昆之居 是亭者 日講祖先之遺謨 忠信以爲質仁義 以爲法禮樂 以爲文援術 而依行鍊熟之久 其道始凝將 以見成於躬者 是苞之文著於象者 是千仞之翔達而行焉 則固一世之所 鳳而躬而明哲令譽愈見其所 鳳於無窮 戾士之所 以希於鳳者如是焉 而已余於姜氏 有世好不敢 爲他說特以 是勖之云
乙亥 端陽節 靑松 沈斗煥 撰

봉계정기
합천읍 동쪽 10리 쯤에 청계산淸溪山이 있고, 산 아래 봉곡촌鳳谷村이 있으니, 강씨姜氏가 대대로 살고 있다. 그 선조 중에 청계공淸溪公 이름은 덕수德壽가 있으니, 곧 화재공和齋公 이름 인수仁壽의 아우로, 당시에 ‘금 같은 형과 옥 같은 아우’라 일컬음이 있었다. 약관의 나이로 퇴계退溪와 신재愼齋 두 선생의 문하에 제자가 되어 학문하는 방도를 들었는데, 훈도薰陶를 받고 성취하여 후세에 본보기가 되어 우러름을 받았다.
가만히 생각건대 조양朝陽¹⁾의 봉鳳이 『시경』의 대아大雅에 오르자 사람들이 세상에 드문 상서祥瑞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만약 그 이름만 따르고 그 실상을 버린다면 한갓 봉이 새 중에 봉이 되는 것만 알고 사람이 사람 중에 봉이 됨을 알지 못할 것이다. 봉이 봉이 되는 것은 덕 때문이니 사람으로서 이 덕을 몸에 지닌 이는 이 또한 사람 중의 봉이다. 이런 까닭으로 한 고을의 어진 이는 한 고을의 봉이고, 한 나라에서 어진 이는 한 나라의 봉인 것이다. 사람에게 봉을 구하는 이는 참으로 얻게될 줄 알겠으니, 위에서 이른바 사람 중의 봉이라는 것은 아마 공을 두고 이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공이 세상을 떠난지 3백 여년이 지났는데, 가세家勢가 중간에 미약하여 옛날의 은거하던 곳이 또한 무너졌으나 수리하지 못하였다. 후손 태주泰周 보甫²⁾가 전대의 아름다움이 더욱 유실됨을 슬퍼하고 훌륭한 유적이 끝내 민멸 된을 안타까워하여 일족과 논의하고 공인工人을 모아 중건하기를 도모한 지 몇 달 만에 완공하고는 편액을 봉계정鳳溪亭이라 하였으니 이는 지명을 따라 이름한 것이다.
공의 무덤이 응현鷹峴에서 얼마 떨어진 곳에 있으니 혹 그 정령이 봉계鳳溪의 천석泉石 사이를 오르내리고 왕래하는 것인가. 이 정자에 오르는 후손이 날마다 선조의 유모遺謨를 강론하여 충신으로써 바탕을 삼고 인의로써 법을 삼으며, 예악禮樂으로써 꾸밈을 삼아 계승하여 실천한다면 오래도록 단련하고 익힘에 그 도가 비로소 이루어져서 장차 몸에 완성됨을 볼 것이니 이는 찬란한 구포九苞³⁾의 무늬가 형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에 천길의 절벽을 날아 사방으로 두루 행한다면 진실로 한 시대의 사람이 봉으로 여길 것이고 곤궁하여도 밝고 현명하게 처신한다면 아름다운 명예가 더욱 드러나서 무궁한 후세에도 봉으로 여기게 될 것이니 선비가 봉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이와 같을 뿐이다. 
내가 강씨에게 대대로 우호友好가 있으므로 감히 다른 말을 하지 않고 특별히 이것으로 힘쓰게 하는 것이다.
을해(1935)년 단오에 청송靑松 심두환沈斗煥이 짓다.

【주석】
조양朝陽¹⁾ : 아침해가 뜨는 동산으로, 오동나무가 이곳에서 자라 봉황새가 산다고 한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권아卷阿에 “봉황이 우니, 저 높은 산에서 우는 도다. 오동이 자라니, 저 조양에서 자라는 도다.[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 于彼朝陽]”라고 하였는데, 그 주에 “산의 동쪽을 조양이라 한다.”고 하였다. 
보甫²⁾ : 지난날 평교간平交間이나 손아랫사람을 부를 때에 성명姓名 아래에 붙이어 쓰는 말. 이제는 잘 쓰이지 않음.
구포九苞³⁾ : 봉황의 깃에 나타나는 아홉 종류의 빛을 이른다. 구포는 봉황만이 가지는 입, 마음, 귀 등에 갖추어진 아홉 가지 상서로운 특징을 말하는데, 후대에는 봉황의 이칭으로 사용되었다. 그 아홉 가지는 입은 함부로 울지 않고, 마음은 법도에 맞고, 귀는 멀리까지 잘 듣고, 혀는 소리를 잘 내고, 깃 색깔은 문채가 나고, 벼슬은 붉은색이고, 발톱은 날카롭고, 소리는 우렁차고, 배는 아무것이나 먹지 않는 것이다. 

 

봉계정원운鳳溪亭原韻
봉계정상량문鳳溪亭上樑文

鳳溪亭上樑文
先靈陟降洋洋如地水之求無不在後裔繼述 善善有薪火之賴以永傳成事在天不誠無物 竊惟嘉善姜公 殷烈遠裔 晠代逸民 弟淸兄和仰夷惠於百世 躬行力學遊愼退之兩門 設約講春秋爲鄕黨之矜式 遊山踐階級知境界之包羅 雖經燹而乘籍零星 惟保家則箕裘本色 鷹峯假葬遽成昭穆之行 鳳谷相居佇待文明之瑞 每讀祭義不堪惕露愴霜之懷 雖居深山耶無延賓聚族之所 知有構堂之責 筮得隆棟之辭 各視有無曲直俱適材用 不顧緩急少壯弃殫血誠 知所當爲而爲之進一簣於平地 有不期然而然者免三年於道傍 蓋一堂之花樹團圝 非舊時之烟火籬洛 春迷古洞路回桑麻之川 秋霽蒼巖門掩藤蘿之月 昨日漁樵客携碁樽而遨遊 前街埋鬻童擧俎豆而揖讓 願修祖德是貽孫謨 敎以義方萬籝金與一經奚等 務在敦睦百忍字用九世有餘 學如數飛翔欲千仭以上 道在不捨流將萬折必東 短頌載陳 脩梁助擧 
抛梁東 泰巖磅礡揷層空 幾多境界包羅蓋 學自遊山次第通
    西 滿園花樹碧連溪 春來夜晏關何樂 叙得天倫始着題
    南 鷹峯九曲繞澄潭 欲知當日藏修意 櫂後遺歌聽晦庵
    北 動莫如天靜者極 人若常常一此心 四肢百體其勤職
    上 頭上蒼圓誰不仰 進進且從高處望 豁然非復昔時狀
    下 黍稷秋香噓若瀉 酒醴年年祀事成 歆歆祖禰錫其嘏
伏願上梁之後 洞府增淸 階礎永鞏 學能盡性蓋因漉掃應對而有成禮以正家孰如生事葬祭之無憾
歲辛未 重陽節 宜春 南勝惠 撰

봉계정상량문
선조의 선영이 오르고 내림에, 차고 넘침이 마치 지하수를 구하여 존재하지 않음이 없는 것 같으니 후손이 잘 계승함에 능숙하고 능숙하여 신화薪火¹⁾에 의지하여 영원히 전승되는구나. 일을 이룸은 하늘에 달렸으니, 정성이 없이는 사물이 없는 법. 그윽이 생각건대 가선嘉善²⁾ 강공姜公 은열殷烈³⁾의 먼 후손으로, 밝은 시대의 일민逸民⁴⁾이었지. 몸소 실천하고 전력으로 학습하여 김집金集과 이황李滉의 두 문하에서 유학하였네. 향약을 설치하고 『춘추春秋』를 강독하여 시골마을의 긍지와 모범이 되었으며, 산을 유람하고 길을 밟아 산천 경계가 포괄하고 나열함을 알았더라. 비록 병란을 거쳐 가승과 족보가 영성하였더라도 오직 가문을 보존함에서 만물의 뿌리가 타고난 성질을 상실하였구나. 응봉鷹峯에 임시로 장례하여 재빨리 신주 차례를 시행함을 이루었고, 봉곡鳳谷에 서로 거처하여 문명의 상스러움을 우두커니 기다렸더라. 매번 제사의 의리를 강독함에 이슬을 걱정하고 서리에 슬퍼하는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였으며 비록 깊은 산골에 거처하였어도 어찌 빈객을 접대하고 친족을 결집하는 곳이 없었겠는가. 인지하여 전당을 구축할 책임 가졌었고, 점쳐서 용마루를 높일 괘사를 얻었더라. 각자가 있고 없음과 굽음과 바름을 주관하여 모두 재목의 사용을 적절하게 하였고 원만함과 긴급함 및 소년과 장년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아울러 심혈과 정성을 다 하였지. 당연히 해야할 바를 알아서 하며, 평편한 땅에 한 삼태기씩을 진행하였네. 기약하지 않아도 그렇게 됨에 길옆에서의 의견 대립[도방道傍]⁵⁾을 3년에 모면하였구나. 대개 전당에 가득한 친족이 단란하니 옛날 인가의 울타리가 아니로다. 봄에는 옛 골짜기를 헤매니 길은 뽕나무와 삼이 있는 개천으로 되돌아오고, 가을에는 푸른 바위에 비가 개니 문은 등나무와 담쟁이가 얽히어 달을 가리고 있네. 어제 고기 잡고 나무하던 손님은 바둑과 술잔을 휴대하고 즐겁게 유람하고 앞 거리에서 매장과 장사 놀이하던[매육埋鬻]⁶⁾ 아동은 제기를 들고서 절하고 양보하는구나. 조상의 덕성을 수양할 것을 소원함에 바로 후손에게 끼친 계책이라. 대의의 처방으로 교육하니 만 광주리의 금과 경전 하나가 어찌 동등하겠는가. 힘씀은 돈독하고 친목함이 있으니 온갖 어려움을 참고 견뎌 낸다는 글자는 아홉 세대가 사용하여도 남음이 있고, 학문은 운수가 날아오르는 것 같아 천 길을 오르려고 하는구나. 도리는 흐름을 그치지 않음에 존재하니 장차 모든 굽이가 반드시 동쪽으로 향하리라[만절필동萬折必東]⁷⁾ 짧은 송축을 실어 진술하여 대들조를 말아 들어 올림을 돕노라.
대들보를 동쪽으로 던지니, 큰 바위가 가득히 층층의 공중에 꽂혀 있네. 수많은 산천경계가 끝까지 덮고 벌여 있구나. 학문은 산을 유람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차례차례 능통해 지는도다. 
서쪽 정원에 가득한 꽃과 나무가 푸르게 계곡에 이어졌는데, 봄이 오니 밤늦게까지 무슨 즐거움을 상관할까. 천부의 윤리를 얻어 서술하여 비로소 표제에 붙이노라. 
남쪽 매 봉우리의 아홉구비는 맑은 못을 빙 둘렀으니 바로 그날의 은둔하여 수양하던 뜻을 알려고 하노라. 노 젓고 난 후 남은 노래에서 회암晦庵⁸⁾의 노래를 듣노라. 
북쪽 움직임은 하늘만 한 것이 없고 고요함은 태극이라. 사람은 오상五相⁹⁾을 향상적으로 함과 같아 오직 이 한마음이로다. 두 팔과 두 다리와 온갖 신체가 그 직책을 부지런히 하는구나. 
위쪽 머리 위 푸른 하늘은 누가 우러러보지 않겠는가. 나아가고 나아가 또 높은 곳을 따라 바라보노라. 환하게 터졌으니 다시 예전의 형상이 아닐런가. 
아래쪽 기장과 피의 가을 향기가 불어오니 마치 쏟아지는 것 같구나. 술과 단술을 해마다 빚으니 제사 일이 이루어지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음식을 올리니 큰 복을 내리시는 도다. 
엎드려 바라건대 대들보를 올린 후에 신선이 사는 동부洞府¹⁰⁾는 맑음을 더하고 섬돌과 주춧돌이 영원히 공고해 지며 학문은 천성을 능히 극진하게 할 수 있으니 대개 물 뿌리고 청소하며 응접하고 상대함에 기인하여 완성된이 있으라. 예의로써 가정을 바르게 하니 누가 살아서 섬기며 장사지내고 제사 지냄에 유감이 없는 듯 하겠는가.
때는 신미(1931) 중양절 의춘宜春 남승혜南勝惠 짓다.

【주석】
신화薪火¹⁾ : ① 횃불 ② 스승의 학예를 제자에서 제자에게로 계속 전수하다 ③ 관솔불
가선嘉善²⁾ : 가선대부嘉善大夫인 듯. 고려 때 관직인 병부상서의 위계에 행당 하는 조선조 품계로 비정하여 쓴듯하다.
은열殷烈³⁾ : 강민첨姜民瞻(963~1021) 지중추사 병부상서, 추성치리익대공신推誠致理翊戴功臣, 추증 태자태부.
일민逸民⁴⁾ : ①세상에 나오지 아니하고 외딴곳에 파묻혀 지내는 사람 ② 은거자
[도방道傍]⁵⁾ : 길옆에 집짓기. 의견이 많아 얼른 결정하지 못함.
[매육埋鬻]⁶⁾ : 「소학小學」 외편 가언嘉言. 사람을 파묻고 물건을 파는 놀이
[만절필동萬折必東]⁷⁾ : 황하는 아무리 굽이가 많아도 마침내 동쪽으로 흘러간다는 뜻으로, 충신의 절개는 꺾을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회암晦庵⁸⁾ : 주자朱子의 호이다.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에서 따온 것.
三曲君看袈壑船 세 굽이 돌아드니 매어있는 저 나룻배 
不知停櫂幾何年 노질을 멈춘 지가 몇 해나 되는 건지.
桑田海水今如許 세월 흘러 바뀐 모습 도대체 알 길 없다.
泡沫風燈敢自憐 스러지는 인생살이도 가련할 뿐이로고.
오상五相⁹⁾ : 불교의 행자가 성불할 때까지 닦고 익히는 다섯 단계. 통달 보리심通達菩提心, 수보리심修菩提心, 성금강심成金剛心, 증금강심證金剛心, 불신 원만佛身圓滿을 이른다.
동부洞府¹⁰⁾ : 신선神仙이 사는 곳 

 

출처

추봉문집-남승우 南勝愚/추봉문집 국역편찬위원회/경인문화사(2021.05.24)

 

후손 동영東榮이 지은 근차봉계정운謹次鳳溪亭韻
은현당隱見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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