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의령군 지정면 봉곡리 진주강씨 경송재 景松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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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경남의 진주강씨 누정재

2021. 10. 11.

2021.10.3. 의령군 지정면 봉곡리 진주강씨 경송재景松齋

의령군 지정면 봉곡리 865(함의로5길 40-19)에는 진주강씨 박사공博士公의 15세손 곡송당曲松堂 대래大來를 제례祭禮하는 경송재景松齋가 있다. 이곳을 고도계는 높이 50m, 위도 35°22'44"N 경도 128°22'58"E를 가리킨다. 

경송재景松齋의 가계를 살펴보니 진주강씨晋州姜氏 박사공파博士公派는 1세 계용啓庸, 2세 급사공給事公 인문引文, 3세 어사공御史公 사첨師瞻, 4세 대장군大將軍 창부昌富, 5세 재신宰臣 황보璜寶, 6세 여은공旅隱公 손기孫奇, 7세 대사간大司諫 열烈, 8세 절도사節度使 말동末同, 9세 상호군上護軍 윤贇, 10세 육암공六庵公 응규應奎, 11세 어모장군禦侮將軍 몽인夢麟, 12세 이재공 희熺, 13세 부호군副護軍 현승顯昇, 14세 퇴휴당退休堂 헌지獻之, 15세 곡송당曲松堂 대래大來로 계보를 잇고 있다. 

 

2021.10.3. 의령군 지정면 봉곡리 진주강씨 경송재景松齋

경송재景松齋는 마을 위쪽에 위치하는데 재실 앞에 작은 나림지라는 못이 있다. 시멘트블록 담장에 철문으로 대문을 만들었으며 5개의 기둥에는 주련을 달았고 처마밑에는 경송재景松齋라 편액했다. 대청 위에는 경송재기景松齋記가 걸려있다.

 

경송재景松齋 편액
경송재景松齋 주련

仰松扁而景慕 소나무 우러러 재실 편액 경모라 불렀고
望楸原而愴悽 조상 산소 바라보며 슬픈 느낌 젖노라.
陟降先靈洋洋 선조의 신령이 가득하게 오르내리시니
趨蹌諸孫濟濟 많고 많은 여러 손자가 예도(禮度)를 갖추어
勿替引之永世 폐하지 말고 오래도록 이끌어 갈지어다.
국역 : 안동가문 청음후손 백촌

✶어휘 이해
景慕 덕망과 인품 때문에 우러르고 사모함=景仰. 仰慕
경모궁(景慕宮 : 정조의 아버지인 장헌세자의 神位를 모시던 궁)
楸原 楸 오동나무 추 오동나무 언덕= 묘지. 선영. 송추松楸는 선영先塋 묘소 분묘墳墓. 소나무와 오동나무를 묘지 근처에 많이 심음
愴悽 슬픔을 느낌. 서글픔을 느끼다.
陟降 위아래로 오르고 내리는 일을 계속 되풀이함.
先靈 선조의 영혼
洋洋 가득하다. 풍부하다. 끝없이 넓다.
趨蹌 예도를 갖추어 허리를 굽히고 빨리 걸어감
濟濟 사람이 많은 모양. 위엄이 있는 모양
濟濟多士, 많은 인재
勿替 어기지 말지어다. 폐하지 말도록 하라, 어긋나지 않도록 하라.

 

경송재기景松齋記

景松齋記
故成均生員 曲松堂姜公之藏 在宜春之東 鳳谷里 盖後其祖妣之兆 配善山金氏葬 亦在其近岡 其葬己數百載 子姓歲修芬苾甚虔 而惟無齊明之所 歷世爲恨 往年諸姜氏 相與謀曰 吾宗雖貧甚 今歷世入九且戶百餘 則惟患無誠 苟齊幷力 則可不成一齋 耶於是僉議 大同鳩材 募仂經紀闃歲誠也 築四架五楹之屋 於里旁扁曰景松 盖曰因公之號 而寓其景慕之誠也 旣成炳武 具其事請余記之窃 惟慕下之有齋 不有備齋宿滌濯 盖將追慕 於祖先之志 尙風範思所 以不墜無僉 爲永世嗣守也 是齋之扁以景松 其亦有見 此歟姜氏 爲宜春之望族 歷世多名德 公爲吏曹正郎 退休齋公之子也 承襲先範才學兼備 早登上庠君可 以高步雲路 而退休公嘗以仕路多危 戒諸子勿求進取故 不復求大闡 而甘於隱論其子暑 以曲松自盖以此也 盖松之爲材 可以作棟梁之具 而惟卷曲者無所用 則所以爲無求於世 而終老山阿獨保 其貞固晩翠之節也 然則松之爲松固無處 於其曲者也 公有取於斯 其意可謂源矣 盖名利之進衆之所趨 而獨能恬退無求 貞固自守者 豈不誠安分知命之君子 人耶今其後孫之居是齋 而追慕於公者 必當因其扁 而溯求其志尙之大者 恐恐然先範之或墜 而盖勵貞固之志 然後殆爲景松之實 而公之遺敎 可垂於久遠矣 豈但數間之字之寓慕 而己哉 余特有感於姜氏 追遠之誠 足以警世之背本忘先者 而又欲因以廣 其故以是說進之赤龍之
歲元春 花山 權龍鉉 記

경송재기
옛 성균생원成均生員 곡송당曲松堂 강공姜公¹⁾의 무덤이 의춘宜春²⁾의 동쪽 봉곡리鳳谷里에 있는데 조모의 무덤을 뒤로하고 있고, 배우자 선산김씨善山金氏의 무덤도 또한 가까운 뫼뿌리에 있어 그 장사지냄이 이미 수백년이라 자손이 묘사 지냄에 향불 피우기를 심히 정성드리것만 오직 심신을 밝게 할 곳이 없어서 대수代數를 지나며 한이 되었다. 
지난해 여러 강씨가 서로 더불어 꾀하여 가로되 우리 친족이 비록 가난하지만 이제 대수 지나기를 8~9대이고 또한 호수戶數도 백이 넘어 오직 성의 없음이 근심되니 가지런히 힘을 아우른 즉, 가히 한 재실을 이루지 않겠나 하니, 이제야 여럿 의논이 크게 같아서 재물을 모으고 남은 힘을 모아서 해를 겪는 정성을 다스렸다. 4칸 5개 기둥의 집을 마을 곁에다 세워서 현판해 가로되 경송景松이라 함은 공의 호號로 인하여 우러러 사모하는 정성에 붙이려 함이리라. 이미 낙성함에 병무炳武가 그 일을 갖추어서 나에게 기록해주기를 청하였다. 가만히 생각건대 무덤 밑에 재실을 둠은 오직 재계齋戒하여 잠자고 몸을 씻는 것만을 갖추려 함이 아니라 장차 조상의 높은 뜻과 풍도를 추모해서 떨어뜨리지 아니하고 욕됨이 없기를 생각해서 길이 이어 지키려 함이로다. 이 재실의 현판을 경송景松이라 한 것이 이를 나타냄이 있었던가. 강씨姜氏는 의춘宜春에 유명한 씨족이 되는데 역대에 이름과 덕망이 많고 공公은 이조정랑吏曹正郎 퇴휴재공退休齋公의 아들이다. 선대의 규범을 세습世襲하여 재주와 학문이 겸비하였고 일찍기 성균관成均館에 올라 크게 벼슬길에 오를 것 같았는데 퇴휴공退休公이 벼슬길은 위험이 많다하여 여러 아들을 경계하며 나아가지 말게 한 고로 다시는 크게 들어남을 구하지 아니하고서 은둔을 달게여겨 스스로 곡송曲松이라 쓴 것은 이 때문이었으리라. 대개 솔의 재목됨은 가히 기둥과 대들보가 되지만 오직 굽은 것은 소용이 없는 즉, 세상에서 구함이 없게되는 까닭인데, 산중에서 늙음을 마치며 홀로 곧고 굳은 늦은 푸르름의 절개를 보전하였다. 그런즉 솔의 솔 됨은 어느 곳이든 굽게 되는 것이 없다. 공公 여기에 취함이 있으니, 그 뜻은 가히 근원이 있다고 으를만 하다. 대개 명성의 길은 대중이 좇는바인데 홀로 능히 기꺼이 물러서서 구합이 없고 곧고 굳음을 스스로 지킨 자이니 어찌 분수에 편히 하고 명을 아는 군자가 아닌가. 
이제 그 후손이 이 재실에 거하여 공公을 추모하는 자는 마땅히 그 현판으로 인해서 그 높고 큰 뜻을 거슬러 올라가 구하여 조심스럽게 조상의 규범을 혹시나 떨어뜨릴까 곧고 굳은 뜻을 가다듬은 연후라야 자못 경송景松의 실상이 되면서 공公의 끼친 가르침도 가히 영원토록 드리워지리니 어찌 다만 두어칸의 집에만 붙이어 사모할 따름이겠나. 내가 특히 강씨姜氏가 먼 조상을 숭배하는 정성에 감동함이 있으니 족히 세상의 근본을 배반하고 조상을 잊은 자를 깨우쳐서 이로 인해 그 까닭을 넓히고자 하여 이 말로써 나아가게 한다.

【주석】
곡송당曲松堂 강공姜公¹⁾ : 강공姜公의 이름은 대래大來이고 자는 태여泰汝이며, 곡송당曲松堂으로 1648년 9월 19일 생이며, 1717년 4월 4일에 돌아가셨다. 아버지 박사공 14세 퇴휴당退休堂 헌지獻之(1624~1700)로 1687년(숙종 13) 식년式年 사마시司馬試 생원生員 2등에 입격했고, 봉훈랑 공조좌랑, 이조좌랑이다. 어머니는 선산김씨善山金氏(1654∼1714)로 외할아버지는 통덕랑 창昶, 외증조부는 사헌부 감찰 석지錫祉이다. 동생은 益來익래고, 아들은 셋이니 문하文夏, 명하命夏, 배하配夏이다. 의령군 지정면 봉골 조비 묘 같은 언덕 곤좌이며, 읍지에 사적이 실려 있고 지정면 봉곡에 경송재景松齋가 있다.
의춘宜春²⁾ : 경상남도 의령군의 옛 이름.

 

출처 및 참조
의령누정록-의령문화원/태화출판사(1997.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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