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의령군 유곡면 당동리 진주강씨 금양재 錦陽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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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경남의 진주강씨 누정재

2021. 10. 22.

2021.10.9.의령군 유곡면 당동리 진주강씨 금양재錦陽齋 전경

의령군 유곡면 당동리 79-1(마장로3길 25)에는 진주강씨 박사공博士公의 12세손 이재공頣齋公 희熺(1542~1593)를 추모하는 재실 금양재錦陽齋가 있다. 이곳을 고도계는 높이 51m, 위도 35°26'10"N 경도 128°18'47"E를 가리킨다.

 

금양재 대문 명성문明誠門 편액

금양재錦陽齋의 가계를 보니 진주강씨晋州姜氏 박사공파博士公派는 1세 계용啓庸, 2세 급사공給事公 인문引文, 3세 어사공御史公 사첨師瞻, 4세 대장군大將軍 창부昌富, 5세 재신宰臣 황보璜寶, 6세 여은공旅隱公 손기孫奇, 7세 대사간大司諫 열烈, 8세 절도사節度使 말동末同, 9세 상호군上護軍 빈贇, 10세 육암공六庵公 응규應奎, 11세 어모장군禦侮將軍 몽인夢麟(1524~1583), 12세 이재공頣齋公 희熺(1542~1593)로 이어진다.

 

2021.10.9.의령군 유곡면 당동리 진주강씨 금양재錦陽齋

금양재錦陽齋는 마을 입구 공터에서 정면에 위치하며 대문에는 명성문明誠門이라 편액했고, 본 건물의 처마 밑에는 금양재錦陽齋라 이름 했으며 기둥에는 주련을 걸었다. 대청 위에는 금양재기錦陽齋記와 금양재중건기錦陽齋重建記가 있으며, 마당 한 켠에는 금양재 안내문이 서 있다. 

 

금양재錦陽齋 편액

금양재錦陽齋 안내문에는 
진주강씨晋州姜氏 박사공博士公의 12세손이며, 대장군大將軍 창부昌富의 9세손으로 이름은 희熺요 자는 덕장德章이며 호는 이재頣齋니 남명南冥의 문인으로 1542년 임인 6월 6일에 탄생하셨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싸우시다 1593년 계사에 초계 율진栗津에서 순절하시니 나이 52세 였다.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께서 눈물 흘리시며 탄식하여 말하되 “이 형이 한번 죽기로 각오한 마음이 비록 가슴속에 정해 젔으나 이때를 당하여 한갓 죽어서 이익이 없으니 어찌 적을 가볍게 여김이 심하다고만 하랴” 하시고 막사幕士 심대승沈大承에게 명령하여 의령군 유곡면 마장馬場 건좌乾坐에 장사 지냈다. 
나라에 이 일이 알려져 병조정랑에 추증되고 다시 이조참의에 추증 되었다. 아들 경승慶昇이 이 사건을 기록하여 전하였는데 진사 이석기가 행장을 지었으며 의령군지에 기록되었다.
배우자配 증숙부인청송심씨贈淑夫人靑松沈氏
아버지는 현감 혼渾이며 할아버지는 효자로 나라에서 정려문을 세운 안린安麟이고 증조부는 부위 종원宗元이며 외조는 충의공 김해 허만석許萬錫이다. 1544년 갑진 12월 2일 생으로 임진왜란 당시 율진에서 남편이 전사했다는 기별을 받고 음식을 물리쳐 잘 먹지 않고 눈물로 1년을 지내다가 1594년 선조 갑오 11월 11일에 돌아가시어 남편의 묘소에 합장하였다.
아들은 경승慶昇 길승吉昇 현승顯昇 민승敏昇이다.

 

금양재錦陽齋 주련
금양재기錦陽齋記

錦陽齋記
宜春定谷里之唐洞 有齋曰錦陽者 以其在織錦山之陽而名 晋陽姜氏爲其先祖 頣齋公寓慕齋宿而築也 公少有材器嘗與其伯兄觀齋公 師事南冥先生 爲同門諸公所推重 孝友之行 爲一方模楷 及龍蛇島夷之亂 率家僮數十人赴郭忠翼陣 時郭公方拒敵 於鼎津岐江等 處相持曰 久賊有長驅之勢 郭公甚憂之 而軍情莫不恇惧 公激於義 瞻卽親率若干勇士 衝冒賊陣轉戰 於栗津之間 鏖殺賊甚衆 而身中數十創竟 以殞身郭公極爲傷痛 令幕下士收屍返葬 於故山卽馬場之負亥阡也 亂定以郭公狀聞 贈兵曹正郎 後加贈吏曹參議 其事俱載 公私之籍矣 盖當國家搶攘之際 任官守土者 猶多奔鼠圖生 而公以草茅之士 奮身於敵愾之間 視死如歸者 苟非忠義之素 所蓄積何 以有此而其師友 澣磨之益居家 孝友之行本之深 而及於推者亦可驗矣 惟當時之立 節死義者 大則以祠 小則以旌 固多其人 而公則雖蒙褒 贈之曲不得 與於祠旌之列 而墟墓之間 止享子孫之薦 其顯晦之數固 爲可憾 然赤何損於公之爲公哉 夫遺澤遠者 追慕尤深 公之子孫之追慕 於公者不徒爲春秋 霜露之感而必思 公學問之實 忠義之蹟 而慕效焉 師法焉以求 其不墜無忝 然後始可謂嗣守之善 而有光於是齋矣 後孫炳吉余記 甚勤故余特 以是勉之至 於齋之起造 年月面勢間架 有不必著云
金狗之歲暮秋 花山 權龍鉉記

금양재기
의령 정곡리定谷里의 당동唐洞에 재실이 있어 가로되 금양錦陽이라는 것은 직금산織錦山 양지쪽에 있다 해서 이름하였다. 진양강씨晋陽姜氏가 그의 선조 이재공頣齋公을 위하여 붙이어 사모하고 재계齋戒하여 잠자려고 세웠다. 공公은 젊었을 때부터 재목감의 그릇이 있어서 일찍이 맏형 관재공觀齋公과 더불어 남명선생을 사사師事하여 동문同門 여러분의 추앙됨이 있었다. 효우의 행함을 일방의 본보기로 삼았는데 곧 용사도이龍蛇島夷¹⁾의 난亂으로 집안 젊은이 수십인을 거느려서 곽충익郭忠翼 진지에 달려가니 그때에 곽공郭公은 바야흐로 적을 정진鼎津²⁾과 기강岐江나루³⁾ 등에서 항거하였는데 서로 고집하여 가로되 오랫동안 적은 길이 추격할 기세가 있었기에 곽공郭公이 심히 근심하였는데 군사 실정을 볼 때 두려워하지 아니할 수도 없는지라 공公이 의義에 격분하여 보는 즉시로 친히 약간의 용사를 거느리고는 적진에 충돌할 것을 무릅쓰고 싸움을 율진栗津의 사이에서 반전시켜서 적을 무찔러 죽이기를 심히 많았는데 자신도 수십군데에 창으로 맞아서 마침내 운명하니 곽공郭公이 지극히 슬퍼하여서 막하 군사로 하여금 시체를 걷우어서 고향산에 반장하니 곧 마장馬場을 짊어진 해좌亥坐 언덕이다. 난리가 평정함에 곽공郭公이 글을 올려 들리게 함으로써 증직이 병조정랑兵曹正郎인데 뒤에 더하여 증직이 이조참의吏曹參議다. 그 사실이 공사公社의 문서에 함께 실려있다. 대게 국가가 몹시 어수선한 즈음을 당하면 벼슬에 있으면서 땅을 지키는 자는 쥐구멍으로 달려가서 삶을 도모함이 오히려 많은데 공公은 초야의 선비로써 몸을 적진의 사이에 날려서 죽음을 보고도 돌아올 것 같이하는 것은 실로 충의忠義의 바탕이 쌓인바가 아니고서 어찌 이런 일이 있었겠나. 그것은 스승과 벗이 씻어주고 갈아주고 한 더함과 집에 거할 때 효우孝友의 행함이 본래 깊어서 벗에게 추앙된 것을 또한 가히 경험하겠도다. 당시에 절개를 세우고 의義에 죽은 자는 크게는 사당으로써 하고 적게는 정려旌閭으로써 하여 진실로 그런 사람이 많았는데 공公인 즉 증직의 상은 입었지만 외곡되게 사정祠旌의 대열에 더불어 함을 얻지 못하고서 터와 무덤사이에 자손의 드림만 먹고서 그치니 그 나타나거나 어두움의 수가 굳건해 유감되나 그러나 어찌 공의 공평함에 손상되겠나. 대개 남긴 덕택이 먼자는 추모도 더욱 깊어지니 공公의 자손이 공公에게 추모하는 자는 다만 춘추로 서리 이슬의 느낌만 해서는 안되고 바드시 공公의 학문의 실상과 충의의 자취를 생각하여서 사모하고 본받고 스승하여 본받아서 떨어뜨리지 아니하고 더럽힘 없기를 구한 연후라야 비로소 가히 이어 기킴도 잘하고 재실도 빛이 있음을 이르리라. 후손 병길炳吉이 나에게 기록하기를 심히 부지런이 하는 고로 내가 특히 이것으로써 힘쓰게 하였고 재실을 일으켜 지은 년월과 얼굴 형세와 칸수의 규모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드르나게 하지 아니함이 있다고 이르노라.
1962년 늦은 가을에 화산 권용현權龍鉉 짓다.

【주석】
용사도이龍蛇島夷¹⁾ : 임진왜란壬辰倭亂의 다른 이름이다. 용과 뱀의 해를 뜻하는데 즉 임진壬辰을 뜻하고 ‘도이島夷’란 섬나라 오랑캐를 이른다.
정진鼎津²⁾ : 함안에서 의령으로 들어가는 남강에 위치한 정암진鼎岩津을 말한다.
기강岐江나루³⁾ : 의령군 지정면 성산리 81-1번지 일대로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위치에 있었던 나루터이다. 곽재우장군이 의병을 동원해 최초로 이곳에서 왜구 전선戰船을 물려 쳤던 장소이다. 쌍절각과 보덕각이 있다.

 

출처 및 참조
의령누정록-의령문화원/태화출판사(1997.12.27.)

 

금양재중건기錦陽齋重建記

금양재중건기錦陽齋重建記
유곡면柳谷面의 북쪽 직금산織錦山 합수동合壽洞은 선조 이재공頣齋公의 묘소가 있는 곳이요 당동唐洞의 구지舊址에는 예전에 금양재錦陽齋를 창건創建하여 조선祖先을 추모追慕하는 재숙지소齋宿之所을 오늘에 이르렀다. 세월이 오래되어 수차례의 보수에도 불원不遠 붕괴의 우려가 있어 계유년癸酉年 1993년부터 정축년丁丑年 1997년에 이르기까지 중건重建을 위한 종회宗會를 거듭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무인년戊寅年 1998년 가을에 사파四派가 합심협력合心協力하여 중건重建하기로 결의決議하고 자금資金을 모우고 자재資材를 준비準備하여 구재舊齋를 허물고 새로이 터를 닦아 삼가오영三架五楹의 산듯한 재실齋室과 문간門間이 준공竣工 되었다. 특히 재기종원載基宗員의 노고勞苦가 많았으며 뜻한바를 이루었으니 감회感懷가 무량無量하다. 그러나 더욱더 힘쓰야 하는 일은 선조先祖의 충효정신忠孝精神을 이어받고 종족간宗族間에 륜목倫睦하며 농사農事의 여가餘暇에는 부지런히 학문學問을 하는 것이 조상祖上에게 부끄럽지 않는 후손後孫이라 할 것이다. 힘쓰고 힘쓸지어다. 그간의 경과經過를 우右와 같이 기록記錄하여 기문記文으로 삼는다.
西紀二千一年(2001) 辛巳三月 日
12세손十二世孫 병철炳喆 근기謹記(삼가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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