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의령군 봉수면 죽전리 진주강씨 봉양재 鳳陽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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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경남의 진주강씨 누정재

2021. 10. 24.

2021.10.13. 의령군 봉수면 죽전리 봉양재鳳陽齋 전경

의령군 봉수면 죽전리 419(한지13길 1-21)에는 진주강씨晋州姜氏 첨사僉使 강공姜公을 추모하는 봉양재鳳陽齋가 있다. 이곳을 고도계는 높이 84m, 위도 35°28'23"N 경도 128°16'05"E를 가리킨다.

 

2021.10.13. 의령군 봉수면 죽전리 봉양재鳳陽齋

봉양재鳳陽齋의 기문으로는 진주강씨晋州姜氏 어느 문중인지 알 수가 없어 가계를 찾기 힘들다. 

 

2021.10.13. 의령군 봉수면 죽전리 봉양재鳳陽齋 대문

봉양재鳳陽齋는 신현마을 방향으로 죽전리의 끝부분에 위치하며 지파산(544.9m) 자락의 가장자리에 있다. 대문에는 람덕문覽德門이라 편액 했고 본당의 처마 밑에는 봉양재鳳陽齋라 했으며 기둥에는 주련이 없다. 대청 위에는 남승우南勝愚가 찬한 봉양재상량문鳳陽齋上樑文과 남정우南廷瑀가 지은 봉양재기鳳陽齋記가 있으며, 후손 수동壽洞이 지은 봉양재원운鳳陽齋原韻, 함안 조찬제趙穳濟가 지은 차원운次原韻, 봉양재차운鳳陽齋次韻 편액 4개가 걸려 있다. 

 

람덕문覽德門
봉양재鳳陽齋

 

봉양재鳳陽齋 편액
봉양재기鳳陽齋記

鳳陽齋記
墓而有祭古也 而東俗尤致謹 於斯凡先塋所 在闔族同謀 必置祭田 必有齋舍 而雖今綱淪禮壞之日 猶不替焉 先王禮義之敎 浹人肌膚者然也 吾鄕鳳山之石谷 姜氏居焉 其來已久 而數不過二三十家 皆安分勤業 誠先敦族 不失孝友之風矣 歲甲申春 姜君壽洞 會諸族而言曰 吾家自僉使公卜居於斯 今四百餘載 累世塋域 在越谷之原 而尙不立數楹齋舍 歲一奠掃供辦多不潔 又不得齊會致誠 自昔先父兄齎恨者久矣 今吾力雖無餘當傾倒 而經始之僉意何如 寧晉義文蹶然而起曰 此正吾兩人意也 敢不同心共力 在座者皆齊聲 而應曰均是子孫 誠豈有異 雖手執土木之役 願各致力焉 遂相地卜日 而建築之至秋 而訖其制軒敞 而供辦之所 齊宿之室 無不各具井井 而有序矣乃因地 而名之曰鳳陽 三君者後先 而來請記於余余曰 諸公以不多之族 不贍之力 致極乎祭先之節能 爲此鉅大之役者 以其有誠也 誠者可以一衆心 可以齊衆力 可以感神明 一衆心齋衆力而事 豈有不成者乎 感神明則享祀 而神豈有不歆者乎 世之人安居自私 而慢於奉先不爲其所 當爲而諉之曰力不 及若此者皆僞也 然則斯齋也 可以表章而爲警於一世矣 豈專爲姜氏之美 而已乎夫木必根培 而枝乃達水必䟽源 而流乃長姜氏 其將盛大矣乎 其將盛大矣乎 遂忘其耄昏 而爲之記 如此云
歲甲申仲秋 宜春 南廷瑀記

봉양재기
무덤에서 제사 지냄은 옛날인데 우리나라 풍속은 더욱 여기에 정성 들여서 조상 무덤이 있는 곳에는 친족이 함께 꾀하여 반드시 발전을 두고 반드시 재실을 두었는데 비록 요즘의 인륜이 파괴된 날에도 오히려 시들지 아니하였다. 선왕先王이 의義를 피력한 가르침은 사람의 피부에 스며든 것이 그러하였다. 우리 고을 봉산鳳山의 석곡石谷은 강씨姜氏가 살고 있다. 그 내려옴이 오래인데 불과 20~30집이고 또한 검소하게 근근이 살아가나 그러나 모두가 분수에 편히 하고 업에 부지런하며 정성으로써 조상을 섬기고 사랑으로써 친족에게 돈독히 하여 효도와 우애의 바람을 잃지 아니하였다. 
갑신년甲申年 봄에 강군수동姜君壽洞이 여러 친족을 모으고서 말해 가로되 우리 집은 첨사공僉使公으로부터 여기에 살기를 점쳐서 이제는 400여년에 이르렀다. 여러 대의 무덤이 월곡越谷의 언덕에 있는데 아직도 두어 칸의 재실을 세우지 못했으니 묘사 때 공판供辦¹⁾에 불결함이 많고 또한 가지런히 모여서 정성 이름을 얻지 못하니 옛 어른들로부터 한을 쌓은지 오래다. 내 힘이 비록 남음이 없지만 마땅히 재물을 기울여서 일을 시작하려 하니 여러분들의 뜻은 어떤가 하였다. 녕진寧晉 의문義文이 벌떡 일어나며 가로되 이는 정히 우리 두 사람의 뜻이도다. 감히 같은 마음으로 협력하지 아니해서야 되겠나 하니 자리에 있는 자가 일제히 소리내며 응해 가로되 모두가 자손인데 정성이 어찌 다름이 있겠나 비록 손수 토목土木 일을 하더라도 힘을 다하기를 원하였다. 드디어 땅을 서로보고 날을 점쳐서 건축하기를 가을에 이르러서야 마치니 그 제도가 헌걸차게 넓어서 공판供辦하는 곳과 재계하여 잠자는 방이 각각 갖추어져서 질서 정연하지 아니함이 없었다. 곧 땅으로 인해서 이름해 가로되 봉양鳳陽이라 하고 셋이 뒤로 먼저 나와서 나에게 기록을 청하였다. 내가 가로되 여러분은 많지 않은 씨족과 넉넉지 못한 힘으로써 조상제사에 지극함을 이루니 한 여러 마음이 가히 여러 힘을 가지런히 하였고 신명을 감동케 하였다. 여러 마음이 어러 힘을 가지런히 한다면 일이 어찌 이루지 아니함이 있으며 신명을 감동한다면 제사에 신이 어찌 흠향하지 아니하겠나 세상 사람은 자기 사사로움에 안주하여 조상 받드는 데에는 게을리 하여 마땅히 해야할 것은 하지 아니하고서 핑계하며 가로되 힘이 미치지 못한다 하니 이같은 자는 모두 거짓이로다. 그런즉 이 재실은 가히 글로 들어내어서 안 세상에 깨우침이 되니 어찌 오로지 강씨姜氏의 옳음만이 될 따름이겠나. 대개 나무는 반드시 뿌리를 복돋우면 가지가 사무치고 물은 반드시 근원이 깊으면 흐름이 길어지고 강씨姜氏도 장차 성대해지런가 장차 성대해지런가. 드디어 늙음과 어둠을 잊고서 기록하기를 이같다고 이르노라.
1944년 8월에 의춘宜春 남정우南廷瑀 짓다.

【주석】
공판供辦¹⁾ : 행사에 필요한 물품을 보관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장소

 

봉양재상량문鳳陽齋上樑文

鳳陽齋上樑文
祭由霜露春秋知獺豺之報本 道在兄弟妣祖取松竹於斯干 居必苟完 祚將永錫 竊惟僉使姜公 簪纓舊族 文武全材 喬木花殘生値莊陵之孫位 田園荳熟唾着彭澤之折腰 司馬克家詩禮之聲猷濟美 乘龍貳舘賢良之科目聯芳 顧玆鳳樹之陽 伊昔菟裘之所 燹灰歷世班班縣誌之猶微 橋梓同岡纍纍斧堂之追祔 雲仍久替勢自有升浣 氣脉相傳職不離耕讀 蓋重遷而安土 屢致意於構堂 乃家歛而戶收泰山 成於卷石谷回境竊 龜筮協於人謀 奚止庇風歡士顔於廣廈 可容旋馬寬奉禮之大廳 試着花樹增姸 更有烟雲改色 門帶考槃之澗宛聽當日寤歌 經通晝卦之村益究古人心學 傳多長物枕被勝於王氏靑氈 供膽文房雲藤潔於吳門白練 於斯可遊息由 舊不愆忘 都科告功 兒郞騰頌
抛梁東 一祙朝陽闢大東 鳳鳥不來三代遠 吉人何日賦梧桐 
抛梁南 念昔淮流滯召南 山水高風無恙在 漁樵何似萬鍾甘
抛梁西 芝峀蒼蒼日易西 歲暮金丹消息晩 篔簹其奈路無梯
抛梁北 師峯究兀撑辰北 請君回憶刱垂功 羅列星巒皆祖閾
抛梁上 楸原祔祔臨溪上 幽明一理感相通 蘋藻年年神必饗
抛梁下 烟雨迷运坪上下 桑密墻深布𪇂鳴 田家物色參邠雅
伏願上樑之後 巷俗回涥家謨垂遠孝悌忠貞行各盡於 綱三倫五冠昏喪祭禮衣通乎經百曲千
甲申流火節 宜寧 南勝愚 撰

봉양재상량문
제사는 서리와 이슬과 봄과 가을에 연유하니, 수달제사와 승냥이제사¹⁾가 근본에 보답함을 알았고, 도리는 형과 동생과 돌아가신 할머니와 선조에 달려 있으니, 소나무와 대나무를 산골짝 시냇물²⁾에서 선택하였네. 거처는 진실로 완전함을 바라니 행복이 장차 영원히 내릴 것이라. 그윽이 생각건대 첨사강공僉使姜公은 양반[잠영簪纓]의 옛 가문이고 문식과 무략의 온전한 제목이네. 훈구집안[교목喬木]³⁾에 꽃이 지니, 장릉莊陵⁴⁾이 왕위를 양보하는 때에 태어나 만났고, 논밭과 동산에 콩이 익으니 팽택현령彭澤縣令이 허리를 굽힘⁵⁾을 침 뱉으며 바라보노라. 사마司馬로서 가업을 잘 계승하였으니 『시경과 예기』의 명성과 계책을 이어받아 완성하여 잘 지켰고 홍문관과 숭문관[이관貳舘]에 올라 귀하게 되니, 현명하고 선량한 과거 절목이 잇달아서 꽃답구나. 이 봉수면鳳樹面⁶⁾의 북쪽을 돌아보니 저 옛날 토구菟裘⁷⁾가 병란으로 재가 된 곳이라 역대로 선명하고 뚜렷하였으니, 고을의 기록이 부자의 도리[교재橋梓]⁸⁾를 증명하였고 같은 언덕에 얼키고 설키었으니, 분묘[부당斧堂]⁹⁾가 좇아서 합장한 먼 자손[운잉雲仍]¹⁰⁾이로구나. 오래 세력을 교체하였으니 저절로 오르고 잠김이 있었고, 기운이 서로 맥락을 이었으니, 직책을 전승하여 분리시키지 않았구나. 경작하고 독서함은 대개 옮겨감을 신중하게 하고 향토에 안착하는 것이요. 여러 차례 전당을 구축함에 뜻을 다하여 이에 가문을 수렴하고 호구를 수습하였으며 태산이 주먹에서 완성되니 돌 골짜기[석곡石谷]가 경계를 회복하였지. 그윽이 점복이 사람의 계책에 맞으니 어찌 바람을 막는 데 그치겠는가. 선비의 얼굴은 넓고 큰 집에서 환대하니 말돌리기를 허용함에 충분하고 예의를 받드는 대청마루를 넉넉하게 하니 친척들[화수花樹]을 점검하여 살펴보노라. 아름다움을 더하나니 다시 이내와 구름이 색깔을 바꾸고 있고 대문은 은거해서 즐기는[고반考槃] 시내를 두르고 있으니 그 날의 깨어 부르든 노래가 똑똑히 들리는 듯하는데 경전에 능통하여 괘사를 구획하는 마을에서 옛 사람의 심학心學을 더욱 궁구하네. 전승한 많은 여유로운 물건과 베개와 이불은 왕자경王子敬[왕씨王氏]의 푸른 담요¹¹⁾보다 낫고, 제공된 풍부한 서재의 구름같은 등나무는 오문吳門의 흰 베[오문련吳門練]¹²⁾보다 깨끗하네. 이에서 유람하고 휴식할만 하니 예전에 연유하여 망각하는 허물이 없으리라. 재료를 망라하여 공사를 끝내니 아랑위를 올리며 송축하노라.
대들보를 동쪽으로 던진다. 꼴 하나만 한 아침 해가 동방의 큰 나라를 열었는데 봉황새가 오지 않았으니 하夏·은殷·주周[삼대三代]가 아득하구나. 복스러운 사람이 어느날 오동시梧桐詩¹³⁾를 지을 것인가. 
대들보를 남쪽으로 던진다. 예전 회수淮水의 흐름이 소남召南에서 정체한 것을 생각하노니¹⁶⁾, 경치와 높은 곳에서 부는 바람에 근심 없이 존재하여 고기 잡고 나무하는 것이 어찌 매우 많이 단 것과 같은 것인가. 
대들보를 서쪽으로 던진다. 지수芝峀¹⁴⁾는 울창하고 해는 서쪽으로 바뀌었는데 세밑에 장생불로약[금단金丹]의 소식이 더디구나 바로 왕대나무인데[운당篔簹]¹⁵⁾ 어찌 길에 사다리가 없는가. 
대들보를 북쪽으로 던진다. 사봉師峯은 우뚝 솟아 북극성[진북辰北]을 지탱하고 그대에게 창조하여 드리운 공로를 추억할 것을 요청하노라. 늘어선 성만星灣은 모두 조상의 구역이로구나. 
위쪽 추원楸原에 합장하고 합장하여 계곡 위를 내려다보고 있고 저승과 이승이 한 이치로 감정이 서로 통하는 구나. 물 위에 떠 있는 풀과 물속에 잠겨있는 풀[빈조蘋藻]¹⁷⁾을 해마다 신령에게 반드시 대접하는 도다. 
아래쪽 안개비가 아득하니 평지 위에 내리고 뽕나무는 조밀하고 담장은 깊어 뻐꾸기가 우는데 농가의 자연 경치는 빛나는 아취[빈아邠雅]¹⁸⁾에 섞여 있구나. 엎드려 바라노니 대들보를 올린 뒤에 거리의 풍속이 순박함으로 회복되고 가문의 계책이 원대하게 드리우며 효도와 공경과 충성과정숙한 행동이 각각 삼강과 오륜에 극진하게 되고 관례와 혼례와 상례의 제례가 백 가지 예경과 천 가지 곡례에 널리 통용되어라.
1944년 8월에 의령 남승우南勝愚 짓다.

【주석】
수달제사와 승냥이제사¹⁾ : [달시獺豺]는 『예기 왕제王制』에 獺祭鱼 然後虞人入澤梁 豺祭獸 然後田獵
산골짝 시냇물²⁾ : [사간斯干]은 『시경, 소아 홍안집』에 秩秩斯干...兄及弟矣...以續妣祖
훈구집안[교목喬木]³⁾ :고국교목故國喬木, 교목喬木이 있어서 고국故國이 아니요. 세신世臣이 있기 때문에 고국이라고 하는 것이다. 『맹자 양혜왕』
장릉莊陵⁴⁾ : 단종端宗
허리를 굽힘⁵⁾ : 옛날 도연명陶淵明이 팽택현령彭澤縣令으로 있다가 순찰하러 온 독우督郵에게 절하기 싫어서 “내가 어찌 닷말 쌀의 녹 때문에 어린아이에게 허리를 굽히랴”하고 벼슬을 내던지고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한다.
봉수면鳳樹面⁶⁾ : 경상남도 의령군 봉수면
토구菟裘⁷⁾ : 원례는 노魯나라 읍명邑名인데, 은공隱公이 이곳에 은거했으므로 전하여 관직에서 은퇴하여 여생을 보내는 곳의 뜻으로 쓰인다. 노은공魯隱公이 말하기를 “토구菟裘에 별장別莊을 경영하리라. 내 장차 거기에 가서 늙으리”라고 했다 한다.『좌전左傳 은공隱公 11년』
[교재橋梓]⁸⁾ : 주周나라 때 백금伯禽과 강숙康叔이 주공에게 세 번 회초리를 맞은 뒤 높이 올라가는 교목을 보고서 부도父道를 깨닫고 겸손하게 고개 숙인 재목을 보고서 자도子道를 깨달았다응 고사가 있다.『세설신어世說新語 배조주排調註』
[부당斧堂]⁹⁾ : 昔者夫子言之曰 吾見封之若堂者矣 見若坊者矣...見若斧者矣『예기禮記 단궁檀弓 상上』
[운잉雲仍]¹⁰⁾ : 먼 자손을 말함. 8대손인 운손雲孫과 7대손인 잉손仍孫을 말함. 자손을 이르는 명칭은 아들, 손자孫子, 증손曾孫, 현손玄孫, 내손來孫, 곤손昆孫, 잉손仍孫, 운손雲孫 순서이다.
푸른 담요¹¹⁾ : 진나라 왕자경(왕헌지)은 도둑이 들자 푸른 담요는 대대로 전해오는 물건이니 그것만 빼고 가져가라고 하였다.『태평어람 제70권』
[오문련吳門練]¹²⁾ : 안회가 공자를 시종하여 일관日觀에 올라 오문의 말을 바라보고 한 필의 누인 베로 착각하였는데 공자는 그것을 말이라고 하였다.『한시외전韓詩外傳』
오동시梧桐詩¹³⁾ : 동진東晋의 사마표司馬彪가 산도山濤에게 준 시. 「苕苕梧桐樹 寄生于南岳 上陵靑雲霓 下臨千仞谷 處身孤且危 於何托餘足……班匠不我顧 牙曠不我錄 焉得成琴瑟 何由揚妙曲 卞和潛幽巖 誰能證奇璞」 “높고 높은 오동나무, 남쪽 멧부리에 났구려. 위로는 푸른 구름 위에 치솟았고 아래로는 골짜기를 임했도다. 신세가 외롭고도 위태로워 어디에 내 발을 붙일꼬……반장(班匠)이 날 돌아보지 않고, 아광(牙曠)이 날 알아주지 않으니 어떻게 거문고 비파가 되며 어떻게 좋은 곡조를 뽑으랴. 변화(卞和)가 그윽한 바위 밑에 묻혔으니, 그 누가 좋은 구슬을 증명할꼬.
지수芝峀¹⁴⁾ : 영지버섯 산굴
[운당篔簹]¹⁵⁾ : 소동파의 운당곡언죽기篔簹谷堰竹記에서 전개한 ‘마음 속에서 대나무를 이룬다’는 회화 이론을 언급함.
생각하노니¹⁶⁾ : 「韓文公作董生行曰, 淮水出桐栢山, 東馳遙遙, 千里不能休....縣人董生召南, 隱居行義於其中. 刺史不能薦...」
한문공韓文公이 동생행董生行을 지어 말하기를 " 회수(淮水)는 동백산(桐栢山)에서 나와 동쪽으로 멀리멀리 달려 천리를 쉬지 않네.....고을 사람 동생 소남(董生召南)이 그 안에 숨어 살면서 의를 행하네. 자사(刺史)가 천거하지 못하니....『소학 제6 선행善行』
풀[빈조蘋藻]¹⁷⁾ : 「于以采蘋 南澗之濱 于以采藻 于彼行潦」
어디서 가래를 딸까요. 남쪽 계곡 물가에서 따지요. 어디서 마름을 딸까요. 그 곳은 물 흐르는 도랑에서 따지요『시경 소남 채빈』
아취[빈아邠雅]¹⁸⁾ : 혹은 빈주邠州, 즉 주나라 선조 공류公劉가 세운 주나라 발상지의 아雅 소속 시詩

 

봉양재원운鳳陽齋原韻
차원운次原韻
봉양재차운鳳陽齋次韻
봉양재차운鳳陽齋次韻
봉양재차운鳳陽齋次韻
봉양재차운鳳陽齋次韻

출처 및 참조
의령누정록-의령문화원/태화출판사(1997.12.27.)
추봉문집-남승우/추봉문집 국역편찬위원회(의령남씨 직제학공파)/경인문화사(2021.5.24.)-역자/윤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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