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의령군 칠곡면 신포리 진주강씨 경모재 敬慕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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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경남의 진주강씨 누정재

2021. 10. 25.

2021.5.2. 의령군 칠곡면 신포리 진주강씨 경모재敬慕齋 추정

경모재敬慕齋를 찾았으나 칠곡면 신포리 주민들은 진주강씨의 재실을 알지 못했고 어느 분이 사진 속의 건물이 예전 강씨 재실이었지만 지금은 중에게 팔아 재실로서 이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건물의 주인은 만날 수 없었고 허드레 일을 도와 주려온 시주자를 만났지만 건물의 내력을 알 수 없었다.
다만 의령군 칠곡면 신포리에 진주강씨 경모재敬慕齋의 기문이 의령누정록에 남아 있어 옮겨 둔다.

敬慕齋記
姜氏爲宜寧之巨族 而其居立岩里者 寔處士 諱三煥 諱師煥兩公之裔也 兩公之墓距 是里莽蒼 而進諸後孫歲奉香火甚處 而惟艱於力無 以具儀文至 近歲慨然相與謀曰 今吾貧甚矣 旣不能逐墓 而爲之齋 則無寧築一屋 於里中以奉兩公墓祭 兼資宗族之會 其亦可乎 於是購材募工 爲四楹三架之齋 而扁曰 敬慕禎熙君 識其事實 來余請爲記 余觀今世之俗好 以齋舍相侈高棟飛甍 無處無之爭 新殫功炫耀可觀然 是未必皆實有所 事於其中 而只爲一時 遊覽娛歲 而止若是者 雖謂之不 必作可也 求其有關 於人道之大 而不可不作者 惟墓之有舍是矣 而墓舍每 在深山松楸之下 故歲時祭祀 一掃堂于之外 率皆荒廢 爲樵牧喧聚之場 此固其勢然也 姜氏之爲 是齋不於其楸下 而於子孫 所居之地則吾知 其守護之便 而無荒廢之虞矣 不亦善乎抑余因 此而有所 諗焉夫典祀 祖先固人道之大 端然不莁誠 以則雖列 其俎豆潔 其牲酒神 不享之矣 故傳曰 不誠無物 又曰 有其誠則 有其神 有姜氏 其各胥勖於 此而致 神明之感格 而無徒以今日 斯齋之成 爲足以盡 其追遠之道也哉 齋之役也 前後監董 而有榮績者 尙熙大熙点熙斗熙日熙 其名也
歲戊午十月立冬節
星山 李憲柱 記幷書

경모재기
강씨는 의령의 거족巨族인데 입암리立岩里에 거주하는 자는 곧 처사處士 이름은 삼환三煥, 이름 사환師煥 두분의 후예後裔라 두 공의 묘소는 이 마을에서 떨어져 가기가 풀섶(莽蒼)에 가깝다. 모든 후손이 해마다 향화香火를 받들기로 매우 공경히 했는데 힘이 어려워서 의례儀禮와 문물文物을 다갖추지 못했었다. 근세近歲에 이르러 개연慨然히 서로 모의 하기를 이제 우리가 심甚히 가난한지라 이미 능히 묘소 가까이 가서 재실齋室을 세우지 못했으니 일옥一屋을 마을 안에 지어서 두 공의 제사를 받들고 겸해서 종족의 회합장소로 하는 것이 그 또한 옳은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이에 재목材木을 구입購入하고 공인을 가려 모아서 3칸을 지어 현판懸板을 붙이기를 경모재敬慕齋라 하였다. 정희군禎熙君 이 그 사실을 기록하여 나에게 와서 기문記文 하기를 청하니 내가 보건대 금세今世의 풍속은 재실齋室을 지어 서로 사치奢侈 스러운 것을 좋아하여 높은 들보와 날아갈 듯한 지붕이 어느곳 이던지 없는데가 없어서 새것을 다투어 재실을 짓는 공을 다했다. 빛남을 자랑해 가히 볼만하나 그러나 이가 반드시 그중에 일삼는 바가 있지 않아서 다못 놀아보고 오희娛戱하기에 그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비록 꼭 하려고 한게 옳지 않는 것이다. 그 인도人道의 큼에 관계關係가 있는 것을 가히 짓지 않을 수 없다. 오직 재실齋室을 짓은 것은 이 때문이다. 묘사墓舍가 매양심산每樣深山의 선영先塋 아래 있는 고로 세시제사歲時祭祀에 당우堂宇 밖을 쓸고 지내나 모두가 황폐荒廢해지고 초부목동 樵夫牧童들의 시끄러운 소리나는 장소가 되었다. 이게 진실로 형편形便이 그렇게 된 것이다. 이제 강씨가 재실齋室을 묘소墓所 아래에 짓지 아니하고 자손이 사는 그곳에다 지으니 수호守護에 편리便利하고 황폐荒廢의 걱정을 없게함을 내가 알겠다. 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니냐. 내가 억량抑諒하건대 이것으로 인因하여 알아 볼 바가 있다. 대저 조상祖上에게 제사祭祀지낸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인도人道의 대단大端한 일이다. 그러나 진실로 성의誠意를 모아 법칙法則을 따르지 않는다면 제기祭器를 벌려놓고 술과 고기를 갖추었다 해도 귀신은 감응感應하지 않는다. 그런고로 옛 글에 정성精誠이 아니면 물건이 없고 또한 정성이 있으면 신령이 있다고 하니 오직 강씨들은 각기 서로 이에 힘써서 신명神明이 감격感格토록 지성至誠하여 한갓 오늘날 이 재우齋于가 이뤄짐을 만족滿足하지 말고 그 추원追遠의 도를 다해야 될 것이다. 이 재실역사齋室役事를 전후감독前後監督한 영적榮績이 있는 분이 있으니 상희尙熙 대희大熙 점희点熙 두희斗熙 일희日熙가 그 이름이다.
무오戊午 1997년 10월 겨울이 시작되는 날.
성산星山 이헌주李憲柱가 짓고 아울러 쓰다.

출처 및 참조
의령누정록-의령문화원/태화출판사(1997.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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