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의령군 대의면 중촌리 진주강씨 창계정 蒼溪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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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경남의 진주강씨 누정재

2021. 10. 25.

2021년 1월 10일 의령군 대의면 중촌리에 있다는 진주강씨 창계정蒼溪亭을 찾았으나 마을 이장을 만나고도 창계정蒼溪亭의 흔적은 만나지 못했고 수소문 끝에 중촌리에서 집은 있지만 현판을 걸지 않아 일반 주택의 빈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다만 의령누정록에 창계정蒼溪亭 기문記文이 남아 있어 여기에 옮겨 둔다.

蒼溪亭記
蒼溪亭在宜春北 闍山西 慕義中村 族孫奎錫 爲其王大人 蒼溪公而作也 公嘗以所居村前 有一溪水蒼然可愛 故取以爲號 而仍揭扁居室曰蒼溪 寔爲公謹煮 恭修之所也 公歿後有年 其子信基 設契聚貲拮 据滋殖而謀 爲榮築未就而卒 君乃遵先人之遺志 毁其居室 而新築 三架四楹之屋於其址 仍舊明扁 以蒼溪亭考是也 日君就余而言曰 今亭成而無記 願得一文 以著其事顚末 余揆以世好族誼 豈可以不文而辭乎 公生于詩禮古家 幼以穎吾聞 年十四受業于 紫東李先生 日純聖賢者 俯謹仰思 造詣精深 文辭醇古先生函加稱歎 弱冠改自槐津移居 此村與同隣許素 窩巑 田寓耕 相武數公 互相徵逐磨礱共輔 而遂成學業矣 故孝友行於家 信義孚於人 而爲鄕黨所推雲焉 今君恪守貽謨 旣勤堂構 而益思繼述之 爲何道守護之 爲何策晨夕不懈則斯爲 公之能孫 而且俾君之 子孫勉爲永世保存 則斯亭也 與蒼溪文水 同傳無窮矣 若夫山川 雲物之勝 槩多魚 飛躍之形 熊未暇備述 而猶俟登熙考之自得焉爾
歲乙卯 正月上元日 族弟 泰熙記


창계정기
창계정蒼溪亭은 의령의 북쪽 자굴산의 서쪽 모의중촌慕義中村에 있는데 족손 규석奎錫이 그의 조부 창계공蒼溪公을 위하여 지었다. 일찍이 사는 곳 마을 앞에 한 시냇물이 푸르게 흘러 사랑스러운 고로 취해서 호號를 삼고서 거처하는 방에다가 현판을 걸어 가로되 창계蒼溪라 하니 실은 공을 위하여 제사 지냄에 공손히 수양하는 곳이다. 공이 죽은 뒤 몇 해를 두고 그의 나들 신기信基가 계를 설립하여 재물을 모아 별도로 불려서 정자를 세우려고 꾀하다가 이루지 못하고서 죽었다. 그대가 곧 선친의 유지를 따라서 그 거실을 헐고서 삼칸 집을 그 터에 세우고 옛 현판으로 창계정蒼溪亭이라 하니 고증이 이것이다. 어느 날 그가 나에게 와서 말해 가로되 이제 정자는 이루었지만 기록이 없으니 한 글을 얻어서 그 일의 전말顚末을 드러내 주기를 원한다. 하였다. 내가 세상이 좋고 족의族誼로써 헤아려보건대 어찌 글하지 못하는 것으로써 사양하겠나  공은 학문 예절의 고가古家에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크게 깨달아 나이 열넷에 이미 들리었다. 자동 이선생에게 수업하여 날로 성현을 순종하며 꾸부려 삼가고 우러러 생각하니 조예가 깊어지고 글이 순박하니 선생이 칭찬을 더하였다. 약관에 괴진槐津으로부터 이 마을로 이사 와서 이웃 허소許素 와찬窩巑과 전우경田寓耕 상무相武 여러분과 서로 강마講磨하고 함께 돕고하여 학업을 이루었다. 고로 효도와 우애를 집에서 행하고 신과 의를 사람에게 부합하니 고을의 추종된 바라 일러라. 이제 그대가 끼친 꾀를 정성들여 지켜서 이미 부지런히 재실을 세우고서 더욱 이어 기술하기를 생각하니 어느길이 수호함이 되며 어느 계책인들 조석으로 게으러지 아니한 즉 이것이 공의 능한 손자가 되면서 또한 그대의 자손으로 하여금 영원히 보존하기를 힘쓴 즉 이 정자는 창계와 더불어 글과 물이 함께 무궁토록 전하리라. 산천의 경치 좋음과 물고기 뛰노는 형태 같은 것은 겨를이 없어서 갖추어 기술하지 못하지만 내가 올라가보면 생각을 저절로 얻어리라.
을묘乙卯 1920년 1월 보름날 족제族弟 태희泰熙 짓다.

출처 및 참조
의령누정록-의령문화원/태화출판사(1997.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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