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진주강씨 삼산재 三山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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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경남의 진주강씨 누정재

2021. 11. 8.

2021.10.5.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진주강씨 삼산재三山齋 전경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566-2(두양길 22)에는 진주강씨晋州姜氏 은열공파殷烈公派 진천군파晋川君派 중시조中始祖이신 11세 강위상姜渭詳의 후손 수당受堂 강석홍姜錫洪(1872~1946)를 기리는 삼산재三山齋가 있다. 이곳을 고도계는 높이 95m, 위도 35°14'09"N 경도 127°52'58"E를 가리킨다.

 

2021.10.5.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진주강씨 삼산재三山齋

삼산재三山齋의 가계를 살펴보면 진주강씨晉州姜氏 은열공파殷烈公派 파조派祖 1세 민첨民瞻(963~1021)으로부터 직계로 가계를 이어보면 2세 태자태전太子太傳 단旦, 3세 예빈경禮賓卿 보輔, 4세 상서성좌승尙書省左承 정협貞叶, 5세 판삼사추성익재공신判三司推誠翊載功臣 여익呂翼, 6세 원감元鑑, 7세 정靖, 8세 순珣, 9세 적𥛚, 10세 검釖, 11세 진천군파조晋川君派祖 위상渭詳으로 이어진다. 
은열공殷烈公 진천군파晋川君派 중시조中始祖이신 11세 위상渭詳으로부터 12세 인선仁先, 13세 거호居好, 14세 승전承顓, 15세 진사進士 희필姬弼, 16세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화재和齋 인수仁壽, 17세 군자감판관軍資監判官 세탁世卓, 18세 당암戇庵 익문翼文(1568~1648), 19세 구주鷗洲 대적大適(1594~1678), 20세 봉오당鳳五堂 강휘민姜徽敏(1621~1686), 21세 강태제姜泰齊, 22세 강시은姜始殷, 23세 강주서姜周瑞, 24세 강기성姜箕成, 25세 강경환姜敬煥, 26세 강주근姜鑄根(1765~1796), 27세 강희순姜熙舜(生父 宥根), 28세 강윤규姜允奎, 29세 수당공受堂公 강석홍姜錫洪(生父 東奎; 1872~1946), 30세 강지영姜志泳(1916~) , 31세 우산공牛山公 강상호姜相昊(1934~)로 잇는다.

 

2021.10.5.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진주강씨 삼산재三山齋

삼산재三山齋는 대문에 편액이 없고 본당에는 삼산재三山齋라 편액했으며 기중에는 주련을 달았다. 마루에는  삼산재중건기三山齋重建記와 삼산정운三山亭韻이 걸려 있다. 중수를 할 때 정亭에서 재齋로 재호齋號를 바꾼 모양이다.

 

삼산재三山齋 편액

하동누정재지에 실린 삼산정기를 옮겨둔다.


三山亭記
受堂姜公築一屋所東峰下 以為晚之地 旣入處無幾 而遠病卒 以此亭厪名之 而文字之述其意趣則未及焉 公五子日聚泣亭中痛恨其至 此而三年之後連遭大亂人無 有朝夕之計者 其季曦泳 以歲月正元日走三舍 傳來見余曰 諸兄之意切欲乘 此少間招與諸同人落之以卒先人遺志願吾子 有以記之余旣欽諸君之苦誠 有足以動人者 且余平日獲私於 公不淺豈敢 以辭讓為事 公少自負奇氣苦將 有爲旣乃蚤知其存乎 己者之與世相違也 則杜門求志 以樂畎畝留心文學 而尤長於詩對境 吟哦 以寓其蕭散之趣眉宇 有渥精明之氣至 老不衰其中之暇豫 即此己可見盖其志常 以為學而不能 致用非實學也 故其見世俗之儒博四寸 而無有要領者 則意不屑馬 以此人或疑公爲傲世自高 然是豈眞知公者哉 朱子稱陶靖節雅趣 以為自古隱遜之士 多帶性負氣之人 是欲有為而不能者也 若公亦可謂聞陶 公之風者 與亭凡三間東西燠室中為凉軒地 高爽眼界通遠帶長江 而襟方塘灝氣蒸涵于 几席之間余嘗一登 而憑眺焉 想象公在時有與其𦚾次 而同其豁然者 今因請記並書所感 如此其名三山者 以其在牛山之趾 而斗芳鼎盖二山並立 於前故云
辛卯孟春日 載寧 李鉉德 記

삼산정기
수당강공受堂姜公¹⁾이 집 한 채를 살고 있는 곳의 동봉東峰 아래에 건축하여 노년老年의 안식처安息處를 삼아서 이미 들어가 산지 얼마 안되어 문득 병으로 돌아가시니 어차피 겨우 정자 이름만 있고 문자로 취지를 기술함은 없게 되었다. 공公의 다섯 아들이 날마다 정자亭子에 모여 몹시 원통해 하더니 3년 후에 연이어서 큰 어려움을 만나매 사람마다 생활生活의 책策이 막연한지라. 그의 막내 아들인 희영曦泳이 그해 정초正初에 30리를 달려와 나에게 말하기를 여러 형들의 의사意思가 이러한 소문少間을 이용利用하여 뜻이 같은 사람들의 생각을 끌어내어 낙성落成하여 선인先人의 유지遺志를 마치고져 하니 원컨대 자네가 기문記文을 해다오 하니 내 이미 여러분들의 고성苦誠²⁾이 족히 사람을 감동感動시침을 흠탄欽歎³⁾하겠고 또한 내가 평일平日에 공公의 사애私愛⁴⁾를 깊히 입었으니 어찌 사양辭讓⁵⁾만을 하겠는가. 공公은 소시少時에 당당堂堂한 의기義氣⁶⁾를 가져 무슨 커다란 사업事業을 할 것 같았으나 이미 나의 모든 것이 세상世上과 상위相違⁷⁾함을 알고 두문杜門⁸⁾하여 뜻을 따라 견무畎畝⁹⁾에 즐거워하며 문학文學을 마음에 담아 두었는바 더욱 시詩에 능能하여 경境에 대對해 읍조리며 한산閑散한 취미趣味를 부쳤으며 안면顔面이 윤택하여 정명精明¹⁰⁾한 기색氣色이 연로年老토록 쇠衰 하지 않으니 그중에 수예收豫¹¹⁾함을 여기에서 가可히 보겠다. 대개는 그의 뜻이 학문學文을 하여 치용致用¹²⁾치 못함은 실학實學이 아니라 하였다. 그런 고故로 세속世俗의 선비가 집咠의 학學만 넓히고 요령要領이 없는 것을 보고 뜻을 두지않았다. 이로써 사람들이 혹或은 공公을 오세자존傲世自尊¹³⁾한다고 하나 이것이 어찌 참으로 공公을 안다하리요. 주자朱子가 도정절陶靖節¹⁴⁾의 아취雅趣¹⁵⁾를 칭찬해 말하기를 자고自古로 은둔隱遜한 선비가 많이 높은 기의氣義를 가졌으나 세상世上이 알맞지 않아 사업事業을 못한다 하였으니 공公 같은 분은 도공陶公의 유풍遺風을 가 졌다 하겠다. 정亭이 3칸인데 동서東西는 환실煥室이요 중앙은 양헌凉軒
이다. 처지處地가 고상高爽하고 안계眼界¹⁶⁾가 통원通遠¹⁷⁾하고 장강長江이 둘렀으며 네모난 연못에 비치여 맑은 기운이 범석凡席¹⁸⁾에 넘치니 일찍이 등정登亭하여 상상想象하매 공公의 재시在時에 그의 흉차胸次¹⁹⁾가 분명히 쾌활快豁하였을 것이다. 이제 기문記文으로써 소감所感을 아을러 쓴다. 그의 삼산정三山亭이라 함은 우산牛山과 두방斗芳과 정계鼎盖가 전면前面에 병립並立했기 때문이다.
1951년 봄이 시작되는 날에 재령載寧 이현덕李鉉德 짓다.

【주석】
수당강공受堂姜公¹⁾ : 강석홍姜錫洪(1872~1946). 진주 서쪽 하동 옥종면 두방리에 은거하며 지낸 유학자.
고성苦誠²⁾ : 어려움에도 정성을 다함.
흠탄欽歎³⁾ : 아름다운 점을 몹시 칭찬함 
사애私愛⁴⁾ : 어느 한 사람이나 한쪽만을 치우쳐 사랑함
사양辭讓⁵⁾ : 겸손하여 응하지 않거나 받지 않음
의기義氣⁶⁾ : 정의감에서 우러나오는 기개
상위相違⁷⁾ : 서로 다르거나 어긋남
두문杜門⁸⁾ : 밖으로 출입을 아니하려고 방문을 닫아 막음
견무畎畝⁹⁾ : 밭의 고랑과 이랑
정명精明¹⁰⁾ : ① 총명하다 ② 교활하다 ③ 영리하다 ④ 머리가 잘 돌다.
수예收豫¹¹⁾ : 미리 거두어 들이다.
치용致用¹²⁾ : ① 빠뜨릴 수 없는 것 ② 쓸모 있게 하다 ③ 꼭 필요한 것 ④ 실제에 응용하다
오세자존傲世自尊¹³⁾ : 세인을 무시하고 스스로 높이는 것
도정절陶靖節¹⁴⁾ : 정절靖節은 진晉나라의 처사處士 도잠陶潛의 시호諡號로 호는 연명淵明이다. 뜻이 고결하여 팽택령彭澤令으로 부임한 지 80여일 만에 차고 있던 인끈을 풀어 던지고 전리로 돌아오면서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써 자기 뜻을 나타냈는데, 세상에서는 그를 정절선생靖節先生이라고 불렀음. 『진서(晉書)』 卷九十四
아취雅趣¹⁵⁾ : 아담하고 우아한 정취
안계眼界¹⁶⁾ :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범위 
통원通遠¹⁷⁾ : 멀리까지 통함
범석凡席¹⁸⁾ : 자리
흉차胸次¹⁹⁾ :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마음속에 품은 생각

 

삼산재三山齋 주련

南服衣冠欽慕聲
直世板蕩猶行義
想象當時一心淸
奐遊棟宇洞中明

 

 

三山齋重建記 
天王峰南脈蜿蜒馳 來五十里隆然鼎峙 而為恲者曰三山 即牛芳斗考盖是也 牛山之下有平郊之聚落曰 斗陽里姜氏之世庄也 近故有受堂處士諱錫洪生 於高宗壬申天禀英明拔倫 自負奇氣若將施 為而適直淆亂 自知其不能需世輒杜門求志 以樂稼穡翰心文墨 而尤善於詩盤桓 吟嘃於山河有時 而與志友聠笻遂峽 以寫亡國之憤惋 隱遁自飾專 以護衛先祖影堂 為課視世事若浮雲 或值彼侮 則隱忍自重輾轉待晨 而忽聞解放之鍾 翶翔於堂上蹈舞於庭除其歡喜猶解桎梏矣 旣而築一屋于 牛山下以為收榆之堂 扁曰三山亭 置三山下之意也 然而藏修未幾遽然不淑吁嗟乎 未遂初志焉 公之五子痛恨 罔極寓慕匪懈 而荏苒之頃人事庶幾 千古堂亦隨 而頹落長孫相昊由 是欲泣歲丁丑冬 與諸從重建一堂二室 於故址改扁曰三山齊 眺望通豁足 以吸曠野之清風 長江臨前可以挹浩漾之淑氣 其於歲薦之儀 肆業按賓無所 不宜信叔季之盛事也 將為飲落相昊君 以營建錄造余以請楣間之需窃 惟余少時累拜 公先人之席謬蒙橅愛奚可 以非其人而固辭哉 於此有一說焉 蓋綜公生平 則求志於仁義而己矣 孟子曰仁人之安宅也 義人之正路也 公之所以傾心探究者 人之正路公之所 以颽覦渴求者 人之安宅也 一白天翻地覆教風 陵替舍其正路 而行橫路舍其安宅 而不欲居不 惟正路愈遠 雖欲居安宅 豈可蘄乎苟 爲公後者雖寸刻 不失正路求心 於安宅然後愧 於先人志事可不銘心哉 為之說如右書之一 以為斯堂之頌一 以為警戒澆俗使居齋者 有以知所邁焉 
光復丁丑歲暮 朔寧 催寅巑 記
                  烏川 鄭直敎 書

 

삼산정운三山亭韻

三山亭韻
牛斗靑山德水西
新亭孤與老松齊
地非白鹿宜高隱
築似東溪失品題
月落湖烟寒瀲瀲
風來墟樹碧凄凄
圖書滿架空先蹟
孱劣將何繼勿迷
不肖男 志泳

 

 

受堂詩集序
江西 故無詩 近有 受堂處士 姜公 始以工聲病 善肖寫 聞龜岡 河先生 嘗讀其庭梅 咏至年老 臥生枝之句 輒大加嘆賞 自後每有贈酬 稱詩翁焉 記余少日陪公 言山谷事 因言山谷 世人目之 爲江西詩祖 今公之居江西也 獨不欲垂惠 後生少輩 如山谷耶 公歛衽 辭不敢當 然察其容色 悄如也 似若有隱憂 然公生平至友 自龜岡 以及河柏村 潛齋諸公 皆在江東 而江西 直寥寥 無一人可與揚扢 雖後生少輩 亦莫不然 鮮能請敎於公 公之隱憂 當必爲此 然歷數巖稿 詩窮之倫 而得遂其願言償心 天下無有矣 則公將如命何哉 如命何哉 
公旣沒 季子曦泳 蒐輯遺稿 未及半而夭 巾緗中閉 且十數年 厪出一卷二百九十篇 公中歲來 口吟手鈔 或一日累回 約略推定 是二百九十篇者 殆非所謂全臠也 試以例擧 余舊見 屈洞唱酬 及隣友所藏 贈什諸篇 倂不入錄 佗如此類 寗復少哉 而顧無所於究問 於是 姑序其二百九十篇 使之趣刊 以壽傳云 

수당시집서
강서江西에는 옛날에 시가 없었는데 근래 수당受堂 처사 강공姜公이 있어 시작詩作 공부를 시작하고 묘사描寫를 똑같이 잘하였다. 구강정사龜岡精舍에까지 이름이 들려 회봉晦峰 하겸진河謙鎭 선생이 일찍이 그 ‘정매庭梅’ 시를 읽고 노년에 이르도록 읊으셨다. ‘와생지臥生枝’란 구절에서는 문득 크게 탄복하며 칭찬하셨는데, 이후로 시옹詩翁이라 칭하며 늘 시를 주고받았다. 내 젊었을 때 공을 모셨던 때를 기억하자면, 산곡山谷 황정견黃庭堅의 일을 말씀하셨는데 산곡을 말하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보고 강서의 시조詩祖로 여겼다. 지금 공의 거처도 강서이다. 다만 젊은 후배들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하지 않았으니, 산곡 같지 아니한가. 공은 옷깃을 여미며 감히 감당堪當치 못한다고 사양하였다. 그러나 그 용모와 안색을 살펴보면 쓸쓸하여 마치 깊은 근심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공의 평생 친한 벗은 회봉晦峰 선생에서부터 백촌柏村 하봉수河鳳壽와 잠재潛齋 하우河寓 등 여러분들에 이르렀지만 모두 강동江東에 있었으니, 강서에는 다만 적막하여 더불어 얘기 나눌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비록 젊은 후배라 하더라도 또한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었으니, 공에게 가르침을 청할 수 있는 이가 드물었다. 공의 근심은 당연하고도 틀림없이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몇몇 바위 벼랑을 지내와도 원고와 시가 궁窮하여 그 바라고 뜻한 바를 가려서 이루려 해도 천하에는 있지 않으니, 장차 공의 운명運命을 어찌할까나, 어찌해야 할까나.
공이 돌아가시고 막내아들 희영曦泳이 유고遺稿를 찾아 모아서 편집하였으나 반에도 못 미치고 요절하였다. 비단 보자기 속에 감추어둔 지 또 십수 년에 겨우 일 권一卷 이백구십 편二百九十篇을 출간하였다. 공이 중년中年에 와서 읊은 시를 손수 베껴 쓴 것이 어떨 땐 하루에도 여러 차례로 대략 추정한 것이 이백구십 편이었는데, 거의 이른바 전부는 아니었다. 예를 들자면 나는 옛날 굴동屈洞에서 서로 주고받거나 이웃의 벗들이 간직하던 것이나 증정贈呈한 여러 편의 시를 보았는데 함께 기록하지 못하였다. 여타 이와 같은 류類가 어찌 또 적겠는가만 돌아보아 캐물을 만한 곳이 없다. 이에 짐짓 그 이백구십 편에 서문을 적으니, 간행하여 오래오래 전하였으면 한다.

【주석】
* 수당受堂 : 강석홍姜錫洪(1872-1941). 진주 서쪽 하동 두방리에 은거하며 지낸 유학자. 
* 聲病성병 : 시를 지을 때 평平, 상上, 거去, 입入 등 사성四聲을 조합하여 구성하는데, 그 구성이 일정한 규칙에 들어맞는 것을 성聲이라 하고 그렇지 못한 것을 병病이라 한다.
* 초사肖寫 : 닮게 그리다. 똑같게 묘사하다.
* 구강龜岡 : 구강정사龜岡精舍. 회봉晦峯 하겸진河謙鎭 선생의 강학지소講學之所.
* 자후自後 : 이후로. 그 뒤로.
* 산곡山谷 : 송宋나라 때의 시인 황정견黃庭堅. 소식蘇軾 문하의 제1인자이다. 소식의 시학을 계승하였으며, 그의 시는 소식의 작품보다 더욱더 내향적이었다. 소식과 함께 소황蘇黃으로 칭해져서 북송 시인의 대표적 존재가 되었다. 12세기 전반은 황정견 일파의 시풍이 세상을 풍미하였는데, 황정견이 강서江西 출신이었기 때문에 ‘강서파’라 칭해졌다. 
* 수혜垂惠 : 은혜를 베풀다.
* 감임歛衽 : 옷깃을 여미다.
* 초悄 : 근심하다. 근심 걱정에 잠기다. 고요하다. 쓸쓸하다.
* 은우隱憂 : 깊은 근심이나 시름.
* 지우至友 : 사이가 아주 가까운 벗.
* 백촌柏村 : 하봉수河鳳壽(1867-1939). 조선 말기 유학자. 자는 채오采五이고, 호는 백촌栢村이다. 면우宇 곽종석郭鍾錫의 문인.
* 잠재齋 : 하우河寓(1872~1963). 회봉집晦峯集 덕곡사우연원록德谷師友淵源錄에 회봉 선생의 종유從遊로 나온다. 자字는 광숙廣叔.
* 요요寥寥 : 쓸쓸함. 적막하고 공허한 모양.
* 양흘揚扢 : 토론하다. 들추다. 논하다. (한국고전종합DB)
* 윤倫 : 떳떳하다. 가리다. 선택하다.
* 원언願言 : 그리워하다. 생각나다. 바라건대. 言은 조사助辭.
* 상심償心 : 뜻한바. (한국고전종합DB)
* 계자季子 : 막내아들.
* 수집蒐輯 :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 모아서 편집함.
* 중세中歲 : 중년中年. 중년의 나이.
* 약략約略 : 大略대략. 대개.
* 련 : 저민 고기. 상정일련嘗鼎一이란 성어처럼 한 점의 고기를 맛보아서 솥 전체의 맛을 안다, 즉 부분으로 전체를 안다는 비유로 쓰임.
* 굴동屈洞 : 경남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 
* 창수唱酬 : 시가나 문장을 지어 서로 주고받고 함.
* 영부寗復 : 어찌 또. (寗 : 차라리. 어찌. 영寧의 속자俗字)
* 구문究問 : 충분히 알 수 있을 때까지 캐어물음.
* 수전壽傳 : 오래오래 전하다. 대대로 전하다.

역시나 풀이하면서 아직 많이 부족함을 절감切感한다. 

출처
https://blog.naver.com/streamjr/222521599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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