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진주강씨 영모재 永慕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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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경남의 진주강씨 누정재

2021. 11. 10.

2021.10.5.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진주강씨 영모재永慕齋 전경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805-2(불무안길 36)에는 진주강씨 1세 강계용姜啓庸의 중파조 8세 증참판贈參判 강안복姜安福의 먼 손자인 제용감濟用監 첨정僉正 강동입姜東立을 추모하며 제례祭禮하는 영모재永慕齋가 있다. 이곳을 고도계는 높이 73m, 위도 35°09'23"N 경도 127°54'45"E를 가리킨다. 

 

2021.10.5.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진주강씨 영모재永慕齋 대문 앞에서

영모재永慕齋의 가계를 살펴보니 박사공博士公 1세 강계용姜啓庸으로부터 2세 급사공給事公 인문引文, 3세 어사공御史公 사첨師瞻, 4세 진원부원군晋原府院君 창귀昌貴, 5세 문경공文敬公 군보君寶, 6세 공목공恭穆公 시蓍, 7세 통계공通溪公 강회중姜淮仲, 8세 증참판贈參判 강안복姜安福, 9세 영선군永善君 이찬利纘, 10세 소정공昭靖公 지漬로 이어진다.

이후는 족보를 보지 못해 모른다.

2021.10.5.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진주강씨 영모재永慕齋 대문

영모재永慕齋 앞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으며 대문에는 추원문追遠門이라 편액 했고, 재실은 영모재永慕齋라 이름했다. 대청에는 영모재기永慕齋記와 영모재성유감이음永慕齋成有感而吟이란 편액이 있다.

 

추원문追遠門 편액
2021.10.5.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진주강씨 영모재永慕齋
2021.10.5.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진주강씨 영모재永慕齋
영모재永慕齋 편액

永慕齋記
姜氏晋之望族 而麗朝國子博士晉山府院君諱啓庸 爲一派祖之著 自後家勢蟬奕 有諱師瞻殿中監察御史 又有諱君寶政堂文學藝文館大提學 三重大匡門下左侍中 鳳山君 二傳諱淮中通溪公 與伯氏諱淮伯通亭公 同槧用工斷俗寺 手植一梅無恙生在至今兩公 皆為政堂文學大提學 故世稱政堂梅 圃隱先生 飛風樓詩曰 地靈人傑姜河鄭名 與長江萬古流者 盖姜氏是時之謂 歟其子諱安福 以孫漬之貴 贈兵曹參判 是爲分派之祖 而遠孫諱東立 濟用監僉正 公始奠居昆陽治北塔洞隱居行義 終老於此子姓仍 為世庄數世後復移于 北芳之佛舞曁斗陽 皆今之河東王宗面也 世為文行 近有諱采馨亦其一 而余之姨母夫也 門子弟擩染淳謹守 古家之法 而善余者多 信昌信泰 即其一日二君 訪余桂山精舍拜 而請其永慕齋記曰 我本食貧常欲 爲入昆之祖 僉正公肯構肯堂 而綿未就恨之久矣 往在戊辰墓祀後會 族相議各自 血肩担之 而醵出若干資 為公構三架屋于 佛舞之陽 廚庫門樓隨成閱三年月日 而告訖中為廳 左右為室 堂曰永慕 門曰追遠 規模疎約未免存羊 不可無記 則顧文德兼備 而詳吾家者非翁 而誰耶辭益恳義 不可辞乃叙之曰 屋之疎若何傷乎哉 屋雖華靡居之苟 有誠則屋人與屋相 為表裡善守 而可保百世能盡繼述之道 以光先祖之德矣 盍相與勉旃是役也 物心協力者 後孫宗熙也
歲民國壬申春分節
成均館典儀 晋山 河東根 記
成均館典儀 烏川 鄭直敎 書

영모재기
강씨는 진주의 망족望族이고 려조국자박사진산부원麗朝國子博士晉山府院 이름 계용啓庸이 1세 파조派祖이며 그 이후로 가세가 빛나더라. 이름 사첨師瞻은 전중감찰어사殿中監察御史이고, 이름 군보君寶는 정당문학예문관대제학政堂文學藝文館大提學 삼중대광문하좌시중三重大匡門下左侍中 봉산군鳳山君이, 둘을 전하여 이름 회중淮中 통계공通溪公이고, 맏형 이름 회백淮伯 통정공通亭公과 더불어 단속사斷俗寺¹⁾에서 같이 공부하고 손수 한그루 매화를 심어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 있으니 두 어른이시다. 정당문학政堂文學 대제학大提學으로 세상에서 이름부르기를 정당매政堂梅라 한다. 포은선생圃隱先生 비봉루飛風樓 시詩에 이르기를 신령스런 땅기운으로 태어난 인재로 강하정姜河鄭씨는 이름하여 장강長江이 만년이나 오래 흐르는 것처럼 강씨도 이때를 이르는 것이다. 그 아들 이름 안복安福은 손자 귀貴로서 병조참판兵曹參判을 증직 받았으니 이가 분파조分派祖이고, 먼 손자 이름 동입東立은 제용감濟用監 첨정僉正이다. 
공公이 처음에 곤양군昆陽郡 북쪽 탑동에 살면서 숨어 의롭게 행동하고 여기에서 늙으니 자손이 살았고, 뒤에 다시 북방의 불무동佛舞洞과 두양斗陽에 이거하니 지금의 하동군河東郡 옥종면王宗面 이다.
대대로 문행文行을 하더니 근래에 이름 채형采馨이 그 한분이니 나의 이모부이다. 문중 자제들이 영향을 받아서 같게 되고 순박하여 삼가하니 옛 가문의 법을 지켜 나와 사귄 사람이 많으니 신창信昌 신태信泰가 곧 그 사람이다. 어느 날 두 사람이 나를 계산정사桂山精舍에 찾아와 절하고 그 영모재永慕齋 기문을 청하면서 나 본래 가난해도 항상 곤양에 입향入鄕한 할아버지 참정공을 위하여 재실을 마련코자 했으나 능력이 없어 못 이룬 한恨이 오래였는데 지난 무진戊辰 묘사墓祀 후에 상의하여 후손 각자가 자진하여 약간의 자금을 갹출하여 3칸 집을 불무佛舞의 양지에 부엌과 문루門樓도 이루어 3년 세월에 이를 마치니 가운데는 청廳이고 좌우는 방이니 당堂은 영모永慕이고 문은 추원追遠이니 규모가 소략하여 모양은 갖추지 못했으나 귀가 없어서는 아닌데 즉 글과 덕망이 겸비하고 우리 가문을 잘 아는 이는 옹翁이 아니고 누가 있으리요 하면서 말이 더욱 간절하니 의리에 사양치 못하고 지으니 가로대 집이 소략함을 어찌 상심하리요. 집이 비록 화미華靡²⁾하나 사는 사람이 정성이 없으면 집은 집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조상을 존경하고 일가끼리 화목의 도리에 유익함이 없고 집이 비록 소략하나 사는 사람이 정성이 있으면 사람이 집과 표리가 되어 잘 지키고 보전해서 뜻을 이어가 도를 다하여 선조의 덕을 빛내리니 어찌 서로 힘쓰지 않으리오 이 일에 물심物心으로 협력한 이는 후손 종희宗熙이다. 
1992년 3월 20일 
성균관 전의 진산晋山 하동근河東根 짓고
성균관 전의 오천烏川 정직교鄭直敎 쓰다.

【주석】
단속사斷俗寺¹⁾ :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운리 지리산 동쪽에 있던 절로 〈삼국유사〉 권5 신충괘관조에 의하면 763년에 신충이 창건했다고 하며, 별기에는 748년(경덕왕 7) 이순이 창건했다고 한다. 이 절에는 금당 뒷벽에 경덕왕의 진영을 봉안하고, 신라의 이름난 화가인 솔거가 그린 유마상이 있었다고 한다. 폐사 연대는 전하지 않으며 현재 금당지로 추정되는 건물지에는 민가가 들어서 있고, 그앞 좌우에 2기의 3층석탑(보물 제72호와 보물 제73호)이 있는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가람배치인 쌍탑가람식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외에 강당지로 보이는 넓은 건물지에 초석들이 남아 있고, 신라 병부령 김헌정金獻貞이 지은 신행선사비 편과 1159년에 입적한 탄연의 대감국사비 편 등이 발견되었다. 근처에는 최치원이 쓴 '廣濟嵓門'이 새겨진 바위가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통정通亭 강회백(1357~1402)이 심었다는 정당매政堂梅가 있는데 매각梅閣은 1915년에 매비의 건립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정당매각政堂梅閣'이란 넉자로 된 현판이 걸려 있으며, 비각 안에는 매각을 세운 연유를 기록한 ‘정당매각기政堂梅閣記'와 통정공의 매화원운梅花原韻의 시와 후손들의 시 여러 편이 걸려 있다. 현재 이 정당매는 1982년 11월 10일자로 경상남도의 도나무(고유번호 12~41호)로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화미華靡²⁾ : 화려하고 사치스러움

 

영모재성유감이음永慕齋成有感而吟

 

출처 및 참조
하동누정재지-하동문화원/경남인쇄소(1997.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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