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진주시 사봉면 부계리 진주강씨 영사재 永思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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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경남의 진주강씨 누정재

2021. 11. 11.

2021.8.19. 진주시 사봉면 부계리 진주강씨 영사재永思齋

진주시 사봉면 부계리 475(부계길 104-4) 부동마을에는 진주강씨晋州姜氏 박사공博士公 1세 계용啓庸의 15세 통훈장락원정通訓長樂院正 진길晋吉을 모시는 재실 영사재永思齋가 있다. 이곳을 고도계는 높이 41m, 위도 35°11'18"N 경도 128°18'48"E를 가리킨다. 

 

2021.8.19. 진주시 사봉면 부계리 진주강씨 영사재永思齋 대문

영사재永思齋의 가계를 살펴보니 박사공博士公 1세 파조派祖 계용啓庸, 2세 급사공給事公 인문引文, 3세 어사공御使公 사첨師瞻, 4세 진원부원군晋原府院君 창귀昌貴, 5세 문경공文敬公 군보君寶, 6세 공목공恭穆公 시蓍, 7세 통정공通亭公 회백淮伯, 8세 대민공戴敏公 석덕碩德, 9세 문량공文良公 희맹希孟, 10세 숙헌공肅憲公 귀손龜孫, 11세 부사府使 태수台壽(1479~1526)), 12세 사용 복復(1508~1529), 13세 적순부위迪順副尉 극근克謹(1529~1550), 14세 통덕랑通德郞 천경千慶, 15세 통훈장락원정通訓長樂院正 진길晋吉, 진길공晋吉公은 아들이 둘이니 16세 계후繼後와 신후愼後이다. 

 

행원문行源門
2021.8.19. 진주시 사봉면 부계리 진주강씨 영사재永思齋


영사재永思齋 옆에 공터가 있어 주차가 가능하다. 대문에는 행원문行源門이라 편액 했고, 재실의 처마 밑에는 영사재永思齋 이름 했으며, 기둥과 문기둥에는 주련을 걸었다. 오른쪽 방문위에 화수헌花樹軒이라 편액했고 대청에는 영사재기永思齋記와 영사재상량문永思齋上樑文이 있으며, 후손 경수慶守가 지은 영사재원운永思齋原韻이 걸려 있다.

 

2021.8.19. 진주시 사봉면 부계리 진주강씨 영사재永思齋
영사재永思齋
화수헌花樹軒
영사재永思齋 주련
영사재永思齋 주련
영사재기永思齋記

永思齋記
夫豺獺微物也 猶知報本况人 而薄於祖先乎 故聖人有訓愼終追遠 則民德歸厚矣 爲人子孫者 可部念哉 曰晋州姜慶守 介其族兄執中來謂余曰 吾世家於州之東 富溪里 山明水瀅境窃 而洞闢可耕可居也 吾先祖文良公諱希孟 七世孫諱晋吉 始自湖南之靈光來居耕讀於 是歿葬於 是子姓因居 而累世先壟亦在於是也 歲篤一祀 久闕丙舍雲仍齎恨乃於 己亥春取族謀議 就其居村 曠間之地 刱建齋室 以爲齊明承事之所 兼欲子孫肄業承先裕 後可謂兩進於不休哉 功旣訖取 詩經永言孝思之意 扁曰永思而徵記于余 余起而復曰 世敎衰人多忽於報本 而惟姜氏諸族 能識民德 歸厚之道也 錫類之慶 其將儲毓於無窮矣 然追遠之道 每患終怠 則請姜氏諸君子 以今日之心 世世爲心 孝於斯悌於斯聿修厥德不但 爲墟墓間興衰之思 則齋扁之義不其虛矣 詩云夙興夜寐母忝所生 嗚呼後之人其勉乎哉 始終董其役 而殫誠者 十一世孫慶守甲中其人也 
峕辛丑秋七月望 恩津 宋在晟記 

영사재기
늑대와 물개 같은 미미한 짐승들도 오히려 자기의 근본을 알고 보답을 할 줄 아는데 하물며 사람이 어찌 선대 조상에게 박할 수가 있겠는가. 고로 성인이 훈계하기를 상례를 잘 모시고 제사를 정성껏 잘 모시는 것은 백성으로서 후한 덕을 얻은 것이다. 사람의 자손 된 자는 가히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말하기를 진주에 사는 강경수姜慶守가 그 집안의 형인 집중執中의 소개로 와서 나에게 하는 말이 우리 집안은 고을의 동쪽 부계리富溪里는 산수가 아름답고 그 땅이 고요하고 마을이 널찍하니 가히 경작하기 좋고 가히 살만한 곳이었다.
나의 선조님은 문량공文良公으로 이름이 희맹希孟이고 7세손 되시는 이름이 진길晋吉선조께서 처음 호남의 영광靈光에서 오셔서 터를 잡고 농사를 지으시고 글을 읽으시면 사시다가 이곳에서 돌아가셔서 장사지내니 이로 인하여 자손들이 성씨를 이루어 살아가며 누세累世에 걸쳐 선영도 역시 이곳에 있다.
일년에 한번씩 제사를 두터웁게 지내나 오래도록 집이 없었는데 후손들이 한스럽게 여겨서 기해己亥(1959)년 봄에 일가들이 상의해서 살고있는 마을의 중간 넓은 곳에 터를 취하여 재실을 창건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마음을 가지런히 해서 제사를 지내는 장소 겸 자손들이 공부하며 배우며 익힐 수 있도록 하고져 선영의 좋은 미덕을 이어받아서 후손을 유복하게 한 것은 가히 두 가지 일을 게을리하지 않음이다. 노력 끝에 재실의 일이 끝났으니 나에게 글을 지어 주라고 청했다.
시경의 영언효사永言孝思의 뜻을 취하여 현판 이름을 영사永思라고 부르기로 기록하였다. 내가 글 쓸 생각이 일어나서 다시 말하기를 세상의 교화가 쇠퇴하고 많은 사람이 효와 조상 받들기를 소홀히 하는데 오직 강씨 제족들은 제사를 잘 지내고 부모를 잘 모시는 일을 터득하고 자손이 복을 받는 것을 좋은 교육으로 키워 무궁토록 하는 것이 복 받는 것이다.
연이나 오래도록 옛 선조님을 잘 모시는 길은 조상을 추모하는 길이다. 매양 게으를 것을 걱정한다. 즉 강씨 제군자에게 청하건대 강씨 여러분들은 오늘의 마음을 대대로 이어가며 효도하고 우애하여 선조의 덕을 사모하라. 
성묘하고 추모하며 슬픈 마음이 일면 현판의 뜻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서 부지런히 노력하여 나의 조상에게 부끄럽지 않게 한다. 오호라 후손들은 근면을 아니할 수 있을까.
시종 그 일을 맡아서 오직 성심을 다한 사람은 그 11세손 경수慶守 갑중甲中 그 사람이다.
때는 辛丑(1961)년 가을 7월 15일 은진 송재성宋在晟 짓다.

영사재상량문永思齋上樑文
영사재원운永思齋原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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