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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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 미천면 벌당리 진주강씨 모선재 慕先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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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경남의 진주강씨 누정재

2021. 11. 20.

2021.7.10.진주시 미천면 벌당리 진주강씨 모선재慕先齋 모습

진주시 미천면 벌당리 102(오방로311번길 7-16) 정호正狐마을에는 진주강씨 은열공殷烈公 1세 민첨民瞻의 32세 하당荷堂 강우탕姜宇湯과 아들 33세 요鐃와 주현周鉉을 제향하는 모선재慕先齋가 있다. 이곳을 고도계는 높이 33m, 위도 35°16'19"N 경도 128°07'44"E를 가리킨다.

 

2021.7.10.진주시 미천면 벌당리 진주강씨 모선재慕先齋 솟을대문

모선재慕先齋의 가계를 살펴보니 은열공殷烈公 1세 민첨民瞻으로부터 2세 태자태사太子太師 단旦, 3세 대언예빈경代言禮賓卿 보輔, 4세 좌승일본문과부左丞一本文科府 삼중대광三重大匡 검교좌정승檢敎左政丞 정협貞叶, 5세 판삼사사判三司事 전법사판서典法司判書 추성익대공신推誠翊戴功臣 려익呂翼, 6세 태자첨사太子詹事 첨사공파조詹事公派祖 원감元鑑, 7세 삼중대광三中大匡 문하시중門下侍中 시호諡號 충경공忠敬公 정靖,  8세 비서좌사秘書佐事 숭문관학사崇文舘學士 상주목사尙州牧使 순珣, 9세 예빈경禮賓卿 조祚, 10세 호부시랑참지정사戶部侍郎參知政事 유惟, 11세 부사府使 대규大珪, 12세 조부대부상서朝議大夫尙書 여위汝渭, 13세 상호군치사上護軍致仕 유노惟老, 14세 구인제생일본운求仁齊生一本云 신좌臣佐, 15세 도관좌랑都官佐郎 득시得時, 16세 병조판서좌우위보승낭장兵曹判書左右衛保勝郎將 보충輔忠으로 이어지며, 16세 보충輔忠이 판서공파判書公派의 파조派祖가 된다.
판서공파判書公派의 파조派祖이며 은열공殷烈公 16세 보충輔忠, 17세 순천부사順天府使 용이用鯉, 18세 광양현감光陽縣監 희여希呂, 19세 영등만호永登萬戶 취就, 20세 상호군上護軍 지持, 21세 회양부사淮陽府使 세호世豪, 22세 오수鰲壽, 23세 심深, 24세 덕용德龍, 25세 득윤得胤, 26세 단壇, 27세 한주翰周, 28세 여익 汝益, 29세 영운影運, 30세 흠한欽翰, 31세 봉학鳳鶴, 32세 우탕宇湯, 33세 요鐃, 34세 인수麟洙, 35세 원상元相, 36세 병연炳連으로 이어진다.
또한 32세 우탕宇湯에서 작은아들 33세 주현周鉉, 34세 성원聖院, 35세 상만相萬, 36세 병갑炳甲으로 가계를 잇는다.

 

추사문追思門 편액

모선재慕先齋의 솟을삼문에는 추사문追思門이라 편액 했고, 재실의 기둥에는 주련을 달았으며, 처마밑에는 모선재慕先齋라 편액했다. 대청에는 기문 등이 있었지만 샤시문을 열지 못해 촬영할 수가 없었다. 

 

2021.7.10.진주시 미천면 벌당리 진주강씨 모선재慕先齋
모선재慕先齋 편액

慕先齋記
晋之北美川之伐塘 有瓦室一棟 翼翼負兌 而向震者 雪梅里姜氏一派 荷堂處士之墳庵也 後裔繁昌 而宗老相議曰 宣有齋所一室 而蠲潔致誠可矣 皆曰是也 於是各責所任 而聚錢募材 始役於辛未春 而告訖 於是歲晩秋 四楹三架也 荷堂處士公諱宇湯字英端 有二男長秀士公諱鐃 次秀士公諱周鉉 同堂奉安亦孝事也 其後孫龍根炳甲二人 訪余曰 吾宗孫炳連以外擧宗願策一室 而奉安先祖 此吾宗之幸望也 今年始遂願求文以來 此余知姜氏一門之篤實 又余所居相隣 吾何以不文辭之 按於史記 齋舍刱建之案 始出於新安朱夫子 而今去七百餘歲後 惟其風化之篤 儒家之常法 可謂偉且大矣 荷堂處士公平生行度人尊敬奉勤事耕穡 可謂後人之可則也 爲其先祖必有齋舍 而追遠永慕 爲其後孫必修楔事 而和睦敦親 此豈非吾儒務望之一事者乎 范文正公曰 吾吳中宗族 甚象於吾固有親疎 吾祖宗視之 則均是子孫 固無親疎也 苟祖宗之意 無親疎 則饑寒者吾安得不恤也 自祖宗來 積德百餘年 而始發於吾得至大官 若獨亨富貴 而不恤宗族 異日何以見祖宗於地下 今何顔入家廟乎 於是恩例俸賜常均於族人 幷置義田宅云 此吾東洋民族 萬世之效承美法者也 今見姜氏慕先齋楔事 亦雖有大小强弱之差異 而其慕先愛族之義則同也 故取其義而記之云爾
檀紀四三二五年 歲在壬申正月中浣 密城 朴東桓 記

모선재기
진주의 북쪽 미천면美川面 벌당리伐塘里에 기와집 한 채가 나는 듯이 서西를 등지고 동東을 향한 것은 설매리雪梅里 강씨의 한 파派 되는 하당처사荷堂處士의 묘소를 수호하는 집이다. 후손들이 번창하여 집안 어른들이 서로 의론하여 말하기를 마땅히 재실 한 채를 두어 깨끗하게 정성을 드리는 것이 옳은 듯 하다고 하니 모두 말씀을 옳게 여겨 이에 각각 그 소임所任을 맡아 돈을 모으고 재목材木도 모아서 신미년辛未年 봄에 일을 시작하여 이해 늦은 가을에 마치니 세칸三間 집이다. 하당처사공荷堂處士公의 이름은 우탕宇湯이요, 자는 영단英端이며 아들 두 분이 있으니 맏의 수사공秀士公¹⁾의 이름은 요鐃²⁾요, 다음의 수사공秀士公 이름은 주현周鉉³⁾이니 같이 당堂에 모시는 것이 또한 효도스러운 일이다.
그 후손 용근龍根⁴⁾과 병갑炳甲⁵⁾ 두 사람이 나를 찾아와서 말하기를 우리 종손 병연炳連⁶⁾ 이외에 온 집안이 선조先祖님을 일실一室에 편안히 받들기를 원願하며 이것이 우리 집안의 행망幸望 이었는데 지금에야 드디어 원願대로 이루었으니 글을 구하러 여기 왔습니다. 하니 내가 강씨 일문의 독실篤實함을 알고 또 내가 사는 곳과 이웃이니 어찌 글을 못한다고 사양하리오. 사기史記를 살피건대 재사齋舍를 창건刱建한 안案은 처음 신안주부자新安朱夫子로부터 나왔는데 지금 7백여년이 지난 뒤에도 오직 그 풍화風化의 독실篤實함이 유가儒家의 상법常法으로 되었으니 가히 위대偉大하다 할 것이다. 하당처사공荷堂處士公의 평생에 행한 것이 사람들이 존경尊敬하고 농사農事일에 부지런히 하여 가히 후세 사람들이 법法 받음직하니 그 선조를 위하여 반드시 재사齋舍를 두어 길이 사모하고 그 후손들이 반드시 닦아 화목하고 돈친敦親하니 이것이 선비들이 힘써 노력해야 하는 한가지 일인지라.
범문정공范文正公⁷⁾이 말하기를 우리 오중吳中에 사는 종족宗族들이 심甚히 많으니 나에게 있어서 진실로 가깝고 먼 이가 있거니와 우리 조종祖宗께서 보신다면 다 같은 자손인 것이라 다 가깝고 먼 이가 없을 것이다. 진실로 조종祖宗님의 뜻에 먼 이가 없을 진대 주리고 추워하는 이를 내 어찌 근심하지 않으리요 조종祖宗으로부터 덕을 쌓아온지 100여년 만에 비로소 나에게 이르러 큰 벼슬에 이르니 만약 홀로 부귀富貴만 누리고 종족을 근심하지 아니한다면 다른 날에 무엇으로써 지하에서 조종祖宗을 볼 것이며 지금 무슨 낮으로 가묘家廟에 들어 가리요 하고 아울러 의전택義田宅⁸⁾를 두게 되었다고 하니 이러한 것은 우리 동양민족東洋民族들의 만세萬世로 본받아야 할 아름다운 법이니라.
이제 강씨姜氏의 모선재慕先齋 설사楔事도 역시 크고 적거나 강하고 약한 차이는 있어도 그 선조를 숭모하고 친족을 사랑하는 의치義致에는 다 같은 고로 그 의義를 취하여 기록한다.
단기 4325(서기 1992)년 
임신壬申(1992) 1월 중순 밀성 박동환朴東桓 짓다.

【주석】 
수사공秀士公¹⁾ : 학식과 덕행이 뛰어난 선비
요鐃²⁾ : 
주현周鉉³⁾ : 
용근龍根⁴⁾ : 
병갑炳甲⁵⁾ : 
병연炳連⁶⁾ : 
범문정공范文正公⁷⁾ : 범중엄范仲淹은 송대宋代에 실존했던 인물로서, 시호諡號가 문정공文正公이다. 범중엄范仲淹의 이야기는 「범문정충절언행록」이라는 소설작품으로 전하며 범중엄范仲淹·범순인范純仁·범성范星의 3대에 걸친 범씨 가문의 이야기이다. 
의전택義田宅⁸⁾ : 전장田庄을 마련하여 빈곤한 친족을 부양하고 혼인과 상장喪葬의 비용을 도움. 지금의 장학사업과 비슷함.

 

모선재慕先齋 주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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