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 진주강씨 경모재 景慕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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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경남의 진주강씨 누정재

2021. 11. 24.

2021.10.4.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 진주강씨 경모재景慕齋 전경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 501(광제산로938번길 20)에는 진주강씨晋州姜氏 은열공殷烈公 1세 민첨民瞻의 17세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밀양부사密陽府使 성재誠齋 응태應台의 후손 통덕랑通德郎 인진仁震과 그 아들 동호공東湖公 문호文浩와 밀제공蜜齋公 형무亨武 및 익무益武, 봉무鳳武와 인재공忍齋公의 아들 병대柄大 등을 제향祭香하는 곳으로 1991년에 세운 재실 경모재景慕齋가 있다. 이곳을 고도계는 높이 111m, 위도 35°17'30"N 경도 128°01'55"E를 가리킨다.

 

정례문正禮門

경모재景慕齋의 가계에 의하면 진주강씨晋州姜氏 정순공파正順公派의 파조派祖, 은열공殷烈公 11세 원발元發로부터 12세 비毖[比心], 13세 자경自警, 14세 추충공신진주군推忠功臣晋州君 욱勖, 15세 한림원翰林院 안중安重, 16세 사천현감泗川縣監 관琯, 17세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밀양부사密陽府使 성재誠齋 응태應台로 이어지며, 응태는 아들 18세 열洌과 거제현령巨濟縣令 강수江叟 로潞를 두었다. 
열洌은 아들이 둘이니 19세 경윤慶胤과 경석慶錫을 두었고, 로潞는 19세 덕윤德胤과 징윤徵胤을 두었다. 이후로는 족보를 보지 못해 기록하지 않으나 보게 된다면 기록으로 남길 예정이다.

 

2021.10.4.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 진주강씨 경모재景慕齋

경모재景慕齋는 1991년 건설됐으며 대문에는 정례문正禮門이라 편액했고 재실의 처마 밑엔 경모재景慕齋라 편액하고 기둥에는 주련을 걸었다. 대청에는 경모재기景慕齋記가 걸려있다.

 

경모재景慕齋 편액
경모재景慕齋 주련
경모재기景慕齋記

경모재기 景慕齋記
이 경모재景慕齋는 진양강씨晋陽姜氏의 분암墳庵이다. 강씨姜氏는 파조한림대사성派祖翰林大司成 성재誠齋 응태應台가 있고 그 후손後孫 통덕랑通德郞 인진仁震과 그 자호子號 동호東湖 휘문호韓文浩와 그, 자호子號 밀재密齋 휘형무諱亨武 및 익무益武 봉무鳳武와 인재공忍齋公의 자子 병대柄大 및 여러 형제兄弟의 묘墓가 그 세거지世居地 명석면鳴石面 일원一圓에 있으므로 여기에 재齋를 세우고 묘사墓祀에 재숙소齋宿所로삼았다. 이곳 강문姜門은 세세世世로 효우孝友의 가풍家風으로 이어져 와서 근세희유近世稀有의 효자인재공孝子忍齋公이 있었으니 후손後孫된 자者로서 선세先世의 유덕遺德을 경모景慕하여 깊히 가모家謨로 삼고 이를 영세永世토록 전승傳承케하려는 것이다. 이는 신천공新川公의 영윤令胤 상순尙淳이 주창主倡하여 일문一門의 합심협력合心協力으로 이루워진 것이나 그의 종제從弟와 재종再從이 공력工力으로 크게 도왔다. 근고지무根固枝茂는 불역不易의 법칙法則이매 지금 운잉雲仍의 번성繁盛은 선세先世의 유덕遺德임을 깨닫고 이 재齋를 세운 뜻을 마음에 새기어 깊히 빛나게 해야 할 것이다. 내후來後를 위爲하여 대략大略 그 전말顚末를 술述한다.
西紀一九九一年辛未 분성후인盆城后人 김상기金尚祈 근찬謹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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