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 진주강씨 경우재 景愚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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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경남의 진주강씨 누정재

2021. 11. 24.

2021.10.4.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 진주강씨 경우재景愚齋 대문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 379(광제산로108번길 30-2)에는 진주강씨晋州姜氏 은열공殷烈公 1세 민첨民瞻의 후손 우제공愚濟公을 모시는 재실 경우재景愚齋가 있다. 이곳을 고도계는 높이 47m, 위도 35°13'31"N 경도 128°02'04"E를 가리킨다.

 

수덕문修德門 편액
2021.10.4.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 진주강씨 경우재景愚齋
2021.10.4.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 진주강씨 경우재景愚齋

경우재景愚齋는 1964년에 우제공愚濟公의 6세손 동생東生과 석순奭淳 등이 지은 진주강씨 재실이다. 대문에는 수덕문修德門이라 편액 했고, 재실의 처마 밑에는 경우재景愚齋라 했으며, 대청 위에는 6세손 영순泳淳이 지은 경우재기景愚齋記와 완산完山 이순필李淳弼이 지은 경우재상량문景愚齋上樑文이 걸려 있다.

 

경우재景愚齋

景愚齋記
我晋陽之氏 自殷烈公開慶之後 其麗不億 而居籍鄉者 允多顯敭 故圃隱先生 飛鳳樓詩曰 地靈人傑姜河鄭 盖記實也 至今稱普陽之三大性 以姜為首 然窃惟姓之所以為大者 必有先租之種仁積德 以裕之於前 而雲仍之孝悌敦睦 以繼之於後 然後有大之名 而有大之實 苟其祖有烈 以不知慕 族雖多而不相親 則是自陷於孤也簿也 奚貴乎為大哉 固知圃老之句 不但止於讚美 而長為吾家之勤勉也 吁亦韙矣 我六代祖嘉善大夫愚濟公 承累世簪纓詩禮之後 自白峴精舍 舊里 移寓于集賢山中 而為子孫遺安之計 至今五六世 後承 蕃衍充間者 何莫非 奠其慮遠之澤也 夫子嘗言 其智可及也 其愚不可及也 智而若愚 正為今日之處世符故 府君之所以自署 而戒于後者也 是以吾輩相與安分守拙 晴耕雨讀 庶幾勿墜於古家模楷 而獨恨夫尚無寓慕齋宿之所 經始閱歲 廼構一齊 而顏之日景愚 門楣日修德 凡吾族之由斯門 登斯齋者 皆知景仰乎愚濟公之遺訓 而聿修厥德 則吾門之昌大 將進 於是而無愧於地靈人傑也 盖相與勉之 實有無窮之望焉 是役也 東生奭淳諸人 尤宣力不可不書云爾 
檀記四二九七年 甲辰十一月上浣 六世孫 泳淳 謹記

경우재기
우리 진양강씨晋陽姜氏가 선조 은열공殷烈公께서 상서로운 터전을 정한 이후로 후손이 그 수를 헤아리지 못한다. 진양晋陽을 관향하여 살고 있는 자, 크게 빛난 분이 많은고로 포은정선생圃隱鄭先生이 지은 비봉루飛鳳樓 시詩에 땅은 신령스럽고 사람이 호걸스러운 강씨姜氏 하씨河氏 정씨鄭氏들이라 하였으니 대개 그 실상을 기록한 것이며 지금도 진양의 삼대성三大性에 강씨姜氏를 제일로 꼽는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건대 대성이 되는바는 앞의 선조先祖들이 어진 덕德을 많이 쌓고 뒷 자손들이 효제孝悌하고 돈목敦睦¹⁾함을 계승한 연후에 대성의 명성과 대성의 실상이 있는 것이다. 진실로 자기 조상의 빛남이 있어도 추모할 줄을 모르고 종족이 비록 많으나 서로 친애하지 못하면 이것은 자기 스스로 외롭고 박약함에 빠질 것이니 어찌 대성의 귀함이 된다하리오? 포은圃隱선생의 시詩가 비단 찬양하는데 그칠 뿐 아니라 기리 우리 집안의 권면勸勉함이 됨을 알겠으니 아! 또한 아름답도다. 우리 육대조六代祖 가선대부嘉善大夫 우제공愚濟公²⁾께서 누대의 벼슬과 시례詩禮³⁾의 뒤를 이어서 백현정사白峴精舍가 있는 옛 고향으로부터 집현산集賢山 밑으로 이거하여 자손들이 편안히 머물 곳을 도모하셨다. 오육五六세가 지난 지금에 후손이 번창하여 마을을 채웠으니 이 어찌 먼 후일을 생각하여 터전을 정한 덕택이 아니리오? 공자孔子께서 일찍 말씀하기를 그 지혜로움은 가히 미칠 수 있으나 그 우직함은 가히 미치지 못하겠다 하였으니 지혜로워도 우직한 것처럼 하는 것이 정히 오늘날을 살아가는 믿음이 되는고로 부군府君께서 자신의 호로써 후세들을 경계한 것이다. 이러므로 우리들 서로가 분수를 편안이하고 졸열함을 지키어 맑은 날엔 밭갈이 하고 비오면 독서하여 거이 고가古家의 법도를 떨어 뜨리지 않게 되었다. 한가지 한恨스러움은 아직까지 선세를 우모寓慕⁴⁾하고 제향때에 제숙齊宿⁵⁾할 곳이 없었음으로 집일을 시작한지 일년만에 재실하나를 세워서 경우재景愚齋라 재호하고 대문을 수덕문修德門이라 이름하였다. 모든 우리 종족으로 이 대문을 거쳐 이 재실에 올라 오는 사람은 다같이 우제우愚濟公이 남기신 교훈을 높이 우러러서 오직 그 덕德을 닦은 즉 우리 집안이 점차 창대昌大해지고 이에 포은圃隱선생이 찬미한 땅은 신령스럽고 사람은 인걸하다고 한 말씀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니 어찌 서로 힘쓰지 않으리오? 실로 무궁토록 바라는 바이다. 이 일에 동생東生과 석순奭淳 두 사람이 더욱 힘썼음으로 가히 이름을 써놓지 않을 수 없는 바이다.
1964년 11월 상완에 6세손 영순泳淳 삼가 짓다.

【주석】
돈목敦睦¹⁾ : 정이 두텁고 화목함
우제공愚濟公²⁾ : 
시례詩禮³⁾ : 여기서는 가문에 이어져 오는 학문과 예절을 말함.
우모寓慕⁴⁾ : 조상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집을 지어 추모함을 뜻함
제숙齊宿⁵⁾ : 제사를 드리기 위해 재계하며 잠자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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