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진주시 명석면 왕지리 진주강씨 수죽정 水竹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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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경남의 진주강씨 누정재

2021. 11. 26.

2021.10.4. 진주시 명석면 왕지리 진주강씨 수죽정水竹亭 전경

진주시 명석면 왕지리 614-3(남성로227번길 9)에는 진주강씨晋州姜氏 은열공殷烈公 1세 민첨民瞻의 후손 강절선생康節先生을 모시는 재실 수죽정水竹亭이 있다. 이곳을 고도계는 높이 47m, 위도 35°15'10"N 경도 128°03'18"E를 가리킨다.

 

2021.10.4. 진주시 명석면 왕지리 진주강씨 수죽정水竹亭 대문
청한문淸閒門

수죽정水竹亭은 추동마을 안쪽 왕지천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대문에는 청한문淸閒門이라 편액하고 정자의 처마 밑에는 수죽정水竹亭이라 했으며, 기둥에는 주련을 걸었고 대청에는 수죽정기水竹亭記, 수죽정상량문水竹亭上樑文과 성파星坡가 쓴 수죽정원운水竹亭原韻이 걸려 있다.

 

2021.10.4. 진주시 명석면 왕지리 진주강씨 수죽정水竹亭
수죽정水竹亭
수죽정水竹亭 주련
수죽정기水竹亭記

水竹亭記
集賢之山 為晋州治北之鎭山 其下之里日樞洞 宜桑麻稻菽 谷窈勢阻 往往有隱君子者 宅於其中 山之以集賢稱宜战 舊有亭在於樞洞溪水之上 處士姜公某所築也 處士歿亭亦隨而廢焉 至今遺址尚存 歲乙亥冬 群裔合辭言曰 詩曰維桑與梓 必恭敬止 况是亭者先祖心力之所彈 杖履之所留 藏修之所安 其為不敢忘 豈特如桑梓之可敬乎 如忍而使其地就荒 不為之復其舊觀 非所以繩祖武 而為來世法也 乃醵金鳩材為屋五架 翼以廚庫門牆 奢儉得中 曠奧咸宜 將以來春大會宗族賓友 以落之先 以事走睿祚君 丐余一言記其楣 余竊謂 處士之取義於水竹何哉 其自爲詩有曰 清閒二美誰能識 蓋亦康節先生水竹清閒先占之意也 然而康節兼 有鸎花之富貴 而處土只有二美之清閒而己 清則無私欲以泊之 閒則無外慕以間之 是以終身沈 晦於集賢山中 名聞不達 而無少悔焉 是其心地之澄 然無事居可知矣 姜氏諸君子 旣知致力於堂構 追舊 而為新 則其亦宜以處士之心為心 固吾之所守而不失其故 常篤吾之所志 而不移於外至 然後 方始為處士之肯承 亦可以無愧於亭名 諸君子以為如何 是為記 
歲乙亥至月下帶 晋山 河謙鎮 記

집현산集賢山이 진주 북쪽 주산으로 되어 있다. 그 아래 위치한 추동樞洞마을은 뽕나무와 삼, 벼와 콩이 잘되고 골이 깊은데다 지세가 막히어 간혹 숨은 선비가 그 가운데 나게 되었으니 산 이름을 집현集賢이라 한 것이 마땅하다 하겠다. 예전에 추동시내 위에 정자가 있었으니 처사處土 강공姜公이 지은 집이었다. 처사가 세상을 떠나자 그 집 역시 따라 허물어져 지금 빈터만 남아 있더니 지난 을해년 겨울에 여러 자손이 말하기를 시전詩傳¹⁾에 오직 뽕나무와 다만 가래나무도 반드시 공경해야 된다 했거늘 하물며 이 정자는 선조님의 심력을 다한 바요 신과 지팡이를 머무른 바이요 수양을 편히한 바이니 그 감히 잊지 못할 것이 어찌 뽕나무와 가래나무의 공경함과 같다 하겠는가. 만일 이 땅으로 하여금 비게 하고 다시 옛집을 복구하지 못하면 선조의 슬기를 이어 뒤 자손에게 본뜨게 못할 것이다 하고 이에 돈을 모으고 재목을 내어 3칸 집을 짓고 창고와 대문을 세우니 그 제도가 사치하지도 않고 검소하지도 않아 넓고 깊은 것이 모두 마땅하게 되었다. 장차 명년 봄에 종족과 손님을 크게 모아 낙성을 먼저하고 예조군睿祚君을 보내어 나에게 기문을 청하는 것이라 내 저으기 이르기를 처사가 물과 대를 취한 뜻이 어디에 있는가 그 스스로 지은 시詩에 하기를 맑고 한가한 이 두 가지 아름다움을 뉘가 능히 알 것인고 하였으니 대개 이것이 강절선생康節先生²⁾의 물과 대 맑고 한가함을 먼저 점령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강절康節은 앵화鸎花 부귀富貴를 겸하여 전하고 있었지만 처사는 다만 두 아름다움의 맑고 한가한 것뿐이니 맑으면 욕심에 빠지지 않고 한가하면 바깥 생각이 없게 되는 것이니 이로써 몸이 다하도록 집현산 가운데 숨어 살면서 이름이 나지 아니해도 조금도 후회 없었으니 이는 그 마음가짐이 깨끗하여 일이 없는 것을 알겠다. 강씨 여러분이 이미 힘을 집 세운데에 다하여 옛 것을 회복하고 새것을 만들 줄 알았으면 또한 마땅히 처사의 마음으로 마음을 삼아 나의 지킬 바를 굳게하여 그 옛날의 떳떳함을 잃지 아니하고 나의 뜻하는 바를 독실히 하여 밖으로 옮기지 아니한 뒤에라야 바야흐로 처사의 어진 후손이 될 것이요 또 가히 정자의 이름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니 여러분은 써 어떻다 할 것인고, 이렇게 기문하노라.
1935년 11월 하순에 진산晋山 하겸진河謙鎭 짓다.

【주석】
시전詩傳¹⁾ : 시경詩經을 주해한 책
강절선생康節先生²⁾ : 

 

수죽정상량문水竹亭上樑文
수죽정원운水竹亭原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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