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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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 명석면 왕지리 진주강씨 석원정 石原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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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경남의 진주강씨 누정재

2021. 11. 27.

2021.10.4. 진주시 명석면 왕지리 진주강씨 석원정石原亭 대문

진주시 명석면 왕지리 38(남성로227번길 25-1)에는 진주강씨晋州姜氏 은열공殷烈公 1세 민첨民瞻의 후손 삼악三岳 강공姜公을 기리는 석원정石原亭이 있다. 이곳을 고도계는 높이 52m, 위도 35°15'15"N 경도 128°03'18"E를 가리킨다.

 

유본문有本門 편액
2021.10.4. 진주시 명석면 왕지리 진주강씨 석원정石原亭 전경

석원정石原亭은 마을 뒤편 산 가장자리에 위치하는데 대문이 잠겨 있어 더 이상 구경할 수가 없었다. 대문에는 유본문有本門이라 편액했다.

 

2021.10.4. 진주시 명석면 왕지리 진주강씨 석원정石原亭

石原亭記
黄梅之山 遥遥南馳三四十里 至丹晋之交忽峻拔開張 作兩翼焉 其西曰廣濟 東曰集賢 實為晋冶鎭山 而相距纔三十里中間 落脈蜿蜒十里而止 曰樞洞 晋陽姜氏之世庄也 山下古有鳴石之異 而有泉滃然出於其間 下至河邊頗湛湛泓渟 鑑明玉澄 居人截而為洑 有灌溉之便 兩岸竹樹 蔥蒨郊原膏沃 以樂土聞焉 沿流至觀旨口左右夾水相合 為羅佛川 勢盛屈曲 延十餘里 過晋陽城西 入藍江 以到於海矣 處士姜公譯三岳之墓 在樞洞西隅 余頌年最公之行而涴其碣矣 今秋姜君外俊 訪余寓園之弊居 請其所為公 新築丙舍三間 左右夾室 及正門之名 與記曰 欲徼吾子之 手惠以輝吾七世祖府君之隱德焉 余雖不辭 而公事行旣盡著於碣 而無餘蘊矣 卒卒不能滋筆 遲延屢月 而始命其亭 名曰石原 以其在鳴石泉原之上 左右夾室曰 如見如在 取戴記祭禮中語 門曰有本 用孟子原泉混混不捨 晝夜盈科 而後進放乎 四海有本者 如是之義也 盖公以仕宦名閥後裔 世居于此 以勤儉為生 孝友為行 垂範于子孫者 不過二百餘年之久 而以門戶繁衍 田原富饒 屈指鄉中 是猶夫泉之發原 而為川為江 而達于海矣 諸君益厲不懈 則安知異日不大其家 而國而天下 以復其先世 將相功業之赫赫照史乘也哉 此亭名之有深意者然也 吾知諸君固已知此義 雖然亦不可以不加勉 故敢究言之如此 若其烟霞洞壑之勝 竹樹郊原之景 吾將獲參於飲落之宴 以追補之有其日 而未為晚也 是為之記
歲乙卯 重陽節 晋山 河義鎭 記

석원정기
황매산 일지맥이 남으로 30~40리 달려가서 단성丹城과 진주 경계에 이르러 공중에 너울거리면서 두 나래를 지었으니 그 서쪽은 광제산廣濟山이요 그 동쪽은 집현산集賢山이니 실로 진주의 주산이 되었고 그 서로의 거리가 30리 중간에 한 지맥이 10리로 솟아오르면서 마을을 이루고 있으니 말하길 추동이니 진양 강씨가 대대로 살아온 마을이다. 그 산 아래에 예전으로부터 돌이 울었다는 이상한 전설이 있었고 샘물이 그 아래에 흘러내려 마을가에 이르러 옥과 같이 깨끗하므로 마을 사람들이 그것을  보로 만들어 물 대는 데에 편리함을 삼았고 그 두둑에는 대나무가 울창하고 밭들이 기름져서 낙토樂土로 소문이 있었고 관지觀旨에서 흐르는 물이 좌우로 끼고 내려와서 나불천羅佛川에 이르러 굽이를 지으면서 10여리를 내려가 진양성 서쪽으로 돌아들어 남강에 들어가 바다로 빠지게 되었다. 
처사 강공 삼악三岳¹⁾의 무덤이 추동 서쪽 기슭에 있으니 내가 지난해에 공의 행적을 뽑아 그 묘갈명을 지은 일이 있었다 올해 가을에 강군 외준外俊이 나를 우원寓園에 찾아와서 처사공을 위하여 3칸집과 좌우 협실과 정문을 지었다는 말을 전하고 그 이름과 기문을 청하면서 우리 7대조의 숨은 덕의를 빛내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내 비록 사양하지 못하나 공의 사적을 이미 묘갈명에 다 기록하였으니 거듭 말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여러 달을 지내오다가 비로소 그 정자 이름을 석원정石原亭이라 하니 명석면 샘물 두둑에 있다는 것이요. 왼쪽 집은 여견如見이라 하고 오른쪽 집은 여재如在라 하니 제례에 있는 말을 취한 것이었고 문을 가로되 유본有本이라 하니 맹자의 말씀에 원천이 흘러내려 주야로 쉬지 않고 수문에 차고 난 뒤에 사해로 흘러가게 되니 근본이 있는 것은 이와같다 하는 그 뜻을 취함이었다. 대개 공이 사환명벌仕宦名閥²⁾의 후손으로 대대로 여기에 살면서 근검으로 생업을 삼고 효우로 행실을 삼아 그 슬기를 자손에게 물려준 지 불과 200여년이었다. 자손이 번창하고 농사가 부유하여 온 고을에 굴지屈指³⁾하는 문중이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샘물이 흘러서 냇물과 강물을 이루어 바다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하겠다. 여러 자손이 그 슬기를 이어받아 언제라도 게을리 하지 아니하면 뒷날에 그 집을 국가와 천하에 크게하여 그 선대의 공업을 오는 역사에 더 훤칠하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것이 이 정자의 이름이 깊은 뜻을 가졌다는 것이니 여러 후손이 이 뜻을 알아서 더욱 힘써야 되지 않을 것인가 감히 이와 같이 말하면서 그 마을의 경치와 그 들판의 아름다움은 내가 장차 낙성하는 잔치에 가서 적어줄 날이 있겠기로 이것으로써 기문하노라.
1975년 음력 9월 9일에 진산晋山 하의진河義鎭 짓다.

【주석】
삼악三岳¹⁾ : 
사환명벌仕宦名閥²⁾ : 나랏일을 맡아보는 벼슬을 한사람이 많은 집안을 말함.
굴지屈指³⁾ : 여럿 가운데에서 손가락을 꼽아 셀 만큼 뛰어남

 

출처와 참조

진주누정지-진주문화원/동아인쇄 출판사(199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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