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진주시 명석면 왕지리 진주강씨 경덕재 景德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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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경남의 진주강씨 누정재

2021. 11. 28.

2021.10.4. 진주시 명석면 왕지리 진주강씨 경덕재景德齋 전경

진주시 명석면 왕지리 633(남성로227번길 13-2)에는 진주강씨晋州姜氏 은열공殷烈公 1세 민첨民瞻의 후손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지낸 일소헌一笑軒 강공姜公을 제사하는 곳으로 1993년에 세운 재실 경덕재景德齋가 있다. 이곳을 고도계는 높이 50m, 위도 35°15'12"N 경도 128°03'18"E를 가리킨다.

 

2021.10.4. 진주시 명석면 왕지리 진주강씨 경덕재景德齋 정면
2021.10.4. 진주시 명석면 왕지리 진주강씨 경덕재景德齋 대문

경덕재景德齋의 솟을대문에는 유광문流光門이라 편액했고, 재실에는 경덕재景德齋라 이름했으며, 기둥에는 주련을 걸었고 마당에는 추모조부지시비追募祖父之詩碑를 세웠다. 대청 위에는 경덕재기景德齋記와 경덕재상량문景德齋上樑文이 걸렸으며 경덕재원운景德齋原韻이 있으며 각방문 위에는 성경당誠敬堂과 염수헌念脩軒의 편액이 걸려 있다.

 

유광문流光門
2021.10.4. 진주시 명석면 왕지리 진주강씨 경덕재景德齋
경덕재景德齋
추모조부지시비追募祖父之詩碑

追募祖父之詩碑 조부를 추모하는 시비
集賢山下閥豪居 집현산 아래에 대벌족이 살았나니
萬古流芳繁盛廬 오래토록 평화롭게 살았음이라.
景德齋成百代持 경덕재가 완성되어 오래토록 유지하고
笑軒英傑巷知餘 조부님 기상은 세상이 아는바라.
救生匪亂民歸化 동학혁명 때 무고한 백성의 죽음을 면하게 하셨고
賑濟春窮衆所閭 흉년에 굶주린 백성에게 창고를 열어 구제하였네
孝悌忠於而信故 부모에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벗에게는 믿음을 주어
子孫追慕久傳書 자랑스런 조부님을 생각하면서 이 글을 전하리라.
1998년 윤 5월 일
손자 의조宜祚 짓다.

 

경덕재景德齋 주련
경덕재기景德齋記

景德齋記
先祖之垂統於前者 莫如以德 子孫之追慕於後者 莫如以誠 非其德 無以為創業之本 非其誠 無以為纘緒之義 故是德與誠 相腑於前後 一家之道立 而萬世之福 成者必然之理也 近故晋之樞洞 有通政大夫司憲府監察一笑軒姜公 幼而就學 不待教督 能知自勵 及長 風標慰傑 志氣豪俠 遠近人士 莫不以當世豪傑 稱之 公嘗治舉子業 初拜明陵參奉 尋除司憲府監察 錦衣還鄉 卜日饗宴 一時會者 數百人 自是聲名大著 及東匪之亂 晋境尤甚 生民之塗炭極矣 公進言於官府 以歸化證 交付于民 救活者至於無算 每値歲歉春窮 開廩以賑之 以濟貧乏 孝誠出於天赋 事親志體俱養 及遭兩艱 哀毁踰禮 虔於報本 先塋具儀物 與諸族 重修誠齋公旌閭 刱建殷烈公影閣 修大譜 以明昭穆 遭國恥 以全節義 是豈非垂統之以德者歟 公己發百餘年 後孫蕃衍 多有榮達 迺相與議曰吾祖 當思慕之 不可無尊事之地 逐募金合力 就所居里中 占擇嘉基 方其始役 群工獻圖 寫材掄其鉅 發石擇其良 副椽桷而通其高 畫棟樑而致其巧 得於華者 無不足於莊嚴 得於精者 無不足於通暢 制度宏而規模密 軒堂麗而房室美 歲時以 為虔齊之所 朝夕以為敦睦之地 是豈非追慕之以誠者歟 至是以其名與記 來余而請之余不辭 迺大書高揭曰景德齋 盖公之生平所行 是為德之發於心而澤流於後 不可誣也 令其後孫 能篤於堂搆 始終不懈益废 迺竣厥功 非誠之至 而能然乎 盖亦公之德之深 澤之遠者 有以啟之也 斯其為德與誠之相孚 而一門道義之傳承 萬世福祿之隆昌 旣此而可下也己 是齋之刱在癸酉 春而令孫宜祚 英祚及會孫東均 出鉅資而助成 其誠義有至故 特書以發之 
東方紀元四千三百二十六年癸酉立秋節宗下姜錫錕 謹記

경덕재기
선조가 앞을 닦아 슬기를 남기는 데에는 덕보다 나을 것이 없고 자손이 뒤를 이어 사모하는 데에는 정성보다 더할 것이 없다. 그 덕이 아니면 창업의 근본이 될 수 없고 그 정성이 아니면 계승의 보람이 될 수 없다. 그러기에 이 덕과 정성이 앞뒤로 어울려 한 가정의 도의가 서게 되고 만대의 복록이 이루어지는 것은 이 또한 필연의 이치일 것이다.
근대 진주 추동樞洞에 통정대부通政大夫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일소헌一笑軒 강공姜公이 어릴 때 입학하여 독촉을 기다리지 않고 능히 스스로 힘쓸 줄을 알다가 장성함에 미쳐 풍채가 훤칠하고 지기가 호협豪俠¹⁾하여 그곳의 인사들이 당대 호걸이라고 일컫게 되었다. 공이 일찍 과거에 종사하여 처음 명릉참봉明陵參奉을 절하고 그 뒤에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로 제수되어 금의로 환향하고 경사스런 잔치를 열 적에 모인 자 수백인이라 이로부터 성명이 크게 나타났더니 동비東匪의 난리²⁾에 미쳐 진주지경이 더욱 심하여 생민의 도탄이 극도에 이르렀다. 공이 관부官府에 진언하여 귀화증歸化證으로써 민중에게 교부하고 구환해 살린 자 헤아릴 수 없게 되었고 매양 흉년과 춘궁기春窮期를 당하면 창고를 열고 굶주린 사람을 먹이고 가난한 이를 건져주었으며 효성으로 하늘에 타고 나서 어버이를 섬길 적 뜻과 몸을 함께 봉양하다가 양친상을 당하여 애통이 예제에 지나쳤고 위선에 정성이 많아 선대 무덤에 석물을 구비하고 여러 종족과 더불어 성재공誠齋公³⁾ 정려를 중수하며 은렬공殷烈公 영각을 창건하고 대보大譜를 닦아 소목昭穆⁴⁾을 밝게 하고 국치國恥를 당하여 절의를 지켰으니 이 어찌 슬기를 덕으로써 남김이 아닌가. 공의 세상 떠난 백여년에 후손이 번창하고 영달한 사람이 많았더니 이에 서로 의논하기를 우리 할아버지를 사모할진대 섬길만한 땅이 없어서는 아니 된다 하고 드디어 돈을 모으고 힘을 합하여 마을 가운데에 좋은 터를 가리고 그 역사를 시작할 적에 여러 목공이 설계도를 올려 재목을 낼 적에 그 큰 것을 가리고 돌을 다듬을 적에 그 어진 것을 취하여 부연을 달아 공중에 너풀거리게 하고 기둥을 아로새겨 교묘하게 만들어 화려하면서 장엄하지 않음이 없고 정밀하면서 통창通暢⁵⁾한데 부족함이 없게 되어 제도가 굉장하고 규모가 조밀하여 헌당이 훤칠하고 방실이 아름다워 제사 때에 재계할 장소가 되고 아침저녁으로 돈목할 땅이 되게 하니 이 어찌 사모함을 정성으로써 함이 아니런가. 이에 이르러 그 이름과 기문을 나에게 와서 청하거늘 내 사양하지 않고 크게 써서 드높이 걸어 가로되 경덕재景德齋라 하니 대개 공의 한 평생 행한 바가 이것이 모두 덕이 마음에서 발함이요, 유택이 뒤에 흘러내림이 된 것을 가히 속일 수 없고 이제에 그 후손이 집짓는 데에 힘을 써 처음에서 끝까지 게을리하지 않고 준공에 이르게 되었으니 정성의 지극함이 아니면 어찌 이렇게 할 것인가. 대개 공의 깊은 덕과 먼 유택이 열어주심이라 하겠으니 이것이 덕과 정성이 서로 어울려 한 가문 도의의 전승과 만대 복록의 융창을 여기에 나아가 알 수 있겠다. 이 재실의 창건이 계유년 봄에 있었는데 영손令孫⁶⁾ 의조宜祚와 영조英祚 및 증손 동균東均이 거액을 내어 도와 이루게 하였으니 그 정성이 매우 지극하므로 특별히 써서 세상에 알리노라.
1993년 8월 8일 강석곤姜錫錕 삼가 짓다.

【주석】
호협豪俠¹⁾ : 호탕하고 의협심이 있음
동비東匪의 난리²⁾ : 동학혁명
성재공誠齋公³⁾ : 은열공殷烈公의 17세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밀양부사密陽府使 강응태姜應台의 호號이다. 성재공誠齋公의 6대조는 정순공파正順公派의 파조派祖  강원발姜元發로 은열공의 11세이다.
소목昭穆⁴⁾ : 사당에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차례
통창通暢⁵⁾ : ① 막힘이 없다 ② (문장이나 생각이) 유창하다 ③ 잘 통하다 ④ 원활하다 ⑤ 앞뒤가 들어맞고 분명하다
영손令孫⁶⁾ : 남의 손자孫子를 높여 일컫는 말.

 

경덕재상량문景德齋上樑文
경덕재원운景德齋原韻
성경당誠敬堂
염수헌念脩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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