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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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 명석면 우수리 진주강씨 수덕재 修德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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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경남의 진주강씨 누정재

2021. 11. 29.

2021.10.4. 진주시 명석면 우수리 진주강씨 수덕재修德齋 전경

진주시 명석면 우수리 287(판문로 528-5)에는 진주강씨晋州姜氏 은열공殷烈公 12세 유수공파조留守公派祖 봉익대부奉翊大夫 개성유수공開城留守公 수명壽明(~1408)과 13세 자헌대부 예조판서 강원량姜元亮을 제향하는 수덕재修德齋가 있다. 이곳을 고도계는 높이 44m, 위도 35°12'44"N 경도 128°01'54"E를 가리킨다.

 

2021.10.4. 진주시 명석면 우수리 진주강씨 수덕재修德齋

수덕재修德齋의 가계를 보니 은열공殷烈公 1세 민첨民瞻으로부터 2세 태자태사太子太師 단旦, 3세 대언예빈경代言禮賓卿 보輔, 4세 좌승일본문과부左丞一本文科府 삼중대광三重大匡 검교좌정승檢敎左政丞 정협貞叶, 5세 판삼사사判三司事 전법사판서典法司判書 추성익대공신推誠翊戴功臣 려익呂翼, 6세 태자첨사太子詹事 첨사공파조詹事公派祖 원감元鑑, 7세 삼중대광三中大匡 문하시중門下侍中 시호諡號 충경공忠敬公 정靖, 8세 비서좌사秘書佐事 崇文舘學士 崇文舘學士 졸우卒于 상주목사尙州牧使 순珣, , 9세 조정대부朝靖大夫 행예빈경行禮賓卿 적𥛚, 10세 조선태조대왕이종朝鮮太祖大王姨從 승사랑承仕郞 내원서승부제학內園署丞副提學 검劒, 11세 봉익대부奉翊大夫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 위량渭良, 12세 유수공파조留守公派祖 봉익대부奉翊大夫 개성유수공開城留守公 수명壽明(~1408)으로 이어져 은열공 12세 강수명姜壽明(~1408)이 유수공파조留守公派의 중시조中始祖가 된다. 
다음으로 13세 자헌대부資憲大夫 예조판서공禮曹判書公 원량元亮, 14세 생원공生員公 철손哲孫, 15세 건원릉참봉공健元陵參奉公 신효愼孝, 16세 통훈대부사옹원봉사通訓大夫司甕院奉事 행하양현감공行河陽縣監公 인보仁輔로 이어지고 강인보姜仁輔는 아들 3명을 두었으니 은열공의 17세 만송공晩松公 렴濂, 순洵, 낙洛을 두었다.

 

2021.10.4. 진주시 명석면 우수리 진주강씨 수덕재修德齋 대문

수덕재修德齋는 1958년 건설되었으며 솟을대문에는 경모문景慕門이라 편액 했고, 재실은 수덕재修德齋라 했으며, 기둥에는 주련을 걸었다. 마당에는 수덕재중건봉성비修德齋重建奉誠碑가 있고, 대청에는 수덕재기修德齋記, 수덕재중건기修德齋重建記, 문화재지정공로현창기문文化財指定功勞顯彰記文, 원운原韻이 걸려있다.

 

경모문景慕門
수덕재修德齋 주련
수덕재修德齋 편액
수덕재기修德齋記

修德齋記
古者 墓有室 所以藏祧主於此 埋于墓左面別起墳庵 所以盡誠於體魄 而合宗族於此 恭修瞻掃之禮 盖肇於唐宋而與漢世 公卿建祠堂於墓所 無幾而 東俗 尤尚焉 根着己深其禮反重於廟矣 晋之北省台里牛首洞 有自成吉阡 實姜氏之嬪貞夫人河東鄭氏所葬 而前距數螩地五美里 其胤子判書公諱元亮衣裒之藏 在焉 判書公 高麗兵部尚書殷烈公之十二世孫 貞夫人 參判貴生 女而奉翊大夫開城留守諱壽明之繼配也 數百來 宰袧成行芻牧 不侵 子孫蕃衍 奉行歲之而尚未有數楹丙舍 盖有待而然 非力不膽也 屬兹戊戌之冬 嗣孫渭成 收議闔宗 相基于貞夫人墓下 鳩材搬瓦 悅使樂趨 欣然而成 以明年秋 落之 敞豁精緻 優為兩代具羞之所而門垣厨胞之屬 備焉 扁曰修德齋 盖取大雅首篇之語也 大旨謂念爾祖則永言配命 修厥德則自求多福 本是期待之意 而直為自任之辭可謂識其大者 而出於常情遠矣 立心如此何事不濟 吾為姜氏發賀不淺矣 渭成適嬰奇𧏮 具事實 屬其大夫在夏君 訪余天嶺之陬求所以識其楣者 於是乎書 俾後之人 知盡誠於墓祭 亦未嘗非先王義起之遺意也
庚子恢台之初吉 永嘉后人 權道溶 記

수덕재기
옛적에 묘에 재실을 두어 신주神主를 여기 모셨는데 후세에 와서는 신주를 묘소에 묻고 묘각墓閣을 세워서 체백體魄에 정성을 다하고 종족宗族이 여기 모여서 묘사墓祠를 지내니 이는 당唐나라 송宋나라 때부터 내려온 풍속으로 한漢나라 때 사당을 묘 곁에 모시는 것과 비슷하니 우리나라는 더욱 이를 숭상崇尙하여 그 예가 사당을 모심보다 더욱 중히 하였다. 진주 북쪽 성태리省台里 우수동牛首洞의 길지吉地에 무덤을 이루었으니 이는 강씨의 부인婦人 정부인하동정씨貞夫人河東鄭氏의 묘이며 앞으로 수십리 오미리五美里에는 판서공의 아들인 이름 원량元亮의 묘소가 있다. 판서공은 고려 병부상서 은렬공殷烈公의 12세손이요 정부인 정씨는 참판 귀생貴生의 따님으로 봉익대부개성유수奉翊大夫開城留守 이름 수명壽明의 계배繼配¹⁾이시다. 수백년 내려오면서 수호修護에 힘을 다하였으니 자손이 번성하여 해마다 제향祭享을 드리면서 아직 묘각을 두지 못하였음은 때를 기다렸을 뿐 성력誠力이 없었음은 아니더라. 무술년 겨울에 사손嗣孫²⁾ 위성渭成이 종족의 의론을 모아 정부인 묘 앞에 터를 닦고 재목과 기와를 운반하여 즐거이 역사를 도와 준공竣工하고 명년 가을에 낙성落成하니 정취가 넓어 양대제향兩代祭享을 뫼시기에 넉넉하다. 편액扁額을 수덕재修德齋라 함은 대개 시전詩傳 대아수편大雅首扁의 말을 취한것이니 대지大旨³⁾인 즉 기리 조상을 섬김은 천명天命에 배합配合함이요. 그 덕을 닦으면 많은 복을 얻는다는 뜻으로 본래 기대하는 뜻이요. 그 대요大要⁴⁾를 알고 항상 정성에서 우러남이라 마음을 세움이 이러하다면 무슨 일을 못할바 있으리오함은 내가 강씨를 위하여 칭함이다. 위성渭成이가 마침 몸에 병病이 생겨서 사실을 갖추어 그 족대부族大夫 재하在夏에게 위탁하여서 천령天嶺까지 나를 찾아와 기문記文을 구하기에 이 글을 쓰노니 뒷 사람으로 하여금 묘제墓祭에 정성을 다할 줄 알게 하며 또한 조상이 남겨준 깊은 뜻이 여기 있음을 알게 함이니라.
1960년 4월 1일 영가후인永嘉后人 권도용權道溶 짓다. 

【주석】
계배繼配¹⁾ : 남의 후처를 높여 이르는 말
사손嗣孫²⁾ : 대를 이을 손자
대지大旨³⁾ : 말이나 글에서 대강의 내용이나 뜻
대요大要⁴⁾ : 일이나 내용의 기본이 되는 큰 줄거리

 

修德齋重建記
晋州西北鳴石面雨水里 山기슭에 精巧하고 우람한 三間 새 齋閣이 세워졌으니 旧齋舍의 扁額 그대로 修德齋라하고 三間은 景慕門이라 하였다. 거슬러 올라가 새 齋閣이 重建되기까지의 根因을 詳考한 즉 晋州北 쪽 省台里 旧牛水洞의 吉地에 무덤이 있으니 晋州姜氏留守公顯祖이신 奉翊大夫開城留守諱壽明公의 墓所다. 그 옆에 配貞夫人河東鄭氏墓로서 共히 朝鮮朝初古墳群으로 慶南道文化財第四十三号로 指定되어 甲戌年至月에 國費로서 改築復元한 바 있으며 이곳에서 十里距에 있는 同面五美里廣基山에 公의 아들 元亮公의 墓所가 있으니 公은 敎官全羅都事와 晋州鄕校四敎堂을 創建하였으며 世宗丙辰에 文科開城留守資憲大夫禮曹判書를 지내신 분이다.
따라서 옛날에는 墓옆에 墓閣을 세워 神主를 모셨으나 後世에 내려오면서 神主함은 天倫의 理致로서 福을 받고 子孫이 繁昌하는 것이다. 이러한 精誠에서 後孫들은 數百年 동안 내려오면서 修護에 힘을 다하였으나 해마다 祭祀를 드리면서 墓閣을 세우지 못함을 恒常罪悚不禁이었던바 戊戌年에 宗論을 모아 現齋閣 터에 墓閣을 세우니 이것이 旧修德齋가 서게 된 緣由이다. 然而 이 齋舍가 年深頹落하여 重建의 時急함을 온 宗員이 所望해 오던 中 甲戌年(一九九四)十二月에 宗中總會를 開催하여 修譜와 修德齋의 重建을 決議하고 먼저 修譜常勤委를 構成하니 子孫들의 崇祖尙門하는 精誠이 없이 어찌 可能한 일이겠는가. 
譜事를 始作한지 二年餘 동안 全國宗員의 積極的인 協助로 完刊을 보게되니 其決算剩餘金과 譜事着手數年前부터 水沒地區編入宗土補償金等으로 齋閣建立基金을 삼으니 補償金等基金 마련에 앞장서 왔던 壽甲宗員外諸宗들의 發議로 지난 丁丑年二月에 召集된 總會에서 齋舍建立實行委員을 選任하여 直接監役토록 하였다. 工事를 着工한지 十餘月當役委員의 獻身的인 努力으로 旧齋舍를 헐고 그 자리에 새 齋閣을 세우니 門中의 所願한바 二大事業이 모두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世世로 忠孝烈의 훌륭한 祖上님의 蔭德과 奉先하는 子孫들의 至誠을 다한 거룩한 結實이라 生覺된다.
이제 巨事에 直接參與하여 誠力을 다한 壽甲·章鉉·仲錫·渭明諸宗의 修德齋重建記文을 請함에 過分한 마음에서 躊躇하면서도 平素宗事等 남다른 情分으로 辭讓치 못하고 事實을 記述하면서 願컨대 齋閣扁額에 새겨진 修德의 깊은 뜻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德을 닦아 門中의 繁榮이 萬代에 이어지기를 바람이라.
戊寅年(一九九八)三月上浣
傍後孫 炳炰 謹記

 

文化財指定功勞顯彰記文
晋州鳴石面雨水里 山 一六六番地內 古墳二基(辛坐)가 有하니 이 古墳은 朝鮮太宗朝開城留守를 지내신 留守公諱壽明配位河東鄭氏兩位分의 墓이니 殷烈公二十世孫이며 留守公派顯祖이시다. 이 墓는 西紀一九七九年十二月三十日慶尙南道文化財第四十三号로 指定되었으니 이는 留守公十七世孫인 松峯祖憲公의 至誠竭力의 功勞로 國家文化遺産으로 傳해 지게 된 것이다. 또한 松峯公은 이 外에도 諱元亮留守公의 鄕校鄕校四敎堂創建記文을 비록하여 矗石樓에 揭示되었던 諱濂晩松公의 壬乱謀義擧詩板이 오랜 歲月 동안 거듭되는 樓閣의 重修로 因하여 紛失되어 자칫 國家文化遺産이 永遠히 失傳될뻔한 일을 公의 努力으로 다시 原狀態로 제자리에 揭示되었다. 따라서 松峯公은 幼時부터 好學勉励하고 齊家有範으로 家統을 바로잡았으며 宗門이나 鄕內各儒林團體에도 重責을 맡아 每事를 處理함에 他의 模範이 되어 尊敬을 받으셨다. 松峯公의 이러한 行身과 前述한 바는 宜當門中에서 顯彰하여 後代에 傳함이 當然之事라 思料된다. 이어서 添記事實은 墓의 文化財指定後十八年이 되어 宗員壽甲·章鉉·仲錫族이 宗職在任中墓가 오랜 歲月 동안 頹損되어 復元의 時急함을 안타까워하면서 該當機關에 交涉하여 一九九五年十月五日國費補助金三千五百五十八萬원을 支援받아 墓의 具石物改莎草等完全復元하였으니 참으로 嘉善之事라 하겠다. 따라서 宗員의 功勞을 顯彰하고 後代에 傳하여 龜鑑으로 삼고저 宗門의 總意를 記文으로 새겨 揭示함이라.
庚辰年(二ㅇㅇㅇ) 十月中浣
晋州姜氏留守公派宗門會 記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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