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진주시 수곡면 자매리 진주강씨 매곡재 梅谷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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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경남의 진주강씨 누정재

2021. 12. 1.

2021.10.6. 진주시 수곡면 자매리 진주강씨 매곡재梅谷齋 전경

진주시 수곡면 자매리 313(사곡로700번길 28)에는 진주강씨晋州姜氏 박사공博士公 1세 강계용姜啓庸의 19세손 거사공居士公 명의命義를 제향하는 매곡재梅谷齋가 있다. 이곳을 고도계는 높이 94m, 위도 35°14'36"N 경도 127°55'50"E를 가리킨다.

 

2021.10.6. 진주시 수곡면 자매리 진주강씨 매곡재梅谷齋 대문

매곡재梅谷齋의 가계를 살펴보니 박사공博士公 1세 강계용姜啓庸, 2세 급사공給事公 인문引文, 3세 어사공御史公 사첨師瞻, 4세 진원부원군晋原府院君 창귀昌貴, 5세 문경공文敬公 군보君寶, 6세 공목공恭穆公 시蓍, 7세 통계공通溪公 강회중姜淮仲, 8세 증참판소윤贈參判少尹 안수安壽, 9세 대호군大護軍 휘徽, 10세 관찰사觀察使 자평子平, 11세 군수郡守 강심姜諶, 12세 목사牧使 여숙與叔으로 이어지고 19세손 거사공居士公 명의命義로 잇는다.

 

개춘문開春門 편액

매곡재梅谷齋는 1991년 건축했으며 대문에는 개춘문開春門이라 편액하고 재실의 처마 밑에는 매곡재梅谷齋라 했으며 기둥에는 주련을 걸었다. 대청에는 최인찬崔寅巑이 기록한 매곡재기梅谷齋記가 있다.

 

2021.10.6. 진주시 수곡면 자매리 진주강씨 매곡재梅谷齋
매곡재梅谷齋 편액
매곡재梅谷齋 주련

梅谷齋 주련 [국역] 안동 청음후손 백촌
衆裔當軒立 후손들은 마땅히 사당 세웠고
祀事甚孔明 제사일은 진실로 매우 밝도다.
焚香芬苾裡 향불 피워 제사를 차려 드리니
油然起慕情 그리운 정 저절로 일어나도다.

《어휘 풀이》
✶衆裔 여러 후손 後裔. 많은 후손.
✶祀事 제사의 일
✶孔明 매우 잘 차림. 매우 깨끗함 .매우 밝다.
• 祝祭于祊,祀事孔明《詩·小雅·楚茨》:문묘에서 제사 지내고, 제사상을 아주 잘 차림.
✶ 鄭玄 箋:“孔,甚也;明,=備,=絜也。”
✶焚香 부처나 죽은 사람을 위하여 향을 피움 =燒香. 향나무의 향료에 불을 붙임.
✶芬苾 =芳香꽃다운 향내나 좋은 냄새. 향기로운 제사 음식
✶油然 왕성하게 일어남. 저절로 일어남. 행동이 느릿느릿한 모양. 침착하고 여유 있는 모양.
✶慕情 그리워하는 심정

✶측기식 5언절구 八庚平聲운 <明情>

 

매곡재기梅谷齋記

梅谷齋記
晋西水谷之八岩山下 鏡湖之畔 有紫梅里 里之陽有屹然棟宇者曰 梅谷齋 即姜氏之居斯者 為其先祖居士公諱命義而作也 蓋公生於孝宗初載 卒於肅宗末年 而其派龍通溪公諱淮仲之十二世孫 戊午節臣郡守公諱諶之八世孫也 公墓在於江城之吉里辛坐原 且公後之累代墳塋 散在於所居之近 後昆惟勤歲一澆酹於原野之次 未嘗有改 其追遠報本之實 於此可見矣 然而一自滄桑后 禮壞誠乏 知祖者鮮 且山林樹密 路塞 不得已香火之儀 不於墓前 而於丙舍者 擧世所行矣 於是諸族相與謀曰 吾輩亦將不可不建一齋 雖曰人少勢綿 苟誠之至 則無不成就何患乎 物之不贍耶遂傾注心力 光復辛未年間竣功 三架四楹 於所居之傍 蓋不置階下 而築閭里者非它也 以其有便易於收族守護也 扁曰梅谷者 取之於地名也 門曰開春者 雪梅告春之義也 旣而翌年秋 後孫信必壽錫從叔侄 造余以請 楣間之文 余辞不獲 叙一說曰 夫梅之所 以高潔者 惟在不忘其序 而先發於百花 若失其時 而與桃李爭春 則世人蔑以稱嘆焉 其非不為華美 而失操之故也 非但物之為然 人亦如之 雖有識見與異端 推移雷同失失其操 而至拒祭禮 則君子唾罵 而侮蔑焉 其日用 彝倫之常 而歲以盡誠奉祀世世 不忘其本者 人莫不欽羨 是秉彛之固所同也 今姜氏數不過十戶 而戮力合心 能成新齋 而方孜孜先事 此四隣之所以起敬也 自茲以往衛護之事 無所或懈 而仰想先烋俯思 報事致祭謹齊宿 肅然致悽愴 則是可謂無憾矣 然以是謂竭其誠則未也 其於先祖之德業 思所以繼述 先祖心法 思所以無添念念省察 無敢忽忘然後於是乎 可謂盡慕先之實 未知諸君 必以吾言謂不誣也 齋之建喜捨敷地者 雲孫壽錫其人也
光復 壬申重陽節 朔寧 崔寅巑記

매곡재기
진주 서쪽 수곡水谷의 팔암산八岩山 아래에 자매리紫梅里가 있고 마을 남쪽에 높이 솟은 집을 매곡재梅谷齋라 이르니, 곧 이곳에 사는 강씨姜氏가 그 선조先祖 거사공居士公 이름이 명의命義를 위하여 지었다. 대개 은 효종초년孝宗初年에 태어나 숙종말년肅宗末年에 돌아가셨으며, 그 파조派祖인 통계공通溪公 이름 회중淮仲의 12세손이고,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절의사節義士 군수공郡守公의 이름 심諶의 8세손이다. 공公의 묘는 단성丹城의 길리吉里 신좌원辛坐原에 있고, 또한 공公의 자손 묘墓는 사는 마을 근처近處에 산재散在하고 있는데, 후손들이 해마다 묘제墓祭를 받들어 일찌기 궐한 일이 없으니, 그 보본報本하고 추원追遠하는 정성을 이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한번 세상이 변한 뒤로 예禮가 무너지며 이 모자라고 또한 산소山所가 울창하여 길이 막히므로 부득기 묘제를 묘墓 앞에서 안모시고 재실齋室에서 모시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되자 제족諸族이 서로 꾀하며 이르기를, 우리들도 장차 재실을 안지을 수 없으니, 비록 수가 적고 세勢는 약하나, 진실로 정성 이르는 곳에 성취成就되지 아니함이 없으니, 어찌 재물의 부족不足을 근심하겠는가 하고, 드디어 심력心力을 쏟아, 광복光復 신미년辛未年에 3칸집을 사는 곳 이웃에 세웠다. 묘 아래에 짓지 않고 이곳에 지은 것은 일족一族 모으기가 쉽고, 또 수호守護하기에 편리便利해서이다. 제호齋號를 매곡梅谷이라함은 지명地名을 취取해서요. 문門을 개춘開春이라함은 설중매雪中梅가 봄을 고告하는 뜻에서 칭하였다. 그뒤 익년翌年 가을 8월에 후손 신필信必 수석종숙壽錫從叔이 나에게 와서 기문記文을 청請하므로 내 사양치 못하고 삼가 쓰기를, 무릇 매화梅花가 귀한 바는, 오직 그때를 잊지 않고 먼저 꽃이 피는데 있으니, 만약 그때를 놓치고 도리화桃李花와 더불어 봄을 다투게 되면, 세상 사람이 찬미하지 아니한다. 그 화미華美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절조를 잃었기 때문이다.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도 이와같으니, 비록 식견識見이 있으나, 저 이단異端으로 더불어 추이推移하여 그 절조를 잃고 제례祭禮를 거부하면, 군자君子된 이 침 뱉으며 매도하고 모멸한다. 해마다 성경誠敬으로 제사祭祀 받들고 날로 윤리생활倫理生活을 하면서 그 절조를 지키고 그 근본根本을 불망不忘하는 이는 사람들이 존경尊敬하지 아니함이 없으니, 이는 당연當然한 이치理致이다. 이제 강씨姜氏는 그 수數가 십호十戶에 불과不過한데도, 힘과 마음을 합合쳐서, 능能히 새 재사齋舍를 짓고, 바야흐로 선사先事에 부지런하니, 이가 사방四方에서 공경하는 마음을 이르키는 까닭이다. 이 뒤로는 수호守護하는 일에 게을리하지 말고, 우러러는 선조先祖의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아래로는 보답報答할 일을 생각하며, 제사祭祀를 모실 때엔 삼가 재계하고, 엄연嚴肅히 슬픔을 이루면 유감됨이 없다고 하겠으나, 이로써 자손子孫의 도道를 다했다고 하면 안되겠다. 선조先祖의 덕德과 업業을 이어 계술繼述할 것을 생각하고 선조先祖의 심법心法을 더럽히지 않을 것을 찰나에 성찰하고 생각하여 언제나 마음에 간직하여 잠시도 잊지 아니한 뒤에야, 비로소 모선慕先의 실實을 다하였다고 이를 것이니, 모르긴 하여도 여러분은 내 말을 참말이라고 믿을 것이다. 이 재를 영건營建함에 수지數地를 희사喜捨한 이는 9세손 수석壽錫이다.
1992년 음 9월 9일 삭령 최인찬崔寅巑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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