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진주시 수곡면 대천리 진주강씨 구산재 亀山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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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경남의 진주강씨 누정재

2021. 12. 1.

2021.10.6. 진주시 수곡면 대천리 진주강씨 구산재亀山齋 전경

진주시 수곡면 대천리 732(사곡로213번길) 구태마을에는 진주강씨晋州姜氏 박사공博士公 1세 강계용姜啓庸의 20세손 충의위공忠義衛公 상주相周(1737~1807)를 제향하는 구산재亀山齋가 있다. 이곳을 고도계는 높이 194m, 위도 35°13'04"N 경도 127°54'37"E를 가리킨다.

 

2021.10.6. 진주시 수곡면 대천리 진주강씨 구산재亀山齋 대문

구산재亀山齋의 가계를 살펴보니 진주강씨 박사공博士公 1세 강계용姜啓庸으로부터 2세 급사공給事公 인문引文, 3세 어사공御史公 사첨師瞻, 4세 진원부원군晋原府院君 창귀昌貴, 5세 문경공文敬公 군보君寶, 6세 공목공恭穆公 시蓍, 7세 통정공通亭公 강회백姜淮伯, 8세 창령공昌寧公 우덕友德, 9세 수헌공守軒公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숙경叔卿(1428~1481), 10세  판서判書 인범仁範, 11세 문간공文簡公 혼渾, 12세 증참판贈參判 수홍壽弘, 13세 부호군副護軍 원元, 14세 부사용副司勇 극명克明, 15세 참봉參奉 진선晉先, 16세 충좌위사과忠佐衛司果 희曦, 17세 중후重厚, 18세 공일公一, 19세 수修, 20세 충의위공忠義衛公 상주相周(1737~1807), 21세 재설載說·재익載益·재위載渭가 있다.

 

2021.10.6. 진주시 수곡면 대천리 진주강씨 구산재亀山齋

구산재亀山齋는 살림집을 1980년 지어 재실로 바꾸었으며, 대문에는 편액이 없고 재실의 처마 밑에는 구산재亀山齋라 했으며, 대청에는 하동근河東根이 지은 구산재기龜山齋記가 걸려 있다. 

 

구산재亀山齋 편액
구산재기龜山齋記

龜山齋記
姜氏 晋之望族 而自元帥公諱以式之後 分有二派 晋山府院君諱啟庸 為一派租 二傳諱師擔監察御史 又累傳諱叔卿歷司憲府監察 江原都事 宗簿寺判官 宗親府典籤司宰副正 密陽府使 軍器監正 贈吏曹判書 公之五世孫 克明之後孫世居 晋西九台 趾美承家往在 光復癸亥 為其中租諱相周忠義衛公 肯構三架屋于所居九台之陽 扁曰龜山 而不以為墓下者 從其守護之為便也  越十年壬申秋 後孫該門中諸族 而誠金協讚 介其族大珀 閱記於余曰 家勢不贍屋之規模疏拙 無足為成丙舍之典型 得丈人之文 以為光門戶之計 勿孤為記也 請益懇余觀其人 儀表淳雅 言行謙恭 有諸家子第之風義 有所不辭者曰 後孫之孝於先祖也 回其有誠 則屋雖疏拙 祭如在能盡追遠報本之道 回其無誠 則屋雖華盛 無以致念祖修德普合宗族矣 不患乎屋之疏拙 而不忘乎 念祖修德普合宗族之道 進而又進 則能盡繼述之道 而將為夏屋之渠 渠不求而可成矣 盍相與勉旃 是為記 以勗姜氏請君爾
歲光復壬申菊辰 成均館典儀 晋山 河東根 記
                          晧山 千元浩 書

구산재기
강씨姜氏는 진주에서 유망有望한 씨족氏族으로써 원수공이식元帥公以式을 비롯하여 이파二派로 나누어졌는데 진산부원군晋山府院君 이름 계용啓庸을 일파조一派祖로 삼는다. 2대를 전하여 이름 사첨師擔은 벼슬이 감찰어사監察御史다. 또한 여러 대를 이어 오면서 이름 숙경叔卿은 사헌부감찰강원도사司憲府監察江原都事 종부사판관宗簿寺判官 종친부전첨宗親府典籤 사재부정司宰副正 밀양부사密陽府使 군기감정軍器監正 사조판서공史曹判書公 5세손 극명克明의 후손인데 대대로 진주晋州 서쪽 구태九台에서 그 계대系代를 이어오는 것이다. 강씨姜氏는 광복계해년光復癸亥年에 그 중조中祖 상주相周를 위하여 충의위공忠義衛公 재실齋室을 건축하고 재실 이름을 구산재龜山齋라고 한 것인데 구조構造는 3칸으로 되었다. 그런데 재실齋室을 묘 아래에 경영經營하지 않고 구태마을 양지에 건립建立한 것은 자손이 수호守護하기에 편의便宜를 취한 것이다. 10년이 지난 임신년 가을에 문중의 후손들 여럿이 성금을 협찬協讚하여 그 족친族親 대박大珀을 소개해 나에게 기문記文을 청해 가로대 가세家勢가 넉넉지 못하므로 집의 규모가 또한 소졸疏拙하여 재실齋室의 모양을 갖추지 못했지만 장씨丈氏의 기문記文을 받아서 문호門戶를 빛내고져 하는 것이니 기문記文을 사양지 말라고 청請했다. 내가 볼 때 그 사람 얼굴이 순박하고 언행言行이 모겸慕謙하여서 제가자제諸家子第의 풍의風義를 보임으로 사양辭讓할 수 없어서 이르기를 후손後孫이 선조先祖에게 효도孝道하는 것은 진실로 성의誠意가 있으면 집이 비록 훌륭하지 못해도 제례祭禮를 혼령魂靈이 나타난 것 같이 정성精誠을 다하여 능히 선조先祖의 덕德을 갚는 도의道義를 다하는 것이며, 진실로 성의誠意가 없으면 집이 비록 굉장하다 해도 조상祖上을 추모追慕하는 것이 아니며 종족種族을 보합普合하는 것이 아니다. 재실齋室의 소졸疏拙을 걱정하지 말고 조상祖上의 덕德을 추모追慕하고 종족種族을 보합普合하는 조의道義를 다하여 전진前進해 나아가면 이것이 조상祖上의 모적慕績을 이어받아서 장차將且로 빛나는 재실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니 강씨제군姜氏諸君은 여기에 대하여 서로 힘쓸지어다.
1992년 음 9월에 성균관전의 진산 하동근河東根 짓고
                                     호산 천원호千元浩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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