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진주시 판문동 진주강씨 영건재 永虔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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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경남의 진주강씨 누정재

2021. 12. 12.

2021.10.6. 진주시 판문동 진주강씨 영건재永虔齋 옆 선영

진주시 판문동 923-6(판문로 384)에는 진주강씨晋州姜氏 박사공博士公 1세 강계용姜啓庸의 7세 통정공通亭公 회백淮伯(1357~1402)의 후손으로 박사공博士公의 14세 효특孝特(1583~1633)을 제례하는 영건재永虔齋가 있다. 이곳을 고도계는 높이 55m, 위도 35°12'00"N 경도 128°02'02"E를 가리킨다.

 

2021.10.6. 진주시 판문동 진주강씨 영건재永虔齋 대문

영건재永虔齋의 가계를 살펴보니 진주강씨 박사공博士公 1세 강계용姜啓庸으로부터 2세 급사공給事公 인문引文, 3세 어사공御史公 사첨師瞻, 4세 진원부원군晋原府院君 창귀昌貴, 5세 문경공文敬公 군보君寶, 6세 공목공恭穆公 시蓍, 7세 통정공通亭公 강회백姜淮伯, 8세 창령공昌寧公 우덕友德, 9세 수헌공守軒公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숙경叔卿(1428~1481), 10세 생원生員 신범信範, 11세 참봉參奉 식湜, 12세 생원生員 수굉壽宏, 13세 문과정언文科正言 희僖(1558~1600), 14세 효특孝特(1583~1633), 15세 강득일姜得逸, 16세 강흥신姜興信, 17세 강성상姜聖相, 18세 강덕겸姜德謙, 9세 강재구姜載垢, 20세 강필억姜必億, 21세 강형보姜衡輔, 22세 강철주姜喆柱, 23세 강영국姜永國(1895~1975), 24세 강지수姜芝秀로 이어지다.

 

비해문匪懈門

영건재永虔齋는 솟을대문에 비해문匪懈門이라 편액하고 우측에는 진주강씨판문문중화수회라 편액했고 좌측에는 진주강씨판문문중청장년회라 이름 했다. 영건재永虔齋에는 기둥에 주련을 걸었으며 문이 달려있어 안을 볼 수 없었다. 마당 좌측에는 1958년 무술년에 창건한 헌금자 명단과 2005년 중건할 때 성금을 낸 명단이 새겨진 비갈이 있다. 영건재기永虔齋記는 문천각에 실린 내용과 진주루정지에 기록된 내용이 약간 상이해 둘 다 옮겨 두었다.

 

2021.10.6. 진주시 판문동 진주강씨 영건재永虔齋

秋帆文苑後集卷二의 기록
永虔齋記
先王之禮 修宗廟以時享之卜 宅兆以安措之藏 祧主於墓室 宗子率族人歲一祭之 而已秦漢之際原野 有祭寒食上冢 此後世墓祭之濫觴也 自是中朝公卿大夫之墓 堂斧穹窿石獸相望 其傍必有一座傑閣 以爲具饎齊宿之所 士庶人家亦準行之 東俗尙禮義 近世尤比比焉 如今晉陽治西十里平居 姜氏之永虔齋 亦其一也 姜氏神明之胄世 有令德殷烈御史兩大族最顯 御史之後 有通亭守軒 守軒之後 有諱孝特 正言僖子也 長陵之世 移居板門 嘗詔子姓曰 吾家居晉時門欄赫赫 鳴於一國 自近以還聲猷不競竊懼 先業之失墜 無念爾祖聿修厥德 尙克勉旃 勉旃子姓纘戎繩武循循 雅飭各保門戶第 以三百年來 無數閒明宮 以備春秋瞻掃之儀 尋常齎恨久矣 以今歲著雍之陬月闔族斷然決議團束之令 如律奮行之徒 不息敏活趨赴期乎斃 而後已凡用材瓦價値 二十萬鍰用鈔四十萬鍰用人夫六百名 至三月晦 而堂門庫舍四座 告成儘神速矣哉 蓋其揆策之密 則盛水不漏 秉志之篤 則金石可透慮事之遠 則推之無窮匪所謂永虔者 耶其位寘在獨將峯下 延艮挹坤左右岡巒紛糾高 而弗騫卑 而不可踰臥龍峻岳 縹緲於阿睹中納灝蒼 而漾淑氣允合於遠眺可謂 南紀之明堂也 後孫永國大來二君主幹 而罔晝夜賢勞卒辦 此大役詩曰 無競維人四方其訓之 此雖屬姜氏爲先之事 貽範於當世及 後來人皆可以爲柯 則況今先王之法掃地盡矣 人之類行將豺獺之不若乎 惟幸於此等見先王之 禮一斑焉 尙其加勖哉
戊戌榴夏之節 外裔永嘉 權道容 記

晉州樓亭誌의 기록
永虔齋記
先王之禮 修宗廟以時享之卜 宅兆以安措之藏 祧主於墓室 率族人歲一祭之 秦漢之際原野 有祭寒食上塚 此後世墓祭之濫觴也 自是中朝公卿大夫之墓 堂斧穹隆石儀相望 其傍必有一座傑閣 以為具饍齊宿之所 士庶人家亦準 而行之東俗尚禮儀 近世尤比比焉 如今晋陽治西十里板門 姜氏之永虔齋亦其一也 姜氏神明之胄世 有令德殷烈御史兩大族 最顯御史之後 有通亭守軒享鼎崗院閱 數世諱孝特 文科正言諱僖之也 長陵之世 移居板門 嘗詔子性曰 吾家居晋時門欄赫赫 鳴於一國自近 以還聲斷不競窃 懼先業之失墜 母念爾祖聿 修厥德尚克勉 旃子性纘戎繩武倄倄 雅飭以耕讀 二端各保門戶茅 以三百年來 無數間明雲 以備瞻掃之儀尋常齊恨久矣 以今歲渚雍之陬 月闔宗銳然決議 團束之令 如律奮行之從 不息敏活趨赴 期乎斃而後巳凡用材瓦價值二十萬 鍰鈔四十萬鍰用 人夫五百名 至三月晦 而堂門庫舍 四座候然告成儘神速矣哉 盖其揆策之密 則盛水不漏秉志之篤 則金石可透慮事之遠 則推之無極匪所謂永虔者耶 其位置在獨將峯下 近良挹坤左右崗巒粉糾高 而不騫畢而不可踰臥龍峻岳 標緲於阿睹中納灝蒼 而超鴻濠允合於遠眺可謂 南紀之神皐奥區也 後孫永國大余翼秀大玉四君主催 而罔畫夜賢勞卒飭辨 此大役詩曰 無競維人四方 其訓之此雖屬姜氏 為先之事胎範於當世及來 後人皆可 為法况後昆也 裁噫目今先王之法 掃地盡矣 人之類行將 為禽黙不遠矣 惟幸於此等 見先王禮一班焉 尚其加易战
戊戌榴夏之節 外商永嘉 權道容 記

영건재기
선왕先王의 예禮에 종묘宗廟를 수건修建하여 때로 향사享祀 지내고 장지葬地를 택擇하여 안장安葬하고 묘지墓地에 체천遞薦¹⁾하고 일족一族을 이끌어 일년一年에 한번 묘제墓祭를 지는지라 주한奏漢대에는 들에서 제사祭祀하고 한식寒食에는 묘소墓所에서 시제時祭를 지냈으니 이것이 후세後世 묘제墓祭의 비롯됨이니라. 이로부터 중국中國의 공경대부公卿大夫²⁾의 묘에 당부堂斧³⁾와 궁륭穹隆⁴⁾과 비석碑石 망주望柱등을 갖추고 그 옆에 반드시 훌륭한 재각齋閣을 지어 제선祭饍⁵⁾을 갖추고 회객會客의 숙소宿所로 하니 일반 사람들도 이를 본받아 행하니라.
우리나라의 풍속風俗이 예의禮儀를 숭상崇尙하는 까닭으로 근래近來에 이런 일들이 빈번해졌다. 지금 진주晋州 치소에서 서西편 10리에 거주하는 판문동板門洞에 있는 강씨姜氏의 영건재永虔齋 역시 그중의 하나이다. 강씨姜氏는 신룡씨神龍氏⁶⁾의 후손으로 대대代代로 덕德을 닦아 은열殷烈과 어사御史 양파가 우뚝 솟아 빛나고 어사御史의 후예인 통정通亭과 수헌守軒이 정강서원鼎崗書院⁷⁾에 향사享祀하고 수대數代 후에 이름 효특孝特은 문과정언文科正言을 지낸 희僖의 아들이며 장릉長陵⁸⁾의 세대世代에 판문동板門洞에 이거移居하였다.
아들들에 일러 말하기를 우리 집안이 진주晋州에 살 때 가문家門이 찬란하여 일국一國에 소문났더니 근래에 와서 명성名聲을 떨치지 못하여 선인先人들의 유업遺業을 떨어트릴가 염려되는 바이니 조선祖先의 유덕遺德을 기리는 마음으로 그 덕德을 닦는데 힘써야 하니 아들들이 그 뜻을 이어 차례로 부지런하여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그 가문家門을 지켜온지 삼백년三百年에도 수간數間의 재실齋室을 지어 첨소瞻掃의 의례儀禮를 갖추지 못함을 항상 한恨을 품은지 오래더니 금년 정월성묘正月省墓때에 온 종인宗人이 혼연히 결의決議하고 영令에 따라 실행에 응應하는 이가 줄을 잇고 죽는 힘을 다하여 추진하니 용재用材로 기와값 이십만량二十萬両 철재값 사십만량四十萬両과 인부人夫 오백명五百名으로 삼월三月 그믐에 당문고사堂門庫舍 사동四棟을 버젓하게 이루어 낙성落成을 고告하니 참으로 빨리도 되었도다. 그 계획함이 치밀하여 큰 비에도 비샐 염려가 없고 갖은 뜻은 금석金石을 뚫을 수있음이요 이 일의 위대遠大함을 생각한즉 무궁無窮하니 어찌 영건永虔함이 아니랴. 그 위치位置인즉 독장봉獨將峯 밑 양좌곤향良坐坤向이라 좌우左右 산山들이 높으면서도 험하지 않고 낮으면서도 넘기 어려우며 와룡산臥竜山이 눈앞에 비단 드리운 듯하고 앞 강江물은 푸르러 순전한 기운氣運이 뛰어나니 실實로 멀리 바라보며 가히 남기南紀에 이른 신고神皐⁹⁾의 명승지名勝地라 할만하다 함에 일치된다. 후손後孫 영국永國¹⁰⁾ 대여大余 익수翼秀¹¹⁾ 대옥大玉¹²⁾ 네 분이 주관主管하여 밤낮으로 노력하여 끝내 이 거역巨役을이루니 시詩에 이른 사람이 부러워하지 않으랴. 사방四方이 그를 본받으리라 하니 이 일이비록 강씨姜氏의 위선사업爲先事業일지언정 지금의 세상世上과 후세後世의 사람들이 모두 본받을 일이거늘하물며 후손後孫들이야 슬프다 지금 선왕先王의 법法이 추락되여 사람의 행동行動이 금수禽獸에 가까운데 다행多幸하게도 이 집안에서 선왕先王의 예禮에 반열班列¹³⁾함을 보게 되었네. 더욱 힘쓸지어다.

【주석】
체천遞薦¹⁾ : 5대조 이상의 묘소를 문중이 함께 제사를 지내는 것
공경대부公卿大夫²⁾ : 중국의 주나라 시대 3공 9경 27대부를 둔 이래 높은 벼슬아치들을 일컫는 말로 쓰였다. 
당부堂斧³⁾ : 마루같이 네모반듯하고 높은 봉분과 도끼처럼 아래는 넓고 위는 좁은 장방형의 봉분을 말한다.
궁륭穹隆⁴⁾ : ① 궁륭형(穹窿形) ② 둥근 천장 ③ 아치형 ④ 높고 활처럼 구부러진 형상
제선祭饍⁵⁾ : 제사 때 차리는 음식
신룡씨神龍氏⁶⁾ : 신농神農을 말하며 중국 고대 삼황三皇 중의 한분으로 흔히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라고 불린다. 본명은 강석년姜石年이며, 별칭으로는 열산씨烈山氏, 염제주양씨炎帝朱襄氏라고 불리기도 한다. 신농씨는 염제신농국을 세웠고 나라는 그의 자손들로 이어져 8대 520년간 중국을 통치하였다. 신농씨는 황제헌원 이전에 한족에게 농사짓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백초의 풀을 직접 맛보아 해독을 하였으며, 오늘날 한의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출처:위키백과]
정강서원鼎崗書院⁷⁾ : 1694년(숙종 20) 진주시 문산읍 옥산리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정온鄭溫·강숙경姜叔卿·하윤河潤·유백온兪伯溫·이제신李濟臣·이염李琰·하천주河天澍·진극경陳克敬·박민朴敏 등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지만,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복원하지 못했다.
장릉長陵⁸⁾ : 조선왕조 제16대 임금인 인조와 왕비인 인열왕후 한씨의 능
신고神皐⁹⁾ : 신명神明의 구역을 말한다. 한서漢書 교사지郊祀志에 “옛날부터 옹주雍州 지방은 지대가 높아 신명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하늘에 제사하고 여러 신神에게 제사하는 사당이 많이 있다.”라고 하였다.
영국永國¹⁰⁾ : 강영국姜永國(1895~1975)은 박사공博士公 1세 강계용姜啓庸의 23세손으로 자는 석견錫見이다. 아버지는 철주喆柱이고, 할아버지는 형보衡輔, 증조는 필억必億, 고조는 재구載垢, 현조는 덕겸德謙, 내조는 성상聖相, 곤조는 흥신興信, 잉조는 득일得逸, 운조는 효특孝特이다. 아들은 박사공 24세 지수芝秀가 있다 
익수翼秀¹¹⁾ : 강익수姜翼秀(1915~1984)는 박사공博士公 1세 강계용姜啓庸의 24세손으로 호는 추성秋星이다. 아버지는 영록永祿이고, 할아버지는 철주喆柱이다. 아들 박사공 25세 대남大南이 있다.
대옥大玉¹²⁾ : 강대옥姜大玉(1940~)은 박사공博士公 1세 강계용姜啓庸의 25세손으로 자는 승훈勝薰이다. 아버지는 봉수琫秀이고, 할아버지는 영수永壽, 증조는 민회玟會, 고조는 노보魯輔, 현조는 필연必淵, 내조는 재진載鎭, 곤조는 덕겸德謙이다. 아들은 박사공 26세 번중繁中과 동철東撤이 있다.
반열班列¹³⁾ : 신분身分,등급等級의 차례次例. 품계品階의 차례次例

 

영건재永虔齋
영건재永虔齋 주련

永虔齋楹銘 영건재 영명
獨將山勢抱廻縈 유독 산세는 감싸고 돌고
湖水漣漪帶照英 호수는 찰랑거리며 광채를 띠었네
知分執身昌運伴 분수 알고 행동하면 번창한 운수 따르고
修文尙德景星明 학문 닦고 덕을 숭상하면 景星이 밝다네

*景星 : 고대에 태평 시대에 나타난다고 하는 상서로운 별이다.

 

영건재중수 기념
지리산 줄기 독장산 정기 받아 판문동 산 30-1번지에 자리 잡은 뿌리 깊은 진주강씨 판문문중 영건재永虔齋는 서기 1958년 정월 21일 우리 선조님들이 저 멀리 나동면 삼계리에서 목재를 구입하여 인력과 우마 그리고 등짐으로 땀 흘려 창건하였으나 낡고 건물이 오래되어 그동안 우리 선조님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모아둔 재산 일부와 오늘에 사는 종문들의 뜻을 모아 재건축하여 이곳에 세우고 우리 강문의 뿌리를 곧고 길게 흔들림 없이 자손만대 후손에게 물려 주고자 하오니 길이 보존하길 바란다.
2005년 을유년 10월 27일
글 추진위원장 강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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