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산청읍 정곡리 진주강씨 경호정 鏡湖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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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경남의 진주강씨 누정재

2021. 12. 26.

2021.5.7. 산청읍 정곡리 진주강씨 경호정鏡湖亭과 만첨각萬瞻閣

산청읍 정곡리 746(정곡척지로31번길 36-8)에는 진주강씨晋州姜氏 은열공殷烈公 1세 민첨民瞻의 19세 경호鏡湖 강대연姜大延을 제례하기 위해 건립한 경호정鏡湖亭과 아버지 당암戇庵 강익문姜翼文(1568~1648)의 유지를 보관하던 만첨각萬瞻閣이 있다. 이곳을 고도계는 높이 132m, 위도 35°24'03"N 경도 127°54'13"E를 가리킨다.

 

경호정鏡湖亭 편액

경호정鏡湖亭의 가계를 살펴보니 은열공파 파조派祖 1세 민첨民瞻의 11세 진천군파晋川君派 중시조 강위상姜渭祥으로부터 12세 인선仁先, 13세 거호居好, 14세 승전承顓, 15세 진사進士 희필姬弼, 16세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화재和齋 인수仁壽, 17세 군자감판관軍資監判官 세탁世卓, 18세 당암戇庵 익문翼文, 19세 강대연姜大延(1606-1655)으로 이어진다. 강대연의 자는 학평學平 호는 경호鏡湖이며 아들 강휘정姜徽鼎ㆍ강휘진姜徽晉을 두었다.

 

경호정이건기鏡湖亭移建記

鏡湖亭移建記
詩云高山仰止景行行止 是著其形容象 其物宜之謂 耶嚴嚴稽山 滔滔鏡水導大路 而行俛仰 今古云誰之思 在昔鏡湖姜先生爱居爱處安士敦仁 至今垂四百載 如見有道者氣像 於水流花開之間 有使人終不可誼者 先生以萬曆丙午生 於陝之川胚胎祥光 以戇菴為父 寒少鷗洲為伯仲 氣脈湊鍾 自有美質之秀 朗愛但天資之英爽 甫七歲以能讀易 聞吳思湖翁 過試之應聲 而 賦大易 吟一篇說得 造化之眞 奧翁大驁曰天生也 即與歸教之先卑近 而後高遠仍館于 貳室授德溪先生中庸辨義曰 易與中庸表裏也 隨時變易從道 豈非君子之時中耶 自是見解益親切知識 日高明恨不及洛閩之世誦 其詩讀其書平生所作根 於大全黃中通理暢 於四支發於四外名聲 日達知之者 以其出處 卜蒼生之休咎 而公之所執 以自晦為黃牛之革矣 當是時內 而父兄之不附 凶論屢濱危殆 而外而思湖之付處 中途陨落此 公之力辭 巡撫時相之招出也 逮夫仁廟改玉親上親下庶幾咸寧 而風發偈遭 此城下之辱 公之丘壑之性確乎 不可拔矣遂以獨善 為菴謳歌寤寐 遠之魯仲連 近之鄭文簡 曠世神交矣 所著中庸衍義易林辨鮮 鷗洲公所言可傳 於世者類是進退消長中正仁義之言 而今皆為六丁之收去惜哉 公之雲仍之環 鏡水而居者 多坊而正谷者亭之所在也 以高皇乙未所創 而傷於汙下 不可謀久遠矣 越戊子移於坊之第一曲竹林間 蓋或遠或近或濱或山無非 當日杖履盘旋吟賞之地也 公之長子竹峯公 亦有文章大筆 與吾先祖 小山府君有道義之莫逆 此諸君子必强 余而記亭也
商山 金在洪 記

경호정이건기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높은 산우르러고, 넓은 길 걸어간다.>고 하였으니 이는 그 형용形容을 드러내고 그 물리物理를 상징한 것이다. 우뚝한 계산稽山과 도도한 경호강鏡湖江에 대로大路를따라 걸어가며 고금古今을 헤아려 보건대 과연 누구를 생각하게 되는가! 예전에 경호강선생鏡湖姜先生은 이곳에 거처居處하면서 분수를 지키고 어짐을 돈독히 하였다. 이에 지금 400년이 되도록 저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가운데서 유도자有道者의 기상氣象을 선연히 보는 듯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끝내 잊지 못하게 한다.
선생先生은 만력萬曆 병오녀丙午年(1606)에 합천陝川에서 났으며 배태시胚胎時 상서로운 광채가 비쳤으니 당암戇菴이 부친父親이고 한사寒沙  구주鷗洲가 백중형伯仲兄이다. 신령한 기맥氣脈을 타고나 수미秀美한 자질資質이 있었고 천자天資가 영발英發하였다. 겨우 7세七歲에 능히 주역周易을 읽었는데 오사호옹吳思湖翁이 지나가다 시험해보니 즉시 응답하여 대역음大易吟 일편一篇을 읊으면서 조화의 오묘함을 설파說破하였다. 옹翁이 크게 놀래 말하기를 <천재天才다. 하고는 즉시 데리고 가서 가르쳤으니 먼저 비근卑近한 것부터 시작하여 고원高遠함에 이르게 하고 인하여 사위로 삼았다. 또 덕계선생德溪先生의 중용변의中庸辨義를 주면서 말하기를 <역易과 중용中庸은 표리表裏이다. 때에 따라 역易의 변화를 알고 도道를 좇는다면 어찌 군자君子의 시중時中이 아니겠는가?> 하였으니 이로부터 견해見解가 더욱 친절親切하고 지식知識이 날로 고명高明하였다. 매양 송宋나라 정자程子 주자朱子의 시대를 만나지 못한 것을 한탄하면서 그 시서詩書를 애독愛讀하였으니 평생 저술著述한 바가 모두 성리대전性理大全에 근본한 것이었다. 이에 심중心中으로 이치를 통달하여 사지四肢에 융화되고 사방四方으로 발하여 명성名聲이 날로 드러났다. 고公을 아는 이들은 그 출처出處를 보고 창생蒼生의 휴척休戚을 짐작하였으나 그러나 공公은 스스로를 숨기어 뜻을 굳게 지켰다. 당시 안으로는 부형父兄이 흉론凶論에 불합不合하여 누차 위태로움을 겪었고 밖으로는 사호옹思湖翁이 귀양가다가 중도中途에서 세상을 떠났으니 이것이 공公께서 순무사巡撫使와 재상宰相들의 부름을 고사固辭한 까닭이다. 인조仁祖가 즉위함에 상하上下를 화목하게 하여 거의 태평함을 이루는 듯하였으나 갑자기 변고變故가 일어나 성하城下의 치욕恥辱을 당했으니 공公은 이에 구학丘壑에 은둔하려는 뜻이 더욱 확고하여 꺾을 수 없었다. 드디어 독선암獨善菴이란 암자를 지어 밤낮으로 이곳에서  구가謳歌하였으니 멀게는 중국의 노중련魯仲連과 가까이는 정문간공鄭文簡公으로 더불어 광세曠世의 신교神交를 나누었다. 저술著述한 중용연의中庸衍義 역림변해易林辨解는 구주공鷗洲公이 이른바 세상에 전할만한 것으로 진퇴소장進退消長 중정인의中正仁義한 글이었으나 지금 모두 화재火災에 소실되었으니 애석하다.
공公의 후손後孫 가운데 경호강鏡湖江 주위에 사는 이들이 여러 마을인데 정곡正谷은 정자가 있는 곳이다. 고종高宗 을미년乙未年에 창건創建하였으나 지대地帶가 낮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없었으므로 무자년戊子年(1948) 에 마을 제일곡第一曲 죽림竹林 사이로 이건移建하였다. 대개 원근遠近의 산수山水는 모두 당일에 공公이 소요逍遙하며 음상吟賞하지 않은 곳이 없다. 공公의 장자長子 죽봉공竹峯公 또한 문장文章과 필력筆力이 있었으니 우리 선조先祖 소산부군小山府君과 막역莫逆한 도의道義 교분을 맺었다. 이것이 제군자諸君子들이 될 시 나에게 억지로 정자 기문記文을 짓게 한 것이리라.
상산商山 김재홍金在洪 짓다.

 

경호정상량문鏡湖亭上樑文
경호정원운鏡湖亭原韻

鏡湖亭原韻[전문]
多病年來故舊稀 병치레 잦은 근래 옛 벗들 드물고
茅茨盡日掩柴扉 초가집 하루 종일 사립문 닫고 있네
月到風來淸意味 달뜨고 바람 불어오니 의취가 맑으며
鳶飛魚躍活天機 솔개 날고 물고기 뛰니 天機가 활발하네
三尺桐琴彈衎衎 세 척 거문고를 화락하게 연주하고
一樽菊酒醉微微 한 동이 국화주에 미미하게 취하였네
終老林泉於分足 자연에서 노년을 마치는 게 분수에 만족스러우니
靑雲豪士莫相譏 청운의 꿈 이룬 豪士들은 나무라지 말게나

*天氣 : 하늘의 은밀한 이치.

屋後稽山碧 집 귀에 稽山은 푸르고
牕前鏡水深 창 앞에 鏡水는 깊네
自慚仁智樂 산수의 즐거움을 모르면서
卜築又何心 집을 짓는 것은 또 무슨 마음일까

*稽山 : 경호정 근처의 산 이름인듯.
*鏡水 : 경호강.
*鏡湖 : 강대연姜大延의 호號

 

2021.5.7. 산청읍 정곡리 진주강씨 경호정鏡湖亭
2021.5.7. 산청읍 정곡리 진주강씨 만첨각萬瞻閣
만첨각萬瞻閣 편액
만첨각萬瞻閣 주련

만첨각萬瞻閣 주련[전문]

天地未喪斯文 천지가 斯文을 없애려 하지 않아
名日月之爭光 명성은 일월과 빛을 다투었네
氣節華夷聞 기개와 절개는 온 세상에 알려졌고
精神天地知 정신은 온 천지가 알고 있다네

*斯文 : 유학. 논어論語 자한子罕편에 출전한다.

*氣節 : 강직한 기개와 절조

 

만첨각개기문萬瞻閣開基文
만첨각사실기萬瞻閣事實記
만첨각기萬瞻閣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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