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하동군 악양면 매계리 진주강씨 모산재 慕山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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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경남의 진주강씨 누정재

2022. 1. 9.

2021.9.11.하동군 악양면 매계리 진주강씨 모산재慕山齋 전경

하동군 악양면 매계리 107(악양서로 553)에는 진주강씨晉州姜氏 박사공博士公 1세 계용啓庸의 13세손 목사牧使 강위노姜渭老을 모시는 재실 모산재慕山齋가 있다. 이곳을 고도계는 높이 87m, 위도 35°10'41"N 경도 127°42'56"E를 가리킨다. 

2021.9.11.하동군 악양면 매계리 진주강씨 모산재慕山齋 대문

모산재慕山齋의 가계를 살펴보니 박사공博士公 1세 강계용姜啓庸, 2세 급사공給事公 인문引文, 3세 어사공御史公 사첨師瞻, 4세 진원부원군晋原府院君 창귀昌貴, 5세 문경공文敬公 군보君寶, 6세 공목공恭穆公 강시姜蓍, 7세 통계공通溪公 강회중姜淮仲, 8세 증참판정랑贈參判正郞 강안복姜安福, 9세 판관判官 강리공姜利恭, 10세 부사직副司直 강유姜洧, 11세 우통례右通禮 강세윤姜世胤, 12세 지평持平 강응성姜應聖, 13세 목사牧使 강위노姜渭老, 14세 강인姜璘으로 이어지며 후손 대용大榕 태진泰進 상중尚中 등이 재실을 건축하는데 힘썼다. 

 

백원문百源門
2021.9.11.하동군 악양면 매계리 진주강씨 모산재慕山齋

모산재慕山齋는 악양서로의 도로 위쪽에 위치하는데 대나무가 감싸는 계단을 오르면 백원문百源門이 나타난다. 마당으로 어렵게 들어가니 모산재慕山齋에는 편액이 걸려 있고 기둥에는 주련이 있다. 대청 위에는 모산재상량문慕山齋上樑文과 모산재중수기慕山齋重修記, 취지문趣旨文 등이 걸려 있다.

 

모산재慕山齋
모산재慕山齋 주련


모산재慕山齋 주련[문산]
山碧洞深水又淸 푸른 산속 마을은 물이 깊고 또한 맑고
煥然高閣倍增明 빛나는 높은 누각은 더욱더 밝구나.
時驚霜露瞻封域 서리와 이슬 있는 봉분의 경계를 보고 자주 놀라고
儘是雲仍報本誠 먼 후손은 근본의 은혜에 정성을 다한다.

 

모산재상량문慕山齋上樑文
모산재중수기慕山齋重修記

慕山齋重修記
頭流一脉 重重崷崪 逶迤磅礴南馳數十里 而至會講 嶺復挺然秀抜淑氣鍾毓作鷹峰 而其一支走東南起 靑嵨樓嶝柢白石灘頭作窃窕 一區塽塏中有蕭灑數間丙舍 扁其楣曰慕山 扁其門曰百源 即嘉善大夫 贈戶曹參判晉陽姜公諱渭老之墓閣也 粤在己卯春 其胄孫大榕主其役 裔孫泰進納其基餘他 雲仍同心 盡誠随力鳩財爭赴蟻役 而築者也 而凡三間四楹 白石清灘瀉出于階下 層巒翠峰屛立放軒 外環境幽邃景觀 頗爽信合藏修追遠之所矣 一日裔孫尚中君來余 而請曰鄙之先閣慕山齋 追慕先壠之意也 百源門 孝百行之源之意也 而創建已經四十有星霜 以吾等誠意之淺薄 世熊之艱危 守護不動 墻壁毀敗舍屋頹落 幾至倒覆之境 當年先父老 辛勤述先遣後之誠 至於吾輩之代 而失於烏有則其不孝 不恭之罪 何可逃乎哉 先舍伯慶中氏 發議重修着役 未幾奄忽下世 天地漠漠 前途暗暗矣 門中靑壯輩各隨其職 而出外老弱 殘族僅僅守家而已 我亦賤年六旬 若失此時則更 無重修之期  故泣訴諸族之誠 招匠始役築之塗之齋貌 環境煥然一新 庶幾免顚覆之患矣 記其顚末 欲揭門楣請於賢宗勿負 此懇切之願也 余懼然整襟 而對曰至矣盡矣 言言行行 懇懇切切 其承先繼後之誠 充於中而溢於外者歟 令人孝思之心 油然自發孰不感服 誰然至於文字之述 余固非其人 此非不爲也 實不能也 則更尋高明之士 而圖之可也 又復强請曰 旣有同宗之義 且兼世襲 故舊之情 放義放情 何若是恝然耶 余喟然歎曰 隨其請則失我廉 不隨則傷其情 此將奈何 略記其顚末如右 以塞其讀恭俟後日立言君子 云爾
        檀紀四三一二年八月 日
        晉陽 姜亨洙 謹撰

 

모산재중수기[해문-박태성]
두류산頭流山 한 줄기가 첩첩이 늘어서서 구물구물 힘차게 남쪽으로 수십리를 달려 회강會講에 이르고 봉우리가 다시 우쪽 빼어나 꽃봉오리처럼 맑은 기운이 응어리져 응봉鷹峰이 되었다. 그 한쪽 줄기가 내달린 동남쪽에 청오루靑嵨樓가 우뚝한데 높고 낮은 하얀 너럭바위가 있는 여울머리에 그윽한 한 경치를 이루었다. 높고 화창한 언덕 위에 정갈하게 지은 몇 칸의 재실이 있는데 그 문설주의 편액을 모산慕山이라고 하고 그 문의 편액은 백원百源이라 하였는데 곧 가선대부嘉善大夫 증호조참판贈戶曹參判 진양 강공晉陽 姜公 이름은 위로渭老의 묘각墓閣이다. 지난 기묘己卯년 봄에 그 종손인 대용大榕이 그 공사를 주관하고 방계 손자인 태진(泰進)이 그 나머지 기반을 들이고 여러 후손들이 한마음으로 정성을 다하고 힘을 쏟고 재물을 모아 다투듯 나아가 공역을 행하여 집을 지은 것이다. 대개 그 규모는 4 기둥 3 칸 이다. 흰 바위와 맑은 개울물이 섬돌 아래로 흘러가고 첩첩 구릉과 푸른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쳐 집 외곽의 경계를 보호한다. 그윽하고 깊은 경관은 자못 상쾌하여 조상의 학문을 닦고 먼 선조를 그리워하는 장소로 매우 적합하다. 하루는 그 후손 상중尚中군이 나에게 와서 부탁하였다. “나의 선조를 모시는 재각이 무산재慕山齋인데 먼 조상이 계시는 언덕을 추모한다는 의미입니다. 백원문百源門은 효孝가 모든 행실의 근원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창건한 지 이미 40여년이 흘렀는데 우리의 정성이 부족하고 세태가 어렵고 위태로워 잘 지키지도 못하고 담장이 무너지고 집도 퇴락하여 거의 넘어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당시 집안의 장로들께서 선조의 업을 이어서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한 것이 우리 세대에 이르러 그 법도를 잃어버리면 그 불효와 공경하지 못한 죄를 어찌 벗겠습니까. 먼저 저의 맏형 경중慶中 씨가 중수할 것을 발의하여 착공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문득 세상을 떠나니 천지가 막막하고 앞길이 암담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문중의 청장년들이 각각 그 직장에 따라 바쁘고 외부로 나아간 노약한 몇몇 족손들도 근근히 집안을 지탱하는 지경이고 나 역시 나이가 육십을 넘기는 형편이지만 만약 이 때를 놓치면 다시 중수할 기약이 없었습니다. 이에 여러 족손들의 정성에 읍소하여 장인을 불러 공역을 시작하여 이끌어가니 재실의 모습과 주변의 환경이 환하게 새롭게 되어 거의 전복될 근심은 면하게 되었습니다. 그 일의 시작과 끝을 기록하여 문설주에 걸어두려고 하니 어진 종손께서는 이 간절한 소원을 거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놀라서 옷깃을 바르게 하고 단정하게 앉아서 말하였다. “지극하고도 극진하도다. 그 말과 행실이며 그 정성이 절절함이여. 선조의 업을 이어 후손에게 전하는 정성이 그 가운데 충만하여 밖으로 흘러넘치도다.  사람들로 하여금 효를 생각하는 마음이 유연히 스스로 일어나게 하니 누군들 감동하지 않겠는가 비록 그러하나 글자로 기술하는 것은 내가 진정 그에 합당한 사람이 아니지만 이 또한 하지 않을 수 없은 것이지만 진실로 할 수 없는 것이어서 다시 이름난 선비를 찾아 도모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하였다. 이에 다시 힘을 다해 청하기를 “이미 온 종중이 의논한 바이고 또 여러 대 대를 같이 이어온 옛 정을 생각하고 의리와 온정으로 생각하면 어찌 이러한 걱정을 하겠습니까.”하였다. 나는 길게 탄식하여 말하였다. “그 간청을 따르면 나의 겸손을 잃고 그 원칙을 따르면 그 정을 상하게 하내 이를 장차 어찌할까. 이에 대략 그 일의 전말을 위와 같이 기록하지만 읽지 말며 훗날 제대로 이야기 할 군자를 기다리겠노라.”하였다.
            단기檀紀 4312(1979)년 8월 일  
            진양晉陽 강형수姜亨洙 삼가 짓다.

 

취지문趣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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