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하동군 진교면 고이리 진주강씨 애현재 僾見齋

댓글 0

역사의 기록/경남의 진주강씨 누정재

2022. 1. 10.

2022.1.9. 진교면 고이리 진주강씨 애현재僾見齋 측면

하동군 진교면 고이리 354-1(이곡길 149-3)에는 진주강씨晉州姜氏 박사공博士公 1세 계용啓庸의 23세로 진주 진성면의 반야盤野에서 이곳 하동군 이동梨洞에 입향한 강영기姜永杞(1859~1933)을 모시는 재실 애현재僾見齋가 있다. 이곳을 고도계는 높이 42m, 위도 35°03'08"N 경도 127°55'17"E를 가리킨다. 

 

2022.1.9. 진교면 고이리 진주강씨 애현재僾見齋 대문

애현재僾見齋의 가계를 살펴보니 진주강씨 박사공博士公 1세 강계용姜啓庸으로부터 2세 급사공給事公 인문引文, 3세 어사공御史公 사첨師瞻, 4세 진원부원군晋原府院君 창귀昌貴, 5세 문경공文敬公 군보君寶, 6세 공목공恭穆公 시蓍, 7세 통정공通亭公 강회백姜淮伯, 8세 창령공昌寧公 강우덕姜友德, 9세 수헌공守軒公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강숙경姜叔卿(1428~1481), 10세  판서判書 강인범姜仁範, 11세 참봉參奉 강식姜湜, 12세 성균생원成均生員 강수굉姜壽宏, 13세 정언正言 강희姜僖, 14세 강효특姜孝特, 15세 선력교위훈연원봉사宣力校尉訓鍊院奉事 강덕용姜得龍, 16세 강홍진姜弘晉, 17세 강신망姜信望, 18세 강익래姜益來, 19세 강재주姜載周, 20세 강필우姜必佑, 21세 취산공醉山公 강창훈姜昌訓, 22세 강인회姜仁會, 23세 이봉공梨峰公 강영기姜永杞(1859~1933), 24세 인석공忍石公 난수蘭秀(達秀 1905~1981)로 이어진다.

 

2022.1.9. 진교면 고이리 진주강씨 애현재僾見齋 정면

애현재僾見齋의 위치를 몰라 처음 찾아간 곳은 고내마을이었다. 이곳 주민에게 강씨 재실을 찾으니 이 마을에는 없고 “배골”에 있다고 했다. 직선거리로 약 2km 떨어진 마을로 모두 고이리古梨里에 속한 마을이다.
애현재僾見齋는 마을 위쪽에 위치하며 재실의 앞에는 고직사가 있고 잘 만든 계단을 오르면 태극문양을 한 대문이 나타나고 대문의 우측에는 '진주강씨박사공파애현재'라는 편액을 걸었다. 마당에 오르면 우측에 제례를 위한 동무같은 집이 있고 마당의 정면에는 애현재僾見齋가 있다. 기둥에는 주련을 걸었으며 처마 밑에는 애현재僾見齋 편액이 있고, 대청의 정면에는 권상연權相淵이 쓴 애현재상량문僾見齋上樑文이 있고, 좌측 문미에는 권창현權昌鉉이 쓴 애현재기僾見齋記가 있으며 우측 문미에는 차애현재운병소서次僾見齋韻幷小序가 있다. 마루의 측면에는 후손 달수達秀가 지은 애현재원운僾見齋原韻이 걸렸으며 맞은 편에는 후손 대견大見이 지은 애현재운僾見齋韻이 걸렸다.

 

2022.1.9. 진교면 고이리 진주강씨 애현재僾見齋 측면모습
애현재僾見齋
애현재僾見齋 주련

僾見齋 주련
梨谷梨花發 배 골짝에 배꽃이 피어져 있고
淸香萬歲同 맑은 향기 오랜 세월 함께 하였네.
地靈人傑出 땅 신령해 좋은 인재 나올 곳이고
日熙天王峯 해가 밝아 하늘 임금 계신 산이라.

‣측기식 5언 절구 형식의 시
‣ 同上平一東平聲 峯上平二冬平聲

❰어휘이해❱ 안동 문정공파 청음후손 백촌
✶僾然 僾 어렴풋할 애. 조상의 영혼이 눈에 보이듯 함. 어렴풋이 조상의 모습이 떠오름. 僾然亭 僾然祠 僾然堂
‣마치--인 듯하다. 간략하나 뜻이 깊다. 어렴풋하다.
어떤 뜻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말이나 글 속에 간직함

✶僾見齋 사당 안에 들어가면 아련히 조상의 모습이 보인다 라는 의미가 내포 됨 僾見齋 애현재 로도 읽지 않을까
《예기》 〈제의(祭義)〉의 “제삿날에 방에 들어가면 애연히 자리에 모습이 보이는 것이 반드시 있고, 주선(周旋)하며 문을 나가면 숙연히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 반드시 있고, 문을 나가 들으면 개연히 탄식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반드시 있다.〔祭之日入室 僾然必有見乎其位 周還出戶 肅然必有聞乎其容聲 出戶而聽 愾然必有聞乎其歎息之聲〕”

✶淸香 맑고 향기롭다=청분(清芬).=유방(幽芳)
고결한 덕행에 비유
✶地靈人傑= 인걸지령(人傑地靈)
地靈 땅의 신령스러운 기운 人傑 매우 뛰어난 인재
당나라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에 “걸출한 인물이 나오는 것은 그 땅이 신령스럽기 때문이다.〔人傑地靈〕”라는 말이 나온다.

 

애현재상량문僾見齋上樑文
애현재기僾見齋記

僾見齋記
河南友人姜君達秀 嘗遊吾先子門以族意請 其僾見齋記者 而先子未及眦筆奄己捐世矣 達秀深致慨恨亟責 余曰 諸族咸言 旣未得先先生文 則願得子之文 以揭楣于肯諾乎 則是猶先 先生之惠也 余不肖何敢當 固辞屡年不獲 命乃畧叙齋之事實 且以所嘗聞於過庭者 一演其齋扁之義可乎 齋在達秀所居之梨洞 其六代祖考學生公 曁妣孺人金氏 自晋州盤野始移于 此及没因俱葬 其梨洞之懸鍾谷艮坐原 後世繼葬以至四代焉 達秀之先公諱永杞 魁梧負氣岸嚴整有規範 為宗族鄉黨所器重 嘗恨無一齋舍屡經 紀制度未就 而没 達秀克念遺志倡于 諸族而亦以力絀難之 乃捐其家外廊爲是齋 齋凡五架十二楹 堂室門宇咸備 扁之曰僾見齋 取祭儀僾見乎 其位之義也 余竊以為先墓之 或近 或遠 或散 或聚皆勢然若 其遠且散者 則守護省拜 祭薦之節 不能無苟且疎畧 不備之憾 而今姜氏 則近之至 而即其所居左右 在焉聚之多 而五世丘墳相上下焉 其於守護也 可不勞他人矣 省拜也可 以朝夕矣 祭薦也 可如有事於其廟矣 豈不可賀哉 然第未知其霜露之履 蘋藻之薦群子姓之在位者 果皆克念僾見之義盡 其誠敬否也 此之不念而徒以其且而已 則雖祭而如不祭矣 何者夫歲月之推移 人事之遞禪父祖之世 漸以遠矣 漸遠而宛然者 漸以依俙者 漸以冥漠矣 况於邈不相及之先祖尤 何能追而得其髣髴战 雖然此身 即父祖之遺體 父祖雖亡 而其氣之流傳於我者 未 嘗或亡 故子孫之能盡誠敬 父祖之靈即應 此理昭然不可誣也 是以前乎 祭之日而静處一室 心不散慮而齊 其内食不茹葷 而齊其外專 專一念惟在父祖 平日居處 笑語志意之如何所樂所嗜之在何 則及其祭也 僾然若父祖之見乎 其位於是焉 可冀其神之格斯歆斯 而籩豆之陳 酒饌之供不為虛設矣 故夫子不云乎 吾不與祭如不祭 惟姜氏諸公 無徒以齋成 而能薦為足以致孝其先 而時時顧念 於齋扁之義可矣 
       檀紀 四千二百八十八年 栴蒙協治之端陽日
       安東 權昌鉉 記

애현재기
하동 남쪽에 사는 강군 달수達秀¹⁾가 일찍 나의 선부군의 문하에 공부를 하였더니 그 문중 일가의 뜻으로서 애현재僾見齋 기문을 청하거늘 선부군께서 이 글을 쓰실 것을 참여하지 못하시고 세상을 별하시니 달수가 깊이 한탄하면서 빨리 내게 책임지어 말하기를 모든 일가들이 모두 말하기를 이미 선선생님 글을 받지 못한즉 소원컨대 자네 글을 받아 문 위에 걸기를 즐겨 승락한즉 이 일은 선선생님의 글 받는 것과 같다 하니 나와 같은 불초가 어찌 감당하리요마는 여러해 간청함을 거절치 못하여 이에 재실의 연유와 사실을 대략 살피고 또 일찍이 뜰에 지나다가 들은 바로 부족한데 재실 기문의 뜻을 기록함이 옳지 못하리로다. 재실이 달수 사는 이동梨洞에 있으니 그 육대 조부 학생공學生公과 또 비유인妣孺人 김씨가 진주 반야盤野로부터 비로소 이곳에 이사 와서 천명으로 돌아가심으로 인하여 그 이동梨洞의 현 종골 간좌원艮坐原에 함께 쌍분을 하더니 후세에 계속 묘를 드려서 4대까지 이르더라. 
달수의 선부군의 이름은 영기永杞²⁾니 인물이 위대하여 기력이 특출하고 언행이 엄정하여 일에 법도가 있더니, 종족과 향당鄉黨이 우러러 존중히 여기더라. 일찍이 한 재실이 없음을 한스럽게 여기며 여러해 동안 집안을 다스려 경영하고 완성함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시니 달수가 능히 선친의 유지를 마음 깊이 새겨 친족에 앞장서서 또한 성력으로 곤란을 물리치고 이에 자기 집 행랑채 재목을 연출하여 이에 재실을 지으니 재실이 무릇 5칸이요﹐ 12동이라. 재실과 문루와 고사가 전부 완비되어 재호를 붙쳐 애현재僾見齋라고 하니 제사 지내는 의식에 영혼이 그 위패에 애연이 나타나 보이는 듯함을 뜻함이라. 내 그러나 가만히 생각하니 조선의 묘소가, 혹 가깝고, 혹 멀고, 혹 흩어지고, 혹 모임은 다 형편상 그러함이라. 이렇듯이 그 멀고 또 흩어진 것은 수호하고 성묘하고 제사 지내는 절차에 능히 구차하고 소략하여 예를 갖추지 못하는 감이 없지 아니하여 이제 강씨 일문은 지극히 가깝고 그 사는 곳이 좌우에 많이 모여 살고 오대의 분묘가 서로 상하에 있어 그 수호함에 타인의 노력을 빌리지 아니하며 성묘할 때 조석으로도 할 수 있으며 제사 지낼 때도 묘당에서 일을 하는 것 같은지라. 어찌 칭찬과 하례를 하지 않으리요. 
그러나 다만 그 서리와 이슬 밟음과 재물의 받들어 올림을 알지 못하면 자손들 제사 지내는 자 과연 모두 애현의 원리를 생각하여 그 정성과 공경을 다함이 아니라 이것을 염려하지 않으면 한갓 그저할 뿐이라. 비록 제사는 지내나 제사를 아니 지냄 같으니라.
어느듯 세월이 변천함과 인간 행사가 변하여 흐름과 선조의 세대가 점점 멀어짐이라. 점점 멀어져도 그 전과 다름이 없음은 점점 어렴풋이 보이고 어렴풋이 보임은 점점 아른아른할 것이어늘 하물며 아득히 옛적 아득한 선조先祖를 더욱이 어떻게 능히 추억하여 그 방불함을 얻으리요. 비록 이 몸이 조선祖先의 유체요. 조선이 비록 돌아가시나 그 윤기가 흐름이 내게 전하여 일찍 혹 없지 않으므로 자손이 능히 정성과 공경을 다하면 조선의 영혼이 곧 내게 응답할 것이니 이런 이치가 소연히 밝아서 가히 속이지 못할 것이라. 이러므로서 제사의 전날에 한방의 고요한 곳에서 정신이 그 마음속에 정제할 것이요. 음식을 파와 마늘 등을 먹지 말며 그 외부를 정제하여 일정심으로 마음이 조상의 평소의 거처와 웃고 말씀함과 마음의 뜻이 어떠함과 즐거운 바와 즐기는 바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면 그 제사 지낼적에 아른아른히 조선의 거동과 음성이 그 자리에 보일듯 하나니 이제야 가히 그 신령이 나타나서 음식을 흠향하며 변두籩豆의 진설陳設과 주찬酒饌의 올림이 허망한 진실이 아니될 것이라. 고로 공부자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는가. 내가 제사 아니 지내면, 제사 아니 지냄 같다 하시니 오직 강씨 모든 이는 공연히 재실만 지었다 하지 말고 능히 선영에 제사를 받들어서 그 선조께 효도를 바쳐 때때로 재실 현판 애현僾見이란 뜻을 자주 생각함이 옳을 것이다.
    단기4288 을미년 올월 초닷새 날
    안동 권창현이 짓다.

【주석】
달수達秀¹⁾ : 박사공의 24세로 족보의 이름은 난수蘭秀이고 알려진 이름은 달수達秀(1905~1981)로 대한민국 제헌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자는 순문舜文이고 호는 인석忍石으로 아버지는 영기永杞이고 아들 대성大成, 대환大奐, 대우大佑, 대삼大杉, 방승炐承, 방희炐喜를 두었다.
영기永杞²⁾ : 강영기姜永杞(1859~1933)는 진주 진성면 반야에서 하동 진교면 이곡梨谷으로 이주했으며, 자는 치중致中이고 호는 이봉梨峰이다. 아버지는 인회仁會이며 동생은 영식永植이다. 아들 난수蘭秀(達秀)가 있다.

 

차애현재운병소서次僾見齋韻幷小序
애현재원운僾見齋原韻

僾見齋原韻 애현재 원운[전문]
僾見墳菴此日成 僾見齋라는 墳菴 이 날 완성하니
爲將楣義詔來生 門楣의 뜻을 후손들에게 알리기 위함일세
敢承寤寐先人志 감히 오매불망 선인의 뜻을 이어
肆寓春秋遠慕誠 봄가을에 멀리 사모하는 정성을 보이네
萬鬣杉松環壟翠 삼나무 소나무 잎은 무덤 둘레 푸르고
一根花樹滿園明 한 뿌리의 花樹는 동산에 가득 밝구나
諸昆式好團欒席 여러 후손 우애롭고 단란한 자리에서
香火相傳百世盟 香火를 백세토록 전하기를 맹세하네
不肖 後孫 達秀 泣稿

*花樹 : 당(唐)나라 위장(韋莊)이 화수(花樹) 아래에 친족을 모아 놓고 술을 마신 일에서 유래하여, 친족들이 모여 정답게 연회를 베푸는 것을 말한다.

 

애현재운僾見齋韻

애현재운僾見齋韻
六代河陽一閣成 육대조가 하동에 한 누각을 이루니
遲遲且愧到殘生 오래도록 부끄럽게 남은 생애 이르렀네.
架盈詩禮固爲業 서가 가득 시경(詩經)•예기(禮記) 진실로 학업 됐고
門對松楸敢忘誠 문 앞에는 선영(先塋)으로 감히 정성 잊으랴.
守護豈云能事畢 수호로만 어찌 능히 일 마쳤다 이르는가.
慕瞻要在此心明 앙모하는 이 마음은 분명히 필요할 뿐.
敬將僾見楣懸後 공경스레 애현(僾見)편액 문미(門楣)에 달고 난 후
香火年年立祀盟 해마다 향불 피워 제사 드림 맹세하네.

❰어휘이해❱ 안동가문 청음 후손 백촌
六代 6대 조부 학생공이 진주 진성면 盤野에서 하동군 梨洞 (뱃골)으로 옮김
河陽 하동군
遲遲 느릿느릿한 모양. 온화한 모양. 천천히
長久함 . 오랜 시간. 주저하는 모양. 이 글에서는 오랜 시간의 의미로 쓰임
殘生 남은 생애
松楸 소나무와 가래나무. 주로 묘지 근처에 많이 쓰임
선영(先塋)=(조상의 무덤을 가리킴) 과 분묘(墳墓)
慕瞻=瞻慕=仰慕앙모 우러러 사모함
楣懸 문미(門楣)에 편액을 걸어놓음
門楣 문이나 창문 위에 가로 건너지른 나무
立祀 제사를 드림 祀제사 사= 立祠
立祠 사당을 세 움. 제사를 드림. 祠 사당 사. 제사 사

사업자 정보 표시
| | | 사업자 등록번호 : -- | TEL : --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