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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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 마암면 석마리 진주강씨 죽림재 竹林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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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경남의 진주강씨 누정재

2022. 1. 25.

2022.1.22. 마암면 석마리 진주강씨 죽림재竹林齋

고성군 마암면 석마리 200(석마1길 136-28)에는 진주강씨晉州姜氏 은열공殷烈公의 11세 중시조 정순공파正順公派 원발元發의 후손인 은열공의 24세로 진주 인담仁潭에서 이곳 고성군으로 입향한 죽담공竹潭公 학㶅(1685~1754)을 모시는 재실 죽림재竹林齋가 있다. 이곳을 고도계는 높이 55m, 위도 35°03'14"N 경도 128°19'05"E를 가리킨다. 

 

2022.1.22. 마암면 석마리 진주강씨 죽림재竹林齋 대문

죽림재竹林齋의 가계를 살펴보니 은열공殷烈公 1세 민첨民瞻으로부터 2세 태자태사太子太師 단旦, 3세 대언예빈경代言禮賓卿 보輔, 4세 좌승일본문과부左丞一本文科府 삼중대광三重大匡 검교좌정승檢敎左政丞 정협貞叶, 5세 판삼사사判三司事 전법사판서典法司判書 추성익대공신推誠翊戴功臣 려익呂翼, 6세 태자첨사太子詹事 첨사공파조詹事公派祖 원감元鑑, 7세 삼중대광三中大匡 문하시중門下侍中 시호諡號 충경공忠敬公 정靖, 8세 비서좌사秘書佐事 숭문관학사崇文舘學士 상주목사尙州牧使 순珣, 9세 예빈경禮賓卿 조祚, 10세 수군병마절도사水軍兵馬節度使 중황重璜, 11세 삼중대광전법판서三重大匡典法判書 원발元發이 정순공파正順公派의 파조派祖를 이루며, 12세 비毖[比+心], 13세 자경自警, 14세 추충공신진주군推忠功臣晋州君 욱勖, 15세 한림원翰林院 안중安重, 16세 졸당공拙堂公 진瑱, 17세 행세자사관行世子師官 응경應卿, 18세 인계공仁溪公 유濰, 19세 성호공省湖公 대수大壽, 20세 군기사주부軍器寺主簿 술述, 21세 담은공淡隱公 이주以周, 22세 유壝, 23세 열경공悅卿公 순자舜咨, 24세 통덕랑通德郎 죽담공竹潭公 학㶅(1685~1754)으로 이어지고 학㶅은 아들 25세 일복一復과 일진一晋을 두었다.

 

유비문有斐門

손암遜菴 강석황姜錫鎤이 쓴 유비문有斐門 편액

 

마을 윗쪽에 위치한 죽림재竹林齋의 대문에는 유비문有斐門이라 편액했고, 본당은 죽림재竹林齋이며, 기둥에는 주련을 걸었고 대청 위에는 강석황姜錫鎤이 지은 죽림재기竹林齋記, 후손 강두환姜斗煥이 지은 죽림재상량문竹林齋上樑文과 후손들이 지은 근차죽림재운謹次竹林齋韻, 후손 상환尙煥이 지은 죽림재원운竹林齋原韻 등이 걸려 있다. 그리고 고성향교지에는 허태동許泰東이 지은 죽림재기竹林齋記가 있어 아래에 소개한다.

 

죽림재竹林齋

竹林齋記
鐵城治北一舍許 堂山之下石馬甘洞村 故晋陽姜公通德郎竹潭諱㶅 所居之遺地也 其洞後堂山麓負坤 而有四尺為封者 公之冠履之藏 又其下近家地肯構一室 而扁曰竹林齋者 即為公墳庵歲祭 齊宿之所也 按居石馬之晋姜 麗朝諡般烈公諱民瞻之苗裔 般烈公之十五世孫 諱安重官文科翰林弘文舘校理 於公間九世分派祖 公肅廟乙丑生于 晋陽仁潭里 第天性清正 有才雄夙通學問八中鄉試五中覆試 以首選舉人陞通德郎 又以明經雄筆 鳴於當世晚年擇隱宜所 而自晋移居于 此惟以究經教子 為其老益壯之樂 英廟甲戌以享年七旬辭世今距 公之年己過二百 有數十餘載 且其雲饭之繼傳方至 八九世于 今其諸後承竟不忍無 為公寓慕之所 奮然發議 以圖構齋 齊心並力 遂始營於歲乙卯春 而告訖於當年之小春 其制以五楹四架鞏緻 有寬敞扁楣曰竹林盖因 其公號而名之云 夫竹之為物不屈 其志專守其貞 於草木之萬類參 其四君子之一也 則斯齊之名盖取 與竹性之美 久遠不變之義也 又其門曰 有斐者詩云 瑟分僩兮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諠兮是亦並取其君子之德行 終不忘永慕之義也 則可知其為扁之名深且重焉 夫世人或有不知崇祖之眞義 而徒以築室之翼翼為自足者許多 而若於為先之事為觀美而而矣 則是有尊先之名 而無尊先之實安足道之為先肯堂耶战 願登斯齊者徒勿悦乎 成肅之功深知報本之實恒 以如在之誠 追慕無己 則於祖於孫俱成慈孝 自有其一根萬枝之盛 一源長流之遠矣 然則是竹林之名 亦有水傳之光矣 余不辭於其后孫尙煥 東道之懇請姑書 此而以為記焉
乙已仲春下澣 金海 許泰東 記

죽림재기
철성鐵城¹⁾의 북편北便 30리 밖 당산堂山 아래 석마石馬 감동촌甘洞村은 옛 진양강공晋陽姜公 통덕랑通德郞 죽담竹潭 이름 학㶅²⁾이 살던 유지遺地이다. 그 마을 뒤 당산堂山 곤좌원平生原에 사척四尺의 묘墓는 공公의 관리冠履³⁾를 장사지낸 곳이요 그 아래 근접한 집과 땅에 집 한채를 지어 죽림竹林이라 이름한 정숙한 곳은 공公의 분암墳庵이며 매년 제사 지내며 묵는 곳이다.
석마石馬의 강씨姜氏는 려조麗朝 시은렬공諡殷烈公 휘민첨諱民瞻의 후손后孫으로 은렬공殷烈公의 15세손 이름 안증安重은 문과한림홍문관교리文科翰林弘文館敎理니 공公의 9대파조九代派祖이다. 공公은 숙묘을축肅廟乙丑(1685)에 진양晋陽 인담仁潭에서 출생하니 천성天性이 청정淸正하고 재질才質이 뛰어나 일찍 학문學問에 능통能通하여 여덟번 향시鄕試와 다섯번 복시覆試에 수선首選으로 합격合格하여 통덕랑通德郞에 오르고 문행文行과 글씨는 당세當世에 드러났다. 만년晩年에 은일隱逸할 적소適所를 택擇하여 진양晋陽에서 이곳에 이거移居하고 오직 구경究經과 교자敎子로서 노익장老益壯의 낙樂을 삼다가 영묘갑술英廟甲戌(1754)에 향년享年 칠순七旬으로 별세別世하였으니 이미 수백년數百年이 지나고 자손子孫 또한 팔구세八九世에 이르렀다. 오늘날 모든 후손이 공公을 위한 우모寓慕할 장소가 없음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분렬발의奮烈發議하여 재실 짓기를 도모圖謀하고 마음과 힘을 합쳐 을묘춘乙卯春에 드디어 처음 일을 시작하여 그해 10월에 공사를 마치니 오영사가五楹四架로서 앞이 탁 트여 넓은 구조이며 재실 이름을 죽림竹林이라 하였으니 공公의 호號를 인용因用함이라 한다. 대저 죽竹의 본성本性은 그 뜻이 불굴不屈하고 오로지 정절貞節을 지켜 일만초목증一萬草木中에 사군자四君子의 하나인즉 이 재명齋名은 대개 죽성竹性의 미美와 함께 영원 불변不變의 뜻을 취함이요 또한 유비有斐라 문호門號함은 시운詩云 슬혜한혜瑟兮僩兮며 혁혜훤혜赫兮喧兮니 유비군자有斐君子여 종불가훤혜終不可喧兮⁴⁾라 하였던바 이 또한 군자君子의 덕행德行을 깊이 불망영모不忘永慕하는 뜻을 취함인 즉 가히 편명扁名의 심중深重을 알겠도다. 세상 사람이 혹 숭조宗祖의 진의眞義를 모르고 한갓 재실을 이루는 것에 공경하고 삼가는 모양으로 스스로 만족하는 자者 많으니 만약 선조를 위하는 일에 보기 아름다움만 취한 즉 이는 존조尊祖의 이름만 있고 그 실상實常은 없는 것이니 어찌 위선爲先의 유당有堂이라 바라건대 이곳에 오르고자 하는 이는 한갓 재실을 이루는 것의 공功에 만 즐거워 말고 보본報本의 진실眞實을 깊이 알아서 항상 여재如在의 정성精誠으로 추모追慕함을 가진즉 할아버지와 손자간에 자애로운 효도를 이루어 일근만지一根萬枝의 성盛함과 일원장류一源長流의 달達함이 자연自然 있으리니 그런즉 죽림竹林의 이름 또한 길이 빛나리라 나는 그 후손後孫 상환尙煥⁵⁾과 동도東道⁶⁾의 간청에 사양하지 못하여 이 글을 써서 기문記文 하노라.
1905년 음력 2월 15일 김해 허태동許泰東 짓다.

【주석】
철성鐵城¹⁾ : 경남 고성군의 옛 지명
학㶅²⁾ : 강학姜㶅(1685~1754)은 은열공의 15세손으로 자는 운지運之이고 호는 죽담竹潭이며 통덕랑문학通德郎文學을 지냈으며 아버지는 순자舜咨이고 할아버지는 강유姜壝이다. 아들은 은열공 24세 일복一復과 일진一晋을 두었다.
관리冠履³⁾ : 관과 신을 아울러 이르는 말
시운詩云 슬혜한혜瑟兮僩兮며 혁혜훤혜赫兮喧兮니 유비군자有斐君子여 종불가훤혜終不可喧兮⁴⁾ : 詩云 "瞻彼淇澳 菉竹猗猗 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喧兮"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瑟兮僩兮者 恂慄也 赫兮喧兮者 威儀也 有斐君子終不可喧兮者 道盛德至善 民之不能忘也.
시경에 이르기를 ‘저 기수 모퉁이를 도니, 푸른 대나무가 무성하구나! 문채나는 군자여, 잘라놓은 듯하고, 간 듯하며, 쪼아놓은 듯하고, 간 듯하다. 엄밀하고 굳세며, 빛나고 점잖으니, 문채나는 군자여, 끝내 잊을 수 없다.’ 하였으니, 
여절여차는 학문을 말한 것이요, 여탁여마는 스스로 행실을 닦음이요, 슬혜한혜는 마음이 두려워함이요, 혁혜훤혜자는 겉으로 드러나는 위의요, 문채나는 군자여 끝내 잊을 수 없다는 것은 성덕과 지선을 백성이 능히 잊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상환尙煥⁵⁾ : 상환尙煥의 가계를 보니 은열공 23세 순자舜咨, 24세 제濟, 25세 일겸一謙, 26세 응조應祖, 27세 문우文友, 28세 재익在益, 29세 석성錫成, 30세 인순仁淳, 31세 동수東洙, 32세 상환尙煥으로 이어진다.
동도東道⁶⁾ : 동도東道의 가계를 보니 28세 재익在益, 29세 석춘錫春, 30세 세순世淳, 31세 동도東道으로 이어진다.

 

죽림재竹林齋 주련
죽림재기竹林齋記

竹林齋記
夫人莫不有先 爲先而築之齋 爲齋宿寓慕之所 此固追遠報本之義 然苟無誠意以將之 是亦虛器而己 近世之俗 好營齋舍 凡族性之閥 必於先墓之下故里之傍 無不汲汲營築 競以侈麗相誇 爲奉先合族之所者相望於鄕里 非不盛且美矣 徐而觀之 不數世己發而入於他人之手者多 歲時墓祀 不能以躬而及其久也 乎闕亨者有之 是豈非不務於誠而惟虛飾是事故耶 固城治北石馬坊甘洞 有晋陽姜氏竹林齋者 爲其先祖通德郎竹潭公諱㶅而作也 其築 在乙卯之歲而請余扁其名號而記之 余以竹林 應之 爲公之自號以竹而思慕之無待外求 堂曰長春 軒曰樹德 門曰有斐 幷皆竹林之所助也 姜氏之莫于玆坊 已數百年 距竹潭公 世十餘矣而今始有是築則視世之汲汲營築者 固已緩矣 其制 僅五楹四架 儉樸不侈則視世之宏麗相誇者 亦若拙矣 然 惟其不計其力之不及而擔百艱而克起之 不恤其事之刱新而合群議而卒就之 非誠意篤至者 何能如是也 誠苟至矣 緩而有成 何如其暫而難久 拙而能守 何如其名而不實 其成守之際 終能尙其質而約其文 務其實而儉其外者未能非出於其誠則可知姜氏之爲 固有異於世俗之徒事於虛器者也 且聞竹潭公 少有文學長材 累中鄕試 留洋官三載 上疏累陳科獘 事雖不行 亦人所難爲者也 公晩年 自世居晋陽之仁潭 移居于此 有厚德潛德 爲一家貽謀之祖而後承 蕃衍 自成一閈 不發本業 篤守舊義 齋宿於是而封塋歲薦之有禮 敎訓於是而子弟新進之知學 又以其優羡 迎賓客進車轍 習捐讓聽講論 聲谷之日以益恢而丈物之漸次備具 何見竹潭公之有後 於是 爲益裕矣 然 暫而徒名 不可以不誠 實而維久 不可以不務則因始而究其終 由末而報其本 惟在誠意焉而已 無是乎則將何以自異於世俗之虛器哉 此姜氏之所 當勉而余言之不可已也
大韓民國 五十八年 丙辰夏至節 宗下 姜錫鎤 記

 

죽림재상량문竹林齋上樑文

두환斗煥 : 강두환姜斗煥은열공의 32세로 죽림재상량문竹林齋上樑文을 지었다. 그의 가계를 보니 20세 군기사주부軍器寺主簿 술述, 21세 담은공淡隱公 이주以周, 22세 유壝, 23세 열경공悅卿公 순자舜咨, 24세 제濟, 25세 일임一臨, 26세 완玩, 27세 중우重友, 28세 재문在文, 29세 석홍錫洪, 30세 상순尙淳, 31세 동준東俊, 32세 두환斗煥으로 이어진다.

 

근차죽림재운謹次竹林齋韻
죽림재원운竹林齋原韻

竹林齋原韻
積世營謀始構堂
爲先誠力寛多惺
楸松譊戶瞻望切
霜露濡庭0慕長
聚族聊談花樹誼
邀賓難具黍鷄香
莫言此屋屋無華
侈猶勝墻轉眼荒

 

수덕헌樹德軒

손암遜菴 강석황姜錫鎤이 쓴 수덕헌樹德軒 편액

 

장춘당長春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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