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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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 개천면 명성리 진주강씨 명모재 明慕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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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경남의 진주강씨 누정재

2022. 1. 29.

2022.1.26. 고성군 개천면 명성리 진주강씨 명모재明慕齋 전경

고성군 개천면 명성리 314(명성2길 41-2)에는 진주강씨晉州姜氏 박사공博士公 1세 계용啓庸의 13세로 임난공신壬亂功臣 원종훈原從勳 희수希秀와 함께 활동한 아들 기원起元을 모시는 재실 명모재明慕齋가 있다. 이곳을 고도계는 높이 88m, 위도 35°06'04"N 경도 127°15'36"E를 가리킨다. 

 

2022.1.26. 고성군 개천면 명성리 진주강씨 명모재明慕齋 대문

명모재明慕齋의 가계를 살펴보니 진주강씨 박사공博士公 1세 강계용姜啓庸으로부터 2세 급사공給事公 인문引文, 3세 어사공御史公 사첨師瞻, 4세 진원부원군晋原府院君 창귀昌貴, 5세 문경공文敬公 군보君寶, 6세 공목공恭穆公 시蓍, 7세 통정공通亭公 강회백姜淮伯, 8세 창령공昌寧公 우덕友德, 9세 수헌공守軒公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숙경叔卿(1428~1481), 10세 생원生員 신범信範, 11세 통덕랑 운沄, 12세 수담壽聃, 13세 원종훈原從勳 희수希秀, 14세 기원起元, 15세 성용聖龍, 16세 명길命吉, 17세 위망渭望, 18세 태관太寬으로 이어지며, 태관은 아들이 셋이니 19세 치징致澄, 치문致文, 치희致姬가 있다. 치희는 20세 석일碩溢, 21세 재림載琳으로 이어지며, 재림은 22세 달회達會, 현회賢會를 두었으며, 현회賢會는 23세 재익在益을 두었고, 재익은 24세 일수一秀, 이수二秀, 삼수三秀(1912~1988)를 두었다.

 

덕숭문德崇門

명모재明慕齋는 마을 입구에 솟아 있으며 솟을삼문에는 덕숭문德崇門이라 편액하고 좌우에 ‘晉州姜氏固城君宗會’와 ‘晉州姜氏博士公 通亭公后 執義公 宣務郎公諱希秀門中明慕會’라는 편액을 걸었고 오른쪽 협문에는 ‘明慕齋附設 正心學堂 禮節校室’이라는 편액을 걸어 두었다. 본당은 명모재明慕齋라 편액하고 기둥에는 주련을 걸었으며, 대청에는 명모재기明慕齋记와 명모재상량문明慕齋上樑文이 걸렸으며, 명지모의明智慕義 편액과 언충신행독경言忠信行篤敬, 인애인화仁愛忍和 등 여러 편액이 있다.

 

2022.1.26. 고성군 개천면 명성리 진주강씨 명모재明慕齋 
2022.1.26. 고성군 개천면 명성리 진주강씨 명모재明慕齋 주련

명모재明慕齋 주련-문산

天下一等人忠孝 천하제일의 사람은 충효하는 것이고
世上兩件事耕讀 세상의 두 가지 큰일은 경작하고 독서하는 것이다.
龢氣春風賢者咥 봄 바람의 온화한 기운에 현자가 크게 웃고
靜山流水至人德 고요한 산에 물 흘러 인덕에 도달하네

 

明慕齋记
明慕齋 卽我先祖宣務郎公位下 列先祖歲事之室也 公諱希秀 中祖博士公之十二代孫 而司憲府執義 贈吏曹判書諱叔卿公之玄孫也 祖考通德郎諱沄寓居咸安 才行著世 配恭人仁川李氏 以烈蒙旌 事載咸安郡誌三綱錄 閭在咸安坪舘 純廟壬辰 移建于晋州北冬勿谷 考諱壽聃公 移寓河東北川 宣務郎公 為値壬亂與子起元公 倡義立功宣武原從二等勳 起元公卽賜定虜衛錄卷 宣務郎公為宣廟中葉別墅 於介川明洞因 而子孫世居繁衍 不墜彛倫之常 奉先之節 然而今世文物大進 人類契活 專在從俗動靜 而子孫離基就業 楸下殘宗 不過半遍域散居者 列先祖衣服之藏 莫能以時省掃未得守護 其常如此漸淪 則不無斁倫之憂因 而築齋追遠展親之義庸備藏籩滌罍 為其春秋亨齊宿 以講敦睦之義 卽庶免昃倫之弊 豈不美哉 門中長老有志者累會合議決甲子正月起工 遠近諸宗殫誠竭力 丙寅四月正堂六間 行廊三間門墙等竣工 扁曰明慕齋 取洞名明字愛族 明倫之義 尊祖慕先之意也 夫人道之常在於親親親親之本 卽為其尊祖 尊祖之本 卽在於敦宗也 故堯典九族 周禮之九兩 卽是親親尊祖之綱也 齋功今訖吾門子孫者 各敬爾儀孝祀岡愆虔守百世 卽永久不墜 先祖之遺風矣 是豈非明慕之道乎乎 相行勉勵哉 
檀紀四千三百十九年 丙寅三月十日 
宣務郎公 十一代孫 姜三秀 謹記
咸安后人          趙基顯   書

명모재기
명모재明慕齋는 우리 선조 선무랑공宣務郎公 이하 선조들에게 한 해 동안 일어난 일을 아뢰는 집이다. 공의 이름은 희수希秀¹⁾이니 중조中祖 박사공博士公의 20세손이요. 사헌부집의 증이조판서贈吏曹判書인 이름 숙경叔卿 공의 현손玄孫이다. 할아버지 통덕랑通德郎 이름 운沄이 함안에 살았는데 재주와 행동이 세상에 드러났고 배우자 공인恭人 인천이씨는 열부烈婦로 정려旌閭를 입은 사실이 함안군지咸安郡誌 삼강록三綱錄에 실렸으며 정려각은 함안咸安 평관坪舘²⁾에 있다. 순묘임진純廟壬辰(1832)에 진주의 북쪽 동물곡冬勿谷에 이건했다. 
아버지 이름 수담공壽聃公이 하동 북천北川에 임시로 살았는데 선무랑공宣務郎公이 임난壬亂에 아들 기원공起元公³⁾과 함께 창의倡義하여 공을 세워 선무원종이등宣武原從二等에 녹훈되고 기원공起元公도 돌아가신 후 정로위定虜衛에 기록되었다. 선무랑공이 선조宣祖 중엽에 별서別墅를 개천介川 명동明洞⁴⁾에 둠으로 인하여 자손들이 대대로 살며 번성하여 항상 떳떳한 도리와 선조를 받드는 예절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그러나 금세 문물이 발달하여 인류人類가 살기 위해 고생함이 오롯이 있고 세상 풍속대로 따르는 일이 생긴다. 자손이 떠나서 그 업을 이루니 조상의 무덤 아래 남아 제사 지냄이 반도 되지 않음이라. 좁은 지역에 산재해 차례대로 있는 선조의 옷과 신발로 묻은 곳을 능히 때로는 성묘하고 항상 지킬 곳을 아직 얻지 못했으니 이와같이 점차 사람의 도리에 인륜의 걱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하여 옛일을 생각하며 그리워하고 친함을 펼쳐 올바르게 재실을 건축하여 제기를 씻을 대야를 갖추어 놓고 그렇게 봄가을로 제사 지내며 잠잘 곳을 마련하고 이로써 화목의 의리를 배우고 윤리의 폐해가 거의 기울어졌으니 어찌 불의不義라 겠나. 문중門中 장로長老의 뜻있는 사람이 여러번 회합과 의결議決을 가져 1924년 1월에 기공을 하여 멀고 가까운 모든 종족이 진정으로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1926녀 4월에 정당正堂 6칸과 행랑行廊 3칸, 문과 담장을 준공하였다. 편액扁額의 이름을 명모재明慕齋라 함은 마을 이름에서 취하였고 명자明字는 족인族人을 사랑하고 인륜을 밝게 하는 의로움과 선조를 존경하고 그리워한다는 뜻이다. 아비의 도리는 항상 친함을 가지는 것이요. 친함의 근본은 곧 그 선조先祖를 존중함이요 선조를 존중하는 근본은 종족끼리 도타움이 있는 것이라 고로 요전堯典의 구족九族⁵⁾과 주례周禮의 구양九兩⁶⁾이 즉시卽是 어버이를 섬기고 조상을 높이는 강령綱領이라 재실공사를 이번에 마치니 우리 집안의 자손子孫되는 사람은 각자 자기의 몸가짐을 경건하게 해야 하나니 효도하고 제사 지냄에 허물이 없게 하고 오랫동안 법칙을 맡아 지켜 영원히 선조의 유풍遺風을 떨어뜨리지 않아야 한다. 이 어찌 선조를 그리워하는 도리를 밝게 하지 않으리요 서로 힘써 노력하라. 
서기 1986년 3월 10일 
선무랑공宣務郞公 11세손 강삼수姜三秀 삼가 적고
함안후인                      조기현趙基顯       쓰다

【주석】
희수希秀¹⁾ : 생몰 기록은 없고, 임난선무원종공신壬亂宣武原從功臣으로 기록됨
평관坪舘²⁾ :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明舘里를 말함.
기원공起元公³⁾ : 생몰 기록은 없고, 아버지 희수공希秀公과 함께 임난 때 적을 많이 죽인 공로로 정로위定虜衛에 증직 되었다.
명동明洞⁴⁾ : 고성군 개천면 명성리明星里를 말한다.
요전堯典의 구족九族⁵⁾ : <堯典>요전에 “克明俊德 以親九族 旣睦 平章百姓 百姓 昭明 協和萬邦 黎民 於變時雍” “큰덕을 밝히시어 구족을 화목하게 하셨고 구족을 화목하게 하시니 백성이 밝게 다스려젔고 백성이 밝게 다스려지니 온 세상이 화평하게 되었다.”는 망이 있다. 
구족九族은 고조高祖, 증조, 조부, 부친, 자기, 아들, 손자, 증손, 현손玄孫까지의 직계直系 친족親族을 말한다.
주례周禮의 구양九兩⁶⁾ : 『周禮』에 백성을 다스리는 구종九種의 사람으로 즉 목牧. 장長. 사師. 유儒. 종宗. 주主. 이吏. 우友. 수藪를 말함.

 

명모재상량문 明慕齋上樑文
大抵 사람이 萬物의 靈長됨은 智慧가 밝고 倫綱이 있음으로 써니라 그 중에도 孝를 倫理의 바탕으로 삼음은 多取하여도 禁함이 없고 過用하여도 다함이 없는 人類의 大道이기 때문이다. 西紀一九八五年乙丑歲暮에 宣務郎公의 十二代孫大燮氏가 明慕齋의 樑頌을 請하면서 우리 明洞一門은 顯祖司憲府執義贈吏曹判書諱叔卿公의 玄孫이신 宣務郎諱希秀公의 後裔로 公의 祖通德郎沄公은 才行著世하였고 配恭人仁川李氏以烈命旌하여 事載咸安郡誌三綱錄하고 考諱壽聃公이니 移寓河東北川하여 有文行하고 宣務郎公은 文武有才하고 英邁義俠하심에 壬辰國難에 아드님 起元公과 더부러 倡義하여 晉州城에서 立功하여 宣武原從二等勳에 오르고 起元公도  賜定虜錄卷하시다. 乱靖後公이 介川明洞에 別墅를 두고 以後子孫들이 世居하여 四百女에 가까운지라 奉先築齋를 累代圖謀하다가 이제 그 宿願을 이루어 이일을 記念코저 一文을 請한다 하거늘 내 識見과 文章이 얕아 이 거룩한 일에 陋가 되겠기에 辭讓하였으나 年前에 明慕齋号를 撰獻한바 있어 固辭치 못하고 외람되게 이 글을 쓰거니와 무릇 일은 때가 되어야 成事된다고는 하나 때는 매양 있으되 精誠이 없다면 어찌 이루움이 있으리요 지금 世態가 西俗東漸으로 傳統倫理가 疎觧되어 代가 다하지 않아도 祭祀할 줄 모르고 上奉下率이 乱序한 이때 明洞一門에서 書誠築齋하여 報本睦族하니 이는 그 根本을 잃지 않음이며 곧 孝의 發祥이라 孝는 忠이오 仁이오 德이오 敎化이니 根本을 잃지 않는 곳에 安定과 繁榮이 함께함은 古今의 正理라 어찌 弘福이 없을 것이며 祝頌하지 않으리오 仙遊峯 精氣 빼어난 곳 人倫이 밝아 明洞이라한 祖上끼치신 터에 百子千孫 精誠모아 우뚝하게 齋室지어 들보들어 높이 올리니 蒼空에 日月이 빛나고 大地에 萬物이 生動한다 四岳이 賀禮드리느 곳 百川이 相應하고 五常이 다시 밝으니 德化가 八城에 미치리라 半千年 祖上을 잊지 않음이여 子孫萬代에 敎訓이로다. 明慕孝悌之門에 一樹固花의 봄이 길도다.
바라건대 上樑後에 天地神明과 祖宗의 精靈이 保佑하사 地德이 더욱 安定되고 遺澤이 기리 傳垂토록 하시고 後孫된 者 先祖를 追慕하고 人倫을 밝히고 守護하는데 힘쓴다면 明慕의 뜻을 다함이니 榮譽가 어찌 한 門中에서만 그치리오.
檀紀四千三百十九年 丙寅三月 日
傍族 姜昌錫 謹撰
咸安人 趙基顯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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