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야생화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아희원람 - 창시 創始2 (면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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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뿌리가 있는 곳

2022. 4. 12.

冕 黃帝作 冠上有覆前後有旒 夏冕曰收 殷冕曰冔
면류관[冕]: 면류관은 황제가 만들었다. 왕관 위에 덮개가 있고앞뒤에는 주옥을 꿴 술이 달려 있다. 하나라 때의 면류관을 수(收)라하고, 은나라 때의 면류관을 후(冔)라 한다.

 

袞衣黄帝作 繪龍山華蟲火宗彛五章 天子之龍 一升一降 上公但降龍 龍首卷然故名
곤룡포[袞衣]: 곤룡포는 황제가 만들었다. 용과 산과 꿩과 불, 종이 등 다섯 가지 무늬를 그려 넣었다. 천자는 용이 한 마리는 오르고 한 마리는 내려오고, 상공은 내려오는 용만 있다. 용의 머리가 똬리를 틀고 있어서 곤의라고 이름 지었다.

緇布冠 太古冠也 其制僅可撮髺
치포관(緇布冠): 치포관은 태고 때부터 사용되던 관인데, 치포관으로 인해 비로소 상투를 틀 수 있게 되었다.

笠子 制自古之臺笠
갓[笠子]: 삿갓 양식은 옛날의 대립(臺笠)에서 비롯되었다.

網中 古無其制著 皇明初道士所爲也 太祖命頒天下無貴賤 皆裏惟流 求人朝會著之 常時不著.
망건(網巾): 옛날에는 망건 양식이 없었다. 명나라 초기에 도사道士가 만든 것이다. 태조가 세상에 나누어 주도록 명하여 귀천에 관계 없이 누구나 흘러내리는 머리를 싸도록 하였다. 조회하는 사람들이 착용하도록 하였는데, 평소에는 착용하지 않았다.

襪 文以前已有之
버선[襪]: 문왕 이전에 이미 버선이 있었다. 

履 皇帝臣於則作 後代因之增衍其制云
신발(履): 신발은 황제의 신하 어칙(於則)이 만들었다. 후대에 여기에 덧붙여 그 형식이 다양하게 되었다고 한다. 

 

梳 赫胥氏始作木流 舜以牙瑇瑁爲之
빗[梳]: 빗은 혁서씨가 처음 나무빗을 만들었다. 순임금이 상아나 거북껍질로 만들었다. 

鏡 尹壽作 舜臣
거울[鏡]: 거울은 윤수(尹壽)가 만들었다. 윤수는 순 임금의 신하이다. 

眼鏡 一名靉靆 本西洋產 明時 中國人始學造焉
안경(眼鏡): 안경은 일명 애체(靉靆)라고도 한다. 본래 서양에서 만들어졌다. 명나라 때에 중국인이 처음으로 만드는 법을 배웠다. 

指環 本三代之制 今言自楊妃始造者誤
반지[指環]: 반지는 본래 삼대의 물건이다. 오늘날에는 양비(楊妃) 때부터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熨斗 董卓塊銅人十枚 爲小錢熨斗
다리미[熨斗]: 동탁(董卓)이 사람의 모습을 한 동상 10매를 녹여서 소전과 위두를 만들었다. 

尿器 古之虎子 自周有之 尿古溺
요강(尿器]: 옛날의 변기로, 주나라 때부터 있었다. 尿는 옛날의 溺이다

笏 周前已有 天子以珠玉 諸侯象 大夫漁鬚 土竹札
홀(笏): 홀은 주 나라 이전에 이미 있었다. 천자는 주옥으로, 제후는 상아로, 대부는 물고기 수염[漁鬚]으로 사(士)는 죽찰(竹札)로 만든다. 

扇 女媧始以草結為之 宋元以前 只有團扇以蒲葵爲美 今摺扇之制 初出倭俗 以其簡易天下同尙
부채[扇]: 부채는 여와가 풀을 엮어 처음으로 만들었다. 송나라 원나라 이전에는 둥근 모양의 부채만 있었는데 부들과 거북 뼈로 장식했다. 요즘의 접는 부채 형식은 처음에는 일본의 풍습에서 나온 것인데 그 간편함 때문에 세상 사람들 모두가 좋아하게 되었다.

 


紙 古用竹簡 始皇始用縑帛謂之紙 漢和帝時 宦者蔡倫 乃以樹膚麻頭及敝布魚網造之
종이[紙]: 옛날에는 종이로 죽간을 사용하였다. 시황제 때 처음으로 비단을 사용하여 지紙(종이)라 일컬었다. 한나라 화제(和帝) 때 관리였던 채륜이 나무껍질, 마의 머리부분, 헤진 포, 물고기의 벼리를 가지고 종이를 만들었다.

筆 蒙恬造 柏木爲管 鹿毛爲柱 羊毛爲皮
붓[筆]: 몽염(蒙括)이 만들었다. 뽕나무로 붓대를 만들고 사슴 털로 기둥 심을 만들고 양털로 둘러쌌다.

墨 刑溪造
묵(墨): 형해(刑奚)가 만들었다. 

視 子路始置
벼루[硯): 자로(子路)가 처음으로 비치하였다. 

酒 古有醴酪 禹時儀狄作酒 後杜康潤色之
술[酒]: 상고시대에는 감주와 타락이 있었다. 우임금 때 의적(儀狄)이 술을 만들었다. 그 뒤 두강(杜康)이 술의 색과 맛을 입혔다.

燒酒 元時始製
소주(燒酒): 원나라 때 처음으로 만들었다. 

歌舞 陰康氏王天下 人疾重膇制歌舞以通利關節 又曰舞自陶唐氏 歌自葛天氏 蓋其古矣
가무(歌舞): 음강씨가 세상의 왕이었을 때 사람들은 계속 발이 붓는 것을 싫어해 노래와 춤을 만들어 관절의 피를 통하게 하고 부드럽게 하였다. 또 춤은 도당씨 때부터 있었고 노래는 갈천씨 때부터 있었다라고 한다. 모두가 상고시대이다.

琴 神農氏作 本五絃 後加文武二絃
거문고[琴]: 신농씨가 만들었다. 원래는 5현이었는데 뒤에 문무 2현을 추가했다.

 

瑟 庖犧作 本五十絃 後破爲二十五絃
큰 거문고[瑟]: 포희씨가 만들었다. 원래는 50현이었는데 뒤에 쪼개져 25현이 되었다.

箏 秦人薄義父子爭瑟分之因名箏 蓋十三絃.
아쟁[箏]: 진나라 사람 박의(薄義) 부자가 큰 거문고로 다투다가 나뉘었다. 그래서 쟁(箏)이라고 이름 붙였다. 대개 13 현이다. 

笙簧 女媧氏作.
생황(笙簧): 여와씨가 만들었다.

簫 帝舜作
퉁소[簫]: 순임금이 만들었다. 

笛 漢宦者李延年造 或云張騫入西域傳其法
피리[笛]: 한나라 관리 이정년(李延年)이 만들었다. 어떤 사람은 장건(張騫)이 서역 원정 갔을 때 연주법이 전해졌다고도 한다. 

奚琴 本溪胡樂 唐時始傳中國 或謂嵇康造訛
해금(奚琴): 원래는 해호(溪胡)의 악기였는데 당나라 때 중국에 전해졌다. 혹자는 혜강(嵇康)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잘못 전해진 것이다. 

投壺 古之雅戱 觀人術心之精粗. 宋溫公釐正格例
투호(投壺): 옛날의 점잖은 놀이로 이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 씀의 정밀함과 조악함을 살폈다. 송나라 때의 사마온공이 격식과 규정을 정리했다.

鐘 炎帝臣伯陵作
종(鐘): 염제의 신하 백릉(伯陵)이 만들었다. 

 

鞞鼓 倕作 
마상 북[鞞鼓]: 수(倕)가 만들었다. 倕는 황제의 신하

伽倻琴 十二絃 大伽倻國後王嘉悉法唐樂府製之 琴成玄鶴舞庭 俗傳崔致遠造者非
가야금(伽倻琴): 12 현이다. 대가야국의 후왕 가실(嘉悉)¹⁾이 당나라의 악부를 본받아 만들었다. 가야금을 연주하자 검은 학이 마당에서 춤을 추었다. 세속에서는 최치원이 만들었다고도 하는데 잘못된 것이다. 

【주석】
가실(嘉悉)¹⁾: 가보왕(嘉寶王)이라고도 한다. 가야 연맹체 중의 어느 가야국의 왕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대가야(大伽倻)나 아라가야(阿羅伽倻)의 왕이라는 설과 함께 금관가야(金官伽倻)의 취희왕(吹帝王)이라는 설도 있다. 시대적으로는 동시대의 음악가 우륵(于勒)과의 관계로 미루어 신라 진흥왕과 같은 시기의 인물로 짐작된다.

圍碁 堯造 丹朱善之
바둑圍碁]: 요임금이 만들었다. 단주(丹朱)가 잘했다.

 

象戱 周武帝造之 或云信陵君所造
장기[象戱]: 주나라 무왕이 만들었다. 혹은 신릉군이 만들었다고도 한다.

雙陸 原西竺流曹魏 盛梁晉隋唐 或云子建造者非
樗蒲 老子作 擲之爲戱 以五木爲子 有梟廬雉犢塞 五者爲勝負之釆 即今之骰子
쌍륙(雙陸): 원래 서천축국에서 조조의 위나라로 유입되었다. 양, 진, 수, 당 시대에 성행했다. 혹자는 자건(子建)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잘못된 것이다. 
저포는 노자가 만들었다. 던져서 노는 놀이이다. 다섯 나무 조각이 말이 되는데 효, 려, 치, 독, 색이 있다. 다섯 말은 각각 이기고 지는 색이 있다. 바로 지금의 주사위다.

鬪牋 中國品第古今人物 合一百二十牋 名副牌 昉元時我國譯官張烄 刱造此技 蓋倣華制少變之
구전(鬪牋투전): 중국에서 고금의 인물 등급을 정하고 모두 백이십개의 종이를 만들어 구패라고 하였다. 마침내 원나라 때 우리나라 역관이던 장교(張烄)가 이 가지(枝)를 만들었는데, 대체로 중국의 제도를 모방하고 약간 변형시킨 것이다.

骰牌 白香山退老後造此 與侍爲戲
골패(骰牌골ᄑᆞㅣ): 백거이(白居易)가 은퇴하여 노후에 이를 만들어 시중드는 사람과 놀았다.

女樂 蓋古有唐宋 至元最盛 大明初亦有之 營妓以待軍士無妻者 我國於邊鎭 皆置妓樂爲此云 
여악(女樂): 여악은 옛날 당나라와 송나라 시절부터 있었고 원나라 때 가장 번성하였다. 명나라 초기에도 역시 있었다. 군영의 기생들로 옛날부터 부인이 없는 군사들을 상대하게 했다. 우리나라는 국경 진영에 모두 기악을 두어서 이렇게 했다고 말한다. 

 

唐人謂妓爲錄事亦日酒紏 又妓所居曰錄事巷

당나라 사람들은 기생을 녹사라 일컬었고 또는 주두라고도 하였다. 또한 기생들이 거처하는 곳을 녹사항이라고 하였다.

 

鼇棚 儺俑優面 自周時以此爲戲 自漢武百戲 
산디놀이[鼇棚]¹⁾: 역귀를 쫒는 연기를 하는 나용(儺俑)에게 다양한 가면을 씌웠다. 주나라 때부터 이것이 놀이가 되었고 한나라 무제 때 온갖 가지의 놀이가 되었다.

【주석】
산디놀이[鼇棚]¹⁾: 완산중간본에는 산봉으로 되어 있다.

呈才人 本中國排優幻術者 流世傳麗末 魯國大長公主出來時隨來云 新羅眞興王 取美男粉飾 名花郎
희극배우[呈才人]: 정재인은 원래 중국의 배우나 환술자이다. 몇 대를 지나 고려 말에 전래되었다. 노국대장공주가 올 때 이들이 따라왔다고 한다. 신라 진흥왕은 미남자를 뽑아 곱게 화장을 시켜 화랑이라 하였다.

秋千 北方山我之다.以智聲也, 楚俗謂之助
그네[秋千]: 북방의 산융(山戎)족의 놀이이다. 이를 통해 날렵하게 되는 것을 익힌다. 초나라 풍속에 이것을 시구(施駒)라 하였다. 

蹴鞠 傅者言黄帝所作 或曰起戰國時 蹋鞠兵勢也 所以練武士 如有材也 皆因嬉戲而練之
축국(蹴鞠져기): 흔히들 말하기를 황제가 만들었다고 하는데 혹은 전국시대에 생겨났다고도 한다. 공을 차게 한 것이 병사들의 기세를 키우기 위한 것이다. 축국으로 무사들을 단련시키고 이를 통해 재능있는 사람을 알아냈다. 대체로 즐거운 놀이로 훈련시킨 것이다.

 

紙鳶 梁武在臺城 有小兒獻計 以紙爲鳶 繫詔書縱風求外援 候景使善射射之 壁化爲烏雲中 * 或云 韓信欲穿地道入未央宫 作紙鳶以 繩飛場欲知未央官步數 未知是否
종이연[紙鳶]: 양나라 무제가 대성에 있을 때 어떤 아이가 종이 紙가로 연을 만들어 조서를 매달아 외부의 지원을 요청하는 계책을 올렸다. 후경(候景)이 선사를 시켜 그것을 쏘게 하였고 줄이 끊어진 연은 새로 변해서 구름속으로 들어갔다. * 누군가 말하기를 한신이 땅에 굴을 파서 미앙궁(未央宮)에 들어가려고 할 때 종이연을 만들어 먹줄 자를 매달아 날려서 미앙궁까지 몇 걸음이나 되는지 알아보려고 했었다고 한다. 사실인지 알 수 없다.

寺剎 漢明帝時 攝摩騰白西域 白馬馱經來 創立白馬寺 後遂名浮屠
사찰(寺刹) 한나라의 명제 때 섭마등(攝摩騰)이 서역으로부터 하얀 말에 가득 불경을 싣고 와서 백마사(白馬寺)*를 창건하였다. 후에 부도(浮)라고 불렸다.

【주석】
백마사(白馬寺)*: 후한의 명제(明帝) 때 섭마등(攝摩騰)과 축법란(竺法蘭)의 두 중이 대월지국에서 불상과 불경을 흰말에 싣고 와서 이듬해에 낙양 외교(郊外)에 세운 중국 최초의 절

牢獄 設自古 夏曰夏臺 殷曰羑里 周曰圜土 泰曰囹圄
뇌옥(牢獄): 예부터 설치하였다. 하나라에서는 하대(夏臺)라 하고 은나라에서는 유리(羑里), 주나라에서는 환토(圜土), 진나라에서는 영어(囹圄)라 하였다.

郵驛 間時已設 我束新羅炤智王始置
우역(郵驛): 주나라 때 이미 설치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소지왕이 처음으로 설치했다.

 

市肆 皇始作日中市 我東新羅智王始置
시사(市肆): 수황씨가 처음으로 만들어 일중시(日中市)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소지왕이 처음 설치했다. 

刻漏 黄帝創 觀漏水製器取則 以分晝夜 我束新羅聖德王始造 唐中宗時
각루(刻漏): 황제가 처음 만들었다. 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그릇을 만들어서 그 규칙을 취하여 낮과 밤을 구분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성덕왕이 처음 만들었다. 당나라 중종 때이다.

 

燭 古未有蠟燭 周時百根葦 布纏蜜塗蠟炬之始
초[燭]: 옛날에는 밀랍으로 만든 초가 없었다. 주나라 때 뿌리가 무성한 갈대를 베로 감고, 꿀을 바른 것이 납거(蠟炬)의 시초이다. 

 

兒戱原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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